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록

10화

의금부 감옥은 돌이 말하는 곳이었다.

축축한 석벽 사이로 쥐 소리만 드문드문 들렸다. 서인녀는 독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관복은 벗겼고, 면포 붕대만 허리에 감은 채였다. 목의 사찰단도 풀렸다.

손가락이 허공에 획을 그었다.

습관이었다. 붓 없이도 검시록 서식을 반복했다. 사인.

독물. 반응 시간. 그 획들이 이제는 쓸모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았다.

쇠창살 너머로 복도의 횃불이 깜빡였다.

발소리. 둘.

첫 번째는 무겁고 규칙적이었다. 간수의 것이리라. 두 번째는 거의 소리가 없었다. 발뒤꿈치부터 디디는 걸음걸이.

서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담묵색 도포가 먼저 보였다. 그다음 은고리 장식의 작은 칼집. 그리고 감정 없는 검은 눈동자.

이운이었다.

간수가 쇠창살을 열었다. “한 시진입니다.”

이운은 대답 없이 독방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혔다. 간수의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서인녀가 일어나지 않았다.

“면회 절차. 대비전이 알면.”

“알게 두지 않는다.”

이운이 그녀 앞 바닥에 앉았다. 같은 높이. 시선은 서인녀의 오른손을 보았다. 붓글씨로 굳은 사마귀가 박인 검지와 중지.

“검시록 필체. 의금부 감정관이 대조했다.”

“알고 있습니다.”

“네 건의 위조. 사 년치.”

서인녀의 손가락이 살짝 굽어졌다.

“서단운의 필적과 비교해 다른 점은 단 두 곳. 붓끝의 압력, 그리고 획을 마무리하는 방향.”

이운이 멈췄다.

“장상궁이 그걸 태비전에 올렸다. 검률 사칭의 물증으로.”

서인녀는 침묵했다. 예상한 바였다. 사 년 동안 대필해온 검시록은 결국 그녀의 실력을 증명함과 동시에 사칭의 결정적 증거였다.

“태비가 내일 아침 정전에서 이 감정 결과를 중신들 앞에 펼칠 것이다. 검시록 위조는 단순 사칭이 아니라——”

이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물금초목부 사본 재편철과 연결되면, 기록 위조 전반의 배후로 몰리게 된다.”

서인녀가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보았다.

“전하. 한 가지 묻겠습니다.”

“물어라.”

“물금초목부 사본 재편철을 누가 지시했습니까.”

이운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그게 네가 묻는 첫 질문이냐.”

“예. 제 검시록 위조와 태비의 기록 위조는 동일한 방법으로 적발될 것입니다. 삼중 기록 체계의 기본 원칙——”

서인녀의 손가락이 바닥 돌을 한 번 톡 쳤다.

“위조 시 세 기록 간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점. 태비는 모르는 듯합니다.”

잠시 정적.

이운이 낮게 웃었다. 냉소에 가까운 소리였다.

“내 대답은,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확인차 여쭌 것입니다.”

서인녀가 상체를 바로 세웠다. 비록 관복도 없는 죄수 신세였으나, 목소리만은 검시 보고 때처럼 또렷했다.

“장상궁이 사본을 재편철할 때 사용한 실과 바늘의 매듭. 그리고 내부 기록 원본이 누락된 시점. 두 가지는 같은 손에 의해 같은 날 이루어졌습니다.”

이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 속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서인녀가 내려다보았다. 의금부 감정관의 검시록 필체 대조서였다.

“네가 검시관 자격을 입증할 유일한 방법.”

이운이 천천히 말했다.

“자격을 부정하는 기록 위조와, 태비의 기록 위조가 같은 원리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인녀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제 사칭을 입증하는 동시에 태비도 입증한다는 말씀입니까.”

“두렵느냐.”

서인녀는 잠시 시선을 종이에 고정했다. 손가락이 검은 글자를 조용히 더듬었다. 붓의 압력 차이.

마무리 획의 방향. 그녀가 오라비와 구분되도록 의도적으로 바꾼 두 가지. 그 흔적이 이제 증거가 되어 있었다.

“검시관의 길은 사라졌습니다.”

서인녀가 종이를 접었다.

“그러나 검시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태비의 물증과 제 물증이 동일한 삼중 기록 체계 위반을 입증한다면, 전하는 그걸로 태비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

이운이 그녀의 말을 가로채지 않았다. 그 대신 손을 내밀었다.

“논리를 다듬어라. 내일 정전에서——”

그때 복도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거의 소리가 없었다. 이운보다도 더 조용했다. 발바닥 전체를 동시에 바닥에 붙이는 걸음걸이.

쇠창살 앞에 그림자가 멈췄다.

