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독초록
8화
서인녀가 숨을 들이켰다. 장상궁의 물음이 허공에 맺혀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이운이 반 걸음 앞으로 나섰다. 왼쪽 손날 흉터가 등불에 드러났다가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감정관을 불렀다. 절차는 지켰군.”
이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시효를 확인해라. 검시록 감정은 공식 수사 개시 이후에나 요청할 수 있다. 지금 이 자리는 공식 수사 현장이 아니다.”
장상궁의 오른쪽 눈꺼풀이 움찔했다. 쥐젖이 위로 당겨졌다.
“하문 받들어, 전하.”
장상궁이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러하오나 검시록의 진위는——”
“내일 의금부 정식 절차로 접수해라.”
이운이 허리춤 은고리 칼집을 한 번 쓸었다.
“거절한다. 야간에 증인도 없이 감정 절차를 강행할 권한은 없다.”
장상궁의 입술이 바싹 마른 채 오므라들었다. 등불을 든 두 검률이 서로 눈을 맞추고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철야로 수사 중인 검률을 상대로 절차를 어기면, 그 책임은 대비전이 지는 것이다.”
이운이 돌아서며 서인녀를 향해 턱짓했다.
“들어간다. 감정은 내일.”
장상궁이 침묵했다. 등불빛에 조화 참빗만 깜박였다.
서인녀가 석탑 입구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손끝이 소매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검시침 자루가 천에 덮였다.
먼저 통로로 내려간 이운의 뒤를 따랐다. 발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장상궁은 한 마디도 더하지 않았다. 외부의 등불이 점점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비밀 서고 바닥. 정 내관이 쏟아낸 문서 더미가 여전히 흩어져 있었다. 서인녀가 무릎을 꿇고 촛불에 비친 종이들 사이로 손을 뻗었다.
“감정을 요구한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함입니다.”
이운이 통로 입구를 등지고 섰다. 품에서 꺼낸 물증 꾸러미를 내려놓지도 않고 그대로 움켜쥐었다.
“안다. 의금부까지 대비전 손길이 닿았단 뜻이다.”
“내일까지 시간이 있을지……”
서인녀의 손가락이 낡은 종이 다발을 한 장씩 넘겼다. 대부분 물금초목부 관련 서류와 기거주기 초본 조각이었다.
그때 손끝이 걸렸다. 다른 종이들보다 두껍고, 가장자리가 누렇게 썩어 들어간 접지.
서인녀가 펼쳤다. 세로로 접힌 종이 안쪽, 상단에 익숙한 필체가 자리했다. 괴석 문양 자수와 같은 획의 흐름. 그리고 오른쪽 아래——왕태비 민씨의 친필 화압. 관인 대신 엄지로 찍은 인영이 붉게 번져 있었다.
서인녀의 호흡이 느려졌다. 검시할 때도 이렇게 천천히 숨을 쉰 적이 없었다.
“……은엽초 배합 비망록.”
그녀가 종이를 들어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왼편에 약재명과 분량이 빼곡했다. 은엽초 석 전. 백부자 이 전 반. 마황 삼 전. 계지 이 전.
서인녀가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마지막 줄.
‘은엽초와 백부자의 비율을 높이고 작약을 생략할 것. 작약이 은엽초의 독성을 감쇄시킴을 확인하였음.’
썩은 종이 모서리가 만지자마자 부스러졌다. 서인녀가 손을 멈췄다.
“태비 마마의 화압입니다.”
이운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서인녀가 비망록을 건네자, 이운의 손가락 끝이 닿은 귀퉁이가 조금 더 떨어져 나갔다.
“15년 동안 이 서고에 있었군.”
이운이 비망록을 살폈다. 촛불이 붉은 인영을 관통했다.
“……작약을 생략한 까닭을 여기 적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턱 근육이 철사처럼 당겨졌다.
서인녀가 소매에서 물금초목부 재편철 사본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대조하겠습니다.”
두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왼쪽은 비망록, 오른쪽은 물금초목부 사본.
서인녀의 검지가 비망록의 첫 줄을 짚었다.
“은엽초. 비망록에는 석 전. 물금초목부에는——”
사본의 해당 줄을 찾아 손가락을 멈췄다.
“……기록이 없습니다. 독초 도감 출납 목록에서 이 날짜의 은엽초는 삭제되어 있습니다.”
“재편철 지점과 일치하느냐.”
