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29화

바깥은 아직 어둑했다. 민가의 창호지 너머로 새벽빛이 겨우 스며들고 있었다.

서화연은 식은 재가 담긴 화로 옆에 앉아 은비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밤새 여러 각도로 기울여 봤다. 불빛에 비춰 보고 손톱으로 표면을 더듬어도 봤다.

은비녀의 바깥 면에는 폐비가 새겼다는 글자가 선명했다. 열두 획. 그녀는 이미 탁본까지 떠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그 안쪽이었다.

서화연이 은비녀를 귀 가까이 가져갔다. 살짝 흔들었다. 소리가 났다. 금속과 금속이 스치는 아주 미세한 떨림. 바늘 하나가 종이 위에 떨어지는 소리보다 작았다.

문이 열렸다. 이현이었다. 소매에 밤이슬이 묻어 있었다.

“주변은 조용하오.”

그가 서화연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시선이 그녀 손의 은비녀로 향했다.

“속이 비어 있습니다.”

서화연이 은비녀를 그에게 건넸다.

“흔들면 소리가 나요. 안에 무언가 들어 있어요. 문제는——”

그녀가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꺼내느냐는 겁니다.”

이현이 은비녀를 받아 불빛에 비췄다. 그의 손가락이 표면을 천천히 더듬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이음새가 있소.”

“어디에요.”

이현이 은비녀의 중간 부분을 손톱으로 가리켰다. 머리 장식 바로 아래, 문양 사이에 숨은 가느다란 선이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화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시선이 그가 짚은 선을 따라 움직였다.

“이걸 열려면……”

“무리하게 비틀면 안 된다.”

이현이 은비녀를 내려놓았다.

“금속편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서화연은 잠시 침묵했다. 손가락으로 무릎을 한 번 두드렸다.

“제작 방식을 알면 열 수 있어요. 어떤 장인이 만들었는지, 어떤 도구를 썼는지. 폐비의 은비녀는 예조에서 주관하는 공식 의장품일 테니, 제작 기록이 있을 거예요.”

“청원지에 있다.”

이현이 말을 잘랐다.

“의금부 기록고. 폐비 사건 관련 문서 더미 안에 은비녀 제작 발주 기록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오.”

“윤 도사가 관리하는 기록고 말이군요.”

서화연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 검지를 접었다 폈다. 두 번.

“거긴 지금 제가 접근할 수 없어요.”

“내가 간다.”

그가 일어났다.

“변장이 필요하오. 평상복과 가짜 신분 패. 당신은 여기 남아——”

“은비녀의 이음새를 더 살피죠.”

서화연이 그의 말을 이었다. 은비녀를 다시 손에 쥐었다.

“하지만 나리 혼자 기록고에 접근하는 건 무리예요. 누군가 내부에서 정보를 빼내야 한다면, 접촉할 인물이 필요합니다.”

이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벽빛이 그가 관복 아래 새로 봉합된 부위를 스치듯 비췄다.

“한 명 떠올랐소.”

그가 벽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의금부 서기실의 하급 서리. 성은 민가. 폐비 사건 당시 기록 정리를 담당했던 자의 조카요. 윤공의 감시망에서 약간 벗어나 있소.”

서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녀를 품에 넣으며 일어섰다.

“해 뜨기 전에 움직이셔야 해요.”

이현이 허리춤에서 평상복 보따리를 꺼냈다.

오전 무렵. 의금부 외곽의 낡은 주점은 한산했다.

이현은 무명 적삼에 낡은 전립을 눌러쓰고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식은 찻잔 하나. 수염을 붙이지 않았다. 그냥 전립의 각도를 낮춰 이마와 눈가의 그림자를 깊게 만들었다.

주점 문이 열렸다. 오십 대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소매가 닳은 회색 도포에 손에는 장부 한 권.

민 서리가었다. 약속은 사흘 전에 잡혀 있었다. 이현이 윤공과 대치하기 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미리 심어둔 연락책이었다.

민 서리는 이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찻잔은 시키지 않았다.

“경력 나리. 이런 데서 뵙다니요.”

이현이 낮게 말했다.

“묻겠소. 폐비 사건 기록. 의금부 사본은 지금 어디에 있소.”

민 서리는 잠시 망설였다. 손가락이 장부 표지를 쓸었다.

“……삼중 보관 체계입니다. 규장각에 원본, 내명부에 부본, 의금부에 사본. 그런데 사본은 지난달부터 별도 관리로 전환됐습니다.”

“별도 관리.”

이현이 되물었다.

“어디요.”

“기록고 깊숙한 곳. 특별 보관함이죠. 윤 도사께서 직접 열쇠를 관리하십니다. 접근하려면 윤 도사의 승인 전표와 의금부 당직관의 입회 서명이——”

“그건 알고 있소.”

