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11화

의금부 유치장 복도에 촛불 하나가 가늘게 흔들렸다. 이현은 심의 서류를 품에 안은 채 굳어 있었고, 서화연은 심수련이 남긴 말들이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현이 한 걸음 내디뎠다.

“심 상궁이 무슨 말을 했소.”

서화연은 은침 세트를 품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그를 똑바로 보았다.

“사적인 전언이었사옵니다.”

“사적.” 이현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서 검율은 지금 의금부 심의를 막 통과한 참이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내명부 상궁과 사적 전언을 나눌 여유가 있다는 말이오.”

“심의가 종결되었으니 사적 대화를 나눌 자격도 회복되는 것 아니옵니까.”

이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복도의 찬 공기가 두 사람 사이로 흘렀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가죽신이 돌바닥을 박차는 둔탁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이 경력 나리!”

하급 포교가 복도 모퉁이를 돌아 멈춰 섰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유치장입니다. 장서윤이… 쓰러졌사옵니다. 방금. 입에서 거품을…”

이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류를 옆 탁자 위에 내려놓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서화연도 그를 따랐다.

유치장 철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좁은 유치실 안. 촛불 두 개가 바닥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장서윤이 벽에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입술 주변으로 거품이 마르고, 손가락은 바닥을 긁은 듯 구부러져 있었다. 발목 근처에는 조그만 찻잔 하나가 굴러 있었다.

서화연은 찻잔 옆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 고인 진한 갈색 액체에서 익숙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은엽초. 확실했다.

이현은 문간에 서서 유치실 안을 훑었다.

“누가 마지막으로 봤소.”

“반 각 전입니다. 순시 돌 때만 해도 멀쩡히 앉아 있었사옵니다.”

“누가 출입했소.”

포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비전에서… 최 상궁 마마께서 오셨사옵니다. 면회 명목이라고… 저희가 거절하기 어려운…”

서화연은 장서윤의 손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 마디 사이로 검은 흙 같은 것이 끼어 있었고, 손목 안쪽엔 오래 굳은 살이 박여 있었다.

눈길이 멈췄다. 왼쪽 옷깃 안쪽. 은비녀가 꽂혀 있지 않았다.

서화연은 숨을 들이켰다. 안쪽 주머니에 손가락을 넣자 종이 한 장이 만져졌다. 접힌 종이를 꺼내 펼쳤다.

내명부 출입 전표였다. 날짜는 사건 당일, 입회 시간은 유시 말. 서명란에 찍힌 붉은 밀랍 인주가 번져 있었다.

그때였다. 장서윤의 입술이 움직였다.

서화연의 손이 멈췄다. 눈꺼풀이 떨리고 있었다. 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초점 없는 눈이 서화연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서화연은 귀를 그녀의 입술 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가져가… 가셨다.”

숨소리가 얇아졌다. 손가락이 바닥을 한 번 긁었다.

“은비녀… 가져가셨다…”

목에 걸린 숨결이 빠져나갔다. 눈동자가 멈췄다.

서화연은 손에 내명부 출입 전표를 든 채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은엽초 냄새가 좁은 방 안에 가득했다.

이현은 찻잔을 집어 들어 기울였다.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가 손수건으로 찻잔을 감싸며 말했다.

“은침 있소.”

서화연이 품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현은 손수건에 묻은 액체에 침을 살짝 담갔다. 셋을 세는 사이 은침 끝이 새까맣게 변했고, 검은색이 침 중간까지 번져 있었다.

“백미초가 아니오. 더 빠르다. 농도도 짙다.”

서화연은 내명부 출입 전표를 접어 품에 넣고 일어섰다.

“최 상궁은.”

“반 각 전에… 벌써 돌아가셨사옵니다. 유치실에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찻잔은 그때 있었소.”

“아닙니다. 들어가실 땐 아무것도 안 들고 계셨사옵니다. 나가실 때도…”

서화연은 장서윤의 왼쪽 옷깃을 다시 살폈다. 은비녀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작은 구멍만 남아 있었고, 천이 약간 눌려 있었다. 은비녀를 뽑아낸 지 얼마 안 된 흔적이었다.