“예. 앞서 확인한 편철 구멍 마모 방향과 매듭 결 방향이 반대였던 지점. 바로 그 위치입니다.”
서인녀가 두 번째 줄을 짚었다.
“백부자. 비망록에는 이 전 반. 물금초목부에도 같은 분량이……”
손가락이 멎었다.
“아닙니다. 이건 백부자가 아니라 백부자로 위장한 별도 기록입니다. 필체 기울기가 다르고 먹 색깔도 미세하게——”
“조작이다.”
이운이 비망록을 서인녀 쪽으로 기울였다. 배합 지시서의 글자들이 촛불에 살아 있는 것처럼 일렁였다.
“비망록의 배합 지시와 정확히 일치하는 날짜의 물금초목부 기록은 사라졌다. 그리고 빈자리를 일반 약재로 메웠다.”
서인녀가 검시침을 꺼냈다. 품에서 다른 봉투, 잔여물 유지 봉투를 열었다. 검은색 견본 천 위에 탕약 그릇에서 채취한 잔여물을 조금 털어냈다. 회흑색 분말. 촉감이 매끄러웠다.
“은엽초 분말입니다. 수침 시——”
촛농 그릇에 물을 조금 떨어뜨리고 분말을 희석했다. 잔여물이 은빛으로 변했다.
“은빛으로 변합니다. 이전 검시에서 확인한 두 번째 변사체의 위 내용물과 동일한 반응입니다.”
비망록의 마지막 줄을 다시 짚었다.
“‘은엽초와 백부자의 비율을 높이고 작약을 생략할 것.’”
서인녀가 숨을 들이쉬었다.
“작약을 제거한 은엽초 배합. 독성이 배가됩니다. 이것이 사인입니다.”
이운이 천천히 비망록을 말았다. 부패한 종이가 부스러졌지만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물금초목부 재편철 사본. 기거주기 누락 쪽. 탕약 그릇. 그리고 지금 이 배합 비망록.”
한 장씩 세듯이 읊조렸다.
“네 가지 물증이다.”
“모두 삼중 기록의 원칙을 어겼습니다.”
서인녀가 검시침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사본이 있는데 원본이 없는 물금초목부. 날짜가 통째로 누락된 기거주기. 그리고 삼중 보관 체계 자체에서 존재가 숨겨진 이 비망록.”
“사본은 원본과 일치해야 한다.”
이운이 증거 꾸러미를 정리하며 포장 천을 단단히 묶었다.
“일치하지 않는 사본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다. 기록을 지운 자가 따로 있다.”
“왕태비 전하께서 직접 지시한 배합입니다.”
서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공식 처방 어디에도 은엽초와 백부자 동시 배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치료가 아니라 독살이다.”
이운이 물증 꾸러미를 품에 깊숙이 넣었다.
“15년 전, 모후께서 마지막으로 드신 탕약. 이 지시대로 조제되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서인녀가 물금초목부 사본을 접었다.
“보존 방안을 정해야 합니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장상궁이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운이 허리춤 칼집을 만지작거렸다.
“혜명 노승이 아직 입구에 있다면——”
서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위쪽 통로에서 목탁 소리가 울렸다. 짧게 한 번. 그리고 멈췄다.
서인녀와 이운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저건——”
“신호다.”
이운이 가슴께에 보관한 꾸러미 위로 손바닥을 단단히 포갰다.
“누군가 온다.”
장상궁의 시선이 서인녀의 소매에 닿았다. 달빛에 검시침 자루가 반짝였다.
“의금부 검률청 감정관이 대령했사옵니다.”
장상궁 뒤로 두 검률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서 검률. 의금부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그대가 지금까지 작성한 검시록 열일곱 건의 필체가——”
이운이 반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물러나라.”
장상궁이 고개를 숙였다. 등불 아래 조화 참빗이 흔들렸다.
“전하. 왕태비 전교가——”
“듣지 않는다.”
이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가슴 위로 포개진 손이 꾸러미를 눌렀다.
“지금 이 자리에 의금부를 부른 근거가 뭐냐.”
“하문 받들어, 검시록 필체 위조 혐의이옵니다. 동일인의 필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감정관의 예비 소견이——”
“감정관.”
이운이 검률들을 차례로 마주했다.
“그대들은 언제부터 검시록을 보나.”
왼쪽 검률이 허리를 굽혔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 축시 초, 장상궁의 소환으로——”
“축시 초.”
