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독초록

7화

등불이 움직인다.

회랑 입구를 막아선 것은 정 내관이 아니다. 순찰대도 아니다.

서인녀가 걸음을 멈췄다.

“……전하.”

이운이 이미 알고 있었다. 담묵색 도포 자락이 회랑 기둥 그림자에 반쯤 묻혔다. 시선은 저 앞 등불을 꿰뚫고 있었다.

“기다려라.”

“이미 늦었습니다.”

아니다. 등불이 다섯이다. 인원은 최소 일곱.

서인녀의 손이 소매 안 검시침으로 내려갔다가 멈췄다. 쓸모없는 버릇이었다. 싸울 수 없다. 무예는 익히지 않았다.

소영의 손이 소매를 움켜잡은 채 굳었다.

“대비전에서……”

“입 다물어라.”

이운이 소영의 말을 끊었다. 짧고 낮았다.

이윽고 등불이 멈췄다. 선두에서 걸어나온 인물의 낡은 상궁 예복이 흔들렸다. 장상궁.

등불에 비친 회색 눈동자가 이운을 향했다.

“태상군 전하.”

목소리는 무채색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도서관 후원 회랑을 거니시는 까닭을, 하문 받들어 여쭙겠사옵니다.”

“묻기 전에 먼저 아뢰어라.”

이운이 반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비전 순찰대가 종친을 막아서는 이유 말이다.”

장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조화 참빗이 등불에 반짝였다.

“왕태비 전교, 도서관 은닉 문건 사건의 관련자 전원을 체포하라 하셨사옵니다.”

“관련자.”

이운이 짧게 웃었다.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소영 나인은 검시 절차 보전을 위한 증인이다. 체포 대상이 아니다.”

“그 또한——”

“확인하겠다.”

이운이 품에서 순찰부 사본을 꺼냈다. 종이 모서리가 바람에 파닥였다.

“초경 세 각부터 이경 첫 각 사이 취화전 후원 순찰 기록 누락. 이 시간대 유일한 목격자가 소영 나인임을 검시록 부기에 기재했다. 삼중 기록 체계에 근거한 열람 권한으로 보호 중인 증인을 대비전 전교만으로 체포하려 드는 것이——”

순찰부 사본을 접었다.

“무슨 뜻인지 아뢰어라.”

장상궁의 손톱 밑 검은 물질이 어둠 속에서도 드러났다.

“하문 받들어——”

“됐다.”

이운이 등을 돌렸다.

“증인은 내가 데려간다. 전교의 대상에 종친과 검률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서인녀는 이미 소영의 팔을 잡은 채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신속했다. 불필요한 말은 없었다.

장상궁이 비켜서지 않았다. 순찰대도 마찬가지였다.

“전하께서 소영 나인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하문 받들어, 증인으로서의 진술에 계시겠사옵니다.”

회색 눈동자가 서인녀에게로 옮겨갔다. 가늘고 까슬한 시선이었다.

“허나 밤 사이 증인의 신변을 보호할 거처는 사전에 나인 거처 후원 막사로 지정되었사옵니다. 서 검률과 함께 도서관 방향으로 이동 중이신 지금, 이는 증인 보호가 아닌 강제 이동으로 간주될 수 있사옵니다.”

서인녀가 입을 열었다.

“소영 나인의 발목 부상은 대비전 문초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의원의 진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도서관 쪽 내의원 약방으로 가는 중입니다.”

말끝이 또박또박했다.

“검시록 부기에 기재할 내용입니다.”

장상궁의 입술이 얇게 당겨졌다. 손톱이 한 번 더 옷자락을 스쳤다.

“그 부기가 과연 서 검률 본인이 작성한 기록이 맞사옵니까.”

회랑이 조용해졌다. 등불 심지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 들렸다.

서인녀의 손이 소매 안에서 멈췄다. 검시침을 쥐던 손가락이었다.

이운이 천천히 돌아섰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하문 받들어——”

“묻는 말에 답이나 해라.”

장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시선이 소영의 발목으로, 서인녀의 소매로, 이운의 손에 쥔 순찰부 사본으로 차례로 옮겨갔다.

“종6품 검률 서단운. 그가 작성한 검시록의 필체가 이전 기록과 다르다는 제보가 접수되었사옵니다.”

서인녀의 호흡이 한 치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의금부 검률청의 공식 감정을 요청할 계획이오니, 서 검률께서는 내일 진시까지 검률청에 출두하시라는 전갈을 드리러 왔사옵니다.”

