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 도감 - 12화 완결

1화

이른 아침 회현궁 후원 샘터에는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았다.

샘물 가장자리 돌에 궁녀 하나가 엎드린 채 멈춰 있었다. 두 손은 물속에 잠겨 손끝이 창백하게 불었고, 등 쪽 당의는 마른 흔적과 젖은 흔적이 뒤섞여 흩어져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은비녀 하나가 반쯤 빠져나온 채였다.

형조 정랑이 샘터 주변을 돌며 하급 관리들에게 손짓했다.

“이송 준비 먼저 갖춰라. 해 뜨기 전에 끝내야 한다.”

서리는 붓을 쥐고 검시 기록 초안 용지를 펼쳐 들었다. 서연은 시신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소매를 걷었다. 손가락으로 시신의 뒷머리를 짚자 아직 젖은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뒤통수에 타박. 함몰 없음. 멍 자국은 사후 경직 전 형성.”

서리가 빠르게 붓을 움직였다. 서연은 손을 옮겨 시신의 손톱 밑을 살폈다.

“손톱 아래 이물 없음. 손바닥 찰과상… 흙과 돌가루. 저항 흔적으로 볼 수 있다.”

형조 정랑이 다가왔다.

“서 검시관, 결론만 간추리시오. 형조 보고서엔 길게 쓸 필요 없네.”

“아직 진행 중입니다.”

서연은 시신의 머리로 손을 되돌렸다. 은비녀를 짚자 손끝이 문양의 윤곽을 따라갔다. 가늘게 패인 꽃잎들. 그 중심부에 다른 무늬가 있었다. 평소 보던 장식의 난초 무늬가 아니었다.

“비녀의 꽃잎 배치가 관례와 다릅니다.”

서연의 손끝이 멎었다.

“자세히 기록해야 합니다. 꽃잎 수가 통상의 다섯이 아니라 일곱이고, 중심 원 안에 작은 당초 무늬가 있어요.”

형조 정랑이 고개를 기울였다.

“보아하니 상궁 품계의 은비녀 아닌가. 그 정도면 족하지.”

“상궁 은비녀 난초문 꽃잎은 다섯입니다. 이건 일곱이에요. 중심 문양도 다르고.”

서리가 들고 있던 붓을 멈추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형조 정랑이 턱을 만졌다.

“글쎄, 궁내 장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 않나.”

서연은 머리 꽂이를 시신에서 조심히 뽑아 들었다. 새벽빛에 은 표면이 흐릿하게 반사됐다. 문양은 확실히 낯설었다.

“정식 절차대로 검시 기록에 이를 명시하고, 증거물로 분리 보관해야 합니다. 문양은 신원 추정의 근거입니다.”

형조 정랑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수사를 모르는 줄 아시오? 시신 먼저 내보내고 본청에서 해도 될 일.”

서연은 무릎을 곧추세우고 일어났다. 손에 쥔 은장식을 햇빛에 비추자 은은한 광택이 돌며 무늬가 더 선명해졌다. 당초 무늬는 궁중 표준 도안에 없는 형태였다.

“증거물은 현장에서 기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정랑 나리.”

“서 검시관, 이 일을 몇 년 했소?”

“그것이 문양 기록과 무슨 상관입니까.”

인기척 하나 없이 정적이 흘렀다. 서리가 조심스럽게 붓을 내밀었다.

“기록… 계속할까요?”

서연이 대답하기 전에 형조 정랑이 손을 저었다.

“좋소. 기록하시오. 대신 빠르게.”

서연은 서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증거물 트레이 위에 뽑아낸 비녀를 올렸다.

“꽃잎 일곱, 중심 당초문. 길이 약 네 치.”

서리가 붓을 놀리는 동안 서연은 검시 기록 초안을 한 번 훑었다. 은비녀에 관한 항목이 두 줄로 추가되어 있었다.

“이제 이송해도 되겠소?”

형조 정랑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서연은 트레이에서 증거물을 집어 봉투에 담았다. 봉투 입구를 접어 손에 쥐었다.

