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록

3화

야간 순찰부 기록실은 취화전에서 동쪽으로 두 번째 행랑채 끝에 있었다.

문 앞에 선 서인녀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멎었다. 소맷자락 안, 비녀를 움켜잡았던 손가락이 아직 차가웠다. 심호흡 없이 문을 열었다.

기록실 안은 좁고 서늘했다. 벽면 선반에 순찰부가 월별로 정리되어 있고, 중앙 탁자 위에는 놋쇠 촛대 하나가 심지를 태우고 있었다. 이운은 탁자 너머에 서 있었다. 등 뒤로 창 하나, 촛불 하나뿐인 방 안에서 그림자가 벽을 가득 채웠다.

서인녀가 문턱을 넘자 이운이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빗장 소리가 났다.

“앉아라.”

서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하께서 검률 하나를 이곳까지 부르신 연유를 아뢰어 주십시오.”

이운이 탁자 위에 순찰부 사본 한 권을 펼쳤다. 다른 문서는 꺼내지 않았다.

“이 순찰부에 따르면 초경 세 각, 취화전 서쪽 회랑을 누군가 지나갔다.”

“알고 있습니다. 검시실에서 말씀드렸듯이——”

“원본에는 없다.”

서인녀는 입을 다물었다.

“사본에는 있고 원본에는 없는 기록. 삼중 보관 체계에서 위조의 흔적이 남는 원리다. 그런데 검시록에는 이 불일치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순찰부 원본을 본 네가, 순찰 기록의 누락을 확인하고도 검시록에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이유는.”

서인녀는 방금 전 검시실에서 이미 한 번 빠져나온 함정의 입구를 다시 마주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번에는 빗장까지 걸렸다.

“순찰부 원본의 누락을 검시 단계에서 확정할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검시록에 기재하는 것은 검시의 소견이지, 타 부서 기록의 진위 여부가 아닙니다.”

“근거가 부족했다.”

이운이 한 걸음 다가왔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림자가 뒤틀렸다.

“그런데 네 검시록에는 ‘경미한 압흔’이라 적었다. 채아의 안면 울혈 상태는 교살의 전형과 맞지 않았다. 안구 결막 출혈도 미약했고, 목의 압흔은 끈의 폭과 각도가 불규칙했다. 네가 그걸 못 봤을 리가 없다.”

서인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전하께서 검시록을 그토록 세밀히 검토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비전형적 교살 흔적을 확인한 검률이 ‘경미한 압흔’으로 축소 기재한다. 거기에 순찰부 원본 누락까지 인지했으면서 검시록에서 누락시킨다. 공통된 의도가 있다. 조사를 피하려는 의도다.”

소맷자락 아래에서 서인녀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이운의 시선이 그쪽으로 짧게 내려갔다가 다시 눈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순찰부 사본을 입수하시고, 검시록 원본과 대조하시고, 사체의 안면 울혈과 압흔의 불일치까지 확인하셨습니다. 이런 수고를 검률 하나의 검시록 축소 때문만으로 하시지는 않으셨을 터. 본래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넘기지 마라. 네가 왜 검시록을 축소했는지를 먼저 밝혀라.”

“순찰부 원본이 위조된 정황과, 궁녀의 사인이 단순 교살이 아닐 가능성. 두 가지가 연결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진상을 먼저 확인하려 했습니다.”

“‘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이운이 그 말을 천천히 반복했다. 비웃음도 동의도 아니었다.

“네가 공식 조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군. 왜.”

서인녀는 답하지 않았다.

“검시록 축소와 순찰부 누락 인지. 둘 다 네 독단적 판단이다. 그 판단을 관철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 근거가 뭐지.”

“능력이라기보다는——”

“네 검시 실력은 이미 확인했다. 채아의 사인을 독물에 의한 호흡 마비 가능성으로 추론한 점. 은엽초 분말의 식별. 목 압흔과 안면 울혈의 불일치 지적. 종6품 검률이 하룻밤 사이에 보여준 관찰력으로는 과하다.”

서인녀의 숨이 잠시 멈췄다. 사찰단이 목을 조르는 듯했다.

“내의원 정3품 이상 관원만 열람할 수 있는 물금초목부와 은엽초의 연관성까지 짚었다. 그 지식은 어디서 났지.”

“검시관으로서 독초에 관한 기본 지식입니다. 내의원 기록 체계를 아는 것도——”

“그만.”

