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42화

촛불 하나가 작업대 위에서 심지를 태웠다.

불빛이 닿는 범위는 좁았다. 은비녀 한 자루, 확대경, 작은 사기 그릇에 담긴 희석액. 그뿐이었다. 서화연은 소매를 걷어 팔뚝이 희석액에 닿지 않게 했다.

은비녀를 집었다. 금속편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작업실에서 확인했지만, 각인을 읽으려면 안쪽 면을 직접 봐야 했다. 확대경을 고정틀에 끼우고 은비녀의 중공 부분을 렌즈 아래 놓았다.

희미한 홈이 보였다. 그러나 촛불만으로는 획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미세했다.

서화연은 침낭에서 은침 하나를 뽑았다. 균열이 생긴 그 침이었다. 침 끝을 희석액에 담그고 천천히 저었다.

물에 옅은 청록색이 번졌다. 은엽초 부식 흔적이 우러난 색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폐비의 검시 기록 숨은 글자를 현출했던 기억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희석액을 적신 작은 붓으로 은비녀 안쪽 면을 한 번만 훑었다.

세 홈이 먼저 떠올랐다.

은(銀). 엽(葉). 초(草).

서화연의 손이 멈췄다. 숨을 천천히 내쉬고 다시 붓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녹색 빛이 홈을 따라 번지며 더 많은 글자가 드러났다.

은엽초. 그리고 이어서 짧은 문장.

「진실은 반드시」

다섯 글자에서 획이 끊겼다. 마지막 획은 힘없이 가늘어지다 사라져 있었다.

서화연은 눈을 깜빡이지 않고 그 끊긴 획을 들여다보았다. 폐비가 손끝 힘이 남아 있는 동안 최대한 새긴 자리. 심수련이 했던 말이 되살아났다. 획이 흐려지고 끊긴 곳마다 폐비의 숨결이 배어 있다고.

탁본지를 꺼내 젖은 은비녀 안쪽에 조심스럽게 밀착시켰다. 손가락 끝으로 종이를 가볍게 두드려 획의 깊이를 옮겼다. 종이를 떼어내자 은엽초 세 글자와 「진실은 반드시」가 먹빛으로 찍혀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었다.

탁본지를 옆에 펼쳐 말리는 동안, 그녀는 다시 확대경 너머로 각인을 보았다. 은엽초.

《독초 도감》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궁중에서 관리되는 모든 독초는 내의원 기록에 반드시 등재되어야 했다. 은엽초가 없다면, 애초에 조정의 허가를 받은 물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등재되지 않은 독으로 폐비를 죽였다는 증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낯선 익숙함이 목 언저리를 스쳤다.

은엽초.

그 이름을 전에 보았다.

탁본지가 바람에 살짝 들렸다. 서화연은 허리춤에서 작은 주머니를 풀었다. 자색 끈이 낡아 색이 바랬다. 심수련에게 받은 지 오래된 약주머니. 첫 만남에서 의금부 복도 구석에 서 있던 최상궁이 아무 말 없이 쥐여주고 사라졌었다.

약주머니 속에는 말린 약초 몇 조각이 들어 있었다. 서화연은 한 조각을 꺼내 촛불 가까이 들었다. 잎은 가늘고 길었으며 가장자리가 은빛 털로 덮여 있었다. 뒷면의 잎맥은 검푸른 빛을 띠었다. 손끝으로 누르자 은빛 털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심장을 먼저 멈추게 하는 독. 맥박이 끊어진 뒤에도 동공만은 오래도록 열려 있다고 했다.

서화연은 탁본지의 첫 석 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은. 엽. 초.

그리고 약주머니의 말린 잎을 탁본지 옆에 나란히 놓았다. 촛불이 한 번 흔들렸다.

심수련은 처음부터 증거를 건넨 것이었다. 폐비의 마지막 말이 담긴 은비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다. 내명부 약방에 개봉 도구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 최상궁은 한 번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서화연은 약주머니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자색 끈이 흘러내렸다. 정보를 대가로 거래하는 여자. 자기 안전을 먼저 저울질하면서도, 약주머니 하나만큼은 아무 대가 없이 건넸다. 그 심수련이 폐비의 지밀상궁이었다.

