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녀 아래 진실
49화
민 판사가 진행관에게 붓을 들게 했다.
심리청 동쪽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증거 제출대 위 은비녀, 청원지, 그리고 증인석의 심수련을 한꺼번에 비추었다. 먼지가 천천히 떠돌았다.
심수련이 심리청 중앙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어린 소녀를 닮은 음색이 정적을 갈랐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밤이었사옵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약간 떨렸다. 변색된 손끝이 햇빛 아래 더욱 선명했다.
“대비마마께서 소신을 서화각으로 부르셨사옵니다. 탕약 그릇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거짓이다!”
대비가 의자 등받이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이년이 감히 대비전을——”
“증언을 계속하시오.”
판사의 목소리가 대비의 고함을 잘랐다. 건조하고 낮았다.
“심리 방해는 기록됩니다.”
대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상석 뒤편에서 무관 넷이 움직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이현이 그 앞을 막아 선 자리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심수련이 고개를 들었다.
“마마께서 말씀하셨사옵니다. ‘은엽초 탕약이니 두 시간 안에 폐비 처소에 올리도록.’ 탕약 그릇을 소신의 손에 직접 쥐여주셨사옵니다.”
진행관의 붓이 종이를 스쳤다. 기록하는 소리만 심리청에 남았다.
“소신은 그 탕약을 받들고 폐비의 처소로 향하였사옵니다. 마마께서는 이미——”
심수련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스무 해를 삼켜온 말이 목에 걸린 듯했다.
“마마께서는 사약이 온 줄 아셨사옵니다. 탕약 그릇을 받으시며 ‘대비마마께서 마지막 은혜를 베푸셨구나’ 하고 말씀하셨사옵니다.”
배석석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서화연은 증거 제출대 옆에 서서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은비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수련이 계속했다.
“그러나 마마께서 탕약을 드신 후, 두 시간이 지나도록——”
“입을 닥쳐라!”
대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 상궁은 스무 해 전 내명부에서 쫓겨난 자다. 폐비에게 원한을 품고——”
“독이 빨랐사옵니다.”
심수련이 대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호박색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으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은엽초는 심장을 먼저 멈추게 하는 독. 맥박이 끊어진 뒤에도 동공만 오래 열려 있사옵니다. 마마께서 마지막으로 소신을 보실 때, 두 눈은——”
한 방울이 심수련의 뺨을 타고 흘렀다.
“끝내 감겨지지 않으셨사옵니다.”
심리청이 조용해졌다. 창 밖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서화연이 눈을 감았다. 폐비의 마지막 얼굴을 본 적 없었다. 그러나 심수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세웠다.
대비가 숨을 몰아쉬었다.
“증거가…… 증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언제 이런 상궁에게——”
“증거는 있사옵니다.”
심수련이 품속에서 자색 끈이 달린 약주머니를 꺼냈다.
“마마께서 숨을 거두신 후, 소신은 탕약 그릇에 남은 찌꺼기를 긁어모았사옵니다. 스무 해 동안 이 주머니 속에 보관하였사옵니다.”
증거 제출대 위에 약주머니를 올려놓았다.
“내의원 감정을 청하십시오. 은엽초 흔적이 확인될 것이옵니다.”
진행관이 주머니 위에 증거 번호를 적은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심수련이 서화연을 돌아보았다. 호박색 눈동자가 은비녀에 닿았다.
“마마께서 숨이 끊어지기 전, 소신의 손을 잡으셨사옵니다. 품에서 은비녀를 뽑아 건네시며——”
목소리가 한 옥타브 가라앉았다.
“이 안에 진실이 있다. 반드시 찾아올 자가 있을 테니, 그 자에게 전하라고 하셨사옵니다.”
서화연의 손에서 은비녀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금속편에 새겨진 글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은엽초.”
서화연이 읽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진실은 반드시——”
끊긴 획의 끝이 어머니의 마지막 숨결을 닮았다.
대비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민 판사가 손을 들었다. 심리청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증인 심수련의 증언 속행을 명합니다.”
그는 서화연이 든 은비녀를 가리켰다.
