급식의 신
9화
해가 뜨기 전이었다.
옥상 철문을 열자 바람이 서준혁의 조리복 깃을 세웠다.
강시은은 난간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평소와 달랐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어져도 손을 대지 않았다.
서준혁이 다가가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었다. 그러나 울고 있지는 않았다.
“이거 받아주세요.”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서류 봉투. 만져보니 안에 두꺼운 무언가가 들었다.
서준혁은 받아 들었다.
“뭐지.”
“4년 전 유통기한 경과 닭고기가 납품되던 날 찍은 사진이에요. 그리고 내부 메모 원본.”
강시은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단단했다. 평소의 떨림이 없었다.
“은성초 사건, 그때 저는 알고도 못 본 척했어요.”
턱을 들었다.
“그 후로 4년 동안 매일 밤 그 닭고기 사진을 들여다봤죠. 지우지도, 건네지도 못하고.”
서준혁이 봉투를 열었다. 사진 여러 장. 포장지에 찍힌 유통기한이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손으로 지운 흔적이 역광에 비쳤다.
“차만식 협박, 어제도 있었나.”
“네.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강시은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협박당하면서 느낀 게… 무서움이 아니었어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준혁은 메모지를 꺼냈다. 빼곡한 수기 글씨. “김 팀장 면담 건: 유통기한 변조 묵인 요청 접수. 차 사장 승인 완료.”
강시은이 한 걸음 다가섰다.
“제가 증언할게요. 법정에서든, 감사장에서든. 이번엔 숨지 않을게요.”
서준혁이 봉투를 접어 조리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손끝이 왼쪽 손등 흉터를 스쳤다.
“증언 하나로는 부족하다. 차만식은 교육청과 정치권으로 연결돼 있어.”
“알아요.”
“알면서도 하겠다는 거냐.”
강시은이 손톱을 뜯으려다 멈췄다. 두 손을 허벅지에 붙였다.
“…네. 지난 4년이 제가 숨은 대가라면, 이제는 제가 지불할 차례예요.”
바람이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얼굴 앞으로 날렸다. 여전히 손을 대지 않았다.
서준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봉투 열람 후 연락한다. 오늘 중으로.”
그가 돌아서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서 선생님.”
강시은의 말투가 처음으로 존댓말을 벗었다.
“꼭 끝내자고요.”
서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철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조리복 안주머니에서 봉투 무게가 느껴졌다.
아침 조리 종료 후.
서준혁은 급식실 뒷문 밖에 서 있었다. 오전 내내 봉투 속 사진과 메모를 교차 확인했다. 유통기한이 지워진 닭고기 포장지. 그 옆에 찍힌 로트 번호가 2년 전 딸의 메뉴표 로트와 동일한 공장 코드를 공유했다.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벨이 세 번 울리고 연결됐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 품질관리팀 시절 후임이었던 한주원이었다.
“나다. 서준혁.”
3초의 정적.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QC 시절 비리 보고서 건으로 연락했다.”
“……아, 팀장님.”
한주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주변을 살피는 듯 횡설수설했다.
“그 보고서, 인사팀에서 별도 보관했대요. 2년 전 폐기 명령 떨어졌을 때 공식적으로는 폐기된 걸로 처리됐는데……”
“사본이 있나.”
“네. 제 개인 보관함에 있어요.”
서준혁은 뒷문 벽에 등을 기댔다.
“왜 보관했지.”
한주원의 대답이 잠시 뜸들여졌다.
“……팀장님이 그 보고서 쓰실 때, 전부 증빙 사진까지 붙여서 80페이지 넘겼잖아요. 그게 폐기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서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벽돌의 거친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언제 찾으러 갈 수 있나.”
“내일 저녁이면 가능합니다. 다만…… 하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말해.”
“작년에 신선유통 쪽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팀장님 행방을 묻더라고요. 그때는 단순히 구직 확인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다시 전화 왔어요. 이번엔 ‘서준혁이 뭘 캐고 다니면 바로 연락하라’고.”
서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였나.”
“이름은 안 댔어요. 그냥 ‘윗선에서 지시받았다’고만……”
“주원아.”
서준혁의 말투가 짧게 끊었다.
“내일 찾아간다. 그 전까지 보고서는 네 손에서 절대 꺼내지 마라.”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팀장님.”
통화가 끝났다.
서준혁은 휴대폰을 닫고 수첩을 꺼냈다. 볼펜으로 한 줄을 적었다. ‘한주원 개인 보관함 — QC 보고서 사본. 내일 입수.’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추가했다. ‘신선유통, 윗선. 서준혁 행방 이미 파악 중.’
볼펜을 접어 조리복 주머니에 넣었다.
같은 날 오후.
최경수 시의원 사무실은 3층 복도 끝에 있었다.
차만식은 문 앞에서 넥타이를 한 번 더 만졌다. 올백머리에 기름을 다시 바르고 들어갔다.
사무실 안은 의외로 소박했다. 책상 하나, 회의용 탁자, 벽면의 지역구 지도. 선거 포스터 시안이 탁자 위에 펼쳐져 있었다.
최경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십 대 초반. 깔끔한 흰 셔츠에 안경 너머로 웃음기를 띠었다.
“차 사장님.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덕분에 잘 있습니다, 의원님.”
차만식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턱까지 기름이 번들거렸다.
최경수가 손을 내저었다.
“자리에 앉으시죠. 일 없다고 안 오시던 분이 직접 찾아오셨으니, 볼일이 있으실 테고.”
커피잔이 두 개 놓였다. 차만식은 마시지 않고 입술만 축였다.
“의원님. 다음 지방선거, 준비는 잘 되가십니까.”
