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진동의 지배자

10화

의무실 형광등 불빛이 희끄무레했다. 창밖은 밝아지고 있었다. 천장을 보던 윤재하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 끝이 떨리지 않았다. 손등에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손가락 사이로 빛이 새어들었다.

의자에 앉은 강서윤의 호흡이 규칙적이었다. 얕은 잠이었다. 머리카락이 볼 옆으로 흘러내려 있었다.

어젯밤 내내 손을 놓지 않았다. 윤재하는 기억했다. 손바닥에 남은 체온 진동을.

의료 구역은 조용했다. 심박 측정기의 비프음만 규칙적이었다. 윤재하는 손을 가슴께에 얹었다.

공명의 방이 떠올랐다. 균열이 확장되던 순간, 자신의 진동이 핵에 닿자 차원 왜곡이 멈췄다. 찢어지던 공간이 정지하고 뒤틀리던 빛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3.4헤르츠. 그 주파수에 역위상을 겹쳐 보내자 균열이 흡수되듯 닫혔다.

감지가 아니었다. 거울 앞에서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던전의 심장이 그의 진동과 공명하며 스스로 균열을 봉합하려 했다. 윤재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강서윤의 눈이 떠졌다. “누워 있어야….”

“알겠어.” 윤재하가 손을 들어 멈췄다. 링거 줄이 팔을 따라 움직였다. 그의 눈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조립하는 눈이었다.

“균열에 진동을 보냈을 때, 핵이 나를 거울처럼 썼어.” 윤재하가 말했다. “내 진동을 반사한 게 아니야. 받아서 반대 파형으로 바꾼 뒤 균열에 겹쳐 보냈어.”

강서윤이 의자에서 몸을 곧추세웠다.

“역위상이야. 진동을 거꾸로 뒤집어 균열에 포개면 두 파형이 서로를 지워. 균열이 안정화된 건 그 때문이었어.”

강서윤의 시선이 윤재하의 손으로 내려갔다. 떨리지 않는 손가락.

“네가 폭주한 게 아니라, 던전 핵을 제어한 거였어?”

“제어라기보다… 공명이야. 핵이 나한테 맞춰오고 있었어.” 윤재하가 말했다. “핵이 나를 부르고 있었어. 네가 반지 눌렀을 때보다 훨씬 강하게.”

강서윤은 반지를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손이 허벅지 위에 멈춰 있었다.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보는 얼굴이었다. 다만 긴장은 남아 있었다.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강서윤이 일어났다. 최영우가 서 있었다. 손목의 측정기가 반짝였고, 눈 밑이 어두웠다. 잠을 자지 않은 얼굴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강서윤이 옆으로 물러났다. 최영우는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앉으며 태블릿을 켰다. “어젯밤 던전 붕괴 데이터를 전부 확인했습니다. 공명의 방에서 기록된 파형 중에….”

그래프 두 줄이 겹쳐 있었다. 하나는 날카롭게 솟은 균열 파형. 다른 하나는 그것을 정확히 뒤집은 역위상 곡선.

“윤재하 님이 만들어낸 진동이 3.4헤르츠 기반 역위상이었습니다. 던전 핵이 이것을 받아 증폭한 뒤 균열에 되쏘았고, 두 파형이 겹쳐지며 균열이 일시적으로 봉합됐습니다.”

“일시적이었지만.” 윤재하가 그래프를 들여다봤다.

“네. 곧바로 폭주가 왔습니다. 공명 과부하 상태에서는 역위상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최영우가 태블릿을 내렸다. “하지만 원리는 분명합니다. 던전 핵의 진동수에 맞춰 역위상 파형을 일정하게 보내면, 이론적으로 균열을 지속적으로 중화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강서윤이 허벅지 위에 손을 포갰다. “문제는 현실이죠. 그걸 던전 안에서, 더 높은 등급 게이트에서 어떻게 유지하느냐.”

“거기에 대해….” 최영우가 안경을 고쳐 썼다. “윤재하 님은 이미 방법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윤재하는 태블릿을 내려다봤다. 그래프가 겹쳐진 지점에서 두 파형은 서로를 지우고 있었다.

“역위상 펄스.”

“네. 던전 핵에 진입해 핵 자체의 주파수에 동기화한 뒤, 균열의 반대 위상을 계속해서 생성하는 겁니다. 감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진동을 만들어내야 해요.”

“내 진동이 공명핵 조각을 통해 증폭되고, 핵을 통해 다시 균열로.”

“정확합니다. 일종의 공진 회로입니다. 윤재하 님은 이미 그 회로의 일부를 경험했어요.”

윤재하는 손을 들어 가슴께를 짚었다. 어젯밤 느꼈던 핵의 떨림이 근육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과부하는.”