이현이 말을 잘랐다.

“최근에 그 보관함을 열람한 자가 있소.”

민 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적어도 공식 절차로는요. 윤 도사께서 접근 제한 조치를 내리신 뒤로는 아무도——”

그가 말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주모는 주방에 있었고, 다른 손님은 없었다.

“하나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현이 기다렸다.

“요즘 의금부 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서씨 집안에 관한 겁니다.”

서화연의 성이 서씨였다. 이현의 눈빛이 반 박자 굳어졌다.

“어떤 소문이오.”

“마지막 아이.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민 서리가 손가락을 찻잔 가장자리에 대고 빙글 돌렸다.

“누가 퍼뜨리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소문으로 끝나지 않는 분위기요. 장내관 쪽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현은 오른손 검지를 접었다 폈다. 한 번.

“쪽지로 작성하시오. 들은 내용 전부를.”

민 서리가 품에서 좁은 종잇조각을 꺼냈다. 탁자 아래에서 빠르게 글씨를 썼다. 다 쓰고 나서 이현에게 건네지 않고 탁자 위 차 주전자 밑에 밀어 넣었다.

“일단 오늘은 이만. 너무 오래 있으면 위험합니다.”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찻값을 탁자 위에 놓으며 주전자 밑의 종이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동작 하나로 쪽지가 소매 안으로 사라졌다.

주점 문을 나서기 전, 그가 민 서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특별 보관함. 자물쇠 말고 다른 보안은.”

민 서리가 고개를 들었다.

“……청원지 검출관입니다. 보관함 문에 청원지 조각이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 열면 그 조각에 반응 흔적이 남습니다.”

이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주점을 나섰다. 소매 속 쪽지의 종이가 손바닥에 닿아 있었다. 먹 냄새가 채 마르지 않았다. 서씨 집안의 마지막 아이. 그 말이 그의 관자놀이를 울렸다.

이현이 의금부 관청을 나와 거처로 돌아왔을 때는 한밤중에 가까웠다. 소매 속 쪽지의 모서리가 손목 안쪽을 찔렀다. 그는 방으로 들어서지 않고 복도 끝 창가에 잠시 멈춰 섰다. 서화연이 있는 방의 문틈으로 얇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촛불 하나만 켜진 방 안이었다. 서화연은 이현이 밖으로 나간 뒤 한참 동안 은비녀를 손에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품 안에서 탁본의 종이가 아직도 식지 않은 온기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나서 품속에서 은침을 꺼냈다.

은비녀를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이음새. 심수련이 건넨 뒤 처음 확인했을 때부터 눈에 밟혔던 그 틈.

비녀 몸통과 봉황 머리 장식이 만나는 부분이었다. 보통 은비녀라면 이 부분이 완전히 접합되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이 비녀는 달랐다.

서화연은 왼손 엄지로 비녀 머리를 고정하고 오른손에 쥔 은침을 이음새에 조심히 밀어넣었다. 은침이 틈을 타고 들어갔다. 얕은 깊이에서 멈췄다.

무엇인가에 걸렸다.

서화연이 손의 힘을 더 줄였다. 은침이 바닥까지 닿기 전에, 쇠붙이가 쇠붙이에 닿는 미세한 진동이 침을 타고 손끝으로 올라왔다. 비녀 안이 비어 있지 않았다. 안쪽에 얇은 금속편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침을 살짝 돌리자 금속편이 밀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감각이 전해졌다.

그녀는 은침을 빼냈다. 너무 깊이 찔러넣으면 금속편이 손상되거나 비녀 안쪽으로 밀려들어갈 위험이 있었다. 꺼내려면 더 정밀한 도구가 필요했다. 의금부 검시실에 비치된 족집게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쓸 수 없었다.

서화연은 은비녀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이 비녀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라 기록 매체라는 확신이 비로소 증거를 얻은 느낌이었다. 안에 든 금속편이 폐비가 직접 남긴 것이라면, 그건 일곱 해 동안 아무도 읽지 못한 증언이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운 신발 소리. 이현이었다. 문이 열리고 그가 허리를 숙여 들어왔다. 평상복 소매에 먼지가 묻어 있었고, 숨결은 평소보다 약간 빨랐다. 오른손에 작은 쪽지 하나를 쥐고 있었다.

“의금부에 다녀왔소.”

그가 말하며 쪽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서화연이 일어났다.

“기록은.”

“윤공이 접근을 막았소. 폐비 사건 기록 전체를 특별 보관함으로 옮기고, 열람권을 도사 본인에게만 한정했소.”

이현이 촛불 앞에 앉으며 옆구리 봉합 부위를 손끝으로 살짝 짚었다.