“은비녀 내부 각인은 이미 심리청에서 확인된 바 있다. 탕약 찌꺼기 감정 결과와 은비녀 각인이 일치할 경우, 이는 폐비 서씨의 사인이 은엽초 독살임을 입증하는 물증이 된다.”
“그러나——”
대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시선은 여전히 증인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상궁의 말뿐이다! 내가 언제 그런 명을——”
“증언의 신빙성은 이제부터 검증합니다.”
판사가 진행관에게 눈짓했다. 진행관이 문서 한 묶음을 들었다.
“심리청에 보관 중인 제7호 증거—— 의금부 경력 이현이 제출한 산대청 별감 목격 기록 원본을 개시합니다.”
이현이 앞으로 나섰다. 손목의 수갑 자국이 붉게 부어 있었다. 배석석 앞에서 민 판사에게 목례했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밤, 해시와 자시 사이였소.”
이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심리청 구석까지 닿을 만큼 낮게 울렸다.
“산대청 별감은 순찰 중에 한 인영을 목격했소. 대비전 서화각 방향에서 폐비 처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인—— 내명부 상궁으로 보이는 인물이었소.”
문서를 펼쳤다.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소. ‘대비전 상궁의 복색을 한 자가 처소 담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손에 탕약 그릇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었다.’”
진행관이 문서를 받아 심리청 중앙에 올렸다.
대비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심수련이 천천히 고개를 꺾어 대비를 올려다보았다.
“그 탕약 그릇을 든 자가 바로 소신이옵니다. 마마께서는 소신의 얼굴을 모르실 리——”
“증인.”
서화연이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증언만 계속하시오. 무엇을 들고 갔는지, 누가 보냈는지.”
심수련의 시선이 서화연에게로 돌아왔다. 눈물이 마른 자국이 반짝였다.
“대비마마께서 ‘폐비에게 전하라’ 하신 탕약을 들고 갔사옵니다.”
“그 탕약의 이름은?”
“은엽초 탕약이옵니다.”
“기록을 대조하겠소.”
서화연이 증거 제출대로 걸어갔다. 청원지 세 묶음을 차례로 펼쳤다. 의금부 기록, 규장각 기록, 내명부 기록—— 사약 조제에 관한 세 개의 공식 문서였다.
“진행관. 촛불을 비추어 주십시오.”
진행관이 촛대를 증거대 옆으로 옮겼다. 서화연이 첫 번째 청원지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의금부 기록——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폐비 서씨에게 하사할 사약 조제 기록.”
촛불 아래에서 청원지 표면이 빛났다. 묵 글자들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백미초 세 냥’이라 적혀 있소.”
두 번째 장을 겹쳤다.
“규장각 기록. 같은 날짜, 같은 조제 기록입니다.”
세 번째 장—— 내명부 기록을 들었다. 다른 두 장보다 종이가 약간 누렇게 변해 있었다.
“내명부 기록.”
서화연이 종이를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묵 글자들 사이로 푸른 기름기가 번졌다. 각도가 기울어질 때마다 원래 적혀 있던 글자들이 유령처럼 떠올랐다.
“‘백미초 세 냥’이라 적혀 있으나——”
종이를 더 기울였다. 숨을 멈춘 심리청 안에서, 묵 글자 아래로 더 짙은 푸른 흔적이 드러났다.
“‘은엽초.’ 이 글자가 먼저 적혔소.”
진행관이 움직임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민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증거대로 다가왔다.
“푸른 기름——”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청원지의 특성이다. 한 번 기록된 것은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덧쓴 글자 아래 원래 묵이 남아——”
대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내명부 기록이 위조됐소. 대비전 소관 문서입니다.”
대비의 손이 의자 등받이에서 미끄러졌다. 서화연의 손에 들린 청원지와 은비녀 사이로 시선이 오갔다.
“누군가…… 누군가 위조한 것이다! 그 상궁이——”
“위조자의 필체도 확인됐소이다.”
심수련의 음성이 증인석에서 울렸다.
“청원지의 ‘백미초’라는 세 글자. 마지막 획이 안으로 꺾이고, ‘을’자의 첫 획이 길게 빠졌사옵니다. 서화각의——”
“닥쳐!”