그리고 바닥 구석, 짚단 아래 숨은 작은 종이쪽. 펴보니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겨우 하루 만에 끝나는군.'

익숙한 필체였다.

서화연은 쪽지를 접어 손바닥 안에 감췄다. 이현은 찻잔을 감싼 손수건을 포교에게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검시관을 부르시오. 유치장 출입 기록도 전부 확보해라.”

포교가 뛰어나가자 유치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이현이 서화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의 눈빛이었다.

“장서윤은 증인이었소. 유일하게 살아 있던.”

“이제는 유일한 증거가 사라졌습니다.”

서화연의 목소리는 낮았다. 품 안에서 내명부 출입 전표가 손가락에 닿았다. 그녀는 쪽지를 더 깊이 접어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현의 목소리가 잘 벼린 칼날 같았다. “내일 아침이면 최 상궁은 이 사실을 몰랐을 거요. 대비전도 마찬가지고.”

서화연은 은비녀가 빠진 옷깃의 작고 어두운 구멍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대비전은 은비녀를 가져갔습니다.”

그녀의 손이 주머니 속 도자기 조각에 닿았다. 대비가 폐비에게 보낸 협박 서신이 음각된 파편. 그리고 이제 장서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은비녀를 가져가셨다.'

서화연은 천천히 일어섰다.

“이제 사건은 단순한 독살이 아닙니다. 대비전이 증거를 없애고, 증인을 죽였습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서 접혔다 폈다.

서화연은 그 손을 보았다.

“경력 나리께서는 이 사실을 윤 판관께 보고하실 겁니까.”

이현의 손가락이 멈췄다. 촛불 하나가 심지 끝에서 타닥 소리를 내며 꺼졌다. 어둠이 한 뼘 더 다가왔다.

“보고한다.” 이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윤공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소.”

서화연은 그 말 속에서 의무와 판단 사이, 보고와 기대 사이의 균열을 읽었다.

“그렇다면 저는 제 방식대로 움직이겠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며 그녀가 말했다.

이현의 눈이 서화연의 소매 쪽으로 향했다. 쪽지와 출입 전표가 든 곳.

“무엇을 찾았소.”

서화연은 대답하지 않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신 곁을 돌아 지나갈 때, 장서윤의 굳은 손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짧은 손톱, 굳은살 박인 손가락.

유치장 복도로 나서자 더 깊은 밤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이현은 유치실 안에 남았다. 찻잔을 든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촛불 하나만이 그와 시신 사이를 지키듯 타고 있었다.

의금부 경력 집무실의 밤은 촛불 하나로 버텨지고 있었다.

서화연은 품에서 전표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내명부 출입 전표, 대비전 지밀상궁의 승인 도장이 선명했다.

“백미초. 지난달 초하루 대비전에서 반출. 사유는 훈증 소독이지만, 백미초는 훈증용으로 쓰기에 독성이 너무 강합니다.”

이현이 전표를 집어 들었다. 눈이 도장 위에 머물렀다가 내려갔다.

“내명부 인장이 없군. 내의원 인장만 찍혀 있고, 출입 기록도 독초 도감에 없다. 이중 인장 규정 위반입니다. 이 전표 하나로 대비전을 수사할 순 없소.”

“전표 하나가 아닙니다.” 서화연이 한 걸음 다가섰다. “야간 순찰 기록의 찢긴 해시 3각. 폐비 옛 거처의 백미초 자생 흔적. 별감이 알고 있던 은비녀 정보. 대비전 지밀상궁만이 기록 없는 약재 이동이 가능했다는 증언. 모두 연결됩니다. 대비전은 별감이 알던 무언가를 덮으려 했고, 백미초는 입막음의 도구였습니다.”

이현이 탁자 서랍을 열고 서한 한 통을 꺼내 내려놓았다. 의금부 도제조의 인장이 찍힌 봉인은 뜯겨 있었다.

