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록

4화

초경 직후, 내의원 바깥 복도에는 인적이 끊겼다.

서인녀는 회랑 기둥에 붙어 숨을 죽였다. 사찰단이 땀에 젖어 목울대를 압박했다. 이운이 앞장섰다. 그의 발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독초 도감 문 앞에 멈췄다. 이운이 소매에서 놋쇠 열쇠를 꺼냈다.

서인녀가 물었다. “열쇠는 어디서.”

“내의원 제조가 태상군 처소에 바친 것이다. 순찰 협조 명목으로.”

이운은 대답하며 자물쇠를 열었다. 녹슨 철문이 낮은 신음을 냈다.

“제조가 왜.”

“네 흥정에 내 흥정까지 해설할 의무는 없다.”

문이 닫혔다. 어둠 속에서 약재 냄새가 밀려왔다. 쑥, 사향, 그리고 식별할 수 없는 쓴 향.

서인녀는 소매에서 부싯돌을 꺼내 벽의 등잔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일렁이며 독초 도감 내부를 드러냈다. 벽면 전체가 작은 서랍이었다. 각 서랍에는 약재명이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물금초목부는 어디입니까.”

이운이 동쪽 벽을 턱짓했다. “저기다.”

벽 하단에 별도로 잠긴 궤짝이 있었다. 놋쇠 장식이 달린 검은 목재 궤. 이운이 두 번째 열쇠를 꽂았다. 궤 안에는 푸른 비단으로 싼 책 세 권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서인녀는 장갑을 끼고 가장 최근의 물금초목부를 꺼냈다.

“채아의 사망 추정 시각은 초경 직후였습니다. 은비녀에서 채취한 잔여물은 회흑색 분말. 매끄러운 촉감.”

책장을 넘겼다. 최근 세 달 치 기록이 빼곡했다.

“취화전 관련 처방은.”

이운이 그녀 옆에 섰다. 어깨가 살짝 닿을 거리였다. 그는 등을 돌려 책장을 읽었다.

“취화전 소속 궁인에게 지난달 처방된 약은 없다. 급성 질환 보고도 없었다.”

서인녀가 손가락으로 기록을 짚으며 읽어 내려갔다. 붓글씨 사마귀가 등잔불 아래 그림자를 드리웠다.

“기록 부재 자체가 증거입니다. 처방 없이 조합된 독초라면, 물금초목부의 출납 기록과 실제 재고를 대조해야 합니다.”

“은엽초다. 수침 시 잎이 은빛으로 변하고, 분말은 회흑색, 촉감은 매끄럽다.”

이운이 말하며 다른 책을 집었다. 십오 년 전 기록이었다. 낡은 표지에 ‘선왕 비빈 처방록’이라 적혀 있었다.

“모후의 마지막 탕약 기록. 사건 당일 내의원 제조가 직접 조제했다.”

서인녀는 두 책을 나란히 펼쳤다. 왼쪽은 현재 물금초목부. 오른쪽은 십오 년 전 처방록.

등잔불이 일렁이며 종이 위를 그림자가 스쳤다. 그녀는 은비녀를 뽑아 끝으로 약재명을 하나씩 짚었다.

“당귀. 천궁. 감초.”

비녀 끝이 현재 기록에서 멈췄다. 이어 과거 처방록으로 옮겨갔다.

“동일한 세 가지입니다. 현재 압수된 잔여물의 구성이 이것입니까.”

이운이 처방록을 가리켰다. “아니다. 더 있다. 저 아래.”

서인녀의 시선이 처방록 하단으로 내려갔다. 탕약 구성 마지막 줄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은엽초 3전, 수치 후 배합함. 단, 단독 사용 금기. 반드시 작약과 함께 복용할 것.’

서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작약은 현재 기록에 없습니다. 은엽초와 작약을 병용한 흔적도 없고요.”

“그렇다면.”

이운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지금 채아의 사건은, 십오 년 전 모후의 탕약과 같은 약재 기반을 썼다. 그러나 작약을 뺐다.”

