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45화

촛불이 반쯤 줄어든 빈 공방.

서화연은 증거 꾸러미를 풀었다. 은비녀 원본. 청원지 위조 증거 사본.

도자기 조각. 밤 순찰 일지 필사본. 네 개의 증거가 같은 날짜를 가리켰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이현이 벽 쪽에서 말했다. “경비 교대는 진시 초각.” “어디서——” “규장각 서리가 구금실에 두고 갔소.”

이현의 손목에는 아직 수갑 자국이 남아 있었다. “대비전 정문은 진시 정각에 열린다. 그 전에 후원 담장 쪽으로 가면——” “혼자 가겠습니다.”

이현의 걸음이 멎었다. “경력께서 함께 오시면 역모 혐의자의 탈주가 됩니다.” “알고 있소.” “그럼에도——” “그럼에도 가겠다는 뜻이오.”

서화연이 은비녀를 천천히 감쌌다. 이현이 소매 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대비전 배치도. 밤새 그렸소.” 서화연이 받아 소매에 넣고 증거 꾸러미를 다시 묶었다.

“경력께서는 대비전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심리가 열릴 때 증거를——” “이미 규장각 서리에게 제출했소. 야간 순찰 기록 원본. 위조된 청원지와 대조할 필적 견본. 그리고 내 출생에 관한 진술서.”

서화연의 손이 꾸러미 끈에서 멈췄다. “그걸 공개하면——” “알고 있소. 사흘 전 작업실에서 말했소. 진실은 멈추지 않는다고. 그 진술서에는 열한 살 때 폐비 마마께서 내 상처를 지혈해주셨다는 기록이 들어 있소.” 서화연은 더 묻지 않고 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진시 초각. 후원 담장.” “내가 먼저 가서 경비를 확인하겠소.”

이현이 문턱에서 잠시 멈추었다. “서화연. 돌아오시오.” 서화연이 허리를 숙여 깊은 목례를 올렸다. “반드시.”

대비전 정문 앞. 진시 정각.

서화연이 대전 마당으로 들어서자 최상궁 한 명이 즉시 길을 막았다. “오늘은 마마께서 외부 면회를 받지 않으십니다.”

서화연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의금부 검율 대리 서화연입니다.”

최상궁의 손이 허리춤의 호출용 작은 징으로 움직였다. 서화연이 은비녀를 꺼내 들자 천을 벗긴 은빛이 아침 햇살에 번쩍였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폐비 서씨의 은비녀입니다. 대비전 서화각에서 심수련 처소로 전달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반송 기록은 없습니다.” “네가 어찌——” “대비 마마께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청원지 위조 기록 사본도 함께 있습니다.”

최상궁이 빠른 걸음으로 정전 안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들라 하십니다.”

정전 안은 어두웠다. 대비는 측전의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서화연은 무릎을 꿇고 은비녀와 청원지 위조 증거 사본을 마룻바닥에 나란히 올렸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내명부 기록에는 백미초로 사약을 조제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비녀 안쪽 금속편에는 은엽초가 새겨져 있습니다. 궁중에서 관리하는 모든 독초는 내의원 기록에 등재되어야 합니다. 은엽초는 등재된 적이 없습니다.”

대비가 손을 들자 옆의 최상궁이 다가왔다. 그러나 대비는 손짓 하나로 물렸다. “다른 사람은 문밖에서 대령하라.”

최상궁이 물러나고 문이 닫혔다. 대비가 천천히 일어나 은비녀 쪽으로 다가왔다. “독초 도감에 없는 독을 사용하셨기에 위조가 필요했습니다. 사약 기록을 백미초로 바꾸고——” “그 은비녀를 누구에게 받았느냐.”

서화연은 청원지 사본의 위조된 글자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 “위조자의 필체는 최상궁의 것입니다. 마지막 획을 안으로 꺾는 습관.” “묻는 말에 답하라.” “심수련에게서 받았습니다. 이십 년 전 폐비의 지밀상궁. 마마께서 은엽초 탕약을 올리라 명하셨던——”

대비의 숨소리가 빨라졌다. “그년이. 그년이 끝까지.”

서화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진실은 반드시 기록에 남습니다. 폐비 마마께서 마지막 힘으로 은비녀 금속편에 새기셨습니다.”

대비가 은비녀를 집어 들고 중공 부분을 더듬었다. 금속편이 빠져나온 빈 공간에 손끝이 멈췄다. “열 글자. 은엽초. 진실은 반드시 기록에——” “됐다.”

