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 도감 - 12화 완결

10화

서연의 검시실에는 촛불 세 개만 남아 있었다. 강윤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촛농이 탁자 모서리에 굳어가고 있었다.

서연은 탁자 위 유품 상자 앞에 앉은 채였다. 눈가는 여전히 붉었지만,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시작하겠소.”

상자 뚜껑을 열자 얇은 베 보자기에 싸인 찻잔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갈색 얼룩이 잔 안쪽에 선명했다. 그 아래 접힌 한약 포장지와, 누렇게 바랜 관용 문서 한 첩이 겹쳐 있었다.

강윤이 포장지를 펼쳤다. 약재 이름이 빼곡히 적힌 처방전이었다.

“백화독 배합에서 적화독으로 전환하는 중간 처방이오. 서윤이 복용한 독차와 동일한 계열이오.”

서연은 대답 없이 바랜 문서를 들어 올렸다. 겉장이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 표지의 인장은 형조 비밀문서고의 것이었고, 발행 연호는 을유년이었다.

“‘세자 전하 독살 사건 초기 수사록.’”

강윤이 숨을 들이켰다.

“그 문서는 형조 기록에서 15년 전 소실된 것으로……”

“오라버니가 여기에 보관하고 있었소.”

서연이 첫 장을 넘겼다. 멍든 손톱으로 줄을 짚으며 글자를 따라갔다. 수사관들의 초기 진술과 독극물 감정 결과, 세자 동궁 출입자 명단이 차례로 드러났다. 그 아래에 다른 필체로 덧붙여진 메모가 있었다.

‘독약 출처: 내의원 약재고에서 유출. 출고 담당자 한장현. 한장현의 배후 지목 불가 — 현 국구의 사위이므로 수사 배제됨.’

강윤이 문서를 받아 읽었다. 턱에 힘이 들어갔다.

“한장현은 대왕대비의 오빠, 현 국구의 사위였소. 즉 독약 유출 경로는……”

“국구를 통해 대왕대비에게 닿아 있소. 오라버니의 독차와…… 그 옛날 세자 전하의 독살이 같은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뜻이오.”

서연이 찻잔을 들어 빛에 비췄다. 잔 바닥의 검은 침전물은 오래된 독의 흔적이었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독이 25년을 건너뛰어 서윤을 죽였소.”

강윤이 문서 뒷장을 넘기다 멈췄다.

“증인 명단이 없소. 진술을 청취한 인원의 기록이 통째로 누락되어 있소.”

그때였다. 검시실 문 아래로 흰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서연이 먼저 알아채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종이를 집어 들었다. 월영의 필체. 단 한 줄.

‘검시실로 가겠다. 지금.’

서연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흰 당의 자락이 먼저 드러났다. 평소와 달리 상궁 예복 대신 무명 적삼에 검은 치마 차림이었다.

두 사람 사이로 찬 공기가 흘렀다.

“들어가십시오.”

서연이 문을 활짝 열었다. 월영은 대답 없이 검시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지나가며 서연의 팔을 한 번 보았다. 멍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강윤이 일어섰다.

“밤이 깊었소, 상궁 마마.”

월영이 직접 문을 닫았다. 걸쇠까지 채우는 쇠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이 문은 내가 잠갔다. 나는 지금부터 회현궁 상궁으로서가 아니라…… 을유년 그날 밤 세자 전하의 시해 현장을 목격한 자로서 이곳에 왔다.”

강윤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증언할 뜻이오?”

“그렇다. 그리고 참의 나리는 형조 법도에 따라 내 증언을 공식 녹취할 의무가 있다.”

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붓과 종이를 월영 앞 탁자에 놓았다.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였다.

월영이 탁자 위 은비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것이었다. 꽃잎 일곱 개, 잎맥이 세 군데 끊긴 바로 그 비녀. 강윤이 그 물건을 서류 옆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증언을 시작하겠소?”

월영이 앉지도 않고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끝이 갈라져 있지 않았다.

“정월 보름, 나는 세자 전하의 동궁에서 침선 나인으로 있었다. 그날 밤 전하께서 갑자기 고열을 앓으셨고 내의원에서 탕약을 올렸다.”

강윤이 붓을 들어 첫 줄을 적었다.

“나는 약을 식히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 그때…… 현 국구가 탕약 그릇을 직접 받아 들고, 소매 안에서 작은 분첩을 꺼내 가루를 털어 넣는 것을 보았다.”

검시실 안의 모든 공기가 멈춘 듯했다.

“국구께서…… 친히?”

서연의 목소리가 메말랐다.

“내 눈으로 보았다. 분첩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세 글자였다. ‘제三十七’.”