흰 머리카락이 반쯤 섞인 짧은 머리. 빛바랜 남색 내관복. 그리고 약재 냄새와 향낭 냄새가 뒤섞인 익숙한 냄새.

설 내관이었다.

간수는 보이지 않았다. 설 내관이 손에 든 순찰부 기록부가 쇠창살 너머로 살짝 보였다. 순찰 교대 시간을 이용한 듯했다.

“잠시.”

이운이 일어서며 쇠창살 밖을 살폈다. 설 내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는.”

“한 시진. 교대 전까지.”

설 내관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순찰 기록을 읽어줄 때처럼 정확한 어조였다.

이운이 독방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망을 서려는 듯했다. 설 내관이 안으로 들어섰다. 구부정한 등이 좁은 문틀에 걸릴 듯 말 듯했다.

서인녀가 일어났다.

“설 내관.”

“예.”

그의 탁한 황색 눈동자가 서인녀의 얼굴을 스치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손등에 벼루처럼 갈라진 주름이 깊게 패 있었다.

“전에 드린 것 외에.”

설 내관이 소매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것이. 마지막 물증입니다.”

비단 주머니였다. 크기는 손바닥 절반쯤. 천은 오래되어 빛이 바랬고 끈이 닳아 있었다. 그러나 묶는 방식은 여전히 단단했다.

서인녀가 받아 들었다. 무게는 가벼웠다.

“탕약 그릇——”

“잔여물입니다.”

설 내관이 말했다.

“십오 년 전. 씻기 전에 긁어냈습니다.”

서인녀가 비단 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안에는 거친 종이로 싼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 있었다. 진한 약재 냄새.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쓴 냄새.

은엽초 특유의 쇠붙이 같은 향이었다.

“내의원 처방전에는 없었던 것.”

설 내관의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그날 밤. 탕약을 우려낸 약탕관 밑바닥에. 가라앉은 가루를 보았습니다.”

서인녀는 숨을 들이켰다.

“보았다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예.”

“긁어내어 보관하셨습니다.”

“예.”

설 내관이 고개를 들었다. 작고 깊게 패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젖어 보였다.

“증거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서인녀가 비단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품 안에 넣었다. 검시침 옆. 은비녀가 차갑게 허리춤에 닿았다.

“십오 년 동안. 왜 지금입니까.”

설 내관이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말을 세 번쯤 삼키는 듯한 침묵. 그러다 짧게 내뱉었다.

“할 일을. 마저 하려고.”

그리고는 서인녀의 품을 한 번 가리켰다. 약재 찌꺼기 함과 방금 건넨 비단 주머니. 두 물증이 들어 있는 곳.

“그 두 가지. 모후께서 드신 마지막 약의 전부입니다.”

서인녀의 손이 품 위를 눌렀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두 개의 별개였던 물증이 이제 한 줄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장상궁이 숨겨둔 약재 조각. 설 내관이 지켜온 탕약 잔여물. 같은 날, 같은 약탕관, 같은 손을 거친 증거였다.

“증인으로 서시겠습니까.”

“예.”

망설임이 없었다. 설 내관이 허리를 굽혔다. 구부정한 등이 더 깊이 숙여졌다.

“순찰 기록은 제가 읽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설 내관이 물러섰다. 등이 돌아섰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소리가 없었다. 쇠창살을 지나 복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서인녀는 비단 주머니를 품 안 깊숙이 밀어넣었다. 검시침이 약재 함 옆으로 밀려 자리를 잡았다.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은비녀를 스쳤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가벼운 발소리. 이번에는 발끝이 먼저 닿는, 망설이는 걸음걸이였다.

소영이었다.

연두색 내인 당의에 땀 얼룩이 배어 있었다. 쇠창살 앞에 서서 울먹이는 눈으로 서인녀를 보았다. 아랫입술이 이미 깨물려 부어 있었다.

“들어오너라.”

이운의 낮은 목소리. 쇠창살이 열렸다.

소영이 독방 안으로 들어와 서인녀 앞에 섰다. 두 손이 앞으로 모여 옷고름을 쥐었다.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손끝에서 반복되었다.

“소영.”

서인녀가 이름을 부르자 소영의 흰자위가 빠르게 붉어졌다.

“아직. 가지 않으셔서…”

목소리가 떨렸다.

“무사하셔서.”

“진술서. 준비했느냐.”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 속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손이 떨려 세 번 만에야 서인녀에게 건넸다.

서인녀가 종이를 펴서 읽었다. 소영의 필체는 투박하고 군데군데 땀에 번져 있었다. 그러나 문장은 길지 않았다. 볼 만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 변사체 발견 전날 밤. 폐정자 방향에서 낮고 느리게 스친 등불. 바람 없는데도 일렁이는 불꽃.

