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6화

의금부 심문실은 벽이 두꺼웠다. 창이라고는 문 위쪽에 낸 작은 환기구멍뿐. 촛불 세 개가 놋쇠 촛대에서 심지를 태우며 방 안을 겨우 밝혔다.

이현이 상좌에 앉았다. 왼편으로 서화연, 오른편에 죄인석. 그 앞에 무릎 꿇은 궁녀가 있었다.

장서윤. 열아홉. 산대청 소속 잡역 궁녀.

서화연은 붓을 들었다. 심문 기록지 첫 줄에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묵향이 코끝을 스쳤다.

이현이 입을 열었다.

“이름과 직함.”

“장서윤이옵니다. 산대청… 소제 담당이옵니다.”

목소리가 가늘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가 앞으로 쓰러질 듯 기울어 있었다.

“죽은 이를 아시오.”

장서윤의 어깨가 움찔 올라갔다.

“같은… 처소에서 잔 사이라 아옵니다. 이름은 홍 연이옵고…”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소.”

“사건 당일… 유시쯤 식사 때였사옵니다.”

서화연의 붓이 종이 위를 움직였다. 유시. 식사. 마지막 목격.

이현은 잠시 멈추었다. 손가락이 탁자 모서리를 한 번 두드렸다.

“홍 연이와 사이가 좋았소.”

질문 같지 않은 말투였다. 장서윤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사옵니다.”

“그런데 식사 자리를 기억하오.”

장서윤의 시선이 바닥을 긁었다. 오른손이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대답이 없었다.

서화연은 붓을 잠시 멈추고 장서윤의 손을 보았다. 손등에 힘줄이 올라와 있었다.

“독초 출입 기록을 확인하겠소.”

이현이 말을 이었다.

“산대청에서 취급하는 약재 중 독성이 있는 것은 무엇이오.”

“소인은… 약재를 다룰 일이 없사옵니다. 소제가 소임이오니.”

“물었다. 뭐가 있소.”

목소리가 반음을 낮췄다. 장서윤의 손끝이 떨렸다.

“은… 은엽초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제가 본 것은 아니옵고.”

서화연은 기록지 왼쪽 여백에 ‘은엽초’를 적고 그 옆에 작은 점을 찍었다. 어젯밤 은침 실험에서 보았던 그 이름이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저렸다.

“사건 당일 밤은 어디 있었소.”

장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이현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소인은 그 시각… 처소에 있지 않았사옵니다.”

“어디였소.”

“내명부 쪽이옵니다. 최 상궁 마마를 뵈러…”

서화연의 붓이 멈췄다. 내명부. 심수련의 얼굴이 스쳤다.

“최 상궁이라면.”

이현이 허리를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내명부 전언 담당 최 상궁이 맞소. 그분께서 저녁 무렵 부르셨사옵니다. 한 시진쯤 함께 있었고…”

“시간을 말하시오.”

“술시 초부터… 해시 초까지였사옵니다.”

서술어가 불안정해졌다. 서화연은 붓을 놓지 않고 시간을 적었다. 술시 초 – 해시 초. 내명부. 최 상궁.

그리고 멈추었다.

손가락이 기록지 위에서 얼어붙었다. 해시 초까지 내명부에 있었다면, 해시 3각에 산대청 후원에서 일어난 살인과는 무관한 셈이었다.

그러나.

서화연은 기록지 옆에 접어둔 종이를 폈다. 경수소 야간 순찰 기록 사본. 손가락으로 해시 3각 줄을 짚었다.

찢겨 있었다. 그 시각만.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서화연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현이 고개를 돌렸다. 장서윤도 고개를 들었다.

“경수소 야간 순찰 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밤 산대청 후원 구간 순찰은 해시 2각부터 3각까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시 3각 기록이 찢겨 누락되어 있소.”

서화연은 종이를 들어 이현에게 보이지 않고 말만 이었다.

“누락된 해시 3각은 장 궁녀께서 말씀하신 최 상궁과의 동행 종료 시각과 정확히 겹칩니다.”

장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건…”

“순찰이 누락된 시각, 누군가 산대청 후원을 지나 독을 탄 음식을 전달했을 시각과 같소.”

이현이 서화연을 돌아보았다. 표정은 없었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탁자 위의 종이를 보지도 않고 서화연을 바라보았다.

“장 궁녀. 최 상궁과 헤어진 뒤 어디로 갔소.”

서화연의 목소리는 낮았다. 붓을 내려놓고 두 손을 기록지 위에 포갰다.

장서윤의 입술이 떨렸다.

“곧바로… 처소로 돌아갔사옵니다.”

“누가 증명할 수 있소.”

“그 시각에는 모두 잠들어 있어서…”

“그렇다면 장 궁녀는 해시 초부터 3각 사이에 행적을 증명할 증인이 없소.”

서화연은 잠시 묵었다. 장서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최 상궁과 함께였다는 해시 초까지가 아니라, 정작 살인이 일어난 해시 3각 무렵에 말이오.”

장서윤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같았다.

“거짓이옵니까.”

이현이 끼어들었다. 장서윤은 고개를 급히 저었다.