“그게 관건입니다.” 최영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역위상을 유지하는 동안 공명이 계속 증폭되면 신경계가 견디지 못합니다. 방지할 방법은 아직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강서윤이 일어서 창가로 걸어갔다. “원리는 알겠는데, 안전장치가 없어요.”

“맞습니다. 다만 S급 게이트 개방 예보를 고려하면 검증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검증은 실제 던전에서 하게 될 거야.” 윤재하가 말했다.

강서윤이 뒤돌았다. “윤재하.”

“이론은 이미 확인했어. 던전 밖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강서윤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말 대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윤재하는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그 시선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회로를 통제할 거야. 균열이 아니라, 나 자신을.”

최영우가 태블릿을 접었다. “데이터를 정리해서 협회에 공유하겠습니다. 공식 보고가 아닌 참고 자료로. 그리고….”

말을 멈췄다. 안경 너머의 시선이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이 데이터의 출처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옥상 정원의 바람은 서늘했다. 오전 햇살이 콘크리트 화분의 회양목 잎사귀 사이로 쪼개져 떨어졌다. 강서윤이 먼저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렸다.

윤재하는 그녀의 등 뒤에서 세 걸음 떨어져 멈췄다. 왼손이 난간의 금속 바에 닿았다. 차가운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건물 아래 환풍구의 낮은 울림, 엘리베이터의 마찰 진동, 지하 주차장의 차량 엔진 떨림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강서윤이 돌아섰다. 입술을 한 번 말아 물었다. 오른손 검지의 진동 신호 반지가 햇빛에 반짝였다. 그녀는 천천히 수화를 시작했다.

어제, 던전 안에서 한 말…… 다시 하고 싶어.

손가락이 떨렸다. 열두 살 때 배운 수화 동작이 버벅거렸다. 숨을 들이쉬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날 폭발물 앞에서 난 5초를 망설였어. 5초만 일찍 움직였어도 네 귀는…….

윤재하가 손을 올려 그녀의 수화를 멈추게 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가볍게 닿았다. 강서윤의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달됐다.

빠른 맥박. 불규칙한 호흡에서 오는 진동의 난조. 죄책감이 근육을 경직시키며 만들어낸 파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미 다 읽었어.” 윤재하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던전 안에서 네 심장 진동을 손바닥으로 느꼈을 때.”

강서윤의 어깨가 움찔 올라갔다. 윤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진동은 그때도 나를 향해 있었고 지금도 나를 찾아오고 있어. 방향이 한 번도 안 바뀌었어.”

그녀의 눈이 붉어졌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윤재하는 손을 내려 난간을 다시 가볍게 짚었다. 금속을 타고 올라오는 그녀의 체중 이동 진동이 규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경직됐던 근육이 풀리며 떨림의 진폭이 줄어들고, 호흡 주기가 서서히 길어졌다.

강서윤이 난간을 함께 잡았다. 새끼손가락이 윤재하의 손등 옆에 닿을 듯 말 듯 놓였다.

할 말이 또 있어. 수화가 느려졌다. 헌터 생활 십 년 동안…… 너만큼 신뢰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사람은 없었어.

윤재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등에 닿는 그녀의 체온 진동이 안정된 파형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불규칙 파형은 사라졌다.

발소리가 철제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 무거운 구두 바닥. 한 번에 두 계단씩 오르는 박자.

박태진이 옥상 문을 열고 나왔다. 왼손에는 진동 감지 기초 훈련 계획서가 적힌 태블릿을 쥐고 있었다. 오른손 손목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윤재하가 붙잡았던 자리다.

강서윤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박태진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윤재하에게로 걸어왔다. 평소보다 보폭이 좁았다. 오른쪽 어깨가 약간 처져 있었다.

박태진이 윤재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태블릿을 들어올렸다가 내렸다. 시선이 난간 너머 도시 풍경을 한 번 훑고, 윤재하의 왼쪽 어깨께에 머물렀다.

“……던전 안에서 내가 청각만 믿고 진입했을 때.”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네가 열어준 진동 경로가 있었는데 무시했다. 그 결과가 손목이야.”

그가 붕대 감긴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소리 유도 장치도 박살 났고.”

주머니 속 깨진 장치를 만지작거렸다. 플라스틱 파편이 주머니 천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더라. 무음 던전에서 청각 의존은 죽음이라는 걸…… 이틀 밤 동안 생각했다.”

강서윤이 조용히 난간에서 손을 떼고 반 걸음 물러섰다. 박태진이 잠시 그녀 쪽을 흘깃 보았다. 다시 윤재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진동 감지를 배워야 한다.”

박태진이 태블릿을 윤재하에게 내밀었다. 화면에는 진동 감지 훈련 계획서가 열려 있었다. 주 3회, 오전 6시. 실내 무음 훈련장에서 기본 진동 구별부터 시작하는 일정표였다.

“네가 해준 것처럼…… 발바닥으로 진동 읽고, 그걸로 상대 위치를 파악하는 거.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다.”

