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30화

어둠 속에서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흙바닥을 스치는 소리, 돌부리에 채이는 소리, 그리고 다시 침묵. 무너진 담장을 세 개 넘고 골목을 다섯 번 꺾었다. 골목마다 쥐가 스치는 소리가 났고, 어딘가에선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달빛이 희게 부서졌다.

이현이 마침내 낮은 토담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골목 끝, 담쟁이덩굴이 담장을 반쯤 삼킨 집이었다.

“이쪽입니다.”

문짝은 반쯤 떨어져 있었고 지붕의 서까래 세 개가 드러났다. 바람에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이현이 문틀 옆 돌무더기에서 녹슨 철제 빗장을 꺼내 들었다.

손에 쥐자 녹 가루가 손바닥에 묻어났다. 안쪽에서 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잠그기 위한 용도였다. 빗장을 잠시 내려다보던 이현이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여기요?”

서화연이 물었다. 숨이 차 있었다. 가쁜 숨결 사이로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나왔다.

“잠시만.”

이현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그를 삼켰다. 어둠 속에서 잠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벽을 짚는 소리. 손끝으로 면을 더듬는 신중한 움직임이었다. 그런 다음 불꽃이 일었다.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부싯돌이었다. 작은 촛불 하나가 먼저 심지를 태우며 방 안을 밝혔다. 불빛이 벽에 닿자 방의 윤곽이 떠올랐다.

서화연이 뒤따라 들어서며 문틀을 잡았다.

“차갑네요.”

손바닥에 닿은 나무가 차갑고 거칠었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사방 여섯 자는 되어 보이는 거실 한가운데에 낡은 탁자가 놓여 있었고, 탁자 다리 하나는 벽돌로 괴어 있었다. 벽 쪽에는 찢어진 병풍이 기대어 있었다.

“이런 곳에......”

병풍의 비단은 빛이 바래 무늬를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마지막 폭에는 희미한 연꽃이 남아 있었다.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썩은 냄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마른 짚과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이 집이......”

“폐비의 시종이 마지막까지 머물던 곳이오.”

이현이 촛불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촛농이 탁자에 떨어져 굳은 자국이 여러 개 보였다. 누군가 이 자리에서 여러 번 촛불을 켰던 흔적이었다.

이현이 왼손으로 옆구리를 한 번 짚었다. 봉합 부위가 움직임에 당겨진 모양이었다. 손가락이 살짝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하지만 곧 손을 떼고 소매를 털었다. 무심한 척했지만 동작 사이에 짧은 호흡이 섞여 있었다.

“주인 없은 지 오래됐소. 경수소 순찰도 이 골목까진 오지 않소. 길이 너무 좁아서, 말 탄 자들은 아예 들어올 생각도 못 하지.”

서화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 한쪽에는 녹슨 촛대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공구함 비슷한 것이 놓여 있었다. 쇠망치, 펜치, 녹슨 못 몇 개가 담긴 나무 상자였다. 폐가라기보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폐허에 가까웠다. 누군가 한때 이곳에서 살았고, 무언가를 고치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떠났다.

“먼저 앉으시오.”

이현이 탁자 옆 자리를 가리켰다. 서화연은 대신 이현의 옆구리 쪽을 바라보았다. 촛불 빛이 야윈 턱선을 비추어 날카롭게 드러냈다.

“붕대를 확인해야 합니다. 도주 중에 열렸을지 모릅니다.”

“......알겠소.”

이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지 않았다. 탁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겉옷을 한쪽 어깨에서 벗겼다.

천이 벗겨지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속적삼 아래로 붕대가 드러났다. 피는 배어나오지 않았지만, 붕대의 매듭이 느슨해져 있었다. 매듭 끝이 건조하게 일어나 있었다.

서화연이 다가가 매듭을 풀었다. 손끝이 붕대를 감았던 자리를 따라 움직였다. 의원의 손이었다.

정확하고, 불필요하게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동시에 지나치게 서두르지도 않았다. 봉합 부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실밥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살갗이 상처를 감싸며 아물기 시작한 상태였다.

“괜찮소. 열리지 않았소.”

이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시선은 그녀의 손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서화연은 붕대를 다시 감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 눈이 잠시 상처의 위치에 머물렀다. 쇄골 아래, 심장 가까이. 폐비 검시 기록에 그려진 상처와 같은 위치였다.

