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진동의 지배자

1화

공기는 무겁고 조용했다.

윤재하는 던전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손바닥을 돌바닥에 붙였다. 검은 전술 재킷의 칼라가 목 왼쪽의 폭발 흉터를 반쯤 가렸다. 귀에는 무음 이어플러그가 꽂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손바닥 아래서 진동이 밀려왔다. 리듬이 있었다. 셋, 둘, 하나.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솟아올랐다. 석회암이 뒤틀린 듯한 몸체에 네 개의 관절이 어긋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사일런트 게이트 저등급 필드에서 흔한 실리케이트 크롤러였다. 보통은 발소리나 돌이 갈리는 소리로 접근을 감지하지만, 이곳은 소리 없는 던전이었다. 어떤 음파도 살아남지 못하는 공간.

윤재하는 크롤러가 땅을 박차는 순간 진동 패턴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왼쪽 앞발이 먼저 땅을 내리찍었다. 그 진동은 오른쪽보다 0.3초 빨랐다.

몸을 오른쪽으로 굴렸다.

크롤러의 앞발이 방금까지 윤재하가 있던 자리를 내리꽂았다. 파편이 조용히 튀어 올랐다. 바닥에 금이 갔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윤재하는 굴러 일어나며 왼손을 목의 흉터에 갖다 댔다. 거친 피부 감촉이 엄지에 닿았다. 심장 박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진동은 여기서 온다. 심장에서 손끝으로, 손끝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적에게서 다시 손끝으로.

크롤러가 방향을 틀었다. 뒷발이 바닥을 긁는 미세한 떨림이 윤재하의 전술 부츠 밑창을 통해 올라왔다. 특수 장갑을 낀 손가락이 허벅지의 칼집으로 내려갔다.

두 번째 돌진. 이번엔 오른쪽 앞발이 주 공격이 아니었다. 몸통이 회전하며 꼬리 부분이 후속 타격으로 따라붙는 패턴이었다. 윤재하는 발바닥으로 진동의 무게 중심이 뒤쪽으로 쏠리는 것을 읽었다.

위험한 방향이 아니었다.

옆으로 한 발짝. 팔을 편 자세 그대로 칼날을 크롤러의 앞다리 관절 사이로 밀어 넣었다. 진동이 칼자루를 타고 손바닥에 전해졌다. 뼈가 갈라지는 떨림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크롤러가 몸부림쳤다. 진동이 불규칙해졌다. 윤재하는 칼을 뽑지 않고 그대로 몸을 붙였다. 왼손으로 크롤러의 등껍질을 더듬어 핵을 찾았다.

거기.

진동의 근원이 손끝에 닿았다. 일정한 주파수로 울리는 작은 결정체. 던전 몬스터의 핵은 살아있는 한 계속 공명한다.

칼을 비틀어 핵을 찔렀다.

진동이 멈췄다.

크롤러의 몸체가 무너지며 바닥에 흩어졌다. 조용했다. 완전한 정적.

윤재하는 칼을 뽑아 옆에 내려놓고 다시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을 바닥에 붙였다. 피해 확인.

없다.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그때 느꼈다.

던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진동. 크롤러의 핵이 깨지는 순간부터 시작된 미세한 파동이었다. 리듬도 없었다. 근원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냥 던전 자체가 숨을 쉬는 듯한, 규칙적인 떨림이 바닥을 타고 밀려왔다.

윤재하는 손가락을 흉터에서 떼고 그 진동을 더듬었다. 주파수가 불규칙하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신호처럼 읽힐 듯 말 듯했다.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배터리도 떨어져 가고 있었다. 장갑에 내장된 진동 증폭 센서의 잔량 표시등이 노란색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윤재하는 일어서서 칼을 닦아 집어넣었다. 핵 파편은 줍지 않았다. 저등급 필드의 실리케이트 핵은 가치가 없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의 진동이 변했다. 출구 쪽에서 사람의 발걸음은 아니지만 규칙적인 맥동이 느껴졌다. 게이트 개방 신호였다. 헌터 협회 측에서 게이트를 열어둔 상태라는 의미였다.

윤재하는 진동을 따라 걸었다.

목의 흉터가 따끔거렸다. 습관처럼 왼손을 올려 칼라로 가렸다. 진동은 여전했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던전의 맥박과, 손끝에 남은 핵의 공명 잔향이 겹쳐졌다.

아직 알 수 없는 신호였다. 그러나 해석할 수 없는 진동은 없었다.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게이트 출구의 잔여 진동이 부츠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윤재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며 구역 경계의 미세한 울림을 놓치지 않았다. 던전 안이었다면 수십 미터 앞의 형상까지 읽어냈을 감각이, 바깥 공기 속에서는 뭉툭하게 뭉개졌다.

