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독초 도감 - 12화 완결
11화
문밖의 쇠 발소리가 멈췄다. 강윤은 봉인함을 한 팔로 감싸 안은 채 문고리를 노려봤다. 서연은 등을 문짝에 붙이고 숨을 죽였다.
복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참의 나리께서 아직 안에 계신 모양인데…….”
“대왕대비 마마의 밀지다. 지금 바로 열고 확인하라.”
이윽고 문틈으로 접힌 종이가 밀려 들어왔다. 강윤이 집어 펼쳤다. 서연도 가까이 다가가 글자를 더듬었다.
「형조 참의 강윤·검시관 서연은 무고한 상궁을 협박하여 허위 증언을 강요하고 왕실 증거물을 무단 반출하였으므로, 무관청은 두 사람을 현장에서 체포하여 내일 간담회 전까지 구금하라.」
강윤이 밀지를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대왕대비의 봉서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서연이 말했다.
“친필이 아니오. 대필이다.”
“법적 효력은 같소. 봉서 인장은 진품.”
강윤이 밀지를 접어 상의 안쪽에 넣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더 작고 다급했다.
낙빈이었다. 그는 사병들 사이를 헤치고 문 앞에 다다르자 무릎을 꿇으며 속삭였다.
“참의 나리! 저들이 침전 배치도를…….”
“여기서 말해라.”
낙빈이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빼내 강윤의 손에 밀어 넣었다.
“무관청 비상 감시로 확보한 출입 기록이옵니다. 대왕대비전 사병 중 하나가 오늘 술시 말, 병기고에 드나들었사옵니다. 그리고…….”
말을 잇다 숨을 들이켰다.
“중종 전하의 침전, 그 주변 경비 배치도 원본이 사라졌사옵니다. 지금 무관청 장부엔 사본만 남아 있고, 원본을 열람한 자의 명단이 모두 지워져 있사옵니다.”
강윤의 관자놀이가 뛰었다. 서연은 낙빈이 건넨 출입 기록을 가로등 아래 펼쳤다. 병기고 출입 명단에는 한장현의 이름이 있었다.
“배치도가 유출된 시각이 언제냐.”
“술시 초로 추정하옵니다. 그 직후 한장현이 병기고를 나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사옵니다.”
강윤이 봉인함을 서연의 팔에 밀착시키며 낮게 말했다.
“여기서 빠져나간다. 문서고다.”
서연이 봉인함을 다시 품에 안았다. 강윤이 낙빈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너는 곧바로 침전으로 가라. 전하께 오늘 밤은 취침을 미루시도록 청하고, 내가 보낼 경비들이 도착할 때까지 침전 문을 열지 말아라.”
“그런데 밀지가…….”
“대왕대비전의 사병은 내가 돌려보낸다. 다만, 침전 경비는 네가 직접 지켜라. 이 배치도 유출은 단순한 겁박이 아니다.”
낙빈이 눈을 크게 떴다. 강윤이 덧붙였다.
“내일 간담회는 반드시 열린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전하가 앉지 않길 바라는 거다.”
낙빈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뒤편의 작은 문으로 사라졌다. 강윤이 허리춤에서 형조 참의의 동패를 꺼내 두드리며 문을 열어젖혔다.
복도에 늘어선 사병 넷이 동시에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강윤이 대왕대비의 봉서를 그들 앞에 펼쳐 보였다.
“체포 영장은 이것뿐이더냐.”
사병 대장이 망설였다. 강윤이 동패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 밀지는 무관청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구두 지시의 대필이다. 형조 참의는 대왕대비전이 아니라 국왕 전하의 명을 받는 관직이다. 이것만으로 나를 체포할 수 없다.”
사병 대장이 한 발 물러섰다. 강윤이 서연의 팔을 잡아 복도로 나섰다.
“내일 조정 간담회가 열리기 전까지, 이 비녀와 증거물은 왕실의 것이 아니라 사건의 증거로 보존된다. 그것이 조선의 법이다.”
사병들은 감히 칼을 뽑지 못했다. 강윤과 서연은 복도를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밤 깊은 형조 참의 집무실. 촛불 세 개가 타고 있었다.
강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문서고 방향의 작은 문을 열었다. 그 너머는 형조 문서고 특별 열람실이었다. 좁은 공간에 탁자 하나, 의자 둘. 사방 벽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서함이 빼곡했다.