“증거물은 제가 보관합니다. 검시 정서 때 다시 확인할 부분이 남았다.”

형조 정랑이 잠시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하급 관리들에게 시신을 옮기라는 손짓을 하고는 샘터를 먼저 떠났다. 발소리가 돌길 너머로 멀어졌다.

서리는 형조 정랑이 사라진 쪽을 한 번 보고는 서연에게 속삭였다.

“정랑 나리 기분이 많이 상하신 듯하옵니다.”

“증거물이 먼저다.”

서연은 봉투를 소매 안쪽에 밀어 넣고 회현궁 별실로 향했다.

회현궁 별실은 좁았다. 탁자 하나, 의자 둘, 벽 쪽에 빈 약장이 놓인 방이었다. 창은 동향이라 늦은 아침 햇살이 탁자 위 검시 기록 초안을 비추고 있었다.

서연은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품속에서 내의원 진찰록 사본을 꺼내 탁자 왼쪽에 펼쳤다. 종이는 접힌 자국이 깊게 배어 있었다. 사흘 전 내의원 기록고에서 베껴 온 것이다.

검시 기록 초안은 오른쪽에 두었다. 시신의 멍 자국 위치를 필사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두 기록을 번갈아 읽었다. 진찰 기록의 멍은 장방형, 변색은 황갈색에서 자색으로 진행 중이라 적혀 있었다. 진찰 시각 기준으로 최소 세 시진 전에 생긴 자국이라는 판단이 붙어 있었다.

서연은 붓에 먹을 찍었다. 손끝에 묻은 잉크 자국이 종이 모서리에 작게 번졌다.

검시 기록 정서 용지에서 ‘왼쪽 갈비뼈 아래 멍’ 항목을 찾았다. 추정 발생 시각을 쓰려다 잠시 멈추었다. 진찰록의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사망 추정 시각보다 반나절 전이면 멍의 원인이 가려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붓을 움직였다.

‘왼쪽 갈비뼈 아래 멍 — 발견 당일 오전 경 형성. 추정 경과 시각 2시진 이내.’

실제보다 반나절 늦춘 시각이었다. 붓을 든 손이 멈추지 않았다. 은비녀 문양 항목은 그대로 옮겼다. 난초가 아닌 당초문, 꽃잎 일곱. 한 획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른 항목들은 의녀 문건과 일치시켰다. 팔다리 타박상 세 곳, 왼손 검지 관절 탈구 흔적. 글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기록 두 개는 서로 닮아가면서도 멍의 시각에서만 어긋나 있었다.

마지막 항목을 적고 붓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에 묻은 먹 자국이 굳기 시작했다. 검지와 중지 사이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정서가 끝난 기록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말렸다. 먹 냄새가 방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서연은 의녀 진찰 기록 사본을 접어 다시 품속 깊이 밀어 넣었다. 겉옷을 여미자 종이 끝이 옷깃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완성된 검시 기록을 탁자 중앙에 내려놓았다. 은비녀 봉투는 그 옆에 얹었다. 기록에는 멍 자국의 시각만 거짓이었고, 장식의 문양은 진실이었다.

불일치는 그렇게 종이 위에 자리를 잡았다.

샘터 쪽 회랑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서연은 품 안의 의녀 진찰 기록 사본을 한 번 더 눌러 확인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형조 정랑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길을 비켜주는 자세—그가 형조 참의 강윤이었다.

강윤은 복건 아래로 현장을 한 번 훑고는 곧장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서연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보고는 들었다.”

손가락이 검시 기록을 집어 들었다.

“멍 자국이 왼쪽 갈비뼈 아래에만 집중됐다고?”

형조 정랑이 얼른 대답했다.

“예, 대감. 하급 궁녀가 샘물을 뜨러 나왔다가 발견했고, 끈으로 졸린 흔적은 따로…”

“보지 못한 자의 말을 왜 듣고 있느냐.”

강윤이 기록지를 한 장 넘겼다. 손끝이 멈춘 곳은 멍 자국 기술 부분이었다.

“왼쪽 네 번째 갈비뼈 아래 암자색 반점. 추정 발생 시각, 축시에서 인시 사이.”