이운의 손이 갑자기 허공으로 올라갔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가상의 물체를 집었다.

손목을 안쪽으로 약간 꺾고 귀 옆까지 올렸다. 팔꿈치를 바깥으로 벌리지 않고 몸통 가까이 붙인 채 손목만 돌리는, 한 번의 동작이었다.

서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검시실에서 네가 은비녀를 머리에 꽂을 때의 손동작이다. 수년간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각도다.”

이운의 시선이 서인녀의 소매 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은비녀가 검시침 대용으로 사용된다. 검시침은 검률의 기본 도구다. 검은색 견본 천에 묻혀 약물 반응을 시험하지. 검시침을 소지하지 않는 검률이 은비녀로 대신한다. 그 비녀에 여성의 사용 흔적이 배어 있다.”

서인녀는 입을 열려다 말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검시록 필체의 미세한 차이. 오늘 네가 하급 서리에게 대필을 시켰다는 변명. 은비녀 사용 습관과 소지 경위. 그리고 검시침 부재.”

촛불 아래 이운의 눈이 전혀 빛나지 않았다. 돌에 박힌 듯한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보고 있었다.

“서단운. 너는 누구지.”

손이 소매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은비녀를 움켜쥐자 놋쇠 촉이 손바닥을 찔렀다. 아프지 않았다.

“전하. 그 질문은——”

“빗장은 잠겼다. 이 시간에 이곳에 올 인원은 없다. 네 오라비는 검시실 근처 대기실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고.”

서인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단운이 아니라 너. 검시록을 대필하고 은비녀로 검안을 하는 쪽.”

촛불이 심지에서 한 번 튀었다. 기록실 안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대연왕조에서 여성은 관직에 오를 수 없다. 검시는 오직 남성 검률만 수행할 수 있다. 네가 오늘 밤 나에게 보여준 검시 능력은 의녀의 범주를 넘는다. 은엽초 분말을 한 번의 육안 검시로 식별할 수 있는 지식과, 교살의 전형적 흔적을 구분하는 경험은 수년간 실전 검시를 하지 않으면 쌓을 수 없다.”

이운은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탁자 하나만 사이에 두고 멈췄다.

“네 오라비는 관복을 입어도 위압감이 없고 눈빛이 흔들린다. 상대의 말을 끊지 못하고 항상 옷깃이 틀어져 있다. 그가 검시실에 들어가면 검시침 대신 붓을 먼저 집어 들 것이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시체 앞에서 제일 먼저 눈빛이 바뀌고 손가락이 움직인다.”

서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벽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만약 내가 이 사실을——”

이운이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순찰부 사본을 덮었다.

“앉아라. 아까 말했을 텐데.”

서인녀의 무릎이 먼저 꺾였다. 탁자 앞 의자에 걸터앉자 다리가 떨렸다. 이운도 맞은편에 앉았다.

“체포하지 않겠다.”

서인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왜.”

자신도 모르게 반말 비슷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네 검시 능력이 필요하다.”

두려움보다 의문이 더 컸다. 서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성을 체포하는 대신 협력하자고 하시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왕실의 일원이시라면——”

“15년 전, 모후가 독살됐다.”

서인녀의 입이 다물어졌다.

“내의원에서 내린 사인은 ‘심화병으로 인한 급사’. 검시는 없었다. 왕실의 공식 기록, 의안, 물금초목부. 삼중 보관된 모든 문서에서 모후의 처방 기록만 열흘 치가 사라졌다. 누군가 그 기록을 체계적으로 지웠다.”

이운의 손가락이 순찰부 사본의 표지를 두드렸다.

“오늘 밤 네가 채아의 사체에서 은엽초 분말을 검출하고, 순찰부 원본의 누락을 발견하고, 검시록을 축소하기로 판단한 것. 그 과정에서 보여준 관찰력과 기록 체계의 허점을 이용하는 방식. 내가 필요한 것이다.”

“15년 전 실종된 기록을 추적하는 일에 왜 저를.”

“네가 이미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아의 검시록 축소. 순찰부 위조 발견. 단독 조사 결심. 네가 지금 혼자서 하려는 일이, 내가 15년째 혼자 하고 있는 일과 닮았다.”

촛불 아래 이운의 눈이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비췄다. 너무 오래 혼자였던 사람의 피로였다.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자.”

소매 속에서 서인녀가 은비녀를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떨림은 멈췄다.

“제게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네 아버지다.”

