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아래 진실
2화
의금부 야간 당직실 안은 촛불 세 점만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나는 탁자 위, 하나는 문 옆 벽걸이, 마지막 하나는 이현의 등 뒤 창턱에서 심지를 태웠다. 창밖은 벌써 짙은 암흑에 잠겼다. 산대청에서 돌아온 지 반 시진 남짓 지난 시각이었다.
서화연이 문을 열고 들어서도 이현은 탁자 건너편에서 손짓조차 하지 않았다. 턱을 짧게 움직여 맞은편 의자를 가리킬 뿐. 서화연은 앉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종이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장은 서화연이 산대청 후원에서 써 내려간 검시 태그. 맞은편에는 의금부 표준 청원지 양식에 맞춰 검시관의 서명을 받은 검안록이 자리했다.
이현이 먼저 태그를 집어 들었다.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등을 곧추세운 자세였다.
“필적이 다르오.”
서화연은 입을 열지 않았다.
“검시관이 직접 쓴 기록과 태그의 글씨가 다르오. 같은 사람이 쓴 것 같지 않소.”
탁자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선 서화연은 두 기록을 나란히 굽어보았다. 태그는 급히 받아 적느라 획이 제멋대로 뛰었다. 검시관의 검안록은 익숙한 손이 엄격하게 정돈한 해서체였다.
이현이 태그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누가 썼소.”
“저입니다.”
“제출된 검안록은 누구 글씨요.”
“검시관께서 직접 서명하셨습니다.”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말리듯 접혔다 펴졌다. 한 번, 두 번. 촛불이 그의 눈동자에 얹혀 회색 기운을 살짝 비추었다.
“절차를 아시오. 검시관은 검안록을 직접 작성해야 하오. 대필은 장형에 유배요. 대필을 맡긴 자도 동일한 처벌을 받소.”
서화연은 손끝이 저릿하게 식어가는 감각을 온몸으로 눌렀다. 소매 속으로 시선이 향할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찢긴 청원지 조각이 아직 손목 안쪽 살갗에 닿아 있었다.
“대필이 아닙니다. 긴급 기록이었습니다.”
“긴급.”
이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으나, 끝음이 약간 위로 들렸다.
“검율 규정 제12조. 시신의 외부 흔적은 검시관 도착 전이라도 훼손 방지를 위해 기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조항에 따라 기재했습니다.”
탁자 너머로 침묵이 잠시 스몄다. 이현은 검안록을 들어 태그와 나란히 쥐었다. 촛불 가까이 가져가서 종이 뒷면까지 훑었다. 청원지 특유의 미세한 섬유질이 불빛 아래 희미하게 떠올랐다.
“청원지를 아시오.”
이현이 물었다. 질문의 형태였으나 내용은 확인이었다.
“그 종이의 묵 반응 흔적은 지워지지 않소. 한 번 먹이 스민 자리는 영원히 남소. 그래서 삼중 보관된 기록을 동시에 교체하지 않는 한 위조가 불가능하오. 알았소?”
“알고 있습니다.”
“좋소.”
이현이 검안록을 탁자에 돌려놓으며 손가락으로 마지막 줄을 짚었다. 검시관의 서명 아래 날짜와 인장이 찍혀 있었다.
“검시관은 이 검안록을 직접 작성했다고 서명했소. 그런데 태그는 당신이 썼다고 했소. 두 기록의 필체가 다르다는 것은, 검시관이 긴급 기록을 인계받았다면 어째서 그 기록을 다시 쓰지 않고 그대로 서명했는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지오.”
서화연은 숨을 천천히 빨아들였다. 현장 검시 때 검시관이 감췄던 의심. 그가 기록지를 챙기며 남긴 말. 이 경력께서 직접 보실 사안.
이미 예견된 추궁이었다.
“검시관께서 현장에서 제가 작성한 기록을 검토하신 후 직접 서명하셨습니다. 다시 쓰지 않은 것은 기록 자체에 오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류가 없었소.”
