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아래 진실
34화
이현의 손가락이 검 손잡이에서 움직였다. 셋. 그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었다.
서화연의 눈이 어둠 속에서 그 손가락을 쫓았다. 바깥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다시 시작되었다. 넷.
서화연은 손을 뻗어 이현의 소매를 잡았다. 손가락으로 그의 손등 위에 글씨를 썼다. 水. 물.
이현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서화연은 이미 몸을 돌려 방 구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폐가의 부엌 바닥. 사흘 전 이곳에 처음 숨어들었을 때, 그녀는 바닥의 돌들이 다른 것보다 덜 고정된 것을 보았다. 돌과 돌 사이에 낀 흙이 최근에 파내고 다시 메운 흔적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짚었다. 손가락이 돌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들렸다.
아래로 좁은 공간이 있었다. 배수로. 빗물을 밖으로 빼던 옛 물길이었다.
이현이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움직임에 소리가 거의 없었다. 상처 입은 옆구리를 감싸지 않았다. 그의 손이 서화연의 손이 찾아낸 돌틈을 확인했다. 끄덕였다.
정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쪽에 움직임.”
“문을 부순다.”
이현이 서화연의 손목을 잡았다. 입구를 가리켰다. 그녀가 먼저 다리를 집어넣었다.
좁았다. 어깨가 돌에 긁혔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몸을 밀어 넣었다.
차가운 흙냄새가 올라왔다. 발이 무언가 단단한 것을 디뎠다. 수로 바닥이었다.
위에서 나무 문짝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충격. 이현이 그녀의 뒤를 따라 내려왔다.
체격이 큰 그가 더 힘들었다. 어깨가 돌에 끼었다. 서화연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천천히. 무리하게 잡아당기지 않았다. 상처가 찢어질 위험을 안 채였다.
이현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그의 손이 위로 올라가 돌을 원래 자리로 밀었다. 어둠이 완전해졌다.
두 번째 충격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문이 부서지는 소리. 여러 발의 발소리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서화연은 숨을 죽였다. 이현의 호흡이 그녀의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규칙적이었다.
수로 안의 물은 발목까지 찼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신발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떨지 않으려 했다.
위에서 발소리가 방 안을 훑었다. 탁자가 밀리는 소리. 문서철이 흩어지는 소리.
“아무도 없다.”
“뒷문. 바로 밖을 수색하라.”
발소리가 분산되었다. 일부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머지는 방 안에 남아 무언가를 뒤졌다.
서화연은 이현의 손을 찾았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이 닿았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방향을 그렸다.
동쪽. 폐가의 동쪽 담장 너머가 후원으로 이어졌다.
이현이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알겠다는 신호였다. 그가 앞장섰다.
허리를 굽혀 수로를 따라 이동했다. 물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걸음씩. 서화연이 그의 뒤를 따랐다.
수로의 폭은 점점 좁아졌다. 돌벽에 이끼가 끼어 미끄러웠다. 십여 보쯤 나아갔을 때, 앞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배수구. 철창이 쳐져 있었다. 이현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막대를 확인했다.
“녹이 슬었소.”
이현의 목소리는 거의 숨소리와 같았다. 그가 막대 하나를 잡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녹슨 철이 조용히 휘어졌다. 한 개. 두 개. 좁지만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이 만들어졌다.
이현이 먼저 밖을 내다봤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손을 들어 서화연에게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가 배수구를 빠져나왔다. 후원이었다. 잡초가 무성한 폐가의 동쪽 담장 밖.
적막했다. 추적대의 소리가 폐가의 서쪽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아직 이쪽을 수색하지 않았다.
서화연이 품 속의 문서들을 확인했다. 필사본. 한시. 은침 케이스. 모두 있었다.
그때였다.
금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날카로운 휘파람 같은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이현이 서화연의 어깨를 밀었다. 늦었다.
단검이 그의 왼쪽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 그가 비틀거렸다. 무릎이 풀이 깔린 땅에 부딪혔다.