강윤이 서랍에서 독초 도감 사본을 꺼내 펼쳤다. 손가락이 익숙하게 제37 배합표로 넘어갔다.

“이것이오?”

월영이 페이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배합에 쓰인 독성분 배열 순서다. 내 은비녀 잎맥이 끊긴 세 곳이 바로 그 순서를 가리킨다. 꽃잎 일곱 개 중…… 첫째는 ‘백화’, 둘째는 ‘적화’, 셋째는 ‘조제 순서 역순’을 뜻한다.”

강윤이 은비녀를 들어 독초 도감의 그림과 나란히 놓았다. 촛불 아래서 비녀의 잎맥 굴절이 그림 위의 배합 순서와 정확히 포개졌다.

서연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이 배합표의 끊긴 선을 짚었다. 오빠가 혈서에 남긴 구절과, 월영의 설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렸다.

“‘은비녀 문양 조감선의 미세한 굴절이 독초 도감 제37 배합표의 투여 경로 암호.’”

“그 암호를 만든 이가 현 국구다. 나는 그 사실을 그날 밤 대왕대비 마마께 아뢰었다.”

월영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닿았다.

“마마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본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밤 이 궁에서 세자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은 없을 것이다. 왕실의 안정이 먼저다.’”

강윤의 붓이 종이를 긁었다. 묻지 않은 먹물이 한 방울 번졌다.

“그게 전부요?”

“전부다. 이후 나는 회현궁으로 배속되었고, 은비녀는 품계를 받을 때마다 새 문양으로 바뀌었다. 모두 그 암호 체계를 따른 것이었다.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월영 앞에 섰다. 두 사람의 거리가 반 걸음으로 좁혀졌다.

“마마께서 지금 이것을 증언하시면…… 대왕대비의 비호를 완전히 잃으시오. 목숨도 장담할 수 없소.”

월영이 서연을 똑바로 보았다. 처음으로 입가에 옅은 쓴웃음이 스쳤다.

“나는 이미 25년 전에 잃었다. 침묵을 강요당하던 그 순간…… 세자 전하를 구하지 못한 그날 밤부터.”

월영이 소매 속에서 작은 인주함을 꺼냈다. 25년 묵은 은비녀의 꽃잎 끝에 엄지손가락을 찍었다. 강윤이 밀어 놓은 증언록 종이 위에 지문을 눌렀다. 암호 체계를 증명하는 증인의 낙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월영이 일어나 걸쇠를 풀었다.

“내일 자시. 조정 간담회에서 이 증언을 반복할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서 할 마지막 일이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어둠이 검시실 안으로 밀려들었다. 월영의 뒷모습이 어둠에 섞여 사라졌다.

강윤이 천천히 붓을 내려놓았다.

“증언록은 두 부를 작성하겠소. 원본은 내가 직접 중종 전하께 올리겠소.”

서연이 증언록 위에 손을 올렸다. 월영의 지문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 옆에 오빠의 혈서 사본과, 찻잔에서 떼어낸 독성분 기록지를 나란히 펼쳤다.

“세 갈래 증거가 모두 이어졌소. 을유년의 범행, 저 독초 도감과 은비녀의 암호, 그리고…… 오늘 밤의 증언.”

강윤이 서연의 손 옆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놓았다.

“내일 자시. 이 증거들로 우리가 직접 증명하오.”

촛불 하나가 스스로 꺼졌다. 검시실 안의 어둠이 한 겹 더 짙어졌다. 탁자 위 세 개의 증거가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놓여 있었다.

월영이 증언록 끝에 붉은 인주를 찍었다. 손가락을 떼는 타이밍이 반 박자 늦었다. 강윤은 그 손가락을 보지 않고, 봉인된 문서함의 자물쇠를 풀었다.

문서함 안에서 중종이 직접 건넨 생모 탈출 가능성 문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윤이 문서를 펼쳐 탁자 위에 올렸다.

“여기. 을유년 정월, 조현궁에서 궁 밖으로 빼낸 의원의 명단이오.”

서연이 혈서 옆에 문서를 가져다 놓았다. 두 기록을 번갈아 보던 그녀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이 의원의 이름…….”

월영이 고개를 들었다. 서연이 문서의 한 줄을 짚었다.

“국구의 사설 약방에서 약재를 공급받던 자요.”

강윤이 문서를 다시 읽었다. 눈빛이 차가워졌다.

“‘빼낸 의원’이라는 표현을 썼군. 중종 전하의 생모를 궁 밖으로 옮길 때 동원된 인물이오. 그 의원이 국구의 약방과 연결되어 있다면…….”

“독살과 실종이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오.”

서연이 말을 이으며 손을 벽 쪽으로 향했다.

