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록

1화

취화전 후원 폐정자는 초경의 어둠 속에 반쯤 무너진 기둥만 드러나 있었다. 등롱 두 개가 시신 옆에 놓여 흔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가 시신의 얼굴 위로 기어올랐다.

서인녀는 등롱 하나를 들어 시신 가까이 내렸다. 목울대를 누르는 사찰단이 땀에 젖어 끈적였다. 숨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낮췄다.

“입회 진행관은 물러나 주십시오.”

진행관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서인녀는 소매에서 검시침을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검시침은 면포 위에 굴렸다. 은비녀였다. 평소 검시침을 보관하던 가죽집이 비어 있었다.

서인녀는 잠시 비녀를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비녀 끝을 촛농으로 닦아내며 입회 진행관에게 물었다.

“시신의 신원은.”

“취화전 소속 궁녀, 채아입니다. 오늘 오후까지 근무했고, 해질녘부터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

비녀를 촛불에 비춰 끝을 확인했다. 은빛이 말끔했다. 시신의 턱을 받쳐 입을 벌렸다. 사후 경직이 시작되어 턱관절이 뻑뻑하게 저항했다.

비녀 끝으로 혀 밑을 눌러 잔여물을 긁어냈다. 끈적한 액체가 은비녀 표면에 옅은 갈색으로 묻어났다. 견본 천에 옮겨 접었다. 서인녀의 손가락이 시신의 입술에 닿지 않게 조심했다.

경부로 시선을 옮겼다. 피부에 실처럼 가는 반흔이 목젖 양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손가락을 대지 않고 등롱을 비스듬히 기울여 확인했다.

좌측 흔적은 설골 아래에서 시작해 쇄골 안쪽으로 사라졌다. 우측은 더 옅었다. 손톱으로 긁힌 흔적이 반흔을 가로질러 네 줄 패여 있었다. 사후가 아니라 사망 직전의 저항 흔적이었다.

“목 압흔. 폭은 약 서 푼. 균일하지 않음.”

서인녀는 검시록 초안을 펼쳐 기록했다. 붓끝이 등롱 불빛에 떨렸다.

경부 압흔 좌우 비대칭, 손톱 자흔 동반. 끈 형태의 교액 추정.

시신의 허리춤에서 비단 주머니가 손에 닿았다. 연두색 비단에 목화 자수가 놓였다. 주머니를 열자 회갈색 가루가 묻어났다. 냄새를 맡으려다 멈추고, 견본 천 위에 소량을 털어냈다.

채아는 스물 전후로 보였다. 젖은 소매에는 취화전 화단에서 흔히 나는 진흙이 묻었다.

“주머니는 증거물로 봉인합니다.”

서인녀가 말했다. 진행관이 증거물 봉투를 건넸다. 주머니를 넣고 봉인 끈을 묶는 손이 빨랐다. 은비녀의 잔여물이 묻은 면도 따로 접어 소매 속에 넣었다.

검시를 마치고 일어서자 무릎이 저렸다. 등롱을 진행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시신은 장례원으로 이송하십시오. 검시록은 내일 정식 제출합니다.”

폐정자를 나서며 손끝에 남은 비녀의 차가운 감촉을 털어냈다. 소매 속 견본 천이 손목에 닿는 위치를 확인하고 걸음을 옮겼다.

야간 순찰부 기록실은 취화전에서 동쪽으로 두 번째 행랑채에 있었다. 초경 말이라 복도엔 인적이 없었다. 서단운이 기둥에 기대어 졸고 있다가 발소리에 놀라 허리를 폈다.

“늦었네. 괜찮았나?”

서인녀는 대답 없이 기록실 문을 밀었다. 서늘한 공기와 함께 먹 냄새가 밀려왔다. 선반에는 연도별 순찰부가 월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번 달 순찰부를 꺼내 탁자에 펼쳤다. 초경 순찰은 다섯 개 조가 궁궐을 구역별로 나누어 돈다. 취화전 후원은 을묘조 담당 구역이었다.

서인녀의 손가락이 순찰 경로도를 따라 내려갔다. 초경에서 이경 사이, 취화전 후원 구역의 순찰 기록이 비어 있었다. 전날까지는 정상 기재되었으나 오늘 자 페이지만 공란이었다.

앞뒤 페이지를 넘겨 확인했다. 종이 질감이 달랐다. 앞장은 보통 닥종이였으나 누락된 부분의 종이는 더 얇고 매끄러웠다. 페이지를 비스듬히 기울이자 제본 구멍이 두 개 더 뚫린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 원본을 뜯어내고 같은 두께의 다른 종이를 끼워 넣었다.