서연이 탁자 위에 봉인함을 내려놓고 자물쇠를 열었다. 월영의 증언록 원본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서윤의 혈서 사본과 월영이 낙빈을 통해 전달한 은비녀 원본을 나란히 꺼냈다.
강윤이 문서고 깊숙한 함에서 독초 도감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표지에 찍힌 형조 봉인은 이미 강윤의 특별 허가로 열려 있었다.
“37 배합표. 어디쯤이오.”
서연이 혈서의 마지막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오라버니가 기록한 마지막 줄이오. ‘조감선의 굴절 방향이 투여 순서를 나타낸다.’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소. 하지만 지금…….”
서연이 월영의 은비녀를 촛불 아래로 옮겼다. 일곱 꽃잎 중 세 번째 꽃잎을 가리켰다.
“이 꽃잎의 잎맥이 끊겼다. 조감선이 굴절되어 있다. 월영 상궁의 비녀는 대왕대비전 예장 규격이라 표준 문양과 달랐소. 하지만 잎맥이 끊긴 것은 규격의 차이가 아니라…… 의도된 흠집이오.”
강윤이 독초 도감 37페이지를 펼쳤다. 백화독과 적화독의 배합 순서가 그림과 함께 적혀 있었다. 약재 열두 가지의 투입 순서가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화살표의 굴절 각도와 비녀 문양의 끊긴 선을 대조해보시오.”
서연이 은비녀를 더 가까이 가져갔다. 백화독의 첫 약재인 감초군(甘草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굴절되었다. 은비녀 첫 꽃잎의 끊긴 조감선도 같은 방향이었다.
서연이 종이를 꺼내 먹을 갈았다. 은비녀의 각 꽃잎을 하나씩 관찰하며 기록했다.
“첫 꽃잎, 조감선 굴절 좌에서 우. 백화독 감초근 투여 방향과 일치.”
“두 번째 꽃잎. 조감선 굴절 아래에서 위로. 백화독 천궁(川芎) 투여 방향.”
“세 번째 꽃잎.”
서연이 숨을 멈췄다. 세 번째 꽃잎의 조감선은 두 번 굴절되어 있었다. 한 번은 우에서 좌, 다시 좌에서 우로.
“이것은…….”
강윤이 독초 도감을 들여다보았다. 37페이지 하단, 적화독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같은 이중 굴절 화살표가 있었다.
“백화독에서 적화독으로 배합이 전환되는 경계로군.”
서연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꽃잎을 차례로 기록했다. 여섯 번째 꽃잎의 조감선 굴절 방향은 독초 도감의 최종 배합인 적화독 완성 순서와 정확히 일치했다.
서연이 일곱 번째 꽃잎에서 붓을 멈추었다. 이 꽃잎만 조감선이 끊기지 않았다. 완성된 하나의 원형이었다.
“이 꽃잎은…….”
강윤이 독초 도감의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완성된 배합은 폐부를 서서히 녹이며, 해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연이 붓을 내려놓았다. 종이 위에는 은비녀 일곱 꽃잎의 조감선 굴절 방향과 독초 도감 37 배합표의 각 단계가 한 줄씩 대응되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비녀는 장신구가 아니오. 살인 지침서였소. 제조한 자가 독 배합 순서를 은비녀 문양에 암호로 새겨 넣은 것이오.”
강윤이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그의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25년 전 세자 전하를 살해한 독은 백화독과 적화독 전환 배합이었소. 그리고 이 은비녀의 암호는 그 배합 순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소. 제조자는 누구요.”
서연이 대응표 초안을 들어 올렸다.
“이 비녀를 만든 장인, 혹은 이 문양을 지시한 자. 그 자가 바로 25년 전 독살의 설계자요. 은비녀 일곱 꽃잎은 대왕대비전 예장 규격. 이 문양은 대왕대비 마마의 허락 없이 만들 수 없소이다.”
촛불이 흔들렸다. 서연이 대응표 초안을 조심스럽게 말아 품에 넣었다. 강윤이 봉인함을 닫으며 말했다.
“내일 간담회에서 이걸 대신들 앞에 펼쳐 보이시오. 은비녀와 독초 도감, 그리고 서윤의 혈서.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는 여전히 붉었지만, 시선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남긴 마지막 구절. ‘조감선의 굴절 방향이 투여 순서를 나타낸다.’ 이것은 단서였소이다. 내가 해독할 수 있도록 남겨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강윤이 서연의 손에서 은비녀를 받아 봉인함에 다시 넣었다.
