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 도감 - 12화 완결

3화

강윤이 확대경을 내려놓았다.

“표준 양식이 아닙니다.”

서연은 은비녀를 마포 천 위에 그대로 두고 손을 거두었다.

강윤이 탁자 모서리에 손을 짚었다.

“내일 문서고에서 궁중 장신구 법제 원본과 대조한다. 시각은 묘시 초.”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참하 나리도 오실 겁니까.”

“내가 직접 간다.”

강윤이 증거물 상자의 뚜껑을 닫고 봉인 끈을 두 번 감아 매듭을 조인 뒤, 인장이 찍힌 봉인지를 붙였다.

“증거물은 내가 보관한다. 내일 문서고 앞에서 합류하라.”

다음 날 묘시. 형조 문서고 복도는 돌바닥 냉기가 발목까지 올라왔다. 서연이 도착했을 때, 강윤은 이미 문서고 입구에 서 있었고 품에 은비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관리가 문고리를 풀자 무쇠문이 안쪽으로 밀리며 오래된 종이 냄새가 밀려나왔다. 중앙 탁자 위에는 등잔 다섯 개가 켜져 있었다.

강윤이 탁자 중앙에 상자를 올려놓고 봉인을 뜯었다.

“장신구 법제 편람. 아홉 권짜리다.”

관리가 서가에서 두터운 책들을 꺼내 탁자 위에 쌓았다. 강윤이 네 번째 권을 펼쳐 ‘상궁 품계·은비녀·난초문’이라 적힌 쪽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서연이 옆에서 페이지를 살폈다. 도판은 양식 그대로였다. 꽃잎 다섯 개, 중심의 난초 줄기는 끊김 없이 이어져 있었다.

강윤이 은비녀를 뽑아 도판 옆에 나란히 놓았다.

“꽃잎 수가 다르다.”

서연이 비녀의 꽃잎을 하나씩 짚었다.

“일곱입니다. 이것은 상궁용이 아닙니다.”

강윤이 편람의 다른 쪽을 넘겼다. 중궁전 예장, 왕대비전 예장, 세자빈 예장을 거쳐 대왕대비전 예장 편에서 손이 멈췄다. 도판은 없었다. 대신 ‘은비녀·일곱 꽃잎·모란 당초문’이라는 기록만 적혀 있었다.

“법제 기록에는 있고 도판은 없다.”

서연이 비녀 안쪽의 문양을 가리켰다.

“여기 모란 잎맥이 끊겼습니다. 어젯밤 확인한 대로입니다.”

강윤이 확대경을 집어 비녀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끊긴 선은 아침 햇살 아래서도 그대로였다.

“대왕대비전 예장 규격이라면 문양 불일치는 큰 문제다. 독초 도감의 열람이 필요하겠군.”

강윤이 관리에게 손짓했다.

“형조 참의 강윤, 독초 도감 열람을 공식 신청하오. 증거물 문양 대조가 목적이다.”

관리가 허리를 굽혀 나갔다. 잠시 후, 문서고 입구에서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오십 대 중반의 관리가 들어섰다. 이조 적색을 띤 옷깃이었다.

“참하 나리, 이른 시간부터 수고가 많소.”

강윤의 표정이 굳었다.

“김상선 어른. 이조에서 무슨 일이십니까.”

김상선은 탁자에 손을 대지 않고 편람을 내려다보았다.

“독초 도감 열람에는 내의원 어의나 의녀 수장의 추천서가 필요하오. 규정 제7조항이오.”

“증거물의 문양이 대왕대비전 예장과 불일치합니다. 형조의 수사 목적이오.”

“그러면 그 불일치를 증명하는 공문을 올리시오. 형조 판서의 결재와 이조의 검토를 거쳐 추천서를 발급받을 수 있소.”

강윤이 대답하지 않았다. 김상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절차대로 하면 사흘. 궁 안 사건이니 대왕대비 마마의 뜻도 살펴야 할 것이오. 서두르지 마시오.”

서연이 강윤의 옆모습을 보았다.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품속으로 들어간 손가락이 옷감을 움켜쥐고 있었다.

김상선이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예장 문양은 대왕대비 마마의 허락 없이 열람할 수 없소. 참하 나리도 잘 알지 않소.”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들렸다.

서연이 입을 열었다.

“사흘 뒤면 증거물 이관 시한이 지납니다.”

“알고 있다.”

강윤이 은비녀를 상자에 도로 넣었다. 뚜껑을 닫는 손이 평소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행정 절차를 빌미로 한 발 뺀 것이다. 결재 선을 늘려서 시간을 끌 작정이다.”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의 뜻입니까.”

“대왕대비 마마일 가능성이 크다. 이조는 전하보다 마마의 뜻을 더 살핀다. 김상선은 회현궁과 가까운 인물이다.”

강윤이 상자를 품에 안았다.

“독초 도감 없이 간다. 실물 증거 하나만으로 수사를 전환한다.”

“가능합니까.”

“증거물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고, 궁중 장신구 법제와 불일치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형사 사건이다. 독초 도감은 그 배합표 확인 용도일 뿐.”

