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아래 진실
3화
복도에 선 두 사람 사이로 등불이 깜빡였다.
서화연은 심수련의 손에서 은침을 도로 받아 쥐었다. 침은 아직 손톱이 튕긴 진동을 머금은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고의라면.”
서화연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 검시 전에 침을 훼손했다는 뜻입니다.”
심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약간 기울였을 뿐이었다. 그 각도로는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심수련이 말했다.
“지금은.”
왜, 라고 묻기 전에 심수련의 손이 다시 서화연의 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팔꿈치를 살짝 잡았다. 걸음을 재촉하는 손길이었다.
“내명부까지 모시겠습니다.”
서화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침을 주머니에 넣으며 손가락으로 천 위로 침의 윤곽을 더듬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심수련의 옷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조차 절제되어 있었다. 서화연은 그 옆에서 제 발소리만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복도 끝에서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내명부, 오른쪽은 외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이었다.
“이제 혼자 가시지요.”
심수련이 손을 거두었다.
“오늘 밤, 경력 앞에서 보이신 침착함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서화연은 심수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 상궁 마마께서 인상적이실 일은 없을 텐데요.”
“그렇습니까.”
심수련의 입술이 아주 얕게 올라갔다. 웃음이라기엔 너무 빨리 사라졌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오른쪽 회랑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서화연은 왼쪽으로 발을 옮겼다. 열 걸음쯤 걸었을 때 뒤돌아보았지만, 회랑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새벽이 채 걷히기 전, 서화연은 처소의 촛불 하나만 켜둔 채 탁자 앞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은침 한 벌을 꺼내 천 위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아홉 개. 그중 세 번째 침을 집어 들었다. 심수련이 손톱으로 튕겼던 바로 그 침이었다.
확대경을 눈에 대자, 촛불 아래서도 놓쳤던 침의 표면이 시야 가득 다가왔다.
균열은 길이가 한 푼 남짓이었다. 은침 몸통을 가로지르지 않고 표면을 따라 얕게 번져 있었다. 단순한 마모라면 균열의 경계가 매끄러워야 했다. 은은 무른 금속이었다. 오래 쓰면 표면이 고르게 깎여 나갔다.
그러나 이 균열은 달랐다.
경계가 울퉁불퉁했다. 마치 무엇인가에 부식된 듯, 침 표면이 미세하게 패여 들어간 흔적이 보였다. 서화연은 침을 기울여 촛불의 각도를 바꾸었다. 패인 부분의 안쪽이 불빛을 받아 검푸르게 반사했다.
은이 변색되는 경우는 몇 가지였다. 유황, 또는 특정 독초의 추출물.
서화연은 침을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독살된 궁녀의 구강에 찔러 넣었던 침이었다. 혀 밑 연화혈에서 빼낸 직후, 균열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에는 오래된 침의 노후화로 생각했다.
그러나 부식의 패턴은 노후화가 아니었다.
누군가 이 침에 독초 추출물을 묻혀 두었다면—검시 전, 또는 검시 도중에. 침이 조직에 닿는 순간 독이 침 표면을 부식시키고, 검시 결과 또한 흐려진다.
서화연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산대청 현장에서 검시낭을 풀었을 때, 침은 분명히 깨끗했다. 적어도 그렇게 기억했다. 꺼내기 전에도, 꺼낼 때도. 그런데 검시를 마친 후 침을 닦으려는 순간 균열을 보았다.
검시 사이에 누군가가 침을 바꿔치기했을 가능성.
아니면.
검시 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침에 무언가 묻어 있었다.
서화연은 침을 다시 천 위에 올렸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움켜쥐려는 손을 일부러 폈다. 한 번, 두 번. 숨을 깊이 들이쉬고 뱉었다.
내의원으로 가야 했다. 《독초 도감》의 부식 기록을 대조하지 않으면 이 균열의 원인을 확정할 수 없었다. 은엽초인지, 마미자인지, 아니면 기록되지 않은 무언가인지.
서화연은 은침을 조심스럽게 천에 싸서 품 안에 넣었다. 촛불을 끄고 처소 문을 열었다.
바깥 복도는 어둑한 청회색 빛에 잠겨 있었다.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규장각 기록 보관소는 아침 햇살이 채 닿지 않은 깊은 곳에 있었다.
이현은 서리가 봉인 상자를 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상자에는 의금부, 규장각, 내명부의 삼중 봉인이 찍혀 있었다. 각 인장마다 다른 색의 밀랍이 사용되었다—적색, 청색, 백색.
서리가 밀랍을 하나씩 확인한 뒤 작은 칼로 끊어냈다. 날이 서지 않은 전용 칼이었다. 봉인을 훼손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도구였다.
“기록입니다.”
서리가 청원지 첩을 두 손으로 받들어 탁자 위에 올렸다.
이현은 고개를 약간 숙여 받았다. 장갑을 낀 손으로 첫 장을 넘기자, 청원지 특유의 담청색 바탕이 드러났다. 필체는 두 종류였다. 검시관의 세로쓰기와 서화연의 가로 주석.
“묵 반응 검사를 하겠소.”
“약재를 준비하겠습니다.”
서리가 작은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뚜껑을 열자, 노란 빛깔의 가루가 담긴 도자기 그릇과 붓 한 자루가 나타났다. 이현은 붓을 들어 가루를 소량 찍었다.
청원지의 빈 여백에 붓을 가볍게 눌렀다.
가루가 묻은 자리에서 묵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색에서 암적색으로, 다시 짙은 갈색으로.
이현은 붓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열 호흡.
