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진동의 지배자

7화

돌문 틈으로 푸른빛이 쏟아졌다. 윤재하는 손수건을 내려놓지 않은 채 왼손으로 턱을 닦았다. 손등에 피가 번졌다. 시선은 열리는 문 너머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서윤이 반 걸음 다가섰다. 허공에서 손이 멈췄다.

최영우가 측정기를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이건…… 공명핵이 반응하는 게 아닙니다. 문 저편의 핵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윤재하는 오른손을 폈다. 손바닥 위에서 공명핵 조각이 떨렸다. 푸른 실금이 결정 전체를 그물처럼 뒤덮으며 번져 나갔다. 진동이 손목을 타고 팔뚝까지 올라왔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공간 중앙, 직경 삼 미터가 넘는 원형 구조물이 떠 있었다. 내부에서 강렬한 빛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던전의 핵이었다.

발바닥으로 진동이 쇄도했다. 수백, 수천 개의 떨림이 겹쳐졌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패턴으로 수렴한다. 3.4헤르츠. 심장 박동과 같은 주파수였다.

공명핵 조각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조각이 격렬하게 진동하다 갑자기 멈췄다. 완전한 정지. 모든 실금이 동시에 백색에 가까운 빛을 뿜었다. 공간 중앙의 핵이 맥동을 멈췄다가 다시 시작한다.

첫 박자. 심장이 한 번 뛰었다.

두 번째 박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세 번째 박자. 시야가 일그러졌다.

던전 전체의 진동 정보가 필터 없이 의식 속으로 밀려들었다. 통로의 모든 갈래, 벽 너머의 빈 공간, 바닥 아래 지하수맥의 흐름까지. 너무 많았다.

윤재하가 무릎을 꿇었다. 왼손으로 바닥을 짚자 진동이 더 강해졌다. 코를 타고 따뜻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강서윤이 달려와 어깨를 붙잡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떨림은 빠르고 불규칙했다.

그때, 공간이 울렸다.

핵에서 푸른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확장되었다. 첫 번째 파동이 벽에 닿자 광석 결정들이 일제히 진동했다. 두 번째 파동이 바닥을 타고 퍼졌다. 최영우가 측정기를 놓쳤다. 장비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몸을 날려 잡았지만 균형을 잃는다.

세 번째 파동이 덮쳤다. 강서윤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그래도 한 손은 윤재하의 팔꿈치를 놓지 않았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파동의 간격이 점점 짧아져 연속적인 진동이 되었다. 숨을 들이켰다. 공기마저 떨리고 있었다. 진동이 폐를 누르는 듯한 압박감.

오른손을 펴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근육이 저절로 수축되어 조각을 더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땀이 결정 표면에 닿자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왔다.

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광석 벽면이 휘어지고 평면이 오목하게 들어간다. 모든 결정의 끝부분이 일제히 핵을 향해 정렬되었다. 던전의 구조 자체가 재편성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윤재하가 있다.

강서윤이 두 번 비틀거리며 일어나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 돌렸다. 눈을 마주친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멈추지 마.’

조각을 쥔 손 위로 그녀가 손을 포갰다. 진동 반지가 붉게 빛났다. 최영우가 옆에 서서 측정기를 치켜들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록뿐입니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충격파가 통로에 도달했을 때, 박태진은 파티보다 십 미터 앞서 있었다. 진동이 발바닥을 때렸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음.

던전 전체가 요동치고 있는데도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통로 끝에서 푸른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거기에 윤재하가 있다.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보다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발을 돌렸다.

파티원이 놀라 손을 뻗었다. 뿌리쳤다. 오른쪽으로 측면 통로가 갈라져 있었다. 충격파가 직접 닿지 않는 우회로. 혼자 그 통로로 뛰어들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빠르게 달렸다. 심장이 요동쳤다. 자신의 발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호흡 소리도, 옷깃 스치는 소리도. 무음이 귀를 압박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핵으로 직통하는 좁은 진입로가 열려 있었다. 방어 기제는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 웃었다.

첫발을 내디뎠다.

바닥의 광석이 살아 움직였다. 결정들이 촉수처럼 솟아올라 오른쪽 종아리를 감았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전술 바지를 찢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비명을 질렀다. 입은 벌어졌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광석 촉수가 더 강하게 조여왔다. 정강이뼈가 터질 듯이 압박당한다.

발을 잡아당기자 또 다른 촉수가 솟아올라 왼쪽 허벅지를 노렸다.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진입로 전체가 빛났다.

바닥의 광석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며 수십 개의 촉수를 뻗어 올렸다. 팔, 다리, 허리, 어깨에 차례차례 감겼다. 결정들이 살을 파고들었다. 피가 전술 재킷을 적셨다.

