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아래 진실
4화
의금부 검안실은 아침 햇살을 받지 못했다. 북향 창 하나가 회색 빛을 희석해 방 안에 풀어놓을 뿐. 서화연은 산대청 사건의 야간 순찰 기록을 탁자 위에 펼쳤다. 죽편으로 엮은 두루마리식 기록부. 표지에는 경수소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은침 부식의 원인을 밝힌 뒤, 그녀는 곧바로 이 기록을 찾았다. 《독초 도감》에서 확인한 은엽초의 이중 인장 전표—누군가 궁 안에 은엽초를 들였다면, 그 시간대에 움직임이 없었을 리 없었다.
두루마리를 천천히 풀어냈다. 사건 당일, 해시 초각. 순찰조 3번, 경로는 산대청 외곽 회랑. 서명은 순찰조장 한 명과 조원 두 명.
해시 2각. 순찰 위치가 갱신되었다. 산대청 후원 방향으로 진입.
기록자의 필체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서화연은 손끝으로 먹 자국을 더듬었다. 붓에 먹을 다시 찍기 전에 쓴 글씨였다. 급히 적었다.
해시 3각.
기록이 끊겼다.
서화연의 손이 멈췄다. 빈 공간이 아니었다. 죽편 한 장이 찢겨 나가 있었다. 두루마리를 연결하는 실밥 사이로 찢어진 청원지의 거친 가장자리가 드러났다. 뽑힌 것이 아니라 날붙이로 잘라낸 흔적—자른 가장자리가 실밥 방향으로 밀려 있었다.
그녀는 기록부를 탁자 가장자리로 옮기고 창 쪽으로 기울였다. 찢긴 면을 따라 청원지 특유의 섬유가 실처럼 풀려 있었다. 비스듬히 당기면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두 겹의 교차 섬유. 품에서 작은 핀셋을 꺼내 찢긴 가장자리에서 섬유 한 가닥을 집어 올렸다.
별도로 접은 작은 한지에 섬유를 올리고 조심스레 접었다. 은침을 확인할 때 썼던 확대경을 꺼내 기록의 앞뒤 연결을 추적했다.
해시 2각 마지막 문장은 '후원 남측 화단 통과, 특이사항—'에서 끊겼다.
해시 4각의 기록은 산대청 외곽으로 다시 이동한 뒤였다. 해시 3각의 순찰 위치와 특이사항이 통째로 사라진 셈이었다.
사건 발생은 해시 3각 무렵. 검시 기록에서 추정한 사망 시각과 정확히 겹쳤다.
문이 열렸다.
서화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만으로 알았다. 군화 바닥이 마룻바닥을 짧게 두 번 밟고 멈추는 리듬. 이현이었다.
“검안실 기록은 열람 권한이 따로 있소.”
이현의 목소리는 억양이 거의 없었다. 탁자 앞까지 걸어오는 동안 소매 자락이 바람을 일으켰다.
서화연은 핀셋을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검시 보좌 업무 중 발견한 이상에 대해, 관련 기록 대조는 검율 직무 범위 안입니다.”
“누구의 승인을 받았소.”
“산대청 사건의 검시 기록에 서명한 검시관의 지시에 따라, 저는 현재 사건 관련 물증을 검토 중입니다.”
이현의 눈이 탁자 위의 찢긴 기록을 훑었다.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펴졌다. 한 번.
“야간 순찰 기록은 검시 물증이 아니오.”
“은침 부식의 원인 물질이 은엽초로 확인됐습니다.”
이현의 검지가 멈췄다.
“은엽초는 이중 인장 전표가 필요한 독초입니다. 누군가 전표 없이 반입했다면, 최소한 해시 시간대의 이동 경로와 순찰 사각이 설명되어야 합니다.”
서화연은 찢긴 기록부를 이현 쪽으로 밀었다.
“해시 3각. 기록 한 면이 절단되어 누락됐습니다. 사망 추정 시각과 일치합니다.”
이현은 기록부를 집어 들었다. 찢긴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실밥 방향, 잘린 각도, 섬유의 절단면을 차례로 확인하는 손놀림이 빨랐다.
“칼날이군. 가위가 아니라.”
“예. 순찰조장의 서명 아래 보관되어야 할 기록입니다. 누군가 기록 보관소에 접근했다는 뜻입니다.”
이현이 기록부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언제 발견했소.”
“조금 전입니다. 섬유 샘플은 확보했습니다.”
서화연은 접은 한지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현의 눈이 한지의 접힌 부분을 응시했다. 회색 기운이 도는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관찰할 때 깜빡임이 줄어드는 버릇이 그대로였다.