벽에는 검시실에 들어온 이후 세 사람이 작성한 증거 연결도가 붙어 있었다. 을유년 세자 독사건의 독차 배합표, 폐비 서한의 인장 문양, 은비녀의 비표준 각인, 그리고 서윤이 남긴 혈서의 내용이 실로 이어져 있었다.

서연이 그 연결도 위에 새 종이 한 장을 덧붙였다. 붓을 들어 ‘국구 사설 약방’이라 쓰고, 그 아래 ‘의원 ○○○’이라 적었다.

“이 의원이 국구의 약방에서 백화독을 조달했소. 그리고 그 독이 세자의 독차에 들어갔소.”

강윤이 연결도에서 ‘백화독’이라 적힌 종이 쪽으로 붓을 옮겼다.

“동일한 약방 네트워크에서 생모 탈출에 필요한 약재도 공급받았소. 탈출을 도운 의원과 독살을 실행한 자가 같은 약방을 통해 연결된 거요.”

“그리고 이 모든 걸…….”

서연이 연결도의 중앙을 짚었다.

“국구의 독점적 의약 네트워크가 하나로 묶고 있소.”

월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내가 대왕대비 마마께 처음 이 은비녀를 받았을 때, 마마께서 말씀하셨소. ‘이 문양은 단지 장식이 아니니, 잃어버리면 네 목숨도 잃는다’고.”

서연이 돌아보았다. 월영은 자신의 은비녀를 뽑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 말의 진의를…… 나는 오늘에야 깨달았소.”

강윤이 벽의 연결도를 한 번 더 훑었다. 세 갈래로 나뉘어 있던 실이 한 점에서 수렴했다. 은비녀 문양, 독초 도감 배합표, 국구의 약방. 그 모든 연결점 위에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대왕대비 박씨.”

강윤이 말했다.

“이 증거를 조정 대신들 앞에서 제시하면, 25년 전 세자 독살과 중종 생모 실종이 동일한 범행 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이 입증되오.”

서연이 붓을 내려놓았다. 연결도 위의 마지막 빈 칸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 자리는 ‘조정 간담회’라는 글자가 들어갈 자리였다.

“이제 모든 근거가 갖춰졌소.”

서연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복도 양쪽에서 동시에 다가오는 발소리. 하나는 급했고, 다른 하나는 무거웠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참의 나리! 서 검시께서도 계시옵니까!”

낙빈이었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강윤이 탁자 위 증거물들을 재빨리 덮고 문가로 다가갔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자 낙빈이 무릎을 꿇었다. 무관청의 공식 전령 복장이었지만, 옷깃은 흐트러져 있었다.

“형조에 투서가 접수되었사옵니다. ‘형조 참의 강윤과 검시관 서연이 반역 음모를 꾸민다’는 내용이옵니다.”

강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낙빈이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이미 무관청을 통해 대왕대비 마마께도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복도 저 끝에는 사병으로 보이는 무리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복도에서 쇠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지금 바로 증거를 공개하지 않으면 두 분 모두 반역죄로 체포될 것이옵니다.”

강윤이 탁자로 돌아섰다. 세 개의 증거물을 차례로 봉인함에 넣었다. 중종 생모 문서, 월영의 증언록 원본, 서윤의 혈서 원본.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월영 상궁.”

월영이 일어섰다.

“지금 곧 궁으로 돌아가시오. 비밀 통로를 이용하면…….”

“알고 있소.”

월영이 자신의 은비녀를 다시 머리에 꽂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빗나가지 않았다.

“내가 돌아가 대왕대비 마마께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척 아뢰겠소.”

월영이 검시실 뒤편의 작은 문으로 향했다. 나가기 전, 잠시 서연을 돌아보았다.

“서 검시. 네 오라버니는…… 결코 헛되이 죽지 않았소.”

문이 닫혔다.

낙빈이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서연을 올려다보았다. 서연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낙빈 낭청. 중종 전하께 전하시오. ‘내일 조정 간담회 전에 모든 증거가 공개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그 자리에 반드시 참석하셔야 합니다.’”

낙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사옵니다. 지금 바로…….”

일어서려는 낙빈의 팔을 강윤이 붙잡았다.

“뒷문으로 가시오. 복도 쪽은 이미 막혔을 거요.”

낙빈이 재빨리 월영이 나간 뒤편의 작은 문으로 사라졌다.

쇠 발소리가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강윤이 봉인함을 양손으로 들고 일어섰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서연이 문가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문밖은 고요했다.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대왕대비 측이 선제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강윤이 봉인함을 서연에게 건네며 낮게 말했다.

“이 증거물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오.”

봉인함을 받아 든 서연의 손이 경미하게 떨렸다. 피로가 쌓인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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