대비가 비명을 질렀다. 그 자세 그대로 벌떡 일어나 증인석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년이! 스무 해 전 내가 살려준 것을——”
“전하께옵서 그리 명하셨사옵니까.”
심수련의 음성은 평온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묻는 듯한 어조였다.
“소신을 살려두라고. 아니면 은비녀가 어디 있는지 알게 하지 말라고.”
대비의 걸음이 멎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소신은 스무 해 전, 전하의 밀지를 받들었을 뿐이옵니다.”
심리청 전체가 숨을 멈췄다.
서화연이 움직임을 재개했다. 청원지 세 장을 가지런히 포개어 증거 제출대 왼쪽에 두었다. 그 위에 은비녀를 올렸다.
그리고 품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오래된 종이였다. 접힌 자리가 닳고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했다. 편지를 펼쳐 들었다.
“심리청에 제출하는 아홉 번째 증거.”
목소리가 심리청을 가로질렀다.
“폐가에서 발견된 편지. 발신인은——”
잠시 멈추었다. 심수련을 바라보았다.
“전 내명부 지밀상궁 심수련.”
심수련이 눈을 감았다. 변색된 손끝이 약주머니 위에 얹혀 있었다.
“수신인은 폐비 서씨의 딸.”
심리청 여기저기서 숨소리가 들렸다. 배석석의 관료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번졌다.
“‘서씨 집안 마지막 아이의 생사가 의심스럽다. 살아 있다면 의금부 검시관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모든 증거는 그 아이의 손에——’”
서화연이 편지를 내렸다.
“이 편지는 심수련이 쓴 것입니다. 필적 대조를 청합니다.”
진행관이 편지를 받아 증거대 위에 올렸다. 이미 제출된 청원지와 나란히 놓였다. 편지의 마지막 획이 안으로 꺾여 있었다.
“그리고——”
서화연이 심리청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양손을 허리춤에 모으고 배석석과 상석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소신은 폐비 서씨의 조카딸. 서화연입니다. 업서화라는 이름으로 의금부에 들어가 2년간 검시 대필을 맡아 왔습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민 판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인이…… 검율직을?”
“죄를 받겠습니다.”
서화연은 허리를 곧게 세웠다.
“다만 죄를 묻기 전에 이 증거들을 확인하십시오. 은비녀에 새겨진 ‘은엽초’라는 세 글자—— 청원지에 숨은 푸른 기름 묵—— 그리고 이 편지.”
손을 들어 은비녀를 가리켰다.
“스무 해 전 오늘, 폐비께서는 침묵 속에 사라지셨습니다. 사약을 받았다는 거짓 기록이 사건을 덮었습니다. 오늘——”
서화연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다.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었다.
“그 거짓을 바로잡으러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심리청 북쪽 문이 열렸다.
규장각 서리가 청원지 원본철을 들고 들어왔다. 그 뒤로 내명부 기록 담당 상궁이 이체자 대조표를 받쳐 들었다. 의금부 검시관 두 명이 탕약 찌꺼기 감정 도구를 증거대 옆 탁자에 올렸다.
민 판사가 붓을 들었다.
“증거 검증을 시작한다. 첫째, 은비녀 내부 각인과 청원지 은엽초 묵 흔적 대조——”
진행관이 촛불 각도를 조절했다. 내명부 기록 아래에서 푸른 빛이 더 선명하게 올라왔다.
“——일치를 확인.”
판사가 두 번째 항목을 읽었다.
“둘째, 산대청 별감 목격 기록과 증인 심수련의 시간대 대조. 해시와 자시 사이—— 증인의 진술 시간과 일치.”
붓이 종이를 스쳤다.
“셋째, 탕약 찌꺼기 감정. 은엽초 흔적이 확인될 경우——”
잠시 뜸을 들였다. 대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폐비 서씨의 사인은 사약이 아닌 은엽초 독살로 확정된다.”
대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약간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소리치지 않았다.
의금부 검시관이 탕약 찌꺼기를 작은 접시에 덜어 은침을 담갔다. 은침을 꺼내 들자 침 끝에서 청록색 부식 흔적이 번지기 시작했다.