손이 멈췄다.

“서씨 가문. 10년 전 서윤 검률의 옥사 사건. 내가 그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네 오라비 서단운은 접근할 수 없는 문서다. 10년 전 그 사건의 판결문과 증거물 목록에, 네 아버지를 누명 씌운 자의 관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서인녀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이름을 남의 입에서 듣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하께서 그 기록을 열람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십니까.”

“없다. 없기에 네가 필요하다. 내의원 물금초목부 열람에는 정3품 이상의 권한이 필요하다. 나는 태상군이지만 실권은 없다. 네가 가진 검시 지식으로 그 문서의 약재 조합을 분석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나는 네 오라비가 가질 수 없는 왕실 문서 접근 경로를 안다. 권한을 우회하지 않고 문서에 닿는 방법 말이다.”

서인녀는 침묵했다. 탁자 위의 촛불이 반쯤 줄어들 때까지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확인해 주신다면.”

입을 연 서인녀의 목소리는 다시 검률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공조를 수락하겠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라.”

“제 신분은 한시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하께서 알고 계신 것은, 오늘 밤 이 방 안에서만 유효합니다. 밖으로 나가면 저는 서단운입니다.”

“그 조건은 나도 동의한다. 네가 검률로 활동할 수 있어야 검시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

“두 번째. 아버지 사건의 기록을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공조의 대가를 먼저 받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그 기록에 실제로 접근할 능력이 있으신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이운의 눈썹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의심이 많군.”

“전하께서도 마찬가지시지 않습니까. 은비녀의 손동작까지 관찰하셨으니.”

한 박자 침묵. 이운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옅은 각도였다.

“좋다. 내일 밤. 자시. 취화전 서쪽 회랑 끝.”

“왜 그곳입니까.”

“10년 전 서윤 검률 사건의 판결문 사본이 봉인된 곳이다. 사본 열람은 원본보다 절차가 간단하다. 일단 사본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원본을 찾는다.”

서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매 안에서 은비녀를 놓았다. 손바닥에는 놋쇠 촉이 찍은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시에 뵙겠습니다.”

“한 가지 더.”

이운이 일어나며 순찰부 사본을 들었다.

“네가 검시실에서 내게 보여준 모든 것. 은비녀, 검시 방식, 약재 지식. 앞으로도 숨기지 않는다. 내가 의심할 시간을 네가 줄이면, 우리 공조의 수명도 길어진다.”

서인녀도 일어났다.

“전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후의 사건에 관해 알고 계신 정보를 숨기지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건——”

이운이 문 쪽으로 걸으며 빗장을 풀었다.

“지금까지 함께 일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보면 알게 될 거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서늘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서인녀는 공수의 자세로 허리를 굽혔다. 관복의 소매가 흔들렸다.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이운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서인녀가 문턱을 넘자마자 문이 다시 닫혔다.

복도를 걷는 발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오른손은 이번에 소매 속 비녀를 찾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의 붉은 자국을 엄지로 한 번 쓸었다. 따가웠다.

기록실 안, 이운은 촛불 앞에 서서 탁자 위의 순찰부 사본을 바라봤다. 소매 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독초 도감 물금초목부의 15년 전 열람 기록이 연도별로 정리된 초록이었다.

세 번째 페이지, 15년 전 4월의 항목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점의 주인은 알 수 없었다. 이 기록을 누가 남겼는지, 왜 하필 이 페이지만 초록에 남았는지도.

이운은 종이를 다시 접어 소매 깊숙이 넣었다. 촛불이 마지막으로 한 번 꺼질 듯 흔들렸다. 불지 않고 심지를 그대로 두었다. 불이 꺼질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록실 문은 닫혀 있었다. 복도 끝에서 빠르고 불규칙한 발소리가 들렸다.

서인녀의 손이 소맷자락 밑에서 굳었다.

“여기 있었군.”

서단운이었다. 이마에 땀이 솟아 있었다. 기록실 안의 이운을 보자 얼굴이 굳어졌다.

“전하. 이 시간에 웬일이신지….”

“물러가라.”

이운이 짧게 잘랐다.

서단운은 물러서지 않고 서인녀의 소매를 잡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하지 않겠나.”

이운은 순찰부를 한 권 더 꺼내며 고개도 들지 않았다. “시간은 많지 않다.”

복도 기둥 그늘 아래서 서단운이 돌아섰다.