대비가 은비녀를 내려놓으며 짧게 금속음을 울렸다. “이것만으로 심리가 열릴 거라 생각하느냐.” “청원지 위조 증거도 있습니다. 야간 순찰 기록 삭제 흔적도——” “증거는 심리 전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네가 오늘 여기 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대비가 손을 들었다. 창틀 너머로 그림자가 움직였다. “문을 걸어라.”

바깥에서 빗장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화연은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곧게 세웠다. “증거는 이미 의금부에 제출되었습니다. 규장각 서리가 야간 순찰 기록 원본을 보관하고——” “규장각 서리라면, 어젯밤 연행된 그 서리 말이냐.”

서화연의 손이 멈췄다. 대비가 천천히 돌아섰다. “증거 제출은 확인되지 않았다. 네 말대로라면 이 은비녀만이 유일한 증거로구나.”

대비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가 누구냐.”

서화연은 대답 대신 모자 끈을 풀었다. 관모가 벗겨지자 묶은 머리가 드러났다. “폐비 서씨 가문의 마지막 아이.”

대비의 숨소리가 멎었다. 서화연이 두 손을 마룻바닥에 짚고 깊이 엎드렸다. “서화연이라 합니다.”

대비전 밀실은 창 하나 없었다. 벽 네 면이 두꺼운 비단 휘장으로 덮여 바깥 소리를 완전히 차단했다. 서화연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 등 뒤에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무겁고 둔탁한, 쇠가 쇠에 닿는 소리.

대비는 밀실 중앙의 교의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서화연이 고개를 들었다. 대비의 눈이 서화연의 목덜미를 스쳤다. 옷깃, 어깨선, 그리고 다시 얼굴로.

“네 걸음걸이는 의금부에서 배운 것이 아니다. 내명부에서 어린 궁녀들을 훈련시킬 때, 걸음걸이만으로도 집안을 알 수 있다. 네 걸음은——서씨 집안의 것이다.”

서화연의 손이 소매 아래에서 살짝 굳어졌다.

“묵비권을 행사하겠소.”

“네 목소리도.”

대비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한 손만 들어 서화연의 관모를 가리켰다.

“남장을 한 여자의 목소리는 아무리 낮춰도 진짜 사내의 목청과 다르다. 네가 지금껏 들키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네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화연. 서씨 집안의 마지막 아이.”

서화연은 숨을 들이쉬었다. 떨리지 않았다.

“그렇소. 나는 서화연이오. 폐비 서씨의 조카딸. 전하께서 은비녀를 뽑아 진실을 새기시던 날, 살아남은 마지막 아이.”

대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서화연은 멈추지 않았다.

“대비마마께서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으셨을 터. 확인하셨으니, 이제 본론을 들려주시지요.”

대비가 천천히 일어났다.

“네가 가져온 물건들을 안다. 은비녀. 청원지 위조본. 도자기 조각. 그러나 그것들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역모를 꾸민 죄인의 소지품일 뿐.”

서화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청원지는 지울 수 없소.”

소매 안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 뭉치가 나왔다. 세 겹으로 접힌 청원지였다. 서화연은 그것을 받쳐 들고 대비 쪽으로 기울였다. 촛불 빛이 종이를 비스듬히 스치자, 글자 아래로 푸른 기름기가 떠올랐다.

“이것이 위조된 청원지의 묵 반응 흔적이오. 대비전 서화각에서 보관 중이던 폐비의 사약 집행 기록. 겉으로는 ‘백미초’라 적혀 있으나——원본은 ‘은엽초’라 쓰여 있었소. 누구도 청원지의 묵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없소. 대비마마께서도, 서화각의 최상궁께서도.”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촛불이 한 번 깜빡였다.

대비가 웃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네가 그 종이 한 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공개 심리에서 제출할 것이오. 은비녀의 각인. 위조된 청원지. 그리고 도자기 조각에 새겨진 협박 서신. 세 증거가 모두 대비마마의 지시를 가리키고 있소.”

“그것이 역모의 증거다. 네가 제출하는 모든 증거는, 서씨 집안의 마지막 아이가 꾸민 역모의 증거가 된다. 네 할아버지는 역적으로 죽었다. 네 고모는 폐비로 죽었다. 그 핏줄이 제출하는 기록을 누가 믿겠느냐.”

서화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개 심리를 요구하시오. 은밀히 처리할 수 없는 자리에서, 모든 기록과 증거를 대조하게 하시오.”

대비의 눈에 처음으로 다른 빛이 스쳤다. 분노도, 두려움도 아닌——계산이었다.