“은엽초 반응입니다.”
검시관의 목소리가 심리청에 울렸다.
“사약에 쓰인 백미초는 은과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 부식 흔적은——”
대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오직 은엽초뿐입니다.”
민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리청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붓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폐비 서씨는 대비전의 명으로 은엽초 독초에 중독되어 사망하였음이——”
심리청을 둘러보았다.
“은비녀 내부 각인, 삼중 청원지의 묵 반응 흔적, 탕약 찌꺼기 감정, 별감 목격 기록, 증인 심수련의 증언으로 입증되었소.”
민 판사가 대비를 향했다. 얼굴에는 노여움도 만족감도 없었다. 오직 절차의 무게만 있었다.
“대비마마께서는 증인 심수련에게 은엽초 탕약을 조제·전달할 것을 지시하시고, 사후에 삼중 기록 중 대비전 소관 청원지를 위조하여 사약 집행으로 조작하셨소. 이상——”
붓을 든 진행관의 손이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세 가지 물증과 두 가지 증언의 교차 검증이 완료되었소.”
상석을 향해 목례하며 덧붙였다.
“의금부 도제조 민 상서는 이 심리 결과를 전하께 직주할 것이며, 대비께서는 오늘부로 의금부의 구금 절차에 따르실 것을——”
“구금이라.”
대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는 이미 분노의 날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 몸이…… 구금이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등 뒤로 흘러내린 비단 소매가 의자에 걸렸다. 손을 뒤로 뻗어 소매를 빼내지 않았다. 그대로 의자 곁에 서 있었다.
“그래.”
대비가 심리청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서화연에게 닿았다.
“네가 그 아이구나.”
서화연은 마주 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왼손에 쥔 은비녀를 가슴께로 올렸다.
대비가 고개를 돌렸다.
“가자.”
스스로 걸었다. 대비전 무관들이 다가서기도 전에 심리청 중앙을 가로질러 남쪽 문으로 향했다. 치마자락이 심리청 바닥을 쓸었다.
문턱을 넘기 직전, 걸음이 잠시 멎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서씨의 은비녀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말을 끝맺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대비는 사라졌다.
민 판사가 마지막 선언을 위해 기립했다. 심리청에 남은 관료들과 증인, 그리고 두 사람만이 조용히 서 있었다.
“폐비 서씨의 명예는 공식 회복됩니다. 사약을 받았다는 기록은 오늘부로——”
붓을 들어 최종 심리 기록지를 찢었다.
“말소.”
찢어진 기록지가 증거 제출대 위에 떨어졌다. 청원지 조각이 은비녀 옆에 흩어졌다.
“묘소 복원과 추증 절차는 예조에 즉시 이첩할 것이오.”
서화연을 보았다.
“그리고 서화연, 폐비 서씨의 유족으로서 이 심리의 결과와 은비녀를 인수하시오.”
서화연이 증거 제출대 앞으로 걸어갔다.
은비녀를 집어 올리기까지, 손이 몇 번이고 허공에서 멈췄다. 손끝이 금속편을 스쳤다. 스무 해 전 어머니의 손끝이 지나간 자리.
은비녀를 움켜쥐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어머니.”
목소리는 심리청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만큼 작았다. 오직 증거 제출대 위의 은비녀만이 들었다.
“이제 사실대로 기록되었습니다.”
심리청 동쪽 창으로 햇살이 기울었다. 은비녀가 살짝 빛났다.
서화연은 은비녀를 품에 안았다. 심수련이 증인석에서 내려와 그 곁으로 다가왔다. 변색된 손이 어깨에 가볍게 닿았다.
이현이 배석석에서 나왔다. 손목의 붉은 자국이 소매에 가려졌다. 오른편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판사가 심리청 문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심리를 종결합니다.”
서화연이 먼저 걸었다. 왼쪽에는 심수련, 오른쪽에는 이현이 나란히 따랐다. 세 사람의 발소리가 빈 심리청 바닥에 겹쳐 울렸다.
남쪽 문을 열자 마당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앞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눈을 감지 않았다. 품에 안은 은비녀 위로 손을 포갰다.
문턱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