윤재하는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 화면을 스크롤하지 않고 훈련 계획서 첫 줄을 2초쯤 보았다.

“오전 6시면 빠르다. 몸이 깨기 전에 훈련하는 건 진동 감각에는 별로야. 오전 7시 반으로 늦추고, 준비 운동 여기 중간에 넣어.”

박태진의 눈이 살짝 좁아졌다. 예상과 다른 반응이었다.

“……가르쳐준다는 거야?”

“가르친다.”

윤재하는 태블릿을 돌려주었다.

“한 가지 조건. 훈련 중에는 말 하지 마. 진동에 집중하려면 목소리 내지 않는 게 낫다.”

박태진이 태블릿을 받아 쥐었다. 순간 그의 손목에서 미세한 떨림이 윤재하의 손끝에 닿았다. 수치심과 안도가 뒤섞인 불규칙 파형이었다. 윤재하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알았다.” 박태진의 목소리가 짧아졌다. “7시 반. 무음 훈련장.”

그가 돌아섰다. 계단 문을 향해 두 걸음 걸었다. 멈춰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다.

“고맙다는 말은…… 아직 안 할 거다. 훈련 끝나고 네 실력이 진짜인지 확인한 다음에.”

그리고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구두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강서윤이 난간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입가에 묘한 실루엣이 스쳤다.

박태진이 저렇게 말하는 건 처음 봐. 수화가 담담했다. 거의 사과에 가까운 거였어. 저 남자 기준으로.

윤재하는 난간에서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제 최영우 박사님한테 갈 시간이다.”

오후 2시. 최영우의 연구실은 조명을 절반만 켜둔 상태였다. 주 모니터에는 역위상 공명 모델의 시뮬레이션 그래프가 띄워져 있었고, 보조 모니터 오른쪽에는 차원 균열 임계 수치 로그가 정렬돼 있었다.

최영우는 윤재하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에는 레이저 포인터를 쥐고 있었다. 왼손 약지의 측정용 반지가 손목을 타고 올라간 케이블에 걸쳐져 있었다.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모니터 왼쪽 절반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파란색 주파수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 옆에 같은 파형을 위아래로 뒤집은 붉은색 곡선이 겹쳐졌다.

“역위상 펄스를 던전 핵 진동 주파수에 정확히 겹치면, 진폭이 상쇄됩니다. 이론상 차원 균열 전체의 불안정 진동을 0에 수렴시킬 수 있어요.”

“S급 게이트라면 진폭이 몇 배일지 모른다.” 윤재하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붉은 곡선의 꼭지점을 따라 그었다. “이걸 던전 안에서 실시간으로 계산해야 하나.”

“아뇨. 계산은 제가 외부에서 합니다. 관측 데이터는 협회 중계망으로 실시간 수신 가능하고….” 최영우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 하단에 작은 창이 떴다. “하지만 역위상 펄스를 균열핵에 실제로 발산하는 건 오직 공명핵 조각을 신경계에 동기화한 사람만 가능합니다.”

“나뿐이라는 거군.”

“네.”

최영우는 잠시 멈추었다. 안경을 벗어 닦았다. 다시 쓰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할수록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가 책상 구석에서 차원 균열 주파수 데이터 원본 파일을 불러왔다. 앞선 사건에서 개인 서버로 전송했던 로그였다.

“이 균열 패턴은… 제가 비공식 경로로 입수했던 차원 균열 데이터와 94%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 원본 데이터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유통시켰는지….”

최영우가 화면을 확대했다. 로그의 발신 기록 란이 공란으로 표시됐다.

“출처가 없습니다. 게이트 연구 학계 전체를 통틀어 이런 패턴을 이 정도 정밀도로 기록한 사례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윤재하는 보조 모니터의 공란을 3초쯤 바라보았다.

“그 데이터가 없다면 이 모델도 없었겠군.”

“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입니다. 누군가 우리가 이 모델을 만들 줄 알고 미리 뿌려둔 게 아닌가 하는….”

연구실 문 옆에 설치된 소형 통신 단말기의 화면이 그때 켜졌다. 5분 전에 도착한 메시지였다. 발신자 식별 불가. 제목도 없었다.

최영우가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화면을 열자 좌표값과 시간이 떠올랐다. 북위 37도 32분 14초, 동경 126도 58분 41초. 개방 예측 시각 72시간 후.

“이건….”

그가 재빨리 키보드를 두드렸다. 협회 표준 관측망의 커버리지 맵을 화면 왼쪽에 띄우고 메시지의 좌표를 오른쪽에 겹쳤다. 좌표가 빈 공간 위에 떠 있었다. 어떤 관측망에도 등록되지 않은 지점이었다.

최영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윤재하는 단말기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돌아봤다.

최영우 연구실 안의 공조기 소리만 낮게 깔렸다.

진동의 지배자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