둘. 그리고 장상궁이었다.

“여기까지만 썼으면.”

소영이 말을 맺지 못했다. 서인녀가 진술서를 내렸다.

“장상궁이 너에게 말한 내용은 적지 않았다.”

“그건…”

소영의 아랫입술이 더 부풀었다.

“아직도 말하기——”

“아니. 잘한 일이다.”

서인녀가 진술서를 접어 품에 넣었다. 비단 주머니 옆.

“네가 본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날 밤 장상궁이 폐정자에 있었음은, 채아의 사망 추정 시각인 초경 직후와 일치한다.”

소영의 눈이 커졌다.

“그림자를 본 것만으로도. 증거가 됩니까.”

“된다.”

서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본 것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다. 순찰부 기록이 누락된 초경 세 각에서 이경 첫 각 사이, 바로 그 시각에 장상궁이 이동한 정황이다. 순찰 기록 누락과 현장 인물이 같은 시간대에 존재했음은, 의금부 검증 절차에서 입증 가능한 물리적 정황이다.”

소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벌렸다 닫았다. 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떨어졌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갈라졌다.

“증거라는 걸. 제가 만들었어요.”

서인녀가 다가섰다. 한 걸음. 그녀의 오른손이 소영의 손을 잡았다. 오랜 필사로 단단해진 사마귀 자국이 만져졌다.

“네 진술서. 네가 목격한 그 밤. 그리고 오늘 네가 이곳까지 온 발걸음. 모두 기록이다.”

소영의 손이 서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운 전하께서.”

소영이 숨을 들이켰다.

“다음 조회까지. 처소 별채에 머물게 하신다 했습니다.”

이운이 복도를 한 번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넨 지금부터 공식 증인이다. 처소는 내가 보장한다.”

소영이 이운에게 허리를 굽혔다. 서툰 절이었다. 몸이 풀려 몇 번이고 비틀거렸다.

“물러나거라.”

이운의 짧은 지시. 소영이 일어서서 독방을 나갔다. 쇠창살 너머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서인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소영의 발소리가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적막이 다시 독방을 채웠다. 횃불이 한 번 깜빡였다. 이운이 다시 바닥에 앉았다. 서인녀는 선 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장상궁의 그림자. 설 내관의 탕약 잔여물. 소영의 진술.”

서인녀가 말했다. 검시 보고의 어조로.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시각을 가리킵니다. 순찰부 누락이 발생한 초경 세 각 이후.”

이운의 눈빛이 움직였다.

“네 검시록 위조 흔적까지 포함하면.”

“네 가지입니다.”

서인녀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돌바닥을 짚었다.

“첫째. 기거주기 누락 쪽. 모후께서 마지막 탕약을 드신 날짜와 결명자 없는 배합이 기록된 바로 그 쪽입니다. 내부 기록 원본에서 누락됐고, 사본에서 같은 쪽이 재편철됐습니다.”

이운이 짧게 대답했다. “태비가 사본을 만질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러나 태비는 물금초목부 사본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정3품 관원의 승인 없이. 그리고 그 사본에는——”

“재편철 흔적.”

“예. 그것이 두 가지째입니다.”

서인녀의 손가락이 돌바닥을 한 번 더 쳤다.

“세 번째. 물금초목부 내부 기록 원본의 누락. 은엽초 배합과 작약 생략 지시가 적힌 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운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쪽의 존재 자체는——”

“왕태비의 친필 배합 비망록으로 증명됩니다. 전하께서 도서관 비밀 서고에서 확보하셨습니다.”

서인녀가 소매에서 의금부 감정관의 필체 대조서를 꺼냈다.

“네 번째는 제 검시록입니다. 의도적으로 바꾼 붓 압력과 획 마무리. 이것이 사칭을 입증하는 동시에——”

“태비의 기록 위조도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운이 서인녀의 말을 마무리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한 박자 흘렀다.

“모든 증거는 동일한 원리로 연결된다. 삼중 기록 체계의 기본 규칙. 위조 시 반드시 세 기록 간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운이 말을 멈추고 서인녀를 보았다.

“네가 태비에게 씌울 혐의는.”

서인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짙은 갈색 눈동자가 횃불을 받아 금속처럼 반짝였다.

“살인 교사.”

“근거.”

“모후의 마지막 탕약은 은엽초 석 냥, 백부자 한 냥 반, 마황 두 냥, 계지 한 냥. 여기서 작약이 빠지면 은엽초 독성이 배가됩니다.”

서인녀의 손가락이 품 안의 비단 주머니를 눌렀다.

“이 배합은 의원의 치료 처방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독약으로 조제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배합이 지금의 변사체 두 구에서도 검출됐습니다.”