반응은 안정되었다. 변색된 부분의 가장자리가 매끄럽고 균일했다. 묵의 입자가 종이 섬유 깊숙이 스며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원본입니다.”
서리가 말했다.
“위조 흔적은 없습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머지 페이지도 같은 방식으로 검사했다. 세 번째 장, 일곱 번째 장, 마지막 장. 모든 페이지에서 동일한 반응이 나타났다. 변색의 깊이, 가장자리의 균일함, 묵 입자의 침투 범위—모두 일관되었다.
청원지의 묵 반응 흔적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기록을 수정하려면 삼중 보관된 세 개의 기록을 동시에 교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필히 남는 미세한 섬유 손상 또한 검출된다.
이 기록에는 그 손상조차 없었다.
이현은 검시 태그를 집어 들었다. 서화연이 작성한 현장 기록이었다. 필체는 여전했다. 지나치게 정확한 획, 칼로 벤 듯한 삐침. 법의서를 통째로 베낀 듯한 용어 선택.
“기록 자체는 문제가 없소.”
이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서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현은 잠시 침묵했다.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접혔다 폈다 반복했다.
“필체요.”
“필체가 위조되었습니까?”
“아니오.”
이현은 태그를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너무 완벽하오.”
서리는 그 말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다만 담청색 기록 첩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되돌려 넣고, 새 밀랍으로 봉인을 다시 찍었다.
이현은 몸을 돌려 보관소 문을 향해 걸었다. 발소리가 돌바닥에 짧게 두 번 울렸다.
기록은 무결했다. 그러나 그 무결함이 오히려 의심을 키웠다. 대필자 한 명의 필체가 검시 기록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그것만이 유일한 이상이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내명부 외부 복도는 오전이 되자 드문드문 궁녀들이 오가고 있었다.
서화연은 품 안의 천에 싼 은침을 만지며 걸었다. 손가락 끝으로 천 위에서 침의 윤곽을 확인했다. 여섯 번 접은 천이었지만, 침 끝의 날카로움은 감촉만으로도 선명했다.
복도 중간쯤에서 발소리를 들었다. 굽 낮은 관화 소리였다. 리듬이 일정하고 보폭이 길었다.
고개를 들자, 십 보 앞에서 이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규장각 쪽 회랑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서화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다섯 걸음, 세 걸음. 스쳐 지나는 순간.
“기록에는 문제가 없더군.”
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걸음을 완전히 멈췄다. 서화연도 멈췄다. 어깨가 거의 닿지 않은 거리였다.
“하지만.”
이현의 검은 눈이 서화연을 향했다. 빛이 강한 복도에서는 회색 기운이 도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믿지 않소.”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관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며 멀어졌다. 서화연은 돌아서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기록에는 문제가 없었다. 묵 반응 검사까지 마친 상태일 터였다. 그러면서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증거가 아니라 직감으로 움직이는 자였다. 그런 인물이 가장 위험했다.
서화연은 품 안의 천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은침이 천 너머로 손바닥을 눌렀다.
이제 확실했다. 은침에 대한 의심을 누구보다 먼저, 혼자서 추적해야 했다. 이현에게 알리는 순간, 그는 은침을 압수할 것이었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대필 의혹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었다.
서화연은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내의원 약재 창고로 향하는 길이었다.
복도 끝, 계단을 내려가는 길목에서 잠시 멈췄다. 심수련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젯밤 그녀가 했던 말—‘이런 균열은 고의로 낸 것 같군요’—의 진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내명부 소속이면서도 사건에 관여하는 방식이 빗겨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심수련의 허리춤에 달린 작은 약주머니였다. 궁녀들의 약주머니보다 한 치 작고, 입구를 묶은 끈의 색이 흔하지 않은 자색이었다.
《독초 도감》을 펴면 알 수 있을까.
서화연은 계단을 내려갔다. 내의원 쪽 복도는 약재 냄새에 절어 있었다. 씁쓸한 감초 냄새와 달콤한 계피 냄새가 번갈아 코를 찔렀다.
창고 문 앞에 섰다.
“의금부 검율 서화연입니다. 《독초 도감》 열람을 청합니다.”
문을 지키는 서생이 고개를 들었다.
“열람 사유를 기록하셔야 합니다.”
서화연은 붓을 들어 열람 대장에 기입했다. ‘은침 부식 경로 확인’. 서생이 기록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창고 안은 어두웠다. 서가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으로 빼곡했다. 서화연은 약재 서가가 아니라, 가장 안쪽의 금서 목록 코너로 곧장 걸어갔다.
《독초 도감》은 검은 천으로 덮인 채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
천을 걷자, 두꺼운 표지의 책이 드러났다. 첫 장을 열었다. 은엽초 항목을 찾아 손가락이 멈췄다.
그림이 있었다. 은침과 동일한 부식 패턴이 그려져 있었다.
서화연의 호흡이 멎었다. 은엽초 추출물이 은에 닿았을 때 남는 흔적이었다. 경계가 울퉁불퉁하고, 부식 부위 안쪽이 검푸른 색을 띠며, 균열은 표면을 따라 얕게 번진다.
도감의 그림과 품속의 은침이 정확히 일치했다.
손이 떨렸다. 은엽초는 검시 현장에서 발견된 바 없는 독초였다. 그리고 이 독초를 다루려면 내의원과 내명부의 이중 인장 전표가 필요했다.
심수련의 자색 끈 약주머니가 다시 떠올랐다.
서화연은 도감을 덮었다. 손바닥에 쥔 천이 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