서인녀는 순찰 경로를 눈으로 따라가며 암기했다. 을묘조 순찰 경로는 원래 취화전 후문에서 폐정자 앞을 지나 후원 담장을 따라 돈다. 폐정자 구간이 약 백 보 정도였다.

누락된 페이지의 시점은 초경 세 각에서 이경 첫 각 사이. 채아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은 해질녘이었으나, 사후 경직 상태로 보아 사망 추정 시각은 초경 직후였다.

기록부를 원래 자리에 꽂으며 서인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사본을 청구할지 잠시 망설였다. 사본 청구는 내명부에 기록이 남는다. 누락을 발견한 자가 누군지 공식 문서로 남게 되는 셈이었다.

서인녀는 기록부를 덮어 선반에 꽂았다. 손가락 끝이 떨리는 것을 소매 안으로 감추었다. 등롱 불빛을 낮추고 방을 나섰다.

문 밖에서 서단운이 벽에 기댄 채 하품을 삼켰다.

“다 봤어?”

“예. 돌아가겠습니다.”

서인녀가 앞장서 걸었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서야 소매 속 견본 천이 아직 눅눅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녀를 만지지 않았다. 손끝의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행랑채를 벗어났다.

검률청 서기실은 이경 초의 찬 기운이 감돌았다. 서인녀는 붓을 들어 먹물을 찍었다. 서단운이 옆에서 확인증을 펼치며 말했다.

“어서 쓰게. 순찰부 확인은 끝났으니, 이제 검시록뿐이야.”

서인녀는 검시록 용지에 시신의 상태를 한 자 한 자 옮겼다. ‘채아, 궁녀. 연령 미상. 신장 오척 이촌.’

서단운이 그 글씨를 들여다보며 낮게 물었다.

“목의 흔적은 뭐라 적을 건데.”

“경미한 압흔입니다.”

서인녀는 붓을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는 더 선명했지. 끈 자국이었어.”

“교살 여부는 아직 불명입니다. 검시침 반응도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서단운은 한숨을 쉬며 관복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렇게 쓰는 수밖에.”

서인녀는 이어서 약재 가루에 대한 항목을 기재했다. ‘우측 협부 및 의복 깃 부분에서 미세한 분말상 잔여물 발견. 성분 미확인.’

쓰고 나서 붓을 놓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붓대에 땀이 밴 자국이 남았다.

“이걸로 충분할까.”

서단운이 물었다.

“충분합니다. 지금은 이 이상 확정할 수 없습니다.”

서인녀는 검시록을 밀어 건넸다. 서단운은 묵묵히 읽고 나서 자신의 인장을 꺼내 날인했다. 인주가 번진 부분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원본은 내가 직접 기록고에 넣을게. 사본은 내의원 참의께 전달하고.”

“밀봉본은 상아패와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서인녀가 검시록을 삼중으로 나누어 정리하며 답했다. 한 부는 밀랍지에 싸서 상아패를 첨부하고, 한 부는 사본 상자에, 원본은 별도의 목갑에 넣었다.

모든 절차가 끝났을 때, 서인녀는 소매 속에서 은비녀를 꺼내 들었다. 촛불 아래서 은빛 표면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비녀 끝부분에 끼어 있던 검은 잔여물은 손톱으로 긁어내도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서단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지금 왜 꺼내.”

“검시록에는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재 안 했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런데 그걸 갖고 있으면……”

“소지품 목록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서인녀는 비녀를 다시 소매 깊숙이 밀어 넣었다. 비단 안감에 감긴 비녀의 차가운 감촉이 팔뚝에 닿았다.

서단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검시록 원본을 챙겨 들고 서기실 문을 열었다. 복도에서 스며드는 밤공기에 촛불이 한 차례 흔들렸다.

“돌아가자. 이경 중이다.”

귀갓길은 조용했다. 처소에 도착하자 서단운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반쯤 닫으며 뒤돌아 말했다.

“내일 아침 참의께 보고할 때, 너도 함께 있어야겠지.”

“당연합니다. 오라버니께서 주관하신 검시이니.”

서인녀는 공손히 답했지만, 서단운은 그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문이 닫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서인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목에 감았던 사찰단을 풀자 후두가 욱신거렸다. 손가락으로 목을 문지르며 탁자 앞에 앉았다.

