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25화

포졸들의 군화 소리가 폐가 문 앞에서 멎었다.

이현이 서화연의 손을 놓고 문고리를 잡았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들었다. 횃불이었다. 여섯 개.

“의금부 경력 이현이오.”

그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밖의 발소리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더니, 포졸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경력 나리. 윤도사님 분부로 서리 업서화를——”

“알고 있소.”

문을 열자 횃불이 얼굴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관복 차림이 아니었다. 평복에 검은 두루마기만 걸친 모습에 포졸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 안에 있소. 다만 체포하기 전에 윤도사님께 전할 말이 있소.”

포졸이 망설였다.

“나리, 저희는 명령을——”

“명령은 이 사람을 의금부로 데려가는 것이오. 막지 않겠소.”

이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서화연은 이미 탁자 옆에 서서 작은 보자기 하나를 쥐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포졸들이 안으로 들어서며 좌우로 갈라섰다.

새벽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의금부 대청 앞뜰.

서화연의 손목에 포승이 감겼다. 거칠게 당기지도, 느슨하게 묶지도 않은 매듭이었다. 고개를 들고 의금부 정문을 바라보았다. 동녘이 막 밝아오고 있었다.

포졸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잠시 멈추시오.”

이현이 의금부 정문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관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허리띠 은장식이 아침 빛에 반사되었다.

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 사람을 유치장에 넣기 전에, 이것을 보시오.”

두루마리를 풀자 포졸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대청 앞뜰을 지나던 서리 두 명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첫 번째 종이를 들어 올렸다.

청원지였다.

“이것은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대비전에서 폐비 서씨에게 내린 사약의 조제 기록이오.”

종이를 햇빛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이자, 아침 햇살이 청원지 표면을 스치며 먹물 사이로 푸른 기름기가 일었다. 섬유 깊숙이 배어든 묵의 흔적이었다.

“원래 이 기록은 ‘독초 혼합 탕약’ 조제를 위한 것이었소. 그런데 누군가 그 위에 ‘사약’이라고 덧썼소. 청원지는 아시다시피 먹물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종이.”

포졸장이 기록을 가까이서 살폈다. 얼굴이 굳어졌다.

이현이 두 번째 종이를 펼쳤다. 은비녀 탁본이었다. 한지 위로 은침으로 새긴 글자들이 그림자처럼 떠올랐다.

사약은 독초 청엽이었다. 조제자는 대비전…

끝부분은 은침이 미끄러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앞부분은 충분히 분명했다.

“이 탁본은 폐비께서 은비녀 안쪽에 직접 새기신 글자를 본떠 온 것이오. 글씨체는 폐비의 친필과 일치한다는 것을 규장각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소.”

대청 앞뜰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번졌다. 포졸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머뭇거렸다.

두 증거를 다시 말아 품에 넣으며 이현이 말을 이었다.

“이 증거들은 의금부의 정식 심의를 요구하는 문서와 함께 기록고에 등재할 것이오. 업서화는 이 증거들의 최초 확보자로서, 단순한 신분 위반 혐의보다 중요한 증인 신분을 가졌소.”

포졸장이 고개를 저었다.

“나리, 그래도 체포 영장은——”

“체포는 진행하시오.”

서화연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다만 경력 나리의 말대로, 저는 단순한 신분 위반자가 아닙니다. 폐비의 죽음에 관한 물증을 제출할 증인이기도 합니다. 유치장에 들어가더라도, 그 증거들은 제출된 상태로 남을 것입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포졸장이 이현을 바라보았다. 이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오. 절차대로.”

포졸들이 다시 움직였다. 서화연이 이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잠시 머물렀다. 말은 없었다.

이현은 두루마리를 단단히 쥔 채 그녀가 유치장 쪽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졸들의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대청 앞뜰에 있던 서리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대로 퍼뜨리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현도 알고 있었다. 오늘 안으로 이 소식이 대비전에 닿으리라는 것을.