읽고 나서 손을 뗐다. 떼는 타이밍이 한 박자 늦었다.

“서 참하는 의원 출신이라 들었다.”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강윤이 비로소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의심이, 그리고 어딘가 예민하게 긴장한 무엇이 얹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멍 자국 추정 시각. 직접 사체를 봤느냐.”

“의관으로서 검시 기록을 대필할 때 관례에 따라 확인했습니다. 시반과 경직도를 근거로…”

“관례.”

강윤이 끊었다.

“누구의 관례지. 형조 검안관의 관례인가, 진료실의 약장수 관례인가.”

형조 정랑의 눈썹이 움찔 올라갔다. 서연은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답했다.

“의녀들의 진찰 기록 작성법을 참고했습니다. 멍은 생성 후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고, 그 변화를 기술할 때 시반 형성 단계와 체온 저하 속도를 병기하는 것이 내의원의 방식입니다.”

손끝이 책상 모서리에 닿았다. 잉크 자국이 남은 손가락이 살짝 굽었다.

“다만 형조의 검시록은 표현이 간결해야 하므로, 의학적 근거는 본문에서 생략하고 추정 시각만 기재했습니다.”

강윤이 기록의 다른 부분을 짚었다.

“은비녀 문양 기술은 아주 상세하군.”

“증거품의 형상을 남기는 것은 내의원 진찰록에도 공통된 원칙입니다.”

말을 마치자 강윤이 비녀 봉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봉투 안에서 은장식 한 개가 천에 감싸인 채 드러났다. 수정 장식이 아니라 무문에 가까운 은세공. 다만 꽃잎 세 개가 서로 다른 깊이로 파여 있었다.

서연이 입을 열었다.

“상궁 이상의 품계 비녀라면 문양이 더 정형화돼야 합니다. 저 무늬는 관청 기록과 대조해볼 가치가…”

“증거는 형조에서 직접 검증한다.”

강윤이 봉투를 접었다. 천천히 접어 품에 넣었다.

“서 참하가 내의원 일을 겸하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이 사건은 궁 안에서 난 첫 번째 사건이 아니며, 검시 기록을 둘러싼 의혹도 처음이 아니다.”

마지막 문장을 꺼낼 때 목소리가 한 꺼풀 낮아졌다. 형조 정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일 형조로 출두하라. 기록자가 직접 다시 쓰는 게 순서다.”

강윤이 등을 돌렸다. 하급 관리 하나가 그의 뒤를 따르고, 다른 하나는 시신 운구 지시를 받아 분주히 움직였다.

형조 정랑이 서연을 스쳐 지나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참하 나으리가 무슨 공을 세우겠다고 형조 일에 이리 깊이 관여하시는지.”

말투에는 핀잔과 조바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서연은 대꾸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서 비녀가 사라진 자리만 잠시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포 천 조각 옆으로, 아까 손을 짚었던 자리의 잉크 흔적이 얇게 번져 있었다.

‘내일 형조에서 다시 뵙지.’

강윤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검시 기록의 추정 시각은 실제보다 반나절 늦췄다. 내의원 문건 사본과 대조하면 멍 생성 단계가 한 단계 이상 앞서 있었다. 그 차이를 강윤이 아직 확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처음이 아니다”라는 말이 단순한 경계 이상이었다.

서연은 손가락을 옷깃 안쪽으로 말아 쥐었다. 내일 다시 기록을 쓰라 했다. 같은 내용으로는 의심만 키울 뿐이다. 그렇다고 원래 시각을 되돌리면 첫 기록과 모순된다. 오빠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대리는 계속되어야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샘터에 형조 인원이 철수하는 소리만 남았다.

서연은 천천히 별실 쪽으로 발을 돌렸다.

서연은 무릎을 곧추세우고 일어났다. 손에 쥔 은비녀를 햇빛에 비추자 은은한 광택이 돌며 문양이 더 선명해졌다. 당초 무늬는 궁중 표준 도안에 없는 형태였다.

“증거물은 현장에서
은비녀 독초 도감 - 12화 완결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