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1화

새벽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산대청 후원, 초롱불이 몇 점 흔들리고 있었다.

경수소 순찰조원 하나가 서화연의 소매를 거의 잡을 듯이 앞서 걸었다. 풀숲을 헤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쪽입니다.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서화연은 고개만 까딱이고 그를 따라갔다. 회화나무 아래, 흰 천을 덮은 형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순찰조장이 천을 반쯤 걷으며 물러섰다.

“첫 순찰조가 발견한 시각은 인시 말입니다. 호흡 없었고, 체온은 이미 식어 있었습니다.”

서화연은 천을 완전히 걷었다. 젊은 궁녀였다. 입술이 검푸르고, 왼손이 가슴께로 말려든 자세로 굳어 있었다.

시신 옆에 무릎 꿇고 검시낭을 풀었다. 은침 한 벌을 꺼내 천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먼저 구강을 열었다. 혀와 잇몸 사이, 짙은 자색 반점이 번져 있었다. 가장 가는 은침을 골라 혀 밑 연화혈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셋을 세고 빼냈다.

침 끝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순찰조장이 숨을 들이켰다. 서화연은 대꾸하지 않고 두 번째 침을 집어 왼쪽 합곡혈에 꽂았다.

“기록하겠습니다. 구강 내 자색 반점과 점막 괴사 흔적, 은침 반응 양성.”

순찰조장이 등을 돌린 틈에, 침 뭉치를 마포로 닦으며 불빛에 비춰 보았다. 합곡혈용 침의 몸통에 가느다란 실금이 한 줄 져 있었다. 침 끝에서 삼 푼쯤 되는 지점이었다.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침을 마포째 검시낭 깊숙이 밀어 넣었다.

“독초로 추정합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의금부 검시관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자네가 대필하는 서화연인가?”

“그렇습니다.”

검시관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시신을 한 번 훑더니, 검시낭을 가리켰다.

“은침은 확인했나.”

“구강 점막과 합곡혈에서 반응 나왔습니다. 은엽초 계열 독초로 추정합니다.”

“좋아. 내가 서명할 테니 초본을 작성하게.”

검시관이 일어서서 순찰조원들에게 시신 이송을 지시하는 사이, 서화연은 후원 동쪽 석등 곁으로 물러났다. 검시낭을 내려놓고 기록지와 붓을 꺼냈다.

먹을 갈며 생각을 정리했다. 구강 점막 상태, 경혈 반응, 체온 소실 추정 시각. 기록은 간결해야 했다. 궁중 변사 사건은 첫 기록이 의금부에 올라가면 이후 고칠 수 없다.

마지막 항목을 적기 위해 시신으로 돌아갔다. 시신 이송을 기다리는 사이, 왼손이 풀려 나와 있었다. 약지에 얇은 은가락지가 한 개 끼워져 있었다.

서화연은 가락지를 살며시 돌려 빼냈다. 안쪽 면에 미세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국화잎 다섯 장이 별 모양으로 휘감긴 형태.

숨이 가볍게 멎었다.

그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폐비 시절 내명부의 문서철에 찍혀 있던 인장 문양과 기초 배열이 같았다. 다만 이 가락지의 문양은 인장보다 작고 섬세했다.

순찰조장이 다가오는 기척에 가락지를 재빨리 손가락에 끼워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기록은 끝나셨습니까.”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서화연은 기록지로 돌아와 붓을 들었다. 잠시 멈췄다가, 항목 마지막 줄에 조용히 추가했다.

‘좌수 약지 부 가락지 내측 이형 문양 흔적.’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기록지를 응시했다. 왜 폐비 시절 양식의 문양이 평범한 궁녀의 가락지에 새겨져 있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문양을 기록에서 빼면 안 된다는 직감만은 분명했다.

이형 문양을 기록한다고 누군가 그 의미를 곧바로 알아챌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의금부 기록은 삼중 보관되고, 청원지는 묵 반응을 지우지 못한다. 한 번 적힌 사실은 영원히 남았다.

검시관이 다가와 초본을 받아 들었다. 빠르게 훑어보고 마지막 줄에서 붓을 멈추었다.

“이형 문양이라. 뭐 특별한 거라도 본 건가.”

“가락지 안쪽에 궁녀 은비녀와 다른 문양이 찍혀 있었습니다. 구체적 연관은 아직 모릅니다.”

“기록에는 남겨야겠군.”

검시관은 더 묻지 않고 자기 이름 석 자를 기록 말미에 크게 서명했다.

서화연은 검시낭을 챙겨 들었다. 은침 뭉치가 마포 안에서 가볍게 부딪혔다. 실금은 지금 당장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침이 균열될 정도의 독이라면 은엽초 계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석등의 촛불이 바람에 쏠렸다. 가락지 문양과 침 균열, 두 개의 흔적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의금부 하급 관리 둘이 시신을 들것에 옮겼다. 서화연은 호송 인원 틈에 서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푸르던 빛이 옅어지고 있었다.

검시관의 손가락이 그 대목을 짚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덧붙였다.

“검시 대필 주제에 감히 문양을 판단해 기록하다니. 누가 네게 그런 권한을 줬느냐.”

“증거를 기록하는 것이 대필의 임무입니다. 문양의 유사 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니며, 단지 보이는 대로 기재했을 뿐입니다.”

검시관은 기록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검시용 침통을 든 손가락이 천천히 초본의 가장자리를 쓸었다.

