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9화

“그 말씀, 어디서 들으셨소니까.”

서화연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품 안에서 도자기 조각을 쥔 손가락만 악문 듯 굳어 있었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옷감 너머로 갈비뼈를 눌렀다.

심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옅은 호박색 눈동자가 달빛을 한 번 머금었다. 입가에 걸린 희미한 곡선은 웃음이라기보다, 답을 이미 알고 있는 자의 여유였다.

“산대청 별감은 폐비 마마의 은비녀를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심수련의 치마 자락이 돌아섰다. 발소리 없이 내명부 방향으로 옮겨가는 뒷모습이 회랑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서화연은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품 안에서 빼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도자기 조각의 차가운 온도가 맥박처럼 전해졌다.

산대청 별감이 은비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폐비의 은비녀를.

초경이 지난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동쪽 하늘 끝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서화연은 처소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발길을 돌려 의금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심수련은 왜 이 정보를 지금 건넸을까. 대가도 없이, 조건도 없이.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답은 하나도 없는 채였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정보가 검증 가능한 곳은 의금부뿐이라는 사실이었다.

회랑을 지나는 동안 인적은 전혀 없었다. 새벽녘의 궁궐은 숨을 죽인 짐승처럼 고요했다. 서화연은 빠른 걸음으로 검안실로 향했다.

검안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촛불이 타고 있었다. 받침대에 꽂힌 초가 반쯤 줄어 있었다.

이현이 탁자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경수소의 야간 순찰 기록, 다른 손에는 접힌 공문이 들려 있었다. 서화연이 문턱을 넘자 고개를 들었다.

“늦었소.”

짧은 한마디에 억양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보다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관복 소매는 평소처럼 걷어 올려져 있었고,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펴졌다.

서화연은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현이 손에 든 공문을 탁자 위에 펼쳤다. 내명부 인장이 선명한 문서였다.

“대비전에서 용의자 장서윤의 신병을 확보해 갔다는 통보다.”

서화연의 시선이 공문에 꽂혔다. 글자를 읽는 동안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건 수사 방해입니다.”

“알고 있소.”

이현이 공문을 접어 탁자 구석으로 밀었다. 순찰 기록을 집어 들더니 누락된 해시 3각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장서윤의 진술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대비전에서 먼저 확보했으니 의금부 소환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경력 나리께서 그걸 받아들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서화연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갔다. 이현은 순찰 기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받아들이는 게 아니오. 사실을 말한 것뿐이오.”

“대비전이 용의자를 데려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식 수사 중인 사건의 용의자를, 그것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내명부 소속 궁녀는 내명부의 징계권에 우선한다는 조항을 들었다.”

이현이 처음으로 서화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촛불이 어두운 회색 눈동자에 비쳤다.

“명분은 완벽하오.”

서화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비전이 움직인 것은 명백했다. 백미초의 출처가 대비전으로 좁혀지자마자 용의자를 빼낸 것이다. 증거를 지우려는 게 아니라, 증거에 접근하는 통로 자체를 막은 것이다.

“그럼 수사는 여기서 멈추는 겁니까.”

“아니오.”

이현이 순찰 기록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기록지의 가장자리를 한 번 톡 쳤다.

“경수소 기록에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 해시 3각 순찰 경로 중 산대청 후원을 통과한 뒤 대비전 방향으로 빠지는 구간. 그곳을 지난 순찰조의 증언을 확보할 예정이오.”

서화연은 숨을 들이켰다. 이현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비전의 압박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수사는 계속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언제쯤…”

“오늘 중으로.”

이현이 말을 끊으며 탁자 서랍에서 새 문서를 꺼냈다. 내의원에 약재 출입 기록 대조를 요청하는 공문이었다.

“이 서류는 내일이면 결재가 나지 않소.”

서화연은 공문을 바라보았다. 이현은 이미 대비전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순찰 증언도, 약재 기록도, 모두 대비전의 개입 