소영의 손이 떨렸다. 서인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서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일 진시, 검률청으로 출두하겠습니다.”

이운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서인녀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다만 지금은 증인의 의료 조치가 먼저입니다. 소영 나인을 내의원 약방으로 이송한 뒤, 기록 대조에 필요한 검시록 사본을 챙겨 출두하겠습니다.”

장상궁이 천천히 옆으로 비켰다. 순찰대도 나뉘었다.

“분부대로… 물러나겠사옵니다.”

회랑이 열렸다.

서인녀는 소영의 팔을 다시 잡고 걸었다. 등불 사이로 빠져나가는 동안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운이 곁에 붙었다.

“검률청 출두는 함정이다.”

“압니다.”

“거절할 명분을 만들겠다.”

“전하.”

서인녀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오늘 밤입니다.”

서인녀가 품에서 쪽지를 꺼냈다.

“혜명 노승. 도서관 비밀 서고의 벽감을 압니다.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가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운이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자경에 후원 석탑 아래다.”

도서관 후원 석탑.

촛불 하나 없이 달빛만이 흰 석탑 표면을 핥고 있었다. 서인녀는 소영을 내의원 약방 앞에서 정백문에게 인계한 뒤 이곳으로 왔다.

걸음이 멈췄다.

석탑 아래 그림자가 움직였다. 늙은 승려의 등, 굽은 어깨, 소리 없는 발걸음. 혜명 노승이었다.

“오셨습니까.”

탁한 황색 눈동자가 이운을 올려다보았다. 혜명은 합장하지 않았다.

“15년이 지나도 전하의 눈빛은 그대로시군요.”

이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혜명이 서인녀를 바라보았다.

“이분이 그 여인이시군요. 검시 도구를 소매에 감추신 분.”

서인녀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서 검률입니다.”

“검률. 이름뿐인 벼슬이지요. 실상은 본 적도 없는 시신 앞에 서서 붓을 드는 분. 그리고 그 뒤에서 진짜 검시를 하는 분. 그렇습니까.”

서인녀가 침묵했다.

혜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묻지 않겠습니다.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운을 향해 돌아섰다.

“비밀 서고로 가시는 길은 위험합니다. 이미 장상궁의 수하들이 벽감을 뒤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그 장소를 오늘 밤 안에 가지 못하면, 내일 아침이면 모든 기록이 재가 됩니다.”

“몇 명이지.”

이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셋입니다. 정 내관과, 그가 데려온 무관 둘. 하나같이 입이 무거운 자들.”

“입구는.”

혜명이 석탑 서쪽 면을 가리켰다. 이끼 낀 석재였다.

“세 번째 돌, 왼쪽 모서리를 밀어 올리면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열립니다. 열 길을 기어 내려가면 비밀 서고의 남쪽 벽감 뒤로 나옵니다. 원래 불경과 고승들의 언행록을 보관하는 공간이었습니다. 15년 전 제가 사본 하나를 그곳에 숨겼습니다.”

“무슨 사본인지 아느냐.”

“기거주기 사본 중 누락된 쪽입니다. 모후마마의 마지막 탕약 처방이 기록된 페이지.”

이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걸 네가 숨겼다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까지.”

혜명이 고개를 숙였다. 깊게, 오래.

“이제 갚겠습니다. 제가 망을 서겠습니다. 누군가 오면 이 소리로 알리겠습니다.”

소매에서 작은 목탁이 나왔다.

서인녀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그 누락된 쪽 외에 또 다른 기록이 있습니까. 배합 지시서 같은——”

“태비마마의 친필.”

혜명의 손이 멈췄다.

“그게 가장 위험한 것이지요. 배합 지시서. 어떤 약재를 얼마만큼, 어떻게 조제하라는 지시를 친필로 남기셨습니다. 그 문서의 존재는 압니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신께서도 아직 저에게는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알아낼 수 있느냐.”

이운의 질문에 혜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이젠 제가 아는 마지막 비밀입니다.”

석탑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혜명의 낡은 승복 자락이 흔들렸다.

“가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통로는 좁고 어두웠다.

서인녀의 손톱 끝이 축축한 흙을 파고들며 내려갔다. 앞서 내려간 이운의 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둑했다.

“발 조심해라.”

“예.”

뼘 길이도 안 되는 거리를 말 없이 기었다. 통로 끝에서 희미한 등불 빛이 새어나왔다.