“서 검시. 이 암호를 오늘 밤 안으로 완전히 정리하시오. 대응표는 사본으로 두세 통 더 만드시오.”
“이미 머릿속에 다 넣었소.”
서연이 붓을 다시 쥐었다. 강윤이 독초 도감의 다른 페이지를 차례로 넘겨주었다. 서연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형조 판서 강백헌의 집무실은 아침 햇살이 채 들어오지 않은 시각이었다.
강윤이 탁자 위에 대응표 정본과 청원서를 나란히 놓았다. 붉은 관인을 찍은 문서 세 장. 서연이 밤새 정서한 글씨는 한 획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은비녀로 독초 도감을 암호화한 증거입니다.”
강백헌이 대응표를 집어 들었다. 꽃잎의 수, 당초문의 끊김, 가지의 각도가 배합표의 약재명과 대응된 표가 먹으로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월영 상궁의 은비녀를 실물 대조했소?”
“어젯밤 검시실에서 확인했습니다. 일곱 꽃잎, 끊긴 모란 잎맥, 당초문의 방향이 모두 일치합니다.”
강백헌이 문서를 내려놓았다. 판관 관모 아래로 이마가 젖었다.
“이 대응표 하나로 국구와 대왕대비 마마를 소환하겠다는 말인가.”
“25년 전 세자 독살 사건의 물증입니다. 현 국구가 직접 독을 탄 현장을 목격한 증인도 확보했소.”
강백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밖은 아직 어스름했다.
“조정 간담회를 열면 대왕대비 측에서 무슨 반격을 할지 아나.”
침묵이 한 호흡 흘렀다.
“김상선이 이미 서연 검시의 신원 문제를 무관청에 제기했소. 서윤의 대리 검시관 임명 절차가 미비했다는 근거로 말이지.”
“알고 있소.”
“그런데도 간담회를 강행하자는 것인가.”
강윤이 청원서를 한 치 앞으로 밀었다.
“증거를 지금 공개하지 않으면 내일은 이 문서들조차 무관청에서 압수될 것이오.”
강백헌이 돌아서서 조카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로 촛불이 흔들렸다.
“청원은 수리한다. 다만 일정은 보류하겠다. 대왕대비 마마께서 직접 압박해 오실 테니.”
“그 압박 전에…….”
문이 열렸다. 낙빈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판서 대감. 전하의 어명이옵니다.”
중종 편전에는 아침 인사를 올리러 온 내관들마저 물러나 있었다.
월영이 대응표 사본과 자신의 은비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좌에 앉은 중종은 대응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당초문의 끊긴 선을 따라 움직였다.
“이것이 독약 배합표의 암호였단 말이냐.”
“예. 25년 전 예조의 한 하급 관리가 은비녀 장신구 법제를 빌려 독초 도감의 처방을 암호화했사옵니다. 대왕대비 마마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도 함구하셨고.”
중종이 고개를 들었다.
“대비마마께서…….”
“증거를 모두 인멸하려 하셨사옵니다. 어젯밤에도 검시실을 포위하고자 경비를 빼돌리셨사옵니다.”
월영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중종이 월영의 은비녀를 집어 들었다. 일곱 꽃잎이 새벽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중전께서 저를 낳으시고 이 비녀를 남기셨소?”
“예. 폐비 마마께서는 이 암호 체계를 알아채셨기에…….”
중종이 일어섰다. 옷자락이 탁자 모서리를 쓸었다.
“강백헌에게 전하라. 조정 간담회를 오늘 오후로 즉시 소집하라. 형조·의금부·무관청이 공동 주관하고, 나도 직접 배석하겠다.”
월영이 무릎을 꿇었다.
“전하. 대왕대비 마마께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
중종이 월영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스물셋 젊은 군주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상궁은 오늘 오후, 그 자리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증언하라. 나의 명이다.”
대왕대비 처소에는 오후의 햇볕이 비스듬히 들고 있었다.
대왕대비 박씨가 옥가락지를 천천히 돌리며 월영을 바라보았다. 중지의 가락지가 빛을 받을 때마다 상아빛으로 번쩍였다.
“네가 간담회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말이 사실이냐.”
“예, 마마.”