소매에서 은비녀를 다시 꺼냈다. 작은 약지를 하나 집어 들고, 비녀 끝에 붙어 있던 잔여물을 조심스럽게 긁어 종이 위에 모았다. 검은 가루는 생각보다 입자가 고왔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문지르자 미끄러운 감촉이 남았다.

촛불을 가까이 당겼다.

내의원 물금초목부. 그 기록을 떠올린 것은 그때였다. 지난달 서단운이 실수로 가져온 사본을 훑어본 적이 있었다. 독초 도감에 등재된 물품들의 목록과 용도가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그중에서 ‘은엽초’라는 항목이 있었다.

은엽초는 수침에 넣으면 잎이 은빛으로 변하는 희귀한 독초다. 분말 상태에서는 회흑색을 띠고, 촉감은 매끄럽다는 기술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서인녀는 종이 위의 가루를 다시 보았다. 촛불에 비스듬히 비추자 미세한 은빛 입자가 간헐적으로 반짝였다.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궁중에서 독초 도감의 물품이, 그것도 궁녀의 의복과 비녀에 묻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되지 않았다.

약지를 밀봉한 뒤 서랍 깊숙이 넣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신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위화감이 다시 떠올랐다. 목의 압흔은 명백히 교살의 형태였으나, 얼굴의 울혈은 그에 비해 너무 옅었다.

질식사라면 안면 충혈이 더 심했어야 했다. 그런데 채아의 얼굴은 오히려 평온한 편이었다. 독물에 의한 호흡 마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서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였다. 걸음마다 마룻바닥이 미세하게 삐걱거렸다. 세 걸음, 멈춤. 다시 두 걸음.

내일 보고에서는 이 모든 의문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검시록은 이미 제출되었고, 거기에는 ‘미확인 잔여물’과 ‘경미한 압흔’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 와서 구두로 의견을 덧붙이는 것은 검률로서의 판단력을 의심받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가루가 정말 은엽초라면, 채아의 죽음은 단순한 변사가 아니다. 독초 도감에 접근할 수 있는 자는 정3품 이상의 내의원 관원뿐이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건의 무게가 달라졌다.

서인녀는 촛불 앞에 다시 앉았다. 약지를 꺼내어 열고, 가루를 다시 관찰했다.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 촛불에 비추자, 은빛 입자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일 물금초목부의 정식 열람을 신청할 명분은 없었다. 검률청 소속 검률이 독초 도감의 기록을 보려면 내의원 당상관의 승인이 필요했고, 지금 같은 경미한 의심만으로는 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잔여물을 순수한 약재 감정 의뢰의 형태로 우회하는 길이. 그러나 의뢰에는 검시록에 기록되지 않은 증거물의 출처를 밝혀야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지금 이 약봉지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다.

서인녀는 약지를 다시 닫고, 촛불을 바라보았다. 심지 끝에서 검은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랐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은비녀가 탁자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벽 너머 서단운의 방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이 들렸다. 두통인 듯했다.

잠시 뒤,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촛불이 꺼지는 기척이 났다. 서단운이 소등하고 누운 모양이었다.

서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내일 참의 앞에서 보고할 구술을 마음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낮추고, 수식 없이, 사실만을 나열하는 연습이었다.

‘이경 초, 순찰부 기록을 대조한 바, 초경에서 이경 사이의 특정 경로가 누락된 점을 발견했습니다. 검시록에 기재된 사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경부의 경미한 압흔. 둘째, 의복에서 발견된 미확인 분말상 잔여물.’

서인녀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은비녀를 들어 올려 마지막으로 촛불에 비추어 보았다. 비녀 끝에 남은 미세한 가루가 불빛 아래서 은은한 회색 빛을 띠었다.

입자가 균일하고, 촉감은 매끄럽고, 빛에 반사되는 정도가 보통 약재 가루와는 달랐다. 물금초목부에 기술된 은엽초 분말의 특성과 어긋나지 않았다.

서인녀는 천천히 비녀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다시 한 번 떨렸다.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우회로를 찾든, 명분을 만들든, 이 가루의 정체를 규명해야 했다. 혼자서. 누구에게도 말하기 전에.

촛불의 심지가 기울며 불꽃이 한 차례 커졌다 작아졌다. 서인녀는 약지를 집어 옷소매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은비녀 역시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두 물건이 천 안에서 부딪히며 작은 금속음을 냈다.

앉았다.

소매에서 은비녀를 다시 꺼냈다. 작은 약지를 하나 집어 들고, 비녀 끝에 붙어 있던 잔여물을 조심스럽게 긁어 종이 위에 모았다. 검은 가루는 생각보다 입자가 고왔다. 손
은비녀 독초록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