“기록 누락은 내가 별도 보고로 인지하고 왔소. 제보가 있었다는 뜻이오.”
서화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수소 공동 조사를 제안하겠소.”
한 박자 늦게 이현이 덧붙였다.
“당신 눈은 빠르오.”
서화연의 손이 잠시 멈췄다. 이현이 능력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한지를 품에 넣었다. 손끝이 옷깃 안쪽 은비녀의 차가운 감촉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섬유 분석은 내가 맡겠소. 찢긴 기록과 같은 청원지인지 확인이 필요하니.”
이현은 이미 기록부를 집고 있었다. 관복 소매가 탁자 위 은침 케이스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한 가지 더.”
서화연은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경수소 기록 보관실에 무단 접근했다. 그렇다면 기록을 찢은 자는 순찰조의 이동 경로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결론이오.”
이현은 말을 끊고 검안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틀에 손을 대고 잠시 멈췄다.
“경수소로 바로 가겠소.”
발걸음이 복도로 사라졌다.
서화연은 탁자 위에 남은 확대경을 접었다. 품속의 한지가 옷깃에 닿아 바스락 소리를 냈다. 섬유 한 가닥과 은침 하나. 지금 그녀가 가진 물증은 두 개였다.
경수소 당직실은 의금부 본청에서 서쪽으로 백 보 남짓. 이현이 앞서 걷고 서화연이 반 걸음 뒤를 따랐다. 두 사람 사이로 오전 햇살이 길게 늘어졌다.
당직실 문을 열자, 탁자 위에 쌓인 순찰 기록부 몇 권과 찻잔 하나가 보였다. 벽 쪽 나무 걸이에는 야간 순찰용 초롱 세 개가 걸려 있었다.
탁자 앞에 앉아 있던 순찰조장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남자. 왼쪽 눈 밑에 오래된 흉터 하나가 깊게 패어 있었다.
“어젯밤 근무자, 정 포교입니까.”
이현이 의금부 경력패를 탁자 위에 올렸다. 순찰조장의 시선이 경력패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예. 인시부터 묘시까지였습니다.”
서화연은 탁자 왼편에 놓인 순찰 기록부를 집어 들었다. 사건 당일 야간 기록. 뒤표지 안쪽, 종이를 묶은 실 매듭이 한쪽만 풀려 있었다. 최근에 누군가 손을 댄 흔적이었다.
“기록을 누군가 건드렸소.”
서화연이 실 매듭 쪽을 이현에게 보였다. 정 포교의 어깨가 미세하게 경직됐다.
이현이 기록부를 받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인시에서 축시 사이 기록이 빠졌소.”
“그건… 기록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정 포교가 탁자 모서리를 한 번 쥐었다 놓았다.
“일부러 그랬소.”
이현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했다.
서화연이 물었다.
“인시에서 축시 사이, 어디를 순찰했습니까.”
“정해진 경로대로… 산대청 후원과 대비전 쪽입니다.”
“두 곳 사이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도 반 각이 걸립니다. 그런데 기록부에는 인시 말부터 축시 초까지 순찰 지점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서화연이 기록부를 탁자 위에 펼쳤다. 정 포교의 시선이 그쪽으로 떨어졌다.
“반 각이면 어디쯤이오.”
이현이 정 포교를 똑바로 보았다.
정 포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 만에 짧게 내뱉었다.
“대비전 쪽은… 돌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 키 차이만큼 그림자가 정 포교의 얼굴을 덮었다.
“의금부 경력 앞에서 경수소 순찰조장이 순찰 누락을 시인했소.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그걸로 조사는 끝나오.”
탁자 위 찻잔 속 찻물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 포교의 무릎이 탁자 다리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산대청 쪽에서… 머무르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기록으로 남기지 말고, 대비전 쪽은 돌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언을 전한 사람은… 순찰 시작 직전에 복도에서 만난, 내명부 소속 하급 상궁이었습니다.”
서화연이 숨을 짧게 들이켰다. 내명부. 은엽초의 이중 인장 전표가 떠올랐다.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펴졌다. 한 번, 두 번.
“찢긴 기록은 어디 있소.”
“폐기했습니다. 전언에…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지시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정 포교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대답은 분명했다.
서화연이 움직였다. 탁자 옆 서랍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정 포교가 손을 뻗으려다 이현의 시선에 멈췄다.
“산대청과 대비전 사이 거리를 방금 ‘반 각’이라고 말했소. 그런데 앞서 당신은 인시에서 축시 사이, 어떤 순찰 지점도 기록하지 않았다고 했소.”