강윤이 서연을 향해 돌아섰다.

“형조 회의실로 간다. 1차 검안관을 소환할 테니 검시 기록과 은비녀 실물을 준비하라.”

오전 늦게. 형조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긴 탁자 앞에 1차 검안관이 앉아 있었다. 손에는 서연이 이틀 전 작성한 검시 기록이 들려 있었다. 강윤이 상석에, 서연은 오른편에, 검안관은 왼편에 자리했다.

검안관이 검시 기록의 한 대목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입을 열었다.

“사망 추정 시각이 미시에서 신시 사이라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의녀 진찰록에는 진찰 시각 기준 멍 자국이 세 시진 전에 형성된 것으로 기술돼 있습니다.”

서연이 대답했다.

“생체 반응과 사후 변화는 추정 방식이 다릅니다. 의녀 진찰록은 생체 기준으로 멍의 색 변화를 관찰한 것이고, 검시록은 사체의 응고와 침하를 기준으로 합니다.”

검안관이 검시 기록을 탁자 위에 펼쳤다.

“차이가 반나절입니다. 같은 육안 관찰이 이토록 다를 수 있습니까.”

서연이 대답하는 대신, 손을 들어 은비녀 증거물 상자를 가리켰다.

“차이가 나는 것은 오히려 제 기록이 충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의녀 진찰록과 검시록을 같은 방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강윤이 상자를 열었다. 은비녀가 마포 천 위에 놓인 채로 탁자 중앙으로 옮겨졌다.

서연이 일어서서 비녀를 가리켰다.

“이 비녀의 문양을 보십시오. 꽃잎 일곱 개. 대왕대비전 예장 규격입니다. 그러나 안쪽 모란 잎맥이 중간에서 끊겼습니다.”

검안관이 비녀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강윤이 손바닥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움직임을 막았다.

“실물은 보기만 하시오.”

서연이 말을 이었다.

“법제 편람에는 대왕대비전 예장 은비녀의 문양이 ‘모란 당초문’이라 적혀 있고, 표준 양식이라면 잎맥은 끊김이 없어야 합니다. 이 비녀는 아닙니다.”

검안관이 고개를 들었다.

“그 차이가 사망 시각과 무슨 상관입니까.”

“피해자 홍련은 궁녀입니다. 궁녀가 대왕대비전 규격의 은비녀를 지니고 있었고, 그 비녀는 표준 양식을 벗어난 위조된 문양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사가 아닙니다.”

서연이 검시 기록을 넘겼다.

“멍 자국은 사망 전 세 시진 이상 경과된 구타 흔적입니다. 목의 압박 자국과 멍 자국의 시간 차이는 피해자가 사망 전 감금·폭행을 당한 뒤 물에 빠졌음을 보여줍니다.”

검안관의 손가락이 검시 기록에서 떨어졌다. 서연이 한 걸음 다가섰다.

“1차 검안은 사고사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실물은 이것이 계획된 살인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검안관이 입을 열었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소견은 사고사였소. 그러나 실물에 그런 의혹이 있다면… 재검은 당연하오.”

강윤이 일어섰다.

“형조 참의 강윤. 검안관의 1차 소견을 철회하고, 임시 검시관 서연을 이 사건의 수석 검시관으로 공식 지명한다.”

서연이 숨을 들이켰다.

강윤이 말을 이었다.

“증거물 접근 권한, 검시 기록 작성 권한, 추가 검안 요청 권한. 모두 부여한다. 이 사건의 검시는 서연이 주도하라.”

검안관이 읍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강윤이 서연에게 돌아앉았다.

“회현궁 쪽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김상선이 문서고에서 물러난 직후, 상궁 월영에게 보고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서연이 은비녀 상자 쪽으로 손을 움직이다 멈추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월영 마마께서 내 신원을 의심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알고 있었다.”

강윤이 서연을 똑바로 보았다.

“의심만으로는 형조의 증거물을 건드리지 못한다. 네가 수석 검시관인 이상, 모든 접근은 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떨리던 손끝을 옷자락 안으로 감추며 입을 열었다.

“증거물은 내가 직접 관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라.”

강윤이 상자 뚜껑을 닫아 서연 쪽으로 밀었다.

“은비녀는 네가 보관한다. 사흘 안에 문양의 출처를 밝혀라.”

서연이 상자를 두 손으로 받아 품에 안았다. 상자의 무게가 손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월영이 언제 이 증거물을 보러 올지, 어떤 구실로 접근할지 알 수 없었다. 서연은 상자를 품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회현궁 후원 샘터는 오후 햇살이 돌계단을 반쯤 덮고 있었다.

서연은 샘물에 손을 담갔다. 찬 기운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번졌다. 강윤이 수석 검시관으로 지명한 지 한 시진. 권한은 얻었지만 월영의 시선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을 움켜 손바닥을 적셨다. 잉크 자국은 아직 옅게 남아 있었다.

돌계단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서연은 손을 거두고 일어섰다. 월영 상궁이 샘터 입구에 서 있었다.

