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13화

의금부 청사 앞마당은 어둑했다.

종결을 알리는 북소리가 낮게 울린 지 한 식경. 마지막 행정관이 말을 타고 문을 나선 뒤로는 인적이 끊겼다. 석등의 불빛이 돌바닥을 간신히 비추는 가운데, 서화연은 문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이현이 계단을 내려왔다.

관복 차림 그대로였다. 허리띠의 은장식이 석등 불빛에 반짝였다.

서화연이 기둥에서 등을 떼며 낮게 불렀다.

“이 경력.”

이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사이에 석등 하나가 서 있었다. 불빛이 서화연의 얼굴 절반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에 묻혔다.

“잠시.”

서화연이 앞마당에서 옆쪽 복도 입구 쪽으로 턱짓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몇 걸음 사이를 흘렀다. 결국 그가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화연이 따라붙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벽을 따라 놓인 등롱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발소리가 나란히 울렸다가, 서화연이 멈춰 섰다. 이현도 섰다. 입을 열기 전, 손을 소매 속으로 넣었다.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천 너머로 작은 침통의 형태가 손바닥에 박혔다.

“오늘 오후.”

서화연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러나 복도의 고요를 가르기엔 충분했다.

“종결 선언 직전, 대비전에 증거물을 넘기셨을 때.”

이현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산대청 별감의 목격 기록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서화연이 한 걸음 다가섰다. 시선이 이현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이현의 눈은 복도 끝 어둠을 향했다.

손가락이 검지를 접기 시작했다. 서화연이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현이 손을 풀었다. 검지를 다시 접지 못하게 다른 손으로 감쌌다.

“왜 숨기셨습니까.”

질문은 평평했다. 감정을 실은 억양이 아니라 이미 답을 알고 던지는 형태에 가까웠다.

이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말이 나오는 대신 숨이 짧게 새어 나왔다.

“누구를 보호하는 겁니까.”

소매에서 손이 빠져나왔다. 은침 주머니를 쥔 채였다. 꺼내지 않고, 이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대비전의 소환 전갈이 왔을 때.”

목소리는 예상보다 낮았다. 복도 벽에 부딪혀 금방 사라졌다.

“이미 알고 있었소. 목격 기록의 존재를.”

서화연의 숨이 멎었다.

“원본은 내가 가져갔소.”

등롱의 촛불이 한 번 흔들렸다. 바람이 복도 끝에서 밀려들었다. 서화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하얘졌다.

“윤공입니까.”

이현의 얼굴 근육이 관자놀이에서 뛰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화연의 말이 빨라졌다. “대비전의 압력이 왜 이 경력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지, 왜 증거물 인계를 막지 못했는지 —”

“윤공입니다.”

이현이 말을 잘랐다. 짧고 단단한 세 음절이었다.

“7년 전, 폐비 사건 때.”

벽 쪽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등롱 불빛이 옆얼굴을 비추었다. 관자놀이에 난 흰머리 몇 올이 선명했다.

“나는 유배 직전이었소.”

서화연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이현이 계속했다. 여전히 낮았지만 군더더기가 없었다.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사건이 아니오. 증거가 있었는데도 수사가 엎어졌소.”

“누가 엎었습니까.”

“윤공이 살렸소.”

허리띠의 은장식을 쥐었다 놓았다.

“의금부에서 내 이름을 지우지 않고 유배 대신 정직으로 끝낸 것도 윤공이오. 그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여기 없소.”

복도에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은침 주머니가 천천히 내려가 소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소매 속에서 손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 빚 때문에.”

“목격 기록에는 산대청 별감이 폐비 사건 당일 본 것이 적혀 있소.”

이현이 마침내 서화연을 똑바로 보았다. 어둠 속에서 눈은 완전히 검었다. 회색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그 기록이 공개되면 윤공의 책임 문제가 불거집니다. 당시 별감의 증언을 묵살한 책임이.”

“그래서 숨기셨습니까.”

“숨겼소.”

짧은 인정이었다. 변명도, 미안함도 실리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톤이었다.

서화연이 눈을 감았다 떴다. 호흡을 한 번 다스렸다. 손톱이 소매 속에서 천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기록에 뭐가 적혀 있습니까.”

잠시 망설임. 검지가 다시 접히려다 멈췄다.

“별감이 그날 밤 대비전 쪽으로 향하는 인원을 목격했소.”

“누굽니까.”

“확인하지 않았소.”

눈이 가늘어졌다. “거짓말 마십시오.”

이현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벽에 등을 기댔다. 등롱 불빛이 흔들렸다.

“읽었소.”

“누구였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다시 어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더는 말할 수 없소.”

발소리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더는 말할 수 없는 겁니까, 말하고 싶지 않은 겁니까.”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검지가 마침내 접혔다. 느리게, 마지못해. 서화연이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폐비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말씀, 지난밤에 하셨죠.”

어깨가 올라갔다.

“그 말, 지금도 유효합니까.”

복도에 또 한 번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등롱을 흔들었다. 불빛이 일렁이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 위에서 흔들었다.

서화연은 기다렸다. 손을 내리지 않았다. 시선도 거두지 않았다.

이현이 입을 열었다.

“유효하오.”

“하지만 빚 때문에 손을 묶으셨다.”

“그렇소.”

“대비전의 명령에 따르셨다.”

“그렇소.”

두 번의 짧은 인정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고, 떨리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셨다. 한 글자씩 끊어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십시오.”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공식 수사는 접혔습니다. 대비전이 종결을 선언했고, 은비녀는 압수됐습니다. 이제 이 경력이 할 수 있는 공적 권한은 없습니다.”