이운이 말을 끊었다.
“그 시간이면 이쪽은 아직 검시록을 제출하기도 전이다. 미제출 검시록의 필체를 누가 감정했나.”
침묵. 장상궁의 눈꺼풀이 가늘어졌다.
서인녀가 숨을 들이쉬었다. 손이 제 무릎께로 내려가며 소매 속을 스쳤다.
“전하. 한 말씀——”
그때 석탑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검은색 도포 자락이 바람에 휩쓸리며 달려왔다.
“전하!”
이운의 심복이었다. 숨이 거칠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의금부 체포대가 출동했습니다. 대비전에서 직접——”
“누구를 체포하라는 거냐.”
“서 검률입니다. 여성 대필 사위 혐의로——”
이운의 턱 근육이 다시 당겨졌다.
심복이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태비전에서 장상궁의 전갈을 받고 즉시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도서관 정문은 이미 봉쇄됐고, 후원 쪽문으로 한 시진 안에——”
“됐다.”
이운이 손을 들었다.
장상궁이 무채색 목소리로 받았다.
“서 검률. 의금부에 순순히 응하신다면, 체포 절차는——”
“장상궁.”
서인녀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고요했다.
“의금부 감정관이 검시록 열일곱 건을 감정했다고 하셨사옵니다. 그 가운데 몇 건이 필체 불일치로 판정되었사옵니까.”
잠시 멈칫.
“……예비 소견으로는 세 건이옵니다.”
“세 건.”
서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채아 검시록, 약재원 변사체 검시록, 그리고 모후 탕약 그릇 검증록이겠군요.”
“하문 받들어——”
“그렇다면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서인녀가 소매를 들어 올렸다. 검시침 자루가 완전히 드러났다.
“저 세 건을 제외한 나머지 열네 건은 오라비 서단운의 필체와 일치합니까.”
장상궁이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쪽 검률이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일치합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서인녀가 검시침을 다시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라비는 병이 깊어 집필조차 어려운 날이 많사옵니다. 그때마다 제가 기록을 대신했소. 그것이 열네 건과 세 건의 차이입니다. 대필은 맞되, 검시 내용을 위조한 적은——”
“서 검률.”
이운이 서인녀의 말을 잘랐다. 눈빛이 차가웠다.
“더 말하지 마라.”
서인녀가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증명할 수 있사옵니다. 대필이 위조를 의미하지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이운이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들은 이미 결론을 정해 놓았다. 대비전에서 체포대를 출동시킨 시점이 증명한다.”
이운이 심복을 향해 돌아섰다.
“도서관 지하 환기구는.”
심복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봉쇄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각 안에——”
“서 검률.”
이운이 품에서 물증 꾸러미를 꺼내 그중 배합 비망록 한 권을 서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네가 기록한 게 아니다. 네 손으로 직접 건네라.”
서인녀가 비망록을 받아들었다. 손가락 끝이 종이에 닿자 떨림이 멎었다.
“탕약 그릇도.”
이운이 싸맨 그릇을 집어 올렸다.
서인녀가 비망록을 그 위에 포갰다. 두 손으로 들어 이운에게 내밀었다.
“물금초목부 사본, 기거주기 누락 쪽은 전하께서 이미 소지하고 계시오. 이 두 건을 더해——”
잠시 숨을 멈췄다.
“총 네 건의 물증입니다. 공식 보존을——”
“안다.”
이운이 증거품 묶음을 받아 품에 넣었다. 검은 눈동자가 서인녀를 향해 빛났다.
“환기구로 가라. 지금 즉시.”
“전하.”
“일각이 지나면 의금부가 후원을 포위한다. 그 전에——”
장상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태상군 전하. 체포 대상자의 도주를 방조하시는 것은——”
“도주가 아니다.”
이운이 장상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손이 허리춤 은고리 칼집 위로 내려갔다.
“증인 보호다. 삼중 기록 체계에 근거한 검시 절차 보전을 이유로, 서 검률을 공식 증인으로 지정한다. 의금부 체포 절차는——”
이운이 천천히 검률 둘을 쳐다보았다.
“내가 직접 입회해 공식 조사로 전환한다. 대비전 전교로 영장도 없이 검률을 체포하는 게 합법이냐.”
두 검률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하, 저희는 감정——”
“묻는 말에 답이나 해라.”