서인녀가 고개를 들었다.

“작약이 은엽초의 독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면, 그걸 제거한 쪽은 더 치명적입니다. 모후의 탕약은 치료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운이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돌이 박힌 듯한 검은 눈동자에 등잔불이 작게 맺혔다.

“모후는 병이 아니었다. 독살이다. 그걸 치료로 둔갑시킨 자가 있다.”

서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두 책의 페이지를 암기하듯 눈으로 훑었다.

“기록을 베껴야 합니다.”

“안 된다. 필체가 남는다. 기억해라.”

서인녀는 끄덕이고 은비녀를 다시 소매에 꽂았다. 손가락이 약간 떨렸다. 이운이 그 손을 잠시 보았다.

“누군가에게 이 약재 조합을 전수한 자가 있다. 십오 년 전 내의원 관원이거나, 그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인물.”

“한 가지 묻겠습니다.”

서인녀가 물금초목부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며 말했다.

“현재 물금초목부에 은엽초 출납 기록은 남아 있습니까.”

“남아 있을 리 없다. 진범이 기록을 조작했거나.”

“혹은.”

서인녀가 일어섰다.

“정3품 이상 관원이, 공식 출납 절차를 우회해 은엽초를 빼낸 겁니다. 물금초목부에 기록되지 않은 채로.”

침묵이 흘렀다.

이운이 입을 열었다. “설 내관이다. 독초 도감 관리를 겸하고 있다.”

“설 내관은 정3품이 아닙니다. 독초 도감 열쇠도 가지고 있지 않을 텐데.”

“열쇠는 없어도 출입은 한다. 순찰 명목으로. 모든 서랍의 위치와 약재명을 꿰고 있다.”

이운이 궤짝을 닫으며 덧붙였다.

“반드시 그를 찾아라. 다만 직접 묻지 마라. 녀석은 말로는 절대 답하지 않는다.”

서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등잔을 끄자 어둠이 다시 밀려들었다. 약재 냄새가 더 짙어졌다.

“물금초목부 원위치 완료했습니다. 도감을 나가시지요.”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이운이 마지막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느린 발소리가 들렸다.

서인녀는 숨을 삼켰다. 목울대를 누르는 사찰단이 갑자기 너무 조이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남색 내관복이 나타났다. 구부정한 어깨. 백발이 섞인 짧은 머리. 좀벌레 방지용 향낭 냄새가 약재 냄새를 뚫고 다가왔다.

설 내관이었다.

그는 두 사람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탁한 황색 눈동자가 등잔불 하나 없이도 빛나는 듯했다. 이운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설 내관은 그대로 지나쳤다.

서인녀가 막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순간, 바닥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설 내관의 소매에서 종잇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구부정한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운이 허리를 굽혀 종잇조각을 집었다. 낡은 종이에 희미한 붓글씨가 적혀 있었다.

‘옛 탕약 그릇 씻은 자의 증언. 작약을 먼저 넣지 않았다. 은엽초가 먼저였다. 제조가 손을 떨었다.’

서인녀가 숨을 들이켰다.

“설 내관이 일부러 흘린 겁니다.”

“안다.”

이운이 종잇조각을 접어 소매에 넣었다.

“이 증언은 순찰부에도, 검시록에도 없다. 삼중 보관 체계에서 누락된 사본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한 사본. 그 파편이 왜 설 내관에게.”

“그가 모후의 탕약 그릇을 씻은 자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내의원 서쪽 작은 문으로 빠져나왔다. 야간 공기가 땀에 젖은 사찰단을 식혔다. 서인녀는 소매 안 사본의 모서리를 다시 한 번 만졌다. 어느새 손가락이 굳은살을 문지르고 있었다.

취화전 후원, 폐정자로 향하는 회랑에는 바람이 멎은 듯 고요했다.

소영은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눌렀다. 아까 뛰어 도망친 후, 순찰부 기록실 쪽으로 가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제 발자국이 남을까 봐였다.