게이트 밖은 헌터 협회 저층 로비였다.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윤재하는 칼라를 여미며 로비 중앙으로 걸어갔다. 접수대 뒤편으로 게이트 모니터 세 대가 켜져 있었고, 화면에는 방금 그가 빠져나온 던전의 외벽 진동 그래프가 느리게 파형을 그렸다.

접수대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가슴팍 명찰에는 '입회 진행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행관은 윤재하의 얼굴을 훑고, 전술 재킷에 묻은 먼지를 훑고는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윤재하가 접수대 앞에 섰다.

“보고한다.”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진행관의 눈동자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윤재하의 목 왼쪽, 폭발 흉터에 멈췄다가 재빨리 화면으로 도망쳤다.

“사일런트 게이트 저등급 구역. 단독 공략. 코어 안정 확인.”

진행관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모니터 구석에서 작은 팝업이 떠올랐다. 윤재하가 읽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진행관의 검지가 머뭇거리는 각도로 봐서 F등급 분류 화면일 터였다.

“기록은 남겼습니다.”

진행관의 손가락이 엔터 키를 눌렀다. 그것이 전부였다. 윤재하의 전술 재킷, 장갑, 이어플러그 어느 것에도 추가 질문은 없었다. 던전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고, 생존 확인조차 구두로 하지 않았다.

윤재하는 접수대를 떠났다.

로비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장갑을 벗었다. 가죽 안쪽은 식은 땀으로 눅눅했다. 손가락이 노출되자 공기가 차갑게 달라붙었다. 벽 쪽 긴 의자에 걸터앉아 태블릿을 켰다. 수화 번역 앱이 대기 화면으로 깜빡였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로비 저편에서 다른 헌터 셋이 걸어가며 윤재하를 쳐다봤다. 그중 하나가 동료의 팔꿈치를 찔렀다. 저 F등급이 살아나왔다고, 입 모양이 그렇게 읽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들을 귀도 없었지만, 입술의 떨림과 목 근육의 긴장은 진동보다 더 선명한 정보였다.

윤재하는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수화를 시작했다.

오른손이 가슴 높이에서 움직였다. 검지와 중지를 펴서 앞으로 내밀고, 엄지를 접었다. '다시'.

왼손이 허리께에서 손바닥을 편 채로 위로 향했다. '도전'. 손가락 끝이 정확하게 꺾이고 펴지며 공기를 갈랐다.

다시 한다.

진행관의 무관심은 예측 범위 안이었다. F등급의 솔로 플레이 생존 보고는 통계적으로 노이즈에 가깝다. 그들은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누군가 걸어 나온 사실만 확인하면 됐다. 던전 안의 침묵, 진동의 지형, 발바닥으로 읽은 몬스터의 의도 같은 것은 기록 항목에 없었다.

윤재하의 손이 이어서 움직였다. 왼손 주먹을 쥐고 오른손 검지로 손등을 두드렸다. '증명'. 이어 양손을 펼쳐 가슴 앞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할 것이다'.

증명할 것이다.

손동작이 멈췄다. 윤재하는 장갑을 다시 꼈다. 가죽이 손가락 마디에 밀착되며 익숙한 압력을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태블릿을 집어넣었다.

로비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로비 저편, 고층부로 이어지는 통로 입구에 강서윤이 서 있었다. 포니테일로 묶은 밝은 갈색 머리, 벨트에 고정된 소형 태블릿. 그녀의 왼손이 허리께에서 반쯤 올라오다가 허공에서 멎었다.

강서윤의 시선은 윤재하의 목 왼쪽에 박혔다. 폭발 흉터의 경계를 따라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입술이 열리고 닫혔다.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윤재하'라고 불렀다.

강서윤의 손이 수화를 시작하려다 중단됐다. 오른손 검지에 낀 진동 신호 반지가 형광등 아래서 한 번 깜빡였다. 그녀는 반 걸음 앞으로 나갔다가, 윤재하가 출구 쪽으로 걷는 동안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두 뺨의 혈색이 옅어졌다. 충격과 죄책감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윤재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진동 감각은 던전 바깥에서 기준치 이하였다. 로비 너머 누군가의 시선이 얹힌 무게는 읽지 못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저녁 무렵의 공기가 밀려들었다. 윤재하는 그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솟아올랐다. 석회암이 뒤틀린 듯한 몸체에 네 개의 관절이 어긋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사일런트 게이트 저등급 필드에서 흔한 실리케이트 크롤러
진동의 지배자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