증거는 처음부터 품 안에 있었다.

서화연은 탁본지를 말리고 약주머니를 도로 허리춤에 묶었다. 은비녀는 형깊숙이 감싸 가슴께에 넣었다. 탁본지에 찍힌 「진실은 반드시」가 촛불 아래서 마지막으로 반짝였다.

폐비가 완성하지 못한 그 문장의 끝을, 이제 자기가 완성해야 했다.

새벽이 스며든 작업대 위로 촛농이 굳어갈 무렵, 그녀의 손끝은 탁본지 마지막 획을 더듬고 있었고, 등잔 기름 냄새 대신 아직 어둑한 공기 속 먼지 냄새가 목구멍을 간질였다.

문 바깥쪽에서 바람 소리가 멎었다. 심수련은 빈집 뒷벽의 헐거운 판자를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왔다. 치마 자락에 묻은 마른 흙조차 털지 않았다.

서화연은 촛불 하나만 켜둔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은비녀와 약주머니가 탁자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심수련의 시선이 은비녀에 닿았다. 걸음이 멎었다.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옷깃 안쪽을 짚었다가 내려왔다.

“전부 확인하셨군요.”

심수련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반음 낮았다. 탁자 건너편에 앉는 대신, 잠시 선 채로 서화연을 내려다보았다.

“약주머니 속에 든 것도.”

서화연이 약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자색 끈이 손목에 감겼다.

“은엽초입니다.”

심수련의 눈꺼풀이 한 번 움찔했다. 부정도, 변명도 없었다.

“네.”

한 글자였다. 서화연이 약주머니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에 겹쳤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소.”

심수련이 천천히 무릎을 굽혀 자리에 앉았다. 평소의 지나친 존칭은 온데간데없었다.

“처음부터였습니다.”

그녀의 오른손이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변색된 손가락 끝이 촛불 아래 드러났다.

“폐비마마께서 사약을 받으신 날, 제가 올린 탕약은 은엽초 달인 물이었습니다. 대비마마의 명이셨소이다.”

서화연의 손이 은비녀 위로 올라갔다. 금속편이 닿은 자리가 손바닥에 눌렸다.

“사약이 아니라 독초 혼합 탕약. 청원지 기록을 위조하기 위한 첫 단계였소?”

“예. 내명부 약방 기록에는 ‘백미초’라 적혔습니다. 기록보다 한 발 앞서, 마마를 죽이는 것이 그분들의 계획이셨소이다.”

심수련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마치 오래된 문서를 읽는 듯한 톤이었다. 서화연은 심수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최상궁께서 직접 올리셨소.”

“거절하면 제 목숨은 물론, 폐비전에 남은 마지막 사람들까지 사라졌을 것이옵니다.”

심수련의 시선이 은비녀로 향했다. 손가락이 살짝 들렸다가 다시 탁자에 닿았다. 스스로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동작이었다.

“마마께서는 탕약을 받으시고, 그 그릇이 빌 때까지 저를 보셨소이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상궁. 네가 이걸 올리는 것을 탓하지 않는다. 대신——’”

목소리가 갈라졌다. 심수련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갔다.

“‘대신 진실은 반드시 기록에 남겨라.’”

서화연의 손에 쥔 은비녀가 움직였다. 촛불이 금속편의 각인 위로 지나갔다.

“마마께서 은비녀를 뽑으셨습니다. 손끝 힘이 남아 있는 동안 속 금속편을 꺼내——” 심수련의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 획을 그었다. “여기에 새기셨소이다. 바늘로 찌르듯.”

서화연이 숨을 들이켰다.

“최상궁께서 그걸——”

“품에 넣어 나왔습니다. 대비전에서는 가짜 은비녀만 거두어 갔소.”

심수련이 소매를 여몄다. 천천히, 단단하게.

“이십 년을 품었습니다. 언젠가 이 각인을 읽을 자가 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서화연의 손이 약주머니를 움켜쥐었다. 자색 끈이 손가락 사이로 조여들었다.

“최상궁께서 검시관으로 저를 끌어들였소.”