“서리가 이걸 주고 가더군.”

그가 쪽지를 밀었다. 접힌 종이 조각이었다. 서화연이 펼쳤다. 해서체로 몇 글자만 적혀 있었다.

‘서씨 집안의 마지막 아이. 의금부 구내에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녀가 쪽지를 다시 접었다.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군요.”

“그렇소. 대비전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오.”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가 폈다.

“서화연의 신분을 의금부에서 문제 삼게 만들면, 그가 제시하는 증거는 모두 사문서로 격하되오. 재판에서 쓸 수 없게 만드는 거요.”

“대비전은 제가 증거를 쥐고 있다는 걸 안 겁니까.”

이현이 잠시 침묵했다.

“모를 리 없소. 장서윤의 독침에서 은엽초가 검출된 시점부터 알았을 것이오. 그리고 은비녀 탁본이 의금부 앞뜰에서 공개된 이상, 더 숨길 수도 없고.”

서화연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은비녀를 꺼내 촛불 아래 놓았다. 불빛이 은 표면을 비스듬히 타고 흘렀다.

“이현 나리. 비녀 안에 무언가 들어 있습니다.”

이현의 시선이 비녀에 고정됐다.

“확인한 거요.”

“예. 은침을 이음새에 넣어 확인했습니다. 안쪽에 얇은 금속편이 있으나, 무리하게 꺼내면 훼손될 위험이 있어 그대로 두었습니다.”

“금속편이라면.”

“기록입니다. 폐비께서 비녀 안쪽 면에 남기신 것과 별도로, 별도의 조각을 비녀 속에 감추셨을 가능성. 두 겹의 진실입니다.”

이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촛불 빛을 받아 잠시 회색으로 빛났다.

“비녀 겉면의 각자는 내명부 은장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소. 대비전에 압수당할 경우를 대비해 안쪽에 또 하나의 증거를 보관한 것이오.”

“대비전은 겉면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가짜를 만들 때도 겉면 문양만 복제했고.”

서화연이 말을 이었다.

“금속편을 꺼내려면 정밀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의금부 검시실의 족집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갈 수 없고.”

이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른손 검지가 두 번 접혔다 폈다.

“내가 아는 곳이 있소. 의금부에서 동북쪽으로 한 시진 반쯤 거리. 폐가인데, 거기에 작은 공방 흔적이 남아 있소. 원래 폐비의 시종이 숨어 살던 곳이오.”

서화연이 숨을 들이쉬었다.

“시종이.”

“20년 전에 죽었소. 그가 남긴 물품 중에 세공 도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소. 족집게나 핀셋 같은 것들.”

서화연은 촛불을 바라보았다. 폐비의 시종이 숨어 살던 폐가. 윤공이 접근을 막은 의금부 기록. 소문을 퍼뜨린 대비전. 그리고 은비녀 안에 감춰진 금속편.

“의금부에 들어온 것부터가 누군가의 계산이었을 가능성.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이현이 대답 대신 먼지 묻은 소매를 털었다.

“폐비는 언젠가 진실을 기록할 자가 찾아올 거라 예언했소. 그 예언을 실행한 자가 심수련이오. 그리고 그 자리에 서화연을 밀어넣은 것도.”

“그곳에 도착하면 저에 관해 더 알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서화연이 낮게 말했다. 이현이 일어났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하는 게 좋겠소. 추적대가 이 근처를 벗어난 지 반 시진밖에 지나지 않았소.”

서화연은 은비녀를 다시 품에 넣고 은침을 주머니 깊숙이 밀어넣었다. 탁본은 여전히 옷깃 안쪽에 접혀 있었다.

이현이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잠시 멈췄다. 벽에 걸린 낡은 피리집에 손을 뻗어 안쪽에 작은 보자기 하나를 집어넣고 품에 넣었다. 그의 옆구리가 움직임에 따라 봉합 부위가 살짝 당겨졌는지,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그곳을 짚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이 은신처 문을 나섰다.

바깥은 어둑어둑했다. 해가 완전히 진 것은 아니었지만, 좁은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라곤 희미한 노을뿐이었다. 서화연이 담장 너머를 살폈다. 인기척은 없었다.

이현이 앞장섰다. 그의 걸음은 조용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좁은 골목을 세 번 꺾고, 무너진 담장을 넘어 폐가들이 모여 있는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그때였다.

서화연이 뒤를 돌아봤다. 멀리서 불빛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횃불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셋, 아니 넷. 불빛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금 전까지 머물던 은신처 쪽.

이현도 보았다. 그의 손이 서화연의 팔꿈치를 짧게 잡았다.

“뛰시오.”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횃불의 빛이 무너진 담장 위로 스치기 직전, 그들의 그림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은비녀 아래 진실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