“뭐, 늘 하던 대로.”
최경수가 안경을 벗어 닦았다.
“다만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젊은 층 표심이 요동치고 있어서, 경선 자금이 좀……”
차만식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오천만 원 준비했습니다.”
최경수의 손이 안경을 닦다 멈췄다.
“오, 그 정도면 꽤 든든한 지원이군요.”
“단, 하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차만식이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금반지가 탁자 유리에 닿아 딸깍 소리를 냈다.
“다음 교육청 급식 위탁 심사에서 저희 신선유통 계약이 보호받아야 합니다. 최근에 감사도 있었고…… 내부 직원 하나가 말썽을 부리고 있어서.”
최경수가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유난히 컸다.
“차 사장님. 내가 교육청에 영향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눈이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빛났다.
“급식 심사는 까다로운 절차라…… 윗선의 결재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차만식의 눈이 반짝였다.
“윗선이라면, 혹시……”
“말은 거기까지 하시죠.”
최경수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책상 서랍을 열었다. 작은 검은색 수첩을 꺼냈다.
“대신 내가 한 가지 약속하겠습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심사 절차가 공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하겠습니다.”
수첩에 펜을 대며 덧붙였다.
“이 대화 내용은 제가 따로 기록하겠습니다. 차 사장님도 아시죠? 우리 같은 사람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걸.”
차만식의 얼굴에 묘한 긴장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숙였다.
“당연합니다, 의원님. 제가 이 바닥에서 얼마나 많은 걸 배웠겠습니까.”
“참.”
최경수가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 내부 직원 말인데, 혹시 폭로 같은 걸 준비하는 건 아닙니까.”
“걱정 마십시오. 제가 처리합니다.”
차만식의 입가에 하얀 침이 맺혔다.
“이미 다 조사해놨습니다. 개인적 원한으로 매도하면 그만인 놈이에요.”
“조심하세요. 여론이라는 게 무서운 거니까.”
최경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다시 안경을 쓰며 덧붙였다.
“윗선 분이 특히 민감해하시는 부분입니다.”
차만식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에 나서자마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땀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일 저녁.
학교 인근 공원. 가로등이 하나씩 점등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서준혁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옆자리에는 유다희. 그녀는 이미 액션캠을 만지작거리며 배터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 영상 반응 어땠어요?”
“오전 10시 올린 영상은 조회수 12만 넘겼다. 댓글도 대부분 긍정적이고.”
서준혁이 봉투를 무릎 위에 펼쳤다.
“강시은이 새 증거를 줬다. 4년 전 유통기한 변조 사진과 내부 메모.”
“대박!”
유다희가 상체를 숙였다. 벤치가 삐걱댔다.
“그럼 이제 차만식이 은성초 때부터 의도적으로……”
“맞다. 그리고 추가로 하나 더.”
서준혁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2년 전 폐기된 줄 알았던 내 QC 보고서 사본이 남아 있다. 전 동료가 보관 중. 내일 입수할 거다.”
유다희의 눈이 커졌다.
“그럼…… 진짜로 증거가 다 모이는 건가요?”
“모두 모이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2호 창고에서 찍어내는 스티커 원본.”
서준혁이 수첩을 펼쳤다. 그날 밤 강시은의 원룸에서 적었던 내용 밑에 새로운 메모가 추가되어 있었다.
“물류창고 영상에서 확인된 출고 시간과 위성 사진 촬영 시간을 교차 분석해봤다. 전 동료가 분석해준 결과.”
그가 지도를 앱으로 열었다.
“후보지 세 곳으로 압축됐다. 인천 남동공단 4블록, 시흥 스마트물류센터 B동, 그리고……”
산업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한 저층 건물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학교 북쪽 외곽 폐냉동 창고.”
유다희가 지도를 확대했다.
“세 곳 중 어디가 제일 유력해요?”
“학교 북쪽.”
서준혁이 손가락으로 건물 주변을 빙 둘렀다.
“CCTV 사각지대, 심야 전력 사용량 급증 구간, 그리고 냉동탑차 접근이 용이한 후문 구조. 전형적인 위조 공장 입지다.”
유다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일 바로 가보는 거죠? 제가 같이……”
“아니.”
서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일은 혼자 간다. 너는 여기서 비상 연락 체계를 유지해.”
주머니에서 작은 보조 폰을 꺼내 건넸다.
“내가 오후 3시까지 연락이 없으면, 네가 가진 모든 영상과 증거를 실시간 중계로 내보내라.”
유다희가 폰을 받아들었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알겠어요. 그런데 왜 하필 오후 3시예요?”
서준혁은 일어나며 짧게 답했다.
“조리실 청소 시간. CCTV가 꺼지는 시간대와 똑같다.”
유다희를 공원 입구까지 배웅한 뒤, 혼자 벤치로 돌아왔다.
수첩을 다시 꺼내 세 개의 주소를 확인했다. 볼펜으로 ‘학교 북쪽 외곽—내일 새벽 첫 탐색’이라고 적었다.
수첩을 접어 조리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봉투 속 사진과 메모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공원을 빠져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귀갓길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끊어졌다. 학교 정문을 지나 북쪽 외곽 방면 인도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도로 저편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천천히 꺾여 들어왔다.
검은색 제네시스 세단. 속도가 느렸다. 마치 주변을 살피는 듯한 움직임.
서준혁은 길가 화단 조경수 그늘로 몸을 밀착시켰다. 숨을 죽였다.
차량이 폐냉동 창고 방향으로 진입했다. 30미터쯤 앞에서 정차했다. 뒷좌석 문이 열렸다.
구두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울렸다. 올백머리에 반짝이는 금반지.
차만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