같은 칼날이 만든 같은 모양의 흔적. 그녀는 붕대를 고르게 감아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매듭이 다시 풀리지 않도록 두 번 겹쳐 조였다.

손을 거두며 서화연이 물었다.

“환약은 가져오셨습니까.”

이현이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가 탁자에 닿으며 작고 단단한 소리가 났다. 안에 든 약봉지가 서로 스치는 소리였다.

“아직 필요 없소. 통증은 거의 가라앉았소.”

서화연은 주머니의 묶은 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끈은 단단히 조여져 있었고, 매듭은 정교했다. 직접 챙겼다는 증거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밖에서는 바람 소리만 들렸다. 낡은 집의 서까래가 바람에 미세하게 삐걱였다.

“이부자리를 확인하겠습니다.”

서화연이 일어나 방 안쪽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바닥의 먼지를 살짝 일으켰다. 병풍 뒤에는 옛날식 요와 이불이 쌓여 있었다.

좀먹은 곳이 있었지만 밤을 보내기엔 충분했다. 자세히 보니 좀먹은 구멍은 많지 않았고, 누군가 정기적으로 털어서 보관했던 흔적이 있었다. 그녀가 요를 끌어내 바닥에 펼쳤다.

먼지가 일었다. 촛불 아래에서 먼지가 춤추듯 흩어졌다.

이현이 탁자 앞에 앉아 쪽지를 펼쳐보고 있었다. 민 서리가 건넨 정보였다. 종이가 접힌 자국을 따라 닳아 있었다. 여러 번 접고 펼친 흔적이었다. 촛불 빛이 쪽지 위에서 일렁였다.

서화연이 요를 고르게 펴던 손을 갑자기 멈추었다. 바닥이었다. 장판이었다.

요를 편 곳 오른쪽 아래, 장판 한 귀퉁이가 다른 곳보다 살짝 들려 있었다. 겨울철 습기로 장판이 들뜬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가장자리가 마모되어 있고, 들린 각도가 부자연스러웠다.

촛불을 향해 각도를 바꿔보니 확연했다. 서까래 방향과도 맞지 않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떼어냈다가 다시 덮은 흔적이었다.

“이현 선배.”

서화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 톤을 즉시 알아차린 듯 시선이 즉각적으로 바뀌었다. 서화연이 손바닥으로 장판을 두드렸다.

다른 부분은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그 부분만 약간 빈 듯한 공명음을 냈다. 그녀가 손짓했다. 이현이 쪽지를 접어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움직임에 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장판 위로 드리웠다.

서화연이 손톱으로 들린 귀퉁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손톱이 마모된 나뭇결에 걸렸다. 장판 아래로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깊이는 두 치 정도였다. 그 안에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겉면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단단해 보였다.

상자 모서리마다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오래 손때가 묻은 물건이었다. 뚜껑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마름모꼴 사이로 별 모양이 박힌, 오래된 서씨 가문의 문양이었다. 별의 각 끝부분이 정교하게 파여 있었다.

서화연의 손끝이 문양 위를 스쳤다. 마름모꼴의 각진 선, 별의 뾰족한 꼭짓점.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임이 무척 느렸다. 마치 오래전 만졌던 질감을 확인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상자를 들어 올려 탁자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탁자가 상자의 무게를 받으며 작게 끊긴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무거운 상자였다.

“열겠소?”

이현이 물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서화연은 대답 없이 뚜껑을 열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경첩에서 마른 소리가 났다.

녹이 슬었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안쪽은 어두운 비단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비단은 검은색에 가까운 감청색이었고, 가장자리가 실낱같이 해어져 있었다. 그 위로 두 개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종이였다. 세 번 접힌 편지 봉투. 겉면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종이는 오래되어 상아색으로 바래 있었지만, 접힌 선은 선명했다. 다른 하나는 은제 잔 조각이었다.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깨져 있었고, 바닥 쪽에는 모란 문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모란 잎사귀가 세 겹으로 겹쳐진 문양이었다. 폐비의 처소에서 사용하던 은기물의 일부로 보였다. 잔 밑바닥에 새겨졌을 법한 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화연이 은제 잔 조각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깨진 가장자리가 손가락에 살짝 스쳤지만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이현의 시선이 그 조각에 머물렀다. 모란 문양의 세 잎 중 마지막 잎사귀에서 멎었다.