기록고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낯익은 발소리가 들렸다.

윤공이었다.

도사 집무실 쪽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노장의 걸음은 평소보다 느렸다.

이현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도사님.”

윤공이 멈춰 섰다. 둘 사이로 아침 햇살이 길게 드리워졌다.

“자네, 방금 한 짓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대비전의 명으로 접수된 탄핵 상소를, 저것은 아직 정식 심의도 열리지 않은 문서를 가지고 나와——”

“증거를 제시한 것입니다.”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청원지는 의금부의 공식 기록 용지입니다. 그 위에 남은 위조 흔적은 의금부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사안입니다. 업서화의 신분 탄핵보다 이 증거가 먼저 심의되어야 합니다.”

윤공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늙은 손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버릇이었다.

“내가 자네에게 뭐라고 했나. 이번만은 나서지 말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빚을 갚을 때도 알고 갚아야지.”

눈빛이 차가웠다. 7년 전 폭우 속에서 귀양 가던 젊은 무관을 구해준 은혜를 두 사람 모두 떠올리고 있었다.

“7년 전, 내가 자네를 유배지에서 건져 올리지 않았으면 자네는 지금 의금부 경력이 아니라 어느 변방 초소에서 송장이 됐을 거야. 은혜는 이런 식으로 갚는 게 아니네.”

이현이 잠시 침묵했다.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폈다.

“도사님의 은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이번 건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이야. 특히 저 여자.”

윤공이 한 걸음 다가섰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자네가 저 여자 편에 선 순간, 나는 더 이상 자네를 감쌀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이현은 그 통증을 무시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는 건가.”

“그렇습니다.”

윤공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온기가 사라졌다.

“좋아.”

돌아섰다.

“오늘 안으로 대비전에 보고하겠네. 자네의 출신은 내가 감췄지만, 이제는 아니다. 대비전에서 직접 자네를——”

말을 끝맺지 않았다. 윤공은 그대로 집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이현은 뒷모습을 향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혔다.

윤공이 사라진 복도를 한참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청원지와 은비녀 탁본이 만져졌다.

기록고로 향했다.

밤이 찾아왔다.

유치장의 쇠창살 너머로 달빛이 기울어졌다. 서화연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포승은 이미 풀려 있었다. 유치장 안에서는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이 선 포졸의 배려였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군화 소리. 고개를 들었다.

이현이었다.

유치장 문 앞에 섰다. 손에 작은 등불 하나를 들고 있었다. 포졸이 문을 열고 물러났다.

“잠시 면회를 허락받았소.”

서화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거는 등재하셨습니까.”

“기록고에 정식 접수되었소. 내일 신시, 정식 심의가 열릴 것이오.”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자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비췄다.

“심의에서는 자네의 증인 자격을 먼저 다룰 것이오. 신분 위반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을 잘랐다. 눈빛이 차분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제 한 몸으로 증거를 모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죄가 있다면 받겠습니다.”

이현의 검지가 접혔다 폈다.

“이름이 뭐요.”

짧은 질문이었다. 서화연이 침묵했다. 등불이 일렁였다.

“진짜 이름이 뭐요.”

시선이 이현의 얼굴을 스쳤다.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서화연입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진짜 이름을 말한 것은.

“폐비 서씨의 이복 동생의 딸. 본명은 서화연.”

눈동자가 빛났다. 회색 기운이 도는 검은 눈이 깜빡이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소.”

서화연의 눈이 커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현이 말을 이었다.

“처음 검시 대필 기록을 보았을 때부터 의심했소. 서체가 폐비의 친필과 너무 닮았소. 폐비의 글씨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나는 어릴 적——”

말을 멈췄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옆구리 쪽으로 가다가, 다시 떨어졌다.

“이름을 지키겠다고 한 것은, 그 진짜 이름을 위해서였소.”

서화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바닥에 놓인 등불에 머물렀다. 불빛이 얼굴 절반을 밝고 어둡게 나누고 있었다.