서화연은 손끝에 아직 남은 종이의 촉촉한 감각을 손바닥 안으로 접어 넣었다. 문양의 실체를 묻기엔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검시관의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서화연은 기록지를 접어 손에 쥐었다.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종이 끝자락이 손끝에 닿았다. 좌수 약지의 가락지 안쪽 문양. 폐비 시절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기, 기록 맡은 자인가.”

검시관은 쉰을 넘긴 사내였다. 의금부 검시관 특유의 푸른 관복을 입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검시용 침통을 쥐고 있었다. 두 명의 하급 관리가 뒤따랐다. 검시관의 시선이 서화연의 왼쪽 옷깃에 꽂힌 은비녀에 잠시 머물렀다가 기록지로 내려갔다.

“내게 건네라.”

서화연이 종이를 내밀었다. 검시관은 기록지를 받아 첫 줄부터 훑기 시작했다. 횃불 아래서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몇 호흡 이어졌다.

“좌수 약지부 가락지 내측 이형 문양 흔적이라 적었구나.”

검시관의 손가락이 그 대목을 짚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덧붙였다.

“검시 대필 주제에 감히 문양을 판단해 기록하다니. 누가 네게 그런 권한을 줬느냐.”

“증거 보존은 지체하면 안 됩니다. 시신을 검안실로 옮기기 전에 기록하지 않으면 가락지의 흔적이 망가질 우려가 있었습니다.”

서화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검시관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등불이 그의 얼굴 절반을 비췄다.

“증거 보존? 네가 의금부 검시관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대필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검시관의 발언을 받아 적는 것뿐. 네 견해를 덧붙인 순간, 이 기록은 이미 순수한 검안록이 아니게 됐어.”

“의금부 검율 규정 제12조, 시신의 외부 흔적은 검시관 도착 전이라도 훼손 방지를 위해 기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조항에 따라 기재했습니다.”

서화연은 말을 끊었다. 검시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규정을 인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규정을 꿰고 있군.”

“기본입니다.”

검시관은 대답 대신 기록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훑었다. 종이를 넘기지도 않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기록지에서 시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궁녀의 왼손은 여전히 약간 구부러진 채 멈춰 있었다.

“가락지는.”

“그대로 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만, 빼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빼선 안 되는 거지.”

검시관은 시신 곁에 쭈그려 앉아 왼손 약지를 살폈다. 가락지는 살갗에 눌린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검시관은 침통을 열고 가는 은침 하나를 집어 올렸다. 가락지와 피부 사이의 좁은 틈으로 침을 밀어 넣었다가 빼냈다.

침 끝의 색이 변했다. 검시관은 침을 등불 가까이 가져갔다.

“은침 반응은.”

“이미 1차 검시에서 확인했습니다. 침 끝 변색 부위에서 쌍떡잎독초 특유의 자주색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서화연은 손에 쥔 검시 기록 초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검시관은 자신의 침을 확인한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독살 추정은 대체로 맞다. 다만.”

그는 가락지 안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서화연의 기록대로 안쪽 표면에 미세한 음각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시관은 숨을 멈추고 문양의 윤곽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이 문양은 일반 궁녀가 쓸 만한 물건이 아니군.”

서화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시관이 곧 자신의 의심을 입에 올릴 것임을 직감했다.

“네가 누군지 알 만한 문양이냐.”

서화연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등불이 바람에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교차시켰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특이한 문양이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검시관은 천천히 일어서며 서화연을 내려다보았다.

“이 기록은 내가 가져간다. 경력께서 직접 보실 사안이 될 듯싶군. 네 대필자로서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서화연은 침묵했다. 거절할 권한은 없었다.

검시관이 하급 관리에게 눈짓하자, 관리 하나가 나서서 기록지를 받아 봉투에 집어넣었다. 봉투 입구를 등불 촛농으로 봉인했다. 다른 관리가 시신을 덮을 삼베 보자기를 펼치는 동안, 서화연은 한 걸음 물러섰다.

후원 가장자리까지 다다랐을 때, 신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흙이었다.

발을 들자 흙 속에 종잇조각 하나가 살짝 묻혀 있었다. 횃불 빛이 닿지 않는 화단 그늘. 서화연은 무릎을 굽히는 동작으로 허리를 낮추며 손을 뻗었다.

흙을 살짝 털어내자 종이 표면이 드러났다. 청원지였다. 빛을 받아 은은하게 묵의 반응이 번져 있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질감이 낯익었다. 의금부 검안실의 기록지와 같은 재질.

검시관은 아직 시신을 살피느라 등을 보이고 있었다. 서화연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소매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흙이 약간 묻은 채로.

종이를 접을 때 순간적으로 보인 글자 조각.

‘……비……’

‘……폐……’

그리고 찢긴 가장자리.

심장이 한 번 크게 쿵 내려앉았다. 서화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소매 속에서 종잇조각이 손목 안쪽 피부에 닿았다.

청원지가 기록 보관소가 아닌, 흙 속에 버려져 있었다. 그것도 최근에 찢겨서. 단순 독살 사건과 폐비 관련 기록 훼손이 맞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제는 의심이 아니라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검시관이 몸을 돌렸다. 손에는 봉인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자네는 물러가라. 이 사건은 경력 이현께서 직접 주관하실 것이다.”

서화연은 고개를 숙였다. 소매 속 종잇조각이 손끝에 닿아 있었다.

폐비의 기록. 이곳에 있어선 안 될 것이, 이곳에 있었다.

서화연은 가락지를 살며시 돌려 빼냈다. 안쪽 면에 미세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국화잎 다섯 장이 별 모양으로 휘감긴 형태.

숨이 가볍게 멎었다.

그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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