“좋다. 사흘 뒤. 대비전 정전에서 공개 심리를 열겠다. 네가 제출할 모든 증거와 기록을 그 자리에서 심리한다. 다만, 네 정체는 역모자로 공표한다. 서씨 집안의 마지막 아이, 남장을 하고 의금부에 잠입한 죄. 그리고 폐비의 억울함을 빙자한 역모죄.”

서화연은 고개를 바로 세웠다.

“그리하시오.”

문이 열렸다. 대비전 최상궁 둘이 양쪽에서 서화연의 팔을 잡았다. 팔꿈치 위를 단단히 움켜쥔 손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서화연은 밀실 밖으로 끌려나왔다.

대비전 정전 앞 마당은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서화연의 눈이 빛에 적응하기도 전에, 마당 건너편에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현이었다.

그는 대비전 서쪽 외벽 막바로 앞에 서 있었다. 허리에는 검이 없었다. 검은색 평복 차림에, 왼쪽 소매만 찢어져 있었다.

담을 넘다 찢긴 흔적. 그의 앞에 윤공이 서 있었고, 뒤로 의금부 무관 여섯이 반원을 그리며 벌려 섰다. 모두 허리에 패검을 찬 상태였다. 검은 띠로 관복 소매를 묶어 올린 것으로 보아, 출동 전부터 준비된 복병이었다.

서화연을 붙든 상궁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의금부 경력 이현. 대비전 무단 침입, 역모 혐의자 업서화와의 공모 혐의. 체포한다.”

이현은 윤공을 똑바로 보았다. 숨은 거칠었지만,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았다.

“증거를 제출하시오.”

“증거는 충분하다.”

윤공이 오른손을 들자 무관 둘이 이현의 양팔을 잡았다.

그 순간, 이현의 시선이 마당 건너편으로 옮겨져 서화연을 찾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거리는 스무 걸음 남짓. 서화연은 양쪽에서 상궁들에게 팔이 붙들린 채였고, 이현은 무관 둘에게 어깨를 눌린 채였다.

이현이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동작. 서화연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눈을 한 번 천천히 깜빡였다. 깜빡인 그 순간, 입술이 말 없이 움직였다. 사흘 뒤.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펴졌다. 단 한 번.

“압송하라.”

윤공이 등을 돌렸다. 무관들이 이현을 대비전 정문 쪽으로 돌려세웠다. 쇠사슬이 그의 손목에 감기는 소리가 났다. 이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상궁들이 서화연을 반대 방향으로 끌었다. 대비전 동쪽 협문 너머, 의금부 임시 구금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서화연은 걸음을 옮기며 한 번만 뒤를 돌아보았다. 이현의 등이 대비전 정문 밖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정전 처마 밑으로 한 뼘 더 기울었다.

의금부 임시 구금실은 대비전에서 백 보 거리도 채 되지 않는 낮은 돌채에 있었다. 서화연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등 뒤로 들었다. 좁은 방.

바닥에 짚단 한 묶음. 벽 한쪽에 쇠고리가 박혀 있고, 쇠사슬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아직 쇠사슬이 채워지지 않았다.

문 앞에 선 윤공의 그림자가 길게 방 안으로 들이밀었다.

“대비마마의 말씀을 전한다.”

윤공이 허리춤에서 밀지를 꺼내 펼쳤다. 붉은 인장——대비전 서화각의 도장.

“은비녀의 증거력을 없애라. 공개 심리 전까지, 저 물건이 심리장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서화연은 짚단 위에 앉아 윤공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이 대비마마의 명이면——공개 심리에서 직접 거부하실 일이오.”

윤공은 밀지를 다시 말아 품에 넣었다.

“네가 가진 은비녀는 어디 있느냐.”

서화연은 눈을 감았다.

“증거 꾸러미는 안전한 곳에 있소. 나와 함께 이 구금실에 있지 않소.”

윤공의 손가락이 허리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잠시 침묵. 그리고 윤공이 뒤돌아섰다.

“사흘 뒤, 네 증거는 심리장에 도착하지 않는다. 명심해라.”

문이 닫혔다. 빗장이 걸리는 소리. 발소리가 멀어졌다.

서화연은 짚단에 등을 기댔다. 천장의 돌 틈 사이로 가느다란 빛 한 줄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 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센다.

첫째 날 밤. 둘째 날.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입술이 다시 한 번 말 없는 모양을 그렸다. 진실은 반드시 기록에 남는다.

밖에서는 의금부 하급 서리가 구금실 문 옆에 나무 방을 거는 소리가 났다. 공개 심리 개최. 사흘 뒤 진시 초각. 대비전 정전.

대비전 정전 앞 마당은 정오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서화연의 눈이 빛에 적응하기도 전에, 마당 건너편에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현이었다.

그는 대비전 서쪽 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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