완벽한 무음만이 청각에 전달되었다. 발밑에서 광석이 움직이는 소리도, 촉수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광석 촉수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며 숨을 막았다.

시야가 좁아졌다. 귀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몸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점점 느려지는 심장의 진동. 근육이 경련하며 내는 진동. 광석이 조여들며 뼈에 전달하는 진동.

진동의 언어였다. 그 언어를 읽을 수 없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마지막으로 의식에 남은 것은 굴욕. F등급이라고 비웃었던 사내는 지금쯤 던전의 핵을 손에 넣고 있을 것이다. 청각만이 전부였던 자신은, 이곳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푸른 파장이 벽을 타고 번지던 순간, 강서윤이 먼저 움직였다. 공명핵 인근의 공기가 일그러지고 온도 차이가 피부를 찌르는 왜곡 속에서, 장화 밑창이 광석 조각을 밟아 부서뜨렸다. 윤재하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다섯 손가락이 전술 재킷의 어깨 봉제선을 움켜쥐었고, 악력이 거칠었다. 손목에 흘러내린 피가 보였다.

오른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진동 신호 반지가 푸른 파장을 반사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진동 폭주로 인한 떨림이 아니다. 근육의 미세한 경련이었다. 입술을 한 번 깨물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수화는 느렸다.

손가락 사이로 망설임이 배어 있었다.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 뒤, 양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미안해`. 동작이 끝나자마자 관절이 하얗게 질렸다.

윤재하의 시선이 수화를 따라갔다. 단어의 뜻은 읽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진동이 있었다.

손끝에서 울려나온 파형. 센서가 미세하게 반응했다. 불규칙한 진폭,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주파.

수화의 동작이 끝난 뒤에도 그 진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명핵 조각이 반응했다. 주머니 속에서 조각이 울렸고, 파형이 증폭되어 손바닥으로 전달됐다.

던전의 진동과 다른 신호였다. 방향성도, 구조 정보도 없었다. 오직 감정의 밀도만 있다.

죄책감. 숨을 들이켰다. 코피의 철분 맛이 목 뒤로 넘어갔다.

그때, 발바닥으로 다른 진동이 꽂혔다. 먼 곳, 핵 접근 통로 방향. 생체 진동.

규칙적이었던 맥박 패턴이 일그러지며 진폭이 급락했다. 이어서 불규칙한 충격파. 돌판이 미끄러지는 저주파 진동과 무언가 조여드는 파형이 뒤따랐다.

박태진. 진폭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 심장 박동 사이 간격이 1.4초, 1.7초, 2.1초로 늘어나는 위험 신호였다.

시선 변화를 읽은 강서윤이 손을 올려 물었다. `뭐야`. 윤재하는 대답 대신 오른손의 공명핵 조각을 들어올렸다.

손바닥 안에서 결정이 더 강하게 울렸고, 푸른 실금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왔다. 조각을 움켜쥐자 손금을 따라 타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러나 진동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무작위 파형이 잠시 수렴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아는 듯이.

무릎을 세웠다. 진동 과부하로 허벅지 근육이 경련했지만, 한쪽 무릎을 바닥에 딛고 상체를 일으켰다. 조각을 쥔 오른손에 체중을 실리자 손바닥에서 결정의 열이 팔뚝까지 달아올랐다.

폭주 상태는 여전했다. 던전 전체의 진동이 척추를 타고 두개골을 때렸다. 강서윤이 팔을 뻗어 팔꿈치를 받쳤다.

아까보다 단단한 그립. 손가락의 떨림은 멎었다. 그녀의 생체 진동이 두려움과 각오가 섞인 안정된 파형을 그렸다. 왼손으로 그 손등을 한 번 두드렸다.

짧은 진동 신호. `기다려`.

그리고 일어섰다. 시야가 일순간 하얗게 변했다 돌아왔다. 코피가 턱까지 흘러내려 광석 조각 위로 떨어졌다.

붉은 방울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오른손의 조각이 맥박처럼 뛰며 주변의 진동을 빨아들였다. 흡입력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손을 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움켜쥐었다. 폭주하는 진동이 핵 접근 통로 쪽으로 기울어지며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강서윤이 옆으로 섰다. 오른손 검지의 반지가 다시 한 번 빛났다. 그녀는 더 이상 수화를 하지 않고 오른발을 반 보 앞으로 내디뎠다.

따라가겠다는 신호였다. 첫 발을 내디뎠다. 장화 밑창이 진동을 흡수했다.

통로 저 끝에서 저주파 충격이 한 번 더 울렸다. 박태진의 심장 박동 간격이 2.7초까지 벌어졌다. 그 너머로 방어 기제의 무거운 진동이 조여들고 있었다.

진동의 지배자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