서화연이 조각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편지를 집었다. 접힌 것을 펼치는 소리가 방 안에 작게 울렸다. 종이와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지만 먹은 선명했다. 검은 먹이 여전히 또렷하게 붓자국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씨 집안의 마지막 아이는 살아있다.’

첫 줄이었다. 획이 굵고 단정한 해서체였다.

서화연의 손이 멈췄다. 손가락이 종이 가장자리를 살짝 움켜쥐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바람 화, 제비 연. 서화연. 이 기록을 쓰는 지금 여섯 살이다.

아이는 폐비의 사촌 오라버니 댁에 맡겨졌으며, 양육하는 자는 그 집안의 늙은 유모다. 만약 앞날이 어두워진다면 이 아이가 언젠가 의금부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아이에게 진실을 전하라.’

서화연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든 탓인지 불꽃이 잠시 기울었다. 벽에는 그녀의 그림자가 비껴 움직였다. 검은 비단 같은 눈동자에 촛불이 작게 박혔다.

“살아있다는 걸......”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낮았다. 말과 말 사이에 호흡이 길게 섞여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자가 있었습니다.”

이현이 편지를 건네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었다. 글자 위를 빠르게 이동하던 눈이 '진실을 전하라'에서 멈췄다.

마지막 줄에 닿았을 때, 오른손 검지가 탁자 모서리를 한 번 톡 쳤다.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손가락이 탁자에 닿을 때 작고 건조한 소리가 났다.

서화연이 말을 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편지의 첫 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의금부에 들어온 것이 심수련의 계획만은 아닐 거라 짐작은 했습니다. 하지만 아홉 살에 시작된 위장이, 여섯 살 때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면......”

목소리가 잠시 멎었다. 촛불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누군가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뜻이오.”

이현이 편지를 접으며 말했다. 손끝이 종이의 두께를 확인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종이를 살짝 비볐다.

청원지는 아니었다. 청원지 특유의 매끈한 광택이 없었다. 하지만 일반 한지도 아니었다.

섬유질이 촘촤하고 먹의 번짐이 적었다. 제법 비싼 종이였다.

“필체는.”

서화연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이미 답을 짐작한 듯한 침착함이 깔려 있었다.

“20년은 넘었소. 획의 모서리가 굳은 걸 보면 노년의 글씨. 붓을 꺾는 지점이 날카롭지 않고 완만하게 굳었소.”

이현이 편지 뒷면을 뒤집었다. 희미한 빛이 종이 섬유 사이에서 반사되었다. 촛불 각도를 비틀자, 종이 전면에 걸쳐 아주 얇은 은가루가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촛불을 비스듬히 기울이자 은가루가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은제 물건을 다루던 손이 종이를 만진 듯한 흔적이었다. 은가루는 지문의 소용돌이를 따라 번져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종이 섬유에 스며들어 있었다.

서화연이 그 흔적을 들여다보았다. 몸을 숙여 촛불 가까이 다가갔다. 은가루가 불빛에 반응하며 미세하게 빛났다.

“은가루.”

“누군가 이 편지를 은제 상자에 보관했거나, 은세공을 하던 손으로 만졌다는 뜻이오.”

서화연은 은제 잔 조각을 다시 집어 들었다. 깨진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살며시 비벼 보니 미세한 가루가 묻어났다. 같은 성분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폐비의 처소에서 사용하던 은기물 조각과, 폐비의 시종이 숨겨둔 편지가 같은 상자 안에 있었다. 같은 어둠 속에, 같은 침묵 속에, 20년을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조각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딸깍 울렸다.

“나를 아는 자가 대비 말고 또 있었습니다.”

이현이 편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표정은 굳어 있었다. 오른손 검지가 한 번 더 탁자 모서리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이 없었다. 손가락이 탁자에 머물러 있었다. 편지 뒷면의 은가루 흔적이 촛불 아래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마치 누군가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서화연이 손톱으로 들린 귀퉁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손톱이 마모된 나뭇결에 걸렸다. 장판 아래로 어두운 공간이 드러났다.

깊이는 두 치 정도였다. 그 안에 작은 나무 상자가
은비녀 아래 진실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