옥색 당의에 은비녀가 꽂혀 있었다. 꽃잎 다섯, 난초 문양. 흔들림 없이 똑바로 꽂힌 자세였다.

“서 검시관께서는 참으로 부지런하시군요.”

월영이 샘가로 걸어왔다. 서연은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상궁 마마.”

“형조 일로 바쁘실 터인데 샘물 구경이십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월영은 서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젖은 손끝에 번진 잉크 자국.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샘물 쪽으로 돌렸다.

“의녀 시절 베껴 온 진찰록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서연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굳었다.

“홍련의 진찰 기록이지요.”

월영이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한 글자마다 또박또박 끊어졌다.

“처방 약재 열한 가지. 기술 순서가 검시록의 사후 반응 항목과 정확히 반대로 적혀 있더군요. 의녀는 생체 반응부터 쓰는 법인데.”

서연은 숨을 한 번 쉬었다. 아주 천천히, 소매 안 손가락을 폈다.

“진찰록은 작성자마다 기술 습관이 다릅니다.”

“물론 그렇지요.”

월영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샘물 소리만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다만 홍련의 직전 진찰록 세 건은 모두 생체 반응을 앞에 두었습니다. 이번 건만 순서가 바뀌었지요.”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월영의 은비녀가 햇살에 반사되어 눈가를 스쳤다.

“내의원 기록고는 출입 기록이 남습니다. 사흘 전 오후, 서 검시관께서 열람하셨더군요.”

월영이 허리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기록 불일치를 적은 별지였다.

“기록을 수정하는 일은 형조 검시관의 권한 밖입니다.”

별지를 반으로 접으며 월영이 말을 맺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서연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월영은 이미 증거를 포착했다. 확증은 아닐지라도 방향은 정확했다.

“제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서연이 물었다. 월영은 별지를 소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돌아섰다.

“형조 일에 충실하시라. 그것이 서 검시관을 지키는 길입니다.”

발소리가 돌계단을 내려갔다. 서연은 샘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젖은 손이 바람에 식었다. 월영은 계속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 감시를 멈출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관청 증거물 보관실은 대궐 서쪽 별원에 있었다. 강윤이 앞서 걸었다. 손에는 은비녀 문양을 확대해 옮긴 종이가 들려 있었다. 서연이 한 걸음 뒤를 따랐다.

보관실 문 앞에 하급 관리 하나가 막아섰다. 허리를 굽혔으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참하 나리, 이 안으로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강윤이 걸음을 멈췄다.

“수석 검시관이 임명되었다. 증거물 재검토 권한이 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다만…”

관리인이 뒷주머니에서 접힌 서류를 꺼냈다. 종이에는 무관청 직인이 찍혀 있었다.

“김상선 나리께서 오늘 오전에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은비녀 증거물은 대왕대비 마마의 별도 승인 없이 열람할 수 없다고.”

강윤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눈이 직인 위에서 멈췄다.

“김상선이 언제 이 지시를.”

“오늘 아침 일찍이옵니다. 보관실 개방 전이었사옵니다.”

강윤이 서류를 접어 관리인에게 돌려주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 종이 모서리가 살짝 구겨졌다.

“독초 도감 열람 신청서는.”

“그것 또한 보류 중이옵니다. 대왕대비전에서 결재를 미루고 계십니다.”

관리인이 다시 허리를 굽히며 한 걸음 물러섰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강윤이 돌아섰다. 벽 쪽 복도로 걸어가다 멈춰 서서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쉰 뒤, 천천히 손을 내렸다.

“표준 양식을 확인한 지 반나절도 안 됐다.”

강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복도 끝까지 울렸다.

“누군가는 이미 그보다 앞서 움직였다. 증거물이 도착하기도 전에.”

서연은 굳게 닫힌 보관실 문을 보았다. 은비녀는 저 안에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김상선이 독자적으로 이런 판단을 할 인물은 아닙니다.”

서연이 말했다. 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왕대비 마마다. 이제 공식 경로는 봉쇄됐다.”

두 사람은 복도를 따라 걸어 나왔다. 무관청 바깥은 이미 오후 늦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윤이 형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부 문서 열람 허가를 얻으려면 다른 길이 필요하다.”

“의녀 네트워크를 통한 비공식 열람이 가능할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독초 도감은 내의원 어의도 열람 권한이 있습니다. 어의를 보조하는 의녀들의 기록 접근 경로가 있을 겁니다.”

강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연을 돌아보았다.

“위험하다.”

“이미 충분히 위험합니다.”

서연은 소매 속에서 은비녀 실물이 든 작은 보관함을 손끝으로 짚었다. 월영의 경고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은 강윤도, 서연도 알고 있었다.

형조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그림자가 돌계단을 넘어 형조 정문까지 따라붙었고, 저녁 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같은 방향으로 흔들었다.

강윤이 은비녀를 뽑아 도판 옆에 나란히 놓았다.

“꽃잎 수가 다르다.”

서연이 비녀의 꽃잎을 하나씩 짚었다.

“일곱입니다. 이것은 상궁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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