서화연이 몸을 돌렸다. 이현의 손이 옆구리를 눌렀다. 손가락 사이로 어두운 액체가 번져 나왔다. 달빛 아래서 검게 빛났다.
“뒤에.”
이현이 힘겹게 말했다. 서화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이현의 상처에 고정되어 있었다.
왼쪽 갈비 아래. 똑같은 자리. 그가 어릴 적 입은 검흔과 정확히 같은 위치였다.
또 한 명의 추적대원이 담장 위에 올라서는 소리. “찾았다. 동쪽이다.”
서화연은 이현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그가 신음했다.
“포기하시오.”
“하지 않습니다.”
서화연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녀가 이현을 일으켰다. 그의 체중이 그녀에게 실렸다. 상처 난 옆구리에서 피가 그녀의 어깨 위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걷기 시작했다. 이현이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통증으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뒤에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서화연은 앞만 보았다. 후원의 서북쪽. 폐정자. 이현이 사흘 전 말했던 예비 은신처 중 하나였다.
나무 사이로 기왓골이 보였다.
다섯 걸음. 넷. 셋.
이현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쥐었다.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는 징후였다. 서화연은 이 사이로 숨을 들이쉬고 그의 체중을 더 단단히 받쳤다.
폐정자에 도착했다. 기둥이 기울고 지붕이 반쯤 무너진 작은 정자였다. 서화연은 이현을 기둥 아래 앉혔다.
그의 상의를 젖혔다. 단검에 찢긴 옆구리. 피가 계속 흘러 나왔다.
“침.”
이현의 목소리가 잠겼다. 서화연은 이미 품에서 은침 케이스를 꺼내고 있었다. 꿰매지 못한다. 실이 없다. 하지만 지혈은 할 수 있었다.
그녀가 가장 굵은 침 두 개를 꺼내 옆구리의 경혈을 찾았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검시관으로서 수백 번 해온 움직임.
한 침. 두 침. 피의 흐름이 느려졌다.
이현의 호흡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의 눈이 희미한 달빛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뒤따라오는 자들은.”
“아직 멀었습니다.”
서화연은 답하며 자신의 소매를 찢었다. 천을 길게 찢어 이현의 상처를 감았다. 단단히 조였다.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폐정자 안쪽.”
이현이 고개를 움직여 정자 구석을 가리켰다. “마룻바닥 아래로 공간이 있소.”
서화연은 마루판을 들어 올렸다. 좁았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이었다.
“먼저.”
그가 말했다. 서화연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먼저입니다.”
“피를 멈춘 자가.”
이현이 숨을 고르며 한 마디씩 끊어 말했다.
“남아서 막는 게 낫소.”
서화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옳은지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이현의 팔을 잡아 공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저항하지 못할 만큼 허약했다. 그녀도 따라 들어갔다. 마루판을 닫았다.
어둠 속에 누웠다. 어깨가 서로 닿았다. 이현의 호흡이 거칠었다.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폐정자 쪽이다.”
“찾아라.”
서화연은 눈을 감았다. 품 안의 문서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이현의 손이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목을 찾았다. 맥박이 느껴졌다. 빠르고 약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수색대의 발소리가 멀어진 뒤에도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현의 손이 그녀의 손목에서 풀렸다.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 있었다. 서화연은 어깨로 마루판을 밀어 올렸다. 달빛이 먼지 낀 정자 안으로 흘러들었다.
달빛조차 희미한 폐정자 안이었다. 서까래 세 개가 내려앉아 지붕 한쪽이 기울었고, 부서진 격자창 너머로 후원의 잡초 냄새가 스몄다. 바닥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어내자 오래된 널판지가 드러났다.
서화연은 이현을 기둥에 기대 앉혔다. 그의 왼쪽 옆구리에서 피가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상처를 싸맨 천이 이미 젖어 있었다.
“봐도 되겠소.”
이현이 짧게 답했다.
“하시오.”
서화연이 검시용 침낭을 풀었다. 작은 가위와 봉합실, 지혈용 천 조각이 차례로 드러났다. 술병은 없었다. 그녀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이현이 품 안에서 작은 청동 술병을 꺼내 밀었다.