“체포되기 전에 건넨 증거들…… 믿어도 되겠습니까.”

“반드시 심의에 올리겠소. 그것이 의금부 경력으로서의 나의 임무요.”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서화연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이 잠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감사나 신뢰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 대신,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심의 전에 심상궁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녀가 대비전 문서를 빼낸 일이 발각되면——”

“이미 조치했소.”

품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다. 심수련의 글씨였다.

“내명부 안에서 움직이고 있소. 최소한 며칠은 대비전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것이오.”

쪽지를 받아 읽었다. 짧은 내용이었다. 자신은 안전하며, 증거가 공개된 이상 대비전이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접어서 돌려주었다.

“심의 때…… 저는 유치장에 있을 것입니다.”

“증인으로 소환될 것이오.”

이현이 대답했다.

“유치장에서 대청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 동안이, 아마도 가장 위험한 순간이 될 것이오. 대비전은 증인의 입을 막으려 들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길은 내가 직접 호송하겠소.”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떨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만났다.

“이제 가보시오.”

그녀가 먼저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

이현이 물러났다. 포졸이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 쇠창살 너머로 뒤돌아 걸어가는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서화연은 벽에 등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심의가 열리면 다시 만난다.

그때까지 증거를 지켜야 한다.*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 비어 있었다. 중요 물건은 모두 이현에게 넘긴 뒤였다.

의금부 기록고의 촛불이 반쯤 줄어들 무렵.

이현은 기록고 깊숙한 서가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낡은 표지의 두꺼운 문서철이 들려 있었다.

을미년 시월. 폐비 서씨 검시 기록.

문서철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천천히 첫 장을 넘겼다. 촛불이 일렁이며 그림자를 벽에 흔들었다.

검시 기록은 짧았다. 사약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눈이 한 줄 한 줄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다 멈췄다.

왼쪽 갈비뼈 아래 찔린 상처, 깊이 두 치, 은침에 의한 것으로 추정.

손가락이 그 구절 위에 멈췄다. 탁자 위에 놓인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께.

바로 그 자리였다.

옆구리. 오래된 검흔이 있는 바로 그 자리.

무의식적으로 손이 그곳으로 올라갔다. 관복 아래로 만져지는 흉터의 질감. 열 살도 되기 전에 생긴 상처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비가 오거나 무리하면 욱신거리는, 이유를 모르는 상처.

그런데 폐비의 검시 기록에 같은 위치의 자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은침에 의한 것으로 추정.

은침. 폐비가 은비녀 안쪽에 진실을 새길 때 사용한 바로 그 도구.

숨이 멈췄다. 촛불이 일렁이며 얼굴 위로 그림자가 스쳤다.

검시 기록의 그 구절 아래, 종이의 결이 미세하게 달랐다. 누군가 이 장을 찢었다가 다시 붙인 흔적이었다. 손끝이 그 결을 따라 움직였다.

그 아래에 또 다른 기록이 숨겨져 있었을지도 몰랐다.

다음 장을 넘기려는 순간, 손이 멈췄다. 두 장의 종이가 얇은 풀로 붙어 있었다. 기록고의 불빛 아래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정교한 솜씨였다.

손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촛불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불빛이 붙은 종이 사이로 스며들었다. 두 겹의 종이 사이로, 희미한 글씨가 비쳤다.

아직 그 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폐비의 죽음은 단순한 사약 집행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감추려 한 자들은, 검시 기록마저 찢고 붙여서 위조했던 것이다.

천천히 문서철을 덮었다. 손이 옆구리 검흔 위에 멈춰 섰다.

좌측 갈비뼈 아래 자상.

같은 위치, 같은 깊이.

기록고의 촛불이 마지막으로 일렁였다. 덮은 문서철을 손에 쥔 채, 그 위에 다른 손을 얹었다.

밤은 아직 깊어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터였다.

은비녀 아래 진실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