“아닙니다! 최 상궁 마마께서 증명해 주실 것이옵니다!”

“시간을 확인하겠소.”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린 동작이었다. 허리춤의 패검이 촛불에 반짝였다.

“술시 초부터 언제까지 함께였소.”

“해시… 해시 초까지였사옵니다. 분명합니다.”

“아까는 해시 초쯤이라고 했소. 지금은 정확히 해시 초라고 하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서화연은 장서윤의 손을 보았다. 치맛자락을 쥔 손가락이 창백해질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장 궁녀.”

서화연이 천천히 말했다.

“최 상궁과의 대화 내용을 말씀해 주시오.”

“그건… 내명부 업무에 관한…”

“상궁 마마께서 확인하실 거요. 먼저 들어야 대조가 가능하오.”

장서윤이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 있을 제사 준비에… 차출 인원을 논의했사옵니다.”

“언제까지 함께였소.”

“그래서 해시 초까지였사옵니다. 어두워지기도 했고…”

“내명부에서 산대청까지는 반 각이면 걷는 거리요.”

서화연의 붓끝이 기록지를 다시 한 번 짚었다.

“해시 초에 내명부를 나섰다면 해시 2각 전에는 처소에 도착했을 거요.”

장서윤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순찰이 누락된 해시 3각까지 비었다. 반 각 이상의 시간이 비는 셈이오.”

서화연은 기록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시간. 어디 있었소.”

장서윤의 어깨가 무너졌다. 두 손이 바닥을 짚었다. 숨소리만 가쁘게 새어 나왔다.

“소인은…”

이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 장서윤의 그림자가 촛불에 길게 늘어났다.

“거짓말을 하시오.”

목소리에 굴곡이 없었다.

“술시 초부터 해시 초까지 내명부에 있었다는 것은 진실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해시 3각까지의 행적은 숨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장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눈에 물기가 고였다. 그러나 울지는 않았다.

“소인은… 소인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사옵니다.”

“더 들을 필요가 있겠소.”

이현이 서화연을 향해 말했다. 서화연은 기록지에서 눈을 떼 무릎 꿇은 궁녀를 보았다.

“장 궁녀. 숨기고 있는 시간을 지금 밝히시오. 아니면 최 상궁을 불러 대질할 수밖에 없소.”

장서윤은 무릎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유치장으로 이송하시오.”

이현이 문 밖을 향해 말했다. 문이 열리고 의금부 나졸 둘이 들어섰다.

장서윤이 일으켜 세워졌다. 허리가 꺾인 채 끌려나가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입을 다문 궁녀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이현은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서화연의 탁자 앞에 멈춰 서서 기록지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기록을 준비한 속도가 빨랐소.”

서화연은 붓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경수소 순찰 기록 누락 시간을 정확히 짚었소.”

서화연은 붓을 붓통에 꽂았다. 이현의 시선이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이미 검토한 사안이었습니다.”

“기록 사본을 갖고 있소.”

질문이 아니었다. 서화연은 접어둔 순찰 기록을 들어 이현에게 건넸다.

이현은 받지 않았다. 종이를 보지도 않았다. 대신 서화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 속 회색 기운이 촛불 빛을 받아 옅게 일렁였다.

“네 눈썰미는 분명히 필요하오.”

서화연은 숨을 멈추지 않았다. 기록지를 탁자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그러나 네 신분에 대한 의문은 내가 반드시 밝히겠소.”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폈다. 두 번.

“의금부 경력으로서 필요한 일이오.”

서화연은 기록지를 품에 넣고 일어섰다.

“조사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두 사람 사이로 바람 한 점 들지 않았다. 촛불 하나가 심지 끝에서 가늘게 소리를 냈다.

이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발소리가 한 박자 머문 뒤, 멀어지기 시작했다.

서화연은 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등불이 비친 은침이 소매 안에서 차갑게 피부에 닿았다. 심수련의 약주머니도 같은 곳에 있었다.

최 상궁.

내명부 전언 담당. 심수련의 직속 하위 상궁이었다.

서화연은 천천히 문 쪽으로 걸었다. 복도 바닥에 직사각형으로 떨어진 빛이 이현의 그림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한 가지가 명확해졌다.

장서윤은 진범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지시로 행동했거나, 누군가를 숨기고 있었다. 해시 초 이후 빈 시간을 메꾸지 못한 이유는 그 시간에 본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누군가’의 정체를 밝히는 열쇠는 내명부에 있었다.

서화연은 복도를 걸으며 두 가지를 나란히 무게를 달았다.

이현의 의심. 이제는 능력이 아니라 신분을 겨누는 칼끝이었다.

심수련의 입김. 내명부 깊숙한 곳에서 최 상궁을 통해 뻗어 나온 손이었다.

복도 끝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서화연의 옷깃이 살짝 들렸다. 왼쪽 옷깃 안쪽의 은비녀가 차갑게 가슴팍을 눌렀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먹물과 촛농 냄새, 그리고 먼 발치에서 스민 찬기운이 폐부를 채웠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시오.”

목소리에 굴곡이 없었다.

“술시 초부터 해시 초까지 내명부에 있었다는 것은 진실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해시 3각까지의 행적은 숨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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