그때 서쪽 폐정자 쪽에서 등불이 다시 보였다.

낮고 느리게 흔들렸다. 바싹 마른 체형의 그림자가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장상궁이었다. 낡은 예복 자락이 부서진 기와 조각 위를 끌며 소리를 냈다.

소영은 담장 아래로 몸을 낮췄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살짝 맛봤다. 두 손은 옷고름을 움켜쥔 채였다.

장상궁이 정자 안에서 멈췄다. 등불을 들고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했다. 아니,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바닥을 비추고, 기둥을 더듬었다.

소영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장상궁이 정자 기둥 아래에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손에 작은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등불을 가까이 대고 확인했다.

소영은 보지 못했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만 장상궁이 그 조각을 소매에 넣는 동작만 간신히 읽었다.

순간 등불이 들썩였다. 장상궁의 얼굴이 살짝 돌아갔다.

소영은 몸을 돌려 담장 아래로 기어가듯 달아났다. 자갈 소리가 났다. 신발이 벗겨졌지만 신을 시간이 없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회랑을 빠져나와 하급 궁녀 처소 쪽으로 뛰었다.

뒤에서 등불 빛이 그녀를 쫓지 않았다. 장상궁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의원 바깥 복도에서 이운이 종잇조각을 다시 꺼내 달빛에 비췄다.

서인녀가 물었다. “설 내관은 왜 지금 이것을.”

“모른다. 다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물금초목부를 열 때까지.”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이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잇조각을 다시 소매에 넣었다.

“내일, 설 내관의 순찰 경로를 확인하겠다. 녀석이 도는 시간과 구역을.”

“제가 할 일은.”

서인녀의 물음에 이운이 잠시 생각했다.

“작약. 왜 제거됐는지 찾아라. 약재 조합을 아는 자는 내의원에 많지 않다. 정3품 이상, 혹은 그들에게 약재를 조제해주는 약방 하인.”

“약방 하인은 물금초목부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정3품 관원의 지시 없이는.”

“그 관원을 찾는 것이 네 일이다.”

서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음속으로 내의원 관원 명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흘 뒤 내의원 서고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그 전에 설 내관의 순찰 경로를 확인하겠습니다.”

이운이 그녀를 보았다.

“서 검률. 너는 지금 위험한 쪽으로 걷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서인녀가 허리를 굽혔다.

“묻지 않으셨지만 답하겠습니다. 저도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이운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담묵색 도포 자락이 달빛에 한 번 펄럭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궁녀 처소 후원.

소영은 숨을 헐떡이며 자기 방 문을 열었다. 손이 떨려 문고리를 두 번이나 놓쳤다.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등잔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맨발이었다. 흙과 작은 자갈이 발바닥에 박혀 있었다. 왼쪽 신발은 폐정자 근처에 벗겨둔 채였다.

눈물이 흘렀다. 입술을 깨물어 피가 섞인 침을 삼켰다. 장상궁이 집어 든 조각. 정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것. 채아 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있었던 것.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아마, 하고 생각했다.

그때 창문 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아니, 바람은 아니었다.

장상궁의 낡은 예복 자락이 자갈 위를 끄는 소리였다.

소영은 숨을 멈췄다. 창호지 너머로 등불 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었다. 장상궁이 처소 후원에 서 있었다. 그녀의 키 작은 그림자가 창문을 향해 길게 드리워졌다.

소영은 움직일 수 없었다. 얼어붙은 채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등불 빛이 천천히 멀어졌다. 예복 자락 끌리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장상궁이 물러난 것이다.

소영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울음소리가 새지 않도록. 발바닥의 피가 방바닥에 번지는 것도 몰랐다.

창호지 너머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달빛만이 얇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영은 알았다. 장상궁이 왔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폐정자에 있었다는 것을, 장상궁이 모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그녀는 밤새도록 등을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지 못했다.

은비녀 독초록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