이운이 돌을 살며시 밀자 협소한 공간이 열렸다.

비밀 서고.

서까래 아래까지 쌓인 기록함. 선반 위에 얽힌 끈들. 벽감 속의 두루마리.

그리고 바닥에 쏟아진 서책들 사이로 보이는 등불 세 개.

정 내관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빛이 변했다.

“……태상군 전하.”

정 내관의 손에 쥔 서책이 덜덜 떨렸다. 옆에 있던 무관 둘이 동시에 허리를 폈다.

“이 시간에 이곳에 무슨 일이십니까.”

정 내관이 물러서며 서책을 등 뒤로 감추려 했다. 늦었다.

이운의 시선이 이미 서책 제목을 읽고 있었다. 물금초목부 사본.

“그 질문은 내가 해야겠군.”

이운이 한 걸음 다가섰다.

“왕실 기록 정비 명령을 내가 내린 적은 없다. 내의원 정3품 관원의 승인도 없었다. 누구의 명령으로 이곳 기록을 뒤지고 있느냐.”

“이것은…… 대비전의——”

“대비전은 기록 관리 권한이 없다. 알지 않느냐.”

정 내관의 이마에 땀이 솟았다.

“전하, 저희는 단지 오래된 서책들의 보존 상태를——”

“거짓말.”

서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서고를 가로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서인녀는 이미 정 내관의 발치에 쏟아진 서책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등불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물금초목부 사본의 끈을 살폈다.

“이 사본은 이미 해체된 뒤 다시 묶였습니다.”

정 내관의 눈이 커졌다.

“서 검률, 무슨——”

“편철 구멍입니다.”

서인녀가 사본 옆면을 등불 가까이 들었다.

“종이에 뚫린 구멍 아홉 개. 구멍 가장자리의 마모 방향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고 있습니다. 한 번 묶였던 끈을 풀고 다시 묶을 때 종이를 당겼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이 매듭 쪽으로 옮겨갔다.

“반면 묶은 끈의 매듭 결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원래 편철 순서대로였다면 마모 방향과 매듭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다릅니다.”

정 내관의 입술이 떨렸다. 대꾸가 없었다.

서인녀가 사본을 이운에게 건넸다.

“원래 편철 순서에서 최소 세 장이 제거됐습니다. 제거된 뒤 남은 페이지들을 강제로 재편철한 흔적.”

서고 안이 조용해졌다.

이운이 사본을 받아 들었다.

“삼중 기록 체계에서 사본 훼손은 곧 원본과 상아패 밀봉본 사이의 불일치를 의미한다. 이는——”

이운이 정 내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록 위조의 결정적 증거.”

“증거라니요, 전하! 이것은 저희가 훼손한 것이——”

“그럼 누가 했지.”

정 내관의 말문이 막혔다.

무관 둘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서인녀가 일어서며 한 걸음 물러났다. 검시침을 쥐지도 않았다. 오직 눈만이 정 내관의 어깨 너머 벽감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운이 사본을 접어 품에 넣었다.

“이 사본은 내가 종친 권한으로 압수한다.”

“전하, 그건——”

“반출을 막고 싶다면 해라. 의금부와 삼사에 공식적으로 열람을 청구하면 된다. 지금 당장. 여기서. 네놈들의 명령 계통까지 함께 밝히면서 말이다.”

정 내관의 손이 떨렸다. 서책을 등 뒤에 감추고 있던 팔이 아래로 늘어졌다.

“……알겠습니다.”

“물러나거라.”

정 내관이 어깨를 웅크렸다. 무관 둘도 허리를 굽혔다. 등불 하나가 바닥에 구르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대비전에…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라.”

세 사람이 서고를 빠져나갔다. 통로가 닫히는 돌 소리가 났다.

서인녀는 그제야 숨을 들이쉬었다.

“기거주기 누락 쪽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쏟아놓은 기록들 사이에 있을 수도——”

“이미 보고 있다.”

이운은 벽감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혜명이 이르지 않았어도 손이 알아서 향하는 듯했다. 가장 깊숙한 곳, 남쪽 벽감.

이운의 손이 잠시 멈췄다.

“……있다.”

서인녀가 다가섰다.

낡은 상자. 뚜껑을 열자 쥐가 갉아먹은 흔적이 군데군데 있는 문서 묶음이 드러났다.

표지가 없었다. 제목도.