“제가 했습니다. 대비전의 눈을 피해 의금부 겸직 명부에 서 검시관의 이름을 올린 것도, 약주머니 속 은엽초를 밀서로 보낸 것도.”

심수련이 고개를 들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정면으로 서화연을 응시했다.

“무엇보다도, 소녀가 살아 있음을 안 날부터.”

서화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비녀 각인과 약주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폐비의 마지막 진실을 쥐고 있으면서도, 이십 년간 침묵했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이오.”

짧은 질문이었다. 심수련의 입술이 얇게 벌어졌다.

“이제야 그 각인을 읽을 도구와, 그것을 받아들일 의금부의 눈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제 침묵이 더 길어지면, 폐비마마의 유언조차 사라질까 두려웠소이다.”

심수련의 손이 탁자 위로 올라왔다. 은비녀 바로 옆에 멈췄다. 닿지는 않았다.

“벌은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각인이 법정에서 읽히거든——”

“최상궁.”

서화연이 처음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벌은 나중 문제요. 지금은 증언이 먼저.”

일어나 벽 쪽으로 걸어갔다. 헐거운 마룻바닥 판자를 들어 올리자 작은 함이 드러났다. 서화연은 그 안에서 먹과 붓, 백지 한 묶음을 꺼냈다.

“지금 하신 말씀을 기록하겠소.”

심수련은 잠시 서화연의 손을 바라보았다. 붓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꺼이.”

서화연은 심수련의 진술을 한 자 한 자 받아 적었다. 대비의 명령, 은엽초 탕약, 폐비의 마지막 순간, 은비녀에 새겨진 각인의 내용. 심수련은 중간에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까지 받아쓰게 한 뒤에야 손을 내렸다.

“수결을.”

심수련이 붓을 받아 종이 끝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썼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묻은 먹물과 변색된 피부가 촛불에 번갈아 드러났다.

서화연은 마른 종이를 들어 은비녀 탁본과 약주머니를 함께 쌌다. 벽 아래 함에 넣고 판자를 덮었다. 손바닥으로 마룻바닥을 두 번 눌러 헐거워진 틈이 없는지 확인했다.

“대비전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더 늦으면 수상합니다.”

심수련이 일어났다. 치마 자락의 흙을 이번에는 손으로 털었다.

“공개 심리가 열리면——”

“증언하러 가겠소이다. 그게 제가 받아야 할 유일한 길이오니.”

심수련이 들어왔던 뒷벽 판자 쪽으로 걸어갔다. 나가기 직전, 잠시 멈췄다.

“이현 경력께서 구금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화연의 손이 멈췄다.

“의금부 안쪽에서도 대비전의 감시가 빈틈없습니다. 연락은——”

“방법을 찾겠소.”

심수련은 고개를 한 번 숙이고 판자 너머로 사라졌다. 발소리는 몇 걸음 만에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서화연은 함을 다시 열어 기록 묶음을 꺼냈다. 은비녀 탁본을 한 장 더 펼쳤다. 새로 준비한 백지 위에 탁본을 대고 붓으로 한 획씩 덧그렸다. 폐비의 마지막 각인 — 은엽초, 김 씨 장인의 독침, 그리고 끊긴 획.

마지막 글자가 완성되었다.

『진실은 반드시 기록에 남는다.』

탁본 사본을 들어 촛불에 비춰 보았다. 획이 끊기고 흐려진 자리마다 폐비의 숨결이 배어 있는 듯했다.

서화연은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동녘 하늘이 서서히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의금부 구금실의 이현은 이 새벽을 혼자 맞을 것이다.

손에 쥔 탁본을 보았다. 사흘 뒤 내명부 약방에서 청원지 기록과 대조할 것. 그전에 이 문장을 이현에게도 전해야 한다.

방법이 필요했다. 대비전의 포위망 너머로, 구금실 안으로.

서화연은 접은 탁본 사본을 소매 깊숙이 넣었다.

심수련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마치 오래된 문서를 읽는 듯한 톤이었다. 서화연은 심수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최상궁께서 직접 올리셨소.”

“거절하면 제 목숨은 물론,
은비녀 아래 진실4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