“통증용. 아까운 건 아니니 쓰시오.”
서화연은 받아 뚜껑을 열었다. 술 냄새가 났다. 상처 주변을 적신 천으로 천천히 닦아냈다. 이현의 복근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더 하시오.”
서화연이 가위로 봉합실을 꺼내며 말했다.
“통증이 심하면 말을 해도 됩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만 바닥 판자를 짚었다. 손가락 끝이 하얘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서화연은 첫 바늘을 놓았다. 피부를 관통하는 저항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이현의 호흡이 한 번 깊어졌다.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
“폐정자 밖으로 나가는 길은 둘이오.”
서화연이 대답하지 않고 두 번째 바늘을 놓았다.
“뒷문은 샛길로 이어지고, 앞문은 후원 담장을 넘어야 하오. 추적대가 남쪽 폐사 쪽으로 물러나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움직이시오.”
서화연이 바늘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상관없소.”
이현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건조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만이 통증을 말해줄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바늘을 움직였다. 세 번째, 네 번째. 상처가 깔끔하게 닫혀갔다. 검시실에서 수없이 반복한 동작이 손에 익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봉합하는 살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섯 바늘 남았습니다.”
“알겠소.”
마지막 매듭을 지을 무렵, 이현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힘은 약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봉합을 멈추라는 뜻이었다.
“추적대가 물러난 뒤에도 기다리지 마시오.”
서화연은 손을 빼지 않았다.
“내가 언제 기다린 적이 있습니까.”
이현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놓았다.
“그랬소.”
서화연이 마지막 바늘을 뽑아 매듭을 조였다. 상처 위에 깨끗한 천을 덧대고 침낭을 정리했다. 이현의 얼굴에 핏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봉합 전보다 이마의 열이 올라 있었다. 손등을 이마에 대자 화끈했다.
“열이 오릅니다.”
“알고 있소.”
이현이 눈을 감았다 떴다. 시선의 초점이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서화연은 외투를 벗어 접어 그에게 건넸다.
“베개 대용입니다.”
이현이 받지 않았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약간 빗나갔다. 서화연이 직접 외투를 말아 그의 머리 뒤에 넣었다. 손이 스치는 순간, 이현이 낮게 중얼거렸다.
“…불이야.”
서화연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슨.”
“전부 탔소.”
이현의 눈이 감겼다. 의식은 완전하지 않았다. 말이 꿈속을 떠도는 듯했다.
“대들보가 무너지는 소리. 아무도 못 나왔소. 안에서.”
서화연은 숨을 죽였다. 그의 손을 찾아 손목을 짚었다. 맥박이 빠르고 가늘었다. 이현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내가 문을 열었어야 했소.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녀는 묻지 않았다. 대신 접은 천에 남은 술을 조금 적셔 그의 이마를 닦았다.
이현의 말이 점점 끊어졌다.
“기록이… 아버지가 남긴 기록만 있었소. 나머지는 다…”
목소리가 흐려졌다. 서화연은 그가 말한 단어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새겼다. 불.
대들보. 문. 기록.
아버지. 술이 식어가는 이마에서 증발했다.
바깥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멀리서 인기척이 다시 스치는 듯했지만 점점 멀어졌다. 추적대가 정말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현의 맥박이 조금 안정되었다. 열은 여전했지만, 호흡이 깊어졌다. 잠든 것이다.
서화연은 침낭 안에서 작은 붓과 종이 조각을 꺼냈다. 검시 기록을 필사할 때 쓰던 물건들이었다. 그녀는 몇 단어를 조용히 적었다.
대들보. 문. 기록. 아버지의 기록.
종이를 접어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이현의 손을 다시 찾았다. 손가락이 뜨거웠다. 봉합하는 내내 바닥을 짚느라 하얗게 질렸던 그 손이, 이제는 힘없이 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당신을 이곳에서 꺼내겠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말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뜨거운 열의 무게만이 손바닥에 남았다.
동트기 시작한 폐정자 바깥이 서서히 푸르게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