“미쳤어? 태상군 전하다. 그 사람, 순찰부 사본을 쥐고 있다는 뜻이야. 검시록 축소도 알고 있어. 네가 무슨 거래를 한 건지 모르지만, 이건 선을 넘었어. 가문의 명예를 걸 문제가 아니라고.”

“명예라면.” 서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버지 누명을 그냥 묻는 게 오라버니가 말하는 명예입니까.”

서단운이 입을 열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죽을 수도 있어.”

“누구보다 잘 압니다.”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단운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긴 숨을 내쉰 뒤 고개를 저었다.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옷깃을 바로 하며 몸을 일으켰다. “한 가지만 약속해. 더 이상 혼자 판단하지 마. 위험하면 반드시 나한테 알리고.”

서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붉어진 코끝으로 서단운이 억지로 웃었다. “대답 없는 거 봐선 약속 못 하겠다는 거지.”

“시간이 없습니다.”

기록실 문 쪽으로 서인녀가 돌아서자, 뒤통수에 단단한 음성이 닿았다.

“네가 골랐다면, 나도 내 몫을 하겠다. 검시록 원본은 내가 책임질게. 사흘 안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도록 매일 확인하겠다. 그러니까 너는… 증거를 확보해.”

발걸음이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맙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문을 밀었다. 등불이 반쯤 줄어든 기록실 안, 이운은 탁자 위에 순찰부 사본과 검시침, 접힌 종이 한 장을 올려두고 있었다.

복도에서 서단운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좋은 오라비를 두었군.”

서인녀는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공조의 첫 단계를 정하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이운이 접힌 종이를 폈다. 모후 독살 사건의 날짜, 관련자 명단, 내의원 처방전 번호까지 기재된 기록이었다.

“사본이다. 원본은 따로 있다. 여기 기록된 내의원 처방전 번호가 물금초목부의 대조 지점이다.” 이운이 명단 하단을 짚었다. “독초 도감 접근은 정3품 이상만 가능하다. 권한을 확보할 방법은 이미 마련해뒀다. 사흘 뒤 초경 이후, 내의원 서고에서 합류해라.”

고개를 든 서인녀가 말했다. “사흘 뒤면 이경 전에 현장 검증을 마칠 수 있습니다. 먼저 취화전 후원의 약재 찌꺼기를 재검사하겠습니다. 은비녀로 긁어낸 견본이 있습니다. 필촉으로 재관찰하고 남은 분말을 보관하겠습니다.”

이운이 끄덕였다. “순찰 시간은 내가 조정한다. 초경 세 각 이후 취화전 후원은 한 시진 동안 순찰 경로에서 제외된다. 그 안에 마쳐라.”

서인녀는 누렇게 바랜 기록 사본을 집어 소매 안 검시침 옆에 밀어넣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 기록, 누구에게 받은 겁니까.”

이운의 눈빛이 살짝 움직였다. “알 필요 없다. 지금은.”

더 묻지 않고 서인녀가 허리를 굽혔다. “사흘 뒤, 내의원 서고에서 뵙겠습니다.”

돌아서서 문을 향하는 그녀에게 이운이 낮게 말했다.

“서 검률. 그 은비녀. 잃어버리지 마라.”

대답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소매 안 사본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가 구겨지는 감촉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취화전 후원에는 달빛이 얇게 깔려 있었다. 소영은 늦은 당번 교대 탓에 발소리를 죽이며 회랑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서쪽 폐정자 방향에서 등불 하나가 낮고 느리게 스쳤다. 바람 없는데도 불꽃이 일렁였다.

소영은 기둥 뒤로 몸을 붙이고 숨을 삼켰다.

불빛이 멈추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바싹 마른 체형에 낡은 장상궁 예복 자락이 바닥을 끌었다. 조화 참빗이 달빛에 희미하게 반사됐다.

장상궁이었다.

소영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옷고름을 움켜잡았다. 장상궁이 주위를 휘둘러보고 정자 안으로 사라지자, 소영은 뒷걸음질 쳤다. 신발이 자갈을 밟는 작은 소리가 났다.

등불이 멎었다.

숨을 멈추고 등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젖은 눈동자에 달빛이 번졌다.

“그만.”

이운의 손이 갑자기 허공으로 올라갔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가상의 물체를 집었다.

손목을 안쪽으로 약간 꺾고 귀 옆까지 올렸다. 팔꿈치를 바깥으로 벌리지 않고 몸통
은비녀 독초록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