이현이 서화연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이 쓴 기록에 대해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현은 대답 대신 태그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종이 끝에 묻은 채 지워지지 않은 흙먼지가 불빛에 반짝였다. 서화연의 어깨가 굳어졌다. 흙. 후원 화단에서 청원지 조각을 거둘 때 옮겨 붙은 것이다.
이현이 손끝으로 태그의 오염 부위를 한 번 쓸어보았다. 손가락에 묻은 것을 가까이서 살피더니, 이내 털어냈다.
“현장 기록이라는 건 아시오. 내가 다시 쓴 것과 현장 그대로의 것은 차이가 있소.”
서화연은 입술을 떼었다. 하지만 이현이 먼저 말을 이었다.
“작은 차이 하나가 사건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오. 그래서 의금부는 청원지를 쓰는 거요.”
서화연은 탁자 위의 검안록으로 시선을 보냈다. 검시관의 서명, 검증된 표준 양식. 이현이 아직 검증하지 않은 것은 단 하나 남아 있었다.
“경력께서는 두 기록을 대조하셨습니다.”
이현의 손가락이 멈췄다.
“필체는 다르지만, 기록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으셨습니다. 제가 쓴 태그와 검시관의 검안록, 그 기재 사실이 일치하는지도 확인하셨습니까.”
“확인했소.”
이현의 답은 짧았다.
“내용은 같았소. 구강 점막 반응, 합곡혈 위치, 시반 상태, 추정 사망 시각까지. 오류는 발견하지 못했소.”
“그렇다면 기록으로서의 효력은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현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촛불 그림자가 턱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태그 글씨는 인시 말, 그것도 현장에서 급히 쓴 것이 틀림없소. 획이 흔들렸고 간격도 고르지 않소. 하지만 내용은 정확했소. 문제는 그 점이오.”
서화연이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대필자가 그렇게 현장을 조사 없이도, 검시관과 동일한 판단을 할 수 있는가. 그게 의문이오.”
서화연은 왼쪽 갈비뼈 아래가 바짝 조여드는 감각을 느꼈다. 검시를 대필한 자가 아니라, 검시를 직접 수행한 자라는 의심. 이현은 이미 태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읽고 있었다.
손을 허리춤으로 내렸다. 검시낭 대신 주머니 하나가 손끝에 닿았다. 은침 세트였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서화연은 주머니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촛불 아래서 가느다란 침의 표면이 차갑게 빛을 반사했다.
“검시에 사용한 은침입니다.”
이현이 침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침대를 천천히 돌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표면에 무엇이 있소.”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입니다. 이 침은 산대청 현장에서 궁녀의 구강과 합곡혈에 사용했는데, 균열이 있는 상태에서 검시를 진행했습니다.”
이현이 침을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불빛이 침 몸통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러가다가 한 지점에서 미세하게 굴절됐다.
“은침은 검시 전마다 표면을 사포로 갈고 소독하여 재사용하오. 어째서 균열이 간 침이 지급되었소.”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바입니다.”
이현이 침을 내려다보았다. 침을 탁자에 내려놓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낀 채였다.
“균열이 간 침으로 검시하면 독극물 반응이 불완전할 수 있소. 당신이 기록한 합곡혈 반응 색은 정확한가.”
“균열이 있음에도 반응은 선명했습니다. 다만 이 침을 보관하고 관리한 의금부 물자 담당이 표준 절차를 따랐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답할 수 없습니다.”
서화연은 목소리를 한겹 낮추며 말을 이었다.
“표준 절차대로라면, 폐기되었어야 할 침이 현장 검시에 사용된 셈입니다.”
이현이 검지를 말아쥐듯 접고 곧게 폈다. 침을 든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검시 도구의 균열을 발견하고도 검시를 진행했소.”
“발견한 것은 검시 중이었습니다. 침을 뽑아낸 후 표면을 닦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두 경혈을 천자한 뒤였고, 합곡혈 반응은 이미 나온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침의 균열은 당신이 기록을 정확하게 썼는지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소. 오히려 당신의 기록이 불완전할 가능성을 뒷받침하오.”