이운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손날부터 소매 속으로 스며든 흉터 자국이 횃불에 드러났다. 과거 화재에서 입은 화상.

“왕태비 민씨는 두 건의 독살을 교사한 혐의.”

서인녀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모후. 그리고 채아와 하급 장인.”

“동기.”

이운의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서인녀가 일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전하의 판단입니다.”

“말해라.”

“태비가 모후를 제거한 이유는 단 하나. 모후의 아들이 국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서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쉰 음색이 돌벽에 부딪혀 울렸다.

“역모는 아닙니다. 후계를 둘러싼 궁중 암투입니다. 태비는 자신의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상군 전하마저도——”

“거기까지.”

이운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턱 근육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서인녀가 입을 다물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횃불이 두 번 깜빡이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쥐 소리도 멎었다. 의금부 감옥 전체가 숨을 죽이는 듯했다.

“네가 쓴 논리.”

이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뱉는 어조였다.

“삼중 기록 불일치. 검시록 필체 위조. 탕약 잔여물. 소영의 야간 목격. 네 가지가 태비를 압박할 것이다.”

“그리고 설 내관의 증언입니다.”

서인녀가 덧붙였다.

“태비가 직접 약을 지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합을 지시하고, 기록을 누락시키며, 사본을 재편철한 정황은——”

“내가 입증한다.”

이운이 일어섰다. 담묵색 도포 자락이 서인녀의 어깨를 살짝 스쳤다.

“내일 정전. 국왕과 중신들 앞에서.”

이운이 소매 안에서 빈 종이 한 장을 꺼내 서인녀에게 내밀었다.

“네가 방금 말한 전부를. 네 검시관의 방식으로 정리해라. 나는 네가 적은 대로 읽을 것이다.”

서인녀가 종이를 받았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종이 가장자리를 한 번 그었다. 붓을 쥐던 사마귀가 굳은 손가락이 천천히 획을 그리는 시늉을 했다.

“전하.”

서인녀의 목소리가 약간 흔들렸다. 처음으로.

“이 고발이 성공해도. 제 신분 사칭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저는 관직에서 추방될 것입니다.”

이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빛으로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짙고 투명한 검은 눈동자. 사람들이 ‘눈 속에 돌이 박혔다’고 평하는 바로 그 눈.

“알고 있다.”

짧은 말이었다.

“그럼에도.”

서인녀가 종이를 품에 넣었다. 은비녀와 약재 함과 비단 주머니와 소영의 진술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진실만은 관철하겠습니다.”

이운이 돌아섰다. 쇠창살을 향해 두 걸음. 그러다 멈췄다.

“서 검률.”

더 이상 검률이 아닌 사람을 향한 호칭이었다. 그러나 이운은 말을 고치지 않았다.

“내일. 네 목소리로 말할 기회를. 한 번만 주마.”

서인녀가 대답 대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망건도 없이 흩어진 머리카락이 뺨을 스쳤다.

이운이 쇠창살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발소리가 무겁게 울리다 사라졌다.

쇠창살이 닫혔다. 자물쇠가 걸리는 소리. 간수의 발소리가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 교대 시각이 아니었다.

서인녀는 독방 구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종이를 무릎 위에 펼쳤다. 붓 대신 바닥의 석회 가루를 손가락으로 묻혀 글자를 썼다.

첫째. 기거주기 누락 쪽 검증.

둘째. 물금초목부 사본 재편철 흔적과 내부 기록 원본 부재.

셋째. 탕약 잔여물과 약재 함의 은엽초 배합 일치.

넷째. 소영의 야간 목격 증언과 순찰부 누락 시각의 불일치——

다섯째. 검시록 필체 위조가 입증하는 삼중 기록 체계 기본 원칙.

손가락이 멈췄다. 마지막 줄을 쓰려다 말았다.

다섯 가지 증거는 모두 태비의 살인 교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가 검시관 자격을 잃었음을—— 영원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서인녀가 품 속의 은비녀를 꺼냈다. 검시 도구로 써온 그것이 차갑게 손바닥에 놓였다.

더 이상 검률이 아닌 자의 은비녀.

그러나 검시의 진실만은 남아 있었다.

서인녀가 은비녀를 다시 품에 넣었다. 소영의 진술서가 살짝 구겨졌다. 비단 주머니의 약재 냄새가 쇳물처럼 진하게 배어나왔다.

복도의 횃불이 꺼질 듯 깜빡이다 다시 살아났다. 밤은 길었다.

내일 아침 정전. 그곳에서 그녀는 더 이상 서검률이 아니었다.

여인, 서인녀로서. 진실을 말할 마지막 기회가 열릴 것이었다.

은비녀 독초록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