“25년 동안 침묵을 지키게 한 그 약속을…… 네 손으로 깨뜨리겠다는 뜻인가.”
월영이 허리춤에서 자필 증언서 초안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접지 않은 백지에 검은 먹물이 마르지 않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저는 오늘 그 자리에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25년 전 정월 보름, 동궁에서 현 국구께서 탕약에 독을 타시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노라고.”
대왕대비의 손이 잠시 멈췄다. 이내 다시 옥가락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그 현장을 입증할 다른 목격자는 없다. 한낱 궁녀의 말이 세상을 움직일 거라 생각하느냐.”
“다른 증거가 있사옵니다.”
월영이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은비녀에 닿았다.
“이 비녀의 문양은 독초 도감의 배합표와 일곱 군데에서 일치하옵니다. 폐비 마마께서 25년 전에 이미 이 사실을 알아채시고 서한으로 남기셨사옵니다.”
대왕대비의 눈이 가늘어졌다. 깊게 패인 눈가 주름이 그림자처럼 짙어졌다.
“그 은비녀는 네가 회현궁에 들어올 때 내가 직접 내린 것이다. 네 품계에 맞게 다섯 꽃잎 난초문으로.”
“마마께서 주신 비녀는 제가 따로 보관하고 있사옵니다.”
월영이 품에서 또 다른 은비녀를 꺼냈다. 난초 문양에 꽃잎 다섯 개, 표준 규격 그대로였다.
“이것이 마마께서 내리신 진짜 비녀옵니다.”
월영이 머리에서 일곱 꽃잎 은비녀를 뽑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풀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폐비 마마께서 죽기 전 제게 맡기신 것입니다.”
대왕대비가 지팡이를 한 번 짚었다. 바닥에 부딪힌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네가 그 물건을 25년 동안 숨기고 있었구나.”
“예. 폐비 마마께서 말씀하셨사옵니다. 언젠가 이 비녀의 비밀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월영의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비녀를 쥔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오후. 조정 대신들 앞에서 이 모든 것을 아뢰겠사옵니다. 그리고…… 25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죄 또한 고하겠사옵니다.”
대왕대비가 천천히 일어섰다.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월영에게 다가서자, 중첩된 자색 당의가 바닥을 끌었다.
“네가 한 번 입을 열면…… 너 또한 이 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저는 이미 25년 전 그날 밤, 죽은 목숨이었사옵니다.”
월영이 일곱 꽃잎 은비녀를 다시 머리에 꽂았다. 두 손이 더는 떨리지 않았다.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간담회장에서 뵙겠사옵니다.”
월영이 절도 있게 물러나 문을 나섰다.
대왕대비가 지팡이를 한 번 더 내리쳤다. 대기실에 있던 상궁 한 명이 달려들었다.
“회현궁 보관문서고로 가라. 을유년 예식 관련 기록을 전부 빼내서 불태워라.”
상궁이 답하기도 전에 또 다른 하급 궁녀가 무릎 꿇고 들어왔다.
“마마…… 방금 전, 형조에서 회현궁 문서고를 봉쇄하였사옵니다. 무관청 경비까지 배치되어 더는 접근할 수 없사옵니다.”
대왕대비의 옥가락지가 탁자 위의 찻잔을 쳤다. 도자기가 바닥에 부딪혀 산산이 깨졌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낮았다.
“그래.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뿐이구나.”
대왕대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숨을 고르더니,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
“김상선을 부르너라.”
조정 간담회장.
삼중으로 배치된 무관청 병사들 사이로 대신들이 하나둘 입장했다. 형조·의금부·무관청 세 곳의 깃발이 정전 앞에 나란히 꽂혔다.
대기실에서 서연이 대응표 정본을 가슴에 안았다. 손등에 핏기가 없었다. 강윤이 그 옆에 서서 낮게 말했다.
“월영 상궁이 오고 있소.”
복도 저편에서 월영이 걸어왔다. 머리에 꽂힌 일곱 꽃잎 은비녀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했다.
증인석으로 향하는 월영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에 오르는 순간, 문밖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서연 검시를 당장 체포하라! 의녀 행세로 관직을 사칭한 죄다!”
김상선이 긴급 청원서를 치켜든 채 회장으로 뛰어들었다. 대신들이 웅성거렸다.
강윤이 서연의 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서연은 여전히 대응표를 움켜쥔 채, 문밖의 소란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