서화연은 탁자 위의 침과 두 기록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경력께서 직접 검안록과 태그를 대조하셔서 내용이 일치함을 확인하셨습니다. 침에 균열이 있었다면 반응이 약하거나 불완전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기록된 반응이 정확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졌다.
“오히려 균열이 간 침으로도 정확한 반응을 얻었다는 것은, 독극물의 농도가 상당히 높았음을 시사합니다. 검시 도구의 결함을 알게 된 이상, 그 점을 기록에 추가하지 않은 것은 저의 실수입니다.”
이현의 입가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서화연이 스스로 실수를 인정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 큰 문제는, 의금부 검시 도구의 관리에 있습니다. 이 침을 검시낭에 넣은 이는 누구이며, 왜 균열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이현은 탁자에 침을 내려놓았다. 아주 천천히.
도구 관리 문제는 검시관의 지휘 책임 사항이었다. 서화연은 은침 하나로 논점을 필체에서 장비 관리로, 장비 관리에서 검시관의 감독 책임으로 옮기고 있었다.
“당신은 검율 보좌직이오. 그런데 규정도 알고, 검시 절차도 알고, 기록도 정확하게 작성했소. 심지어 은침 균열도 발견했소.”
이현이 말을 끊었다. 촛불 하나가 심지 끝에서 작게 타닥 소리를 냈다.
“어디서 배웠소.”
당직실 문이 열렸다.
문틀에 손을 댄 채, 심수련이 안으로 비집고 들어섰다. 그녀의 남색 당의가 촛불을 머금고 어둡게 반짝였다. 걸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치마 밑자락이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밤이 늦었습니다.”
심수련의 목소리는 소녀처럼 맑았다.
“내명부에서 이 검율을 데려가겠소이다.”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심 상궁께서 이곳에 오실 일은 아니오.”
“내명부 소속 인원이 의금부 야간 당직실에 홀로 불려 나온 것을 두고 보는 것도 상궁의 직분이옵니다.”
심수련은 서화연 옆으로 다가왔다. 손을 들어 서화연의 왼쪽 팔뚝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손끝이 옷감 위로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 서화연은 그 손이 의외로 단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경력께서는 내일 공식 절차로 다시 논의하시지요. 오늘 밤은 이미 지나치게 깊었습니다.”
이현의 시선이 심수련의 손끝으로 내려갔다. 이내 서화연의 얼굴로 옮겨갔다.
“한 가지만 더 묻겠소.”
심수련이 대신 대답했다.
“경력 이현.”
이름을 똑바로 부르자, 이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새벽에 변사체가 발견된 날 밤입니다. 검율도 지치셨을 터, 내일 다시 부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탁자에 놓인 침을 집어 별도의 천 위에 올려놓았다.
“가시오.”
서화연은 고개를 숙였다. 심수련의 손이 팔을 잡은 채로 몸을 돌렸다. 문을 나서는 순간, 서화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현이 탁자 위의 두 기록을 다시 집어 드는 소리만 잠깐 귓가를 스쳤다.
복도는 어두웠다. 벽걸이 등불이 몇 걸음 간격으로 떨어져 있어 바닥이 얼룩덜룩하게 물들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번갈아 가며 울렸다. 심수련의 발소리는 여전히 거의 들리지 않았다.
당직실 문에서 열 걸음쯤 떨어졌을 때, 심수련이 걸음을 멈췄다.
서화연도 멈췄다.
심수련의 손이 팔에서 떨어졌다. 대신 얼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귓속말이었다.
“은침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서화연이 주머니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건넸다.
심수련은 침을 받아 복도 벽의 등불 아래로 가져갔다. 빛에 비스듬히 기울여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침 표면의 균열이 불빛을 따라 어른거렸다.
심수련이 손톱으로 침 끝을 살짝 튕겼다.
미세한 진동이 침을 타고 전해지며 은은한 금속음이 복도에 흩어졌다.
“이런 균열은···”
심수련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 낮아졌다.
“고의로 낸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