소매에서 은침 주머니를 꺼내 손 안에 쥐었다. 검은 비단에 은실로 잣나무 문양이 놓인 낡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사적 조사는 가능합니다.”

눈이 은침 주머니에 닿았다. 잠시 머물렀다.

“저와 함께하십시오.”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거절할 여지를 두지 않았다.

“공식 수사가 아니라 사적 추적입니다. 이 경력이 가진 지식과 접근 권한이 필요합니다.”

이현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복도 끝에서 바람이 다시 밀려들었다. 촛불이 연이어 흔들렸다.

“내가 알지 못할 위험을 당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대비전이 개입한 살인 사건입니다. 증인은 살해당했고, 증거는 은닉됐습니다.”

은침 주머니를 다시 소매에 넣었다.

“위험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묻는 겁니다.”

검지가 천천히 펴졌다.

“당신에게 아무 보호도 제공할 수 없소.”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칼날처럼 정확했다.

이현은 그 말을 몇 번 곱씹는 듯했다. 눈이 복도 바닥을 훑었다. 발소리를 죽여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조건이 있소.”

서화연이 턱을 약간 들었다.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자를 조사할 때, 독단적으로 접근하지 마시오.”

“받겠습니다.”

“위험 감지 시 즉시 철수 보고를 하시오.”

“받겠습니다.”

“세 번째.”

이현이 서화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숨긴 기록과 관련된 판단은, 앞으로 제가 합니다.”

눈에 냉기가 스쳤다. 잠시 말하지 않았다. 복도의 어둠이 두 사람 사이를 더 짙게 메웠다.

“세 번째는 거절합니다.”

“그럼 이 조건부 동맹은 성립되지 않소.”

말은 단호했으나 표정은 아니었다. 서화연은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저 말은 협상이다. 떠보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물러설지 가늠하는.

“두 번째까지만 받습니다. 세 번째는 받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거리는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이 경력이 이미 한 번 숨긴 기록을 다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판단은 제가 합니다. 정보와 접근 권한만 주십시오.”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미동을 서화연은 놓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등롱의 촛농이 한 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작고 둔탁한 소리.

“좋소.”

이현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문서였다. 접은 종이. 청원지가 아닌 평범한 저지였다.

“사본이오.”

서화연이 손을 내밀었다. 이현이 망설였다. 문서를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원칙을 굽혔소. 증거를 숨겼소.”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갈라졌다.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내민 채 기다렸다.

문서를 건넸다.

종이가 손바닥에 닿았다. 가볍고 얇았다. 펼치지 않고 접은 상태 그대로 품에 넣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눈이 이현의 눈을 떠나지 않았다.

“목격 기록에 적힌 인물. 대비전 쪽으로 향했다는 그 사람.”

이현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폐비 사건 당일 밤에, 왜 산대청 별감이 그걸 보고서도 7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별감은 폐비 사건 이후에도 산대청에서 근무했습니다. 7년 동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야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직후에 살해됐습니다.”

품 속에서 도자기 조각이 담긴 작은 보자기를 스쳤다.

“당신은 별감이 왜 7년 만에 입을 열었는지, 누구에게 열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검지가 다시 접혔다. 이번에는 빠르게, 완전히 접혔다.

“알아내는 것이 이 조사의 첫 관문이겠군요.”

서화연은 더 묻지 않았다.

돌아섰다. 복도를 향해 두 걸음을 걸었다. 등롱 불빛 아래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이것이 마지막 거짓말이길 바랍니다.”

목소리만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이현은 벽에 기댄 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문서를 건넨 손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내렸다.

등롱의 촛불이 짧게 흔들렸다. 벽에 비친 얼굴이 일그러졌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처소로 향하는 길은 달빛조차 희미했다.

서화연은 회랑을 빠르게 걸었다. 품속에 세 개의 무게가 있었다. 왼쪽에는 은침 주머니. 오른쪽에는 도자기 조각을 감싼 보자기, 그리고 그 위에 방금 받은 목격 기록 사본.

손가락이 차가웠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양손을 소매 안에서 꽉 쥐었다.

대비전 쪽으로 향하는 인원. 이현이 입밖에 내지 않은 인물. 7년 전 그날 밤에 산대청 별감이 본 것. 그리고 7년 후 별감은 그걸 누군가에게 말했고, 죽었다.

심수련이 알고 있었다. 별감이 은비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도, 별감의 마지막 말 속에 단서가 있다는 것도.

발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심수련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단계적으로 흘렸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시험하듯, 유도하듯.

처소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등불을 켰다. 작은 불꽃이 방 안을 어둑하게 밝혔다.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을 깔았다.

품에서 세 개를 차례로 꺼냈다.

먼저 작은 보자기. 푸른 빛깔의 도자기 조각이 등불 아래서 희미하게 빛났다. 대비가 폐비에게 보낸 협박 서신의 음각. 조각을 탁자 왼쪽 위에 놓았다.

다음, 자색 끈이 달린 은엽초 약주머니. 낡은 비단에서 은은한 약초 냄새가 배어 나왔다. 오른쪽 위에 놓았다.

마지막으로, 방금 이현에게 받은 목격 기록 사본. 접힌 종이를 펼쳐서 가운데에 놓았다.

등불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기록의 첫 장을 펼치려는 순간.

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음색이었다. 부드럽고, 한 박자 느리게 말하는 버릇.

심수련이었다.

“폐비마마의 은비녀를 찾았다.”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눈이 문 쪽으로 급격히 향했다. 등불이 흔들렸다. 탁자 위의 세 단서 위로 불빛이 일렁이며 그림자를 번지게 했다.

문 밖의 발소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건네고, 기다리는 태도였다.

은비녀 아래 진실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