서화연이 첫 번째 서랍을 닫고 두 번째 서랍을 열며 말했다.
“그 사이 산대청에 있었다면, 산대청 순찰 기록은 있어야 합니다. 없었다면, 어디에 있었는지 설명해야 하고요.”
정 포교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비전 쪽을 돌지 않았을 뿐, 산대청에는…”
“산대청 후원에서 시신이 발견된 시각이 인시 말입니다. 당신이 그 시간에 현장에 있었다면, 발견자는 당신이어야 했소.”
서화연이 서랍을 닫았다. 세 번째 서랍으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그런데 당신은 첫 순찰조의 발견 보고를 듣고 나중에 도착했습니다.”
이현이 정 포교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당직실 구석의 보관함으로 걸어갔다. 나무 상자 여러 개가 쌓여 있었고, 각각 경수소 날인이 찍힌 봉인이 붙어 있었다.
“기록 폐기함을 열겠소.”
봉인을 뜯자 정 포교가 몸을 움직였다. 이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막는 것은 증거 인멸의 현행이오.”
정 포교의 발걸음이 멎었다.
보관함 깊숙한 곳, 폐기 대기 중인 문서들 사이에 찢긴 종이 뭉치가 있었다. 이현이 조심스럽게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여러 조각이었다. 가장 큰 조각에 산대청 후원 동쪽 화단 근처를 지시하는 지도 표시가 남아 있었다. 작은 조각들에는 시간 기록 일부가 보였다.
서화연이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끝으로 종이 결을 더듬었다. 얇고 매끄러운 촉감.
“청원지가 아닙니다.”
이현이 다른 조각을 들어 불빛에 비췄다. 종이 뒷면에 물결 무늬의 저지 특유 자국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일반 저지로 기록한 뒤, 일부만 청원지에 옮겨 적었소.”
이현이 천천히 말했다. 청원지는 위조가 불가능한 종이였다. 묵 반응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애초에 청원지가 아닌 종이에 기록한 뒤, 위조가 필요한 부분만 청원지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정 포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서화연은 저지 조각을 다시 살폈다. 찢긴 모서리 중 한쪽이 깨끗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일부러 가위로 자른 흔적이었다.
“이 기록을 누가 찢었습니까.”
“저는… 순찰 누락만 시인했습니다. 종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 포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현이 저지 조각들을 한데 모았다. 서화연은 품에서 작은 천 주머니를 꺼내, 찢긴 면에서 떨어진 섬유 가루를 붓 끝으로 쓸어 담았다.
“섬유 샘플을 채취하겠습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 포교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정 포교. 의금부 경력실에서 추가 진술을 받겠소. 지금부터 하오.”
정 포교가 대답 대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현이 저지 조각 원본을 휴대용 문서함에 넣으며 말했다.
“이 조각들은 의금부 수사 물품으로 정식 등록하겠소. 서 검율, 사본은 검안실에서 보관하시오.”
서화연이 조각들의 사본을 작성해 자신의 기록낭에 넣었다. 섬유 샘플 주머니도 함께였다.
이현이 문서함을 닫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청원지 위조 불가 원칙은 알겠지만, 아예 다른 종이를 쓰는 방식은 생각하지 못했소.”
서화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에 남은 저지의 촉감이 아직 남아 있었다.
검안실 문을 열자 약재 냄새와 함께 어둑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오전 내내 비워져 있던 방이었다. 서화연은 기록낭을 내려놓고 촛불을 켰다.
저지 조각 사본들을 확대경 아래 놓았다. 종이 결이 또렷이 드러났다. 청원지 특유의 치밀한 섬유 구조와는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조각의 빈 여백에 희미한 먹 자국이 보였다. 육안으로는 거의 지워진 듯했지만, 확대경 너머로는 먹물이 종이 섬유 사이로 스며든 경계가 선명했다.
서화연은 확대경을 다른 각도로 돌렸다. 촛불 빛이 비스듬히 조각 위로 흘렀다.
그때였다. 먹 자국에서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일반 궁중 기록용 먹에서는 나지 않는 향이었다. 달콤함 속에 쓴 약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서화연은 숨을 멈췄다. 내명부 전용 먹의 특징. 상궁 이상만 사용이 허락된, 용뇌향을 섞은 특수 제품.
확대경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차가워져 있었다.
찢긴 기록을 쓴 자는 순찰조가 아니었다. 내명부 상궁이 직접 기록을 작성하거나, 최소한 그 먹을 사용할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조각에 글을 남겼다.
서화연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촛불이 한 번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