서인녀가 첫 장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기거주기…… 신유년 계동 11월 24일.”

이운의 손이 걸레를 쥐듯 굳어졌다.

서인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날입니다. 모후마마께서 마지막 탕약을 드신 날.”

검시침을 꺼내 촛불 가까이에서 기록을 살폈다. 끊어 읽기였다.

“당귀…… 천궁…… 숙지황…… 백출…… 인삼…… 황기…… 감초……”

서인녀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이 기본 처방에 추가된 약재가 네 가지입니다. 은엽초 3전. 백부자 1전 반. 마황 2전. 계지 1전.”

검시침을 흔들어 불빛에 비췄다. 검은 견본 천 위에 미량의 가루가 떨어졌다.

서인녀가 소매에서 깊숙이 유지 봉투를 꺼냈다. 주름이 잡힌 작은 종이 봉투.

“탕약 그릇의 잔여물입니다. 설 내관이 건넨 그릇. 오늘 아침 그릇 내벽에서 검시침으로 긁어 채취했습니다.”

봉투를 열고 극소량의 가루를 검은 천 위에 쏟았다. 촛불 가까이.

“회흑색 분말입니다. 수침 전 은엽초의 성상.”

침 끝으로 약간의 가루를 들어 물 한 방울에 떨어뜨렸다. 서서히 퍼지며 은빛으로 변하는 잎 조각들.

“은엽초, 확정입니다. 두 번째 성분.”

침을 다시 움직였다.

“이것은 백부자입니다. 뿌리줄기의 미세한 결정체. 촉감이 매끄럽고, 크기가 균일합니다. 마황 줄기 조각도 보입니다. 세 번째.”

이운이 말없이 기거주기 쪽을 건넸다. 서인녀가 손에 쥔 천과 나란히 놓고 대조했다.

촛불이 흔들렸다.

“잔여물에서 검출된 세 가지 약재……”

서인녀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은엽초, 백부자, 마황. 기거주기 누락 쪽에 기재된 마지막 탕약 처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천을 내려놓았다.

“이 탕약은 처음부터 독약으로 조제되었습니다. 결명자는 없었습니다. 완화재도 없었습니다. 순수한 독초 배합.”

이운이 침묵했다.

서인녀가 이운을 올려다보았다. 이운의 턱 근육이 실핏줄처럼 당겨져 있었다.

“……누락 자체가 증거다.”

이운이 사본을 집어 들었다.

“기록을 지운 자가 바로 범인이다. 물금초목부 재편철로 누가 독초를 뺐는지 숨기려 했고, 기거주기 누락으로 탕약 조제 기록을 지웠다.”

이운이 서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탕약 그릇을 내게 다오.”

서인녀가 품에서 싸맨 그릇을 꺼내 건넸다.

“이것까지 포함해 세 가지 물증이다. 물금초목부 재편철 사본, 기거주기 누락 쪽, 탕약 그릇. 한데 묶는다.”

서인녀가 끄덕였다. 손이 다시 소매 속 검시침으로 내려갔다가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위로 올라왔다.

“……가야 합니다. 그들이 대비전에 보고하기 전에.”

“서고를 나간다.”

이운이 물증 묶음을 품에 깊숙이 넣고 통로 쪽으로 향했다.

서인녀가 촛불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기록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가 모은 물증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랐다.

배합 지시서. 태비의 친필. 그게 가장 위험한 증거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없었다.

“……서 검률. 온다.”

이운의 목소리가 앞서 들렸다. 서인녀가 통로 쪽으로 돌아섰다.

기다랗게 숨을 들이쉬고, 기어 올라갔다.

석탑 아래 밖으로 나왔을 때, 목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달빛은 여전했지만 혜명 노승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등불이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석탑을 반쯤 에워싼 등불.

선두에 선 것은 장상궁이었다. 그 뒤로 의금부 관복을 입은 검률 둘.

“서 검률.”

장상궁의 목소리는 밤하늘 아래서도 무채색을 잃지 않았다.

“의금부 검률청의 감정관이 도착했사옵니다.”

검률 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대가 지금까지 작성한 검시록의 필체가 이전 기록과 다르다는 제보가——”

장상궁의 시선이 서인녀의 손으로 옮겨갔다. 소매 사이로 검시침 자루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의금부에 접수되었사옵니다. 본래 그대가 직접 작성한 것이 맞사옵니까.”

은비녀 독초록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