“윤 도사의 지시요. 이 수사는 종결됐소.”

서화연은 서한을 집지 않았다. 대신 이현의 얼굴을 보았다. 서른이 채 안 된 종4품 경력의 얼굴에 체념이 스쳤다. 능력 부족의 체념이 아니었다.

“이유가 뭡니까. 윤 도사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

이현의 어두운 회색 눈동자가 움직여 서화연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묻지 마시오.”

칼날처럼 짧은 말이었다.

“서 검율도 더는 관여하지 마시오. 대비전은 이미 한 명을 입막음했소. 두 번째를 망설일 이유가 없소.”

“경고입니까.”

“충고요. 능력은 인정하오. 하지만 능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이 궁궐이오.”

서화연은 전표를 챙겼다. 이현은 말리지 않았다. 그가 촛불 쪽으로 몸을 돌리며 대화를 끝냈다. 서화연은 느꼈다. 이현이 숨기고 있는 것은 대비전의 명령이 아니라, 윤공과의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된 침묵이라는 것을.

익일 새벽, 내명부 기록 보관소.

서화연은 미명의 어스름을 틈타 서쪽 협문으로 접근했다. 문지기 상궁이 전표를 확인했다. “기록 열람은 한 시진, 필사는 탁본실에서만.”

보관소 안은 찬 기운이 감돌았다. 습기 방지용 석회 가루가 바닥을 희부옇게 빛내는 가운데, 목제 서가가 벽을 따라 줄지어 섰다. 서화연은 심수련이 알려준 위치로 직진했다. 세 번째 서가, 네 번째 칸. ‘내명부 물품 출입 대장 - 병신년’.

탁본실에 들어서 촛불을 켜고 기록부를 폈다.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좁은 방 안에 가득했다. 서화연은 손가락으로 줄을 짚으며 내려갔다.

을미년 시월 초이튿날. 은비녀 일점. 모란 문양.

순도 칠분. 폐비전에서 대비전으로. 사유는 문양 수리. 반환 기록 없음.

페이지를 넘겼다.

시월 보름. 은비녀 일점. 매화 문양.

지밀상궁 홍씨 사망으로 반납. 시월 스무날. 은비녀 이점.

국화 문양. 상궁 박씨 전출로 반입.

한 줄 한 줄이 궁녀들의 생애였다. 사망이 반납이 되고 전출이 반입이 되는 기록들.

그리고 그 끝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폐비 은비녀. 모란 문양. 순도 구분.

위치: 대비전. 비고: 반출 기록 없음. 촉탁(囑託) 도장.’

촉탁 도장. 물품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는 인장이었다. 이 은비녀가 단순한 분실품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닉되었음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서화연은 붓을 들었다. 필사본에 해당 줄을 옮겨 적는 붓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촉탁 도장 옆, 비고란의 여백에서 미세한 표시가 촛불을 받아 은은하게 반사되었다. 일반 묵이 아니었다. 용뇌향.

청원지에서 본 것과 같은 원리의 특수 잉크였다. 누군가는 이 은비녀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감추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감춤의 흔적마저 청원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기록해 두었다. 이현이 찾지 못하게 막혀 있는 기록. 그가 숨긴 것이 아니라, 그가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설계된 흔적.

서화연은 기록부를 덮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필사본을 품에 넣고 탁본실 문을 열었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가볍게 다가왔다.

심수련이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화연의 곁을 스쳐 지나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는 자신이 알려준 보관소를 서화연이 찾아왔음을, 그리고 무엇을 발견했는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소매 속 움켜쥔 무언가가 은은한 윤곽을 드러냈다.

서화연은 심수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돕는 것인가, 이용하는 것인가.

답은 아직 멀었다. 품 안의 필사본이 체온에 닿아 따뜻해졌고, 용뇌향의 흔적은 새벽 공기 속으로 가늘게 흩어지고 있었다.

은비녀 아래 진실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