말랐던 검률이 고개를 숙였다.
“……영장 없이 검률을 체포하는 것은 의금부 규정에 위배됩니다. 다만 대비전 전교는——”
“됐다.”
이운이 서인녀를 향해 짧게 손짓했다.
“환기구 위치 안다. 내려가서 왼쪽 복도 끝. 쪽문으로 이어지는 샛길이다.”
서인녀가 이운을 올려다보았다.
한 박자. 두 박자.
말 대신 고개를 한 번 깊이 숙이고 돌아섰다. 서고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서도 손은 소매 속에서 검시침의 자루를 감싸고 있었다.
환기구는 좁았다. 어깨를 비틀어 겨우 빠져나왔다.
도서관 외곽 담장 아래, 달빛도 닿지 않는 벽면 그늘에 멈춰 섰다. 무릎을 짚고 숨을 골랐다. 흙냄새와 돌가루가 손바닥에 묻었다.
숨이 가라앉자 소리가 들려왔다. 정문 쪽에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 군화 소리. 의금부 체포대가 도서관 안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벽에 등을 기댔다. 서늘한 돌기둥이 척추에 닿았다.
방금 전까지도 서고 안에서 물증을 분류하고 있었다. 삼중 기록의 균열을 입증하고, 모후 독살의 배합 주체를 지목하는 논리를 세웠다. 이운에게 탕약 그릇을 건네고, 네 건의 물증을 공식 보존하라고 말한 게 바로——
손끝이 아직 종이 감촉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 검률은 이제 없다.
눈을 감았다.
오라비 이름을 빌려 검시록을 쓴 지 사 년. 처음엔 한 건이었다. 오라비가 손목을 다쳐 붓을 쥘 수 없었을 때 대신 기록한 검시록 한 건. 아버지의 검안 방식을 완벽하게 모방해 썼다. 아무도 몰랐다. 두 번째는 오라비가 열이 나서 의식을 잃었을 때, 세 번째는 관절 통증으로 붓을 놓쳤을 때. 열네 건. 오라비 대신 쓴 기록이 그렇게 쌓였다.
눈을 떴다. 손바닥을 펴고 검시침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천 자루. 은비녀보다 길고 굵었다. 아버지의 유품. 오라비가 검률 면허를 받던 날, 그의 손에 쥐여준 것. 오라비는 손목이 꺾이는 날에도 이 검시침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사 년 전, 손을 떨며 서인녀에게 내밀었다.
“네가 써라. 네 눈이 아버지와 가장 닮았다.”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달빛이 자루를 스쳤다.
서 검률은 사라졌다. 신분은 무너졌다. 그 대가로——
물금초목부 재편철 증거. 기거주기 누락 쪽. 배합 비망록. 탕약 그릇. 네 건이 남았다.
15년 전 모후께서 드셨다던 마지막 탕약. 결명자는 없었고 백부자가 들어 있었다. 은엽초 삼 전, 백부자 일 전 반. 왕태비의 친필 배합 지시대로. 그걸 입증할 물증이 지금 이운의 품에 있다.
서인녀가 검시침을 다시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등 뒤에서 횃불 소리. 외곽 담장 바깥쪽으로 말발굽 소리도 섞여 들렸다. 의금부 병사들의 횃불이 담장을 따라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수색 고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돌아서서 담장을 등지고 섰다. 한 걸음, 어둠 속으로.
검시관 신분은 잃었다. 오라비의 이름도 더 쓸 수 없다. 그러나 손에 쥔 검시침은 놓지 않았다. 물증을 입증할 논리는 머릿속에 완성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횃불 하나가 담장 모퉁이를 돌아 이쪽으로 다가왔다.
다른 한편. 도서관 정문 앞.
이운이 계단을 내려와 멈춰 섰다. 의금부 대기 병력이 정문을 에워싸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이운을 보자 움찔했다.
선두에 선 의금부 도사가 허리를 굽혔다.
“전하. 체포 대상자는——”
“없다.”
이운이 증거물 꾸러미를 높이 들어 올렸다. 포장된 탕약 그릇과 비망록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이 물건의 열람 권한은 왕실 종친에게 있다.”
병사들 사이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좌우로 병사들이 갈라졌다.
“의금부가 이 물증을 압수하려면——”
도사 앞에서 발을 멈췄다. 숨은 고르지 않았으나 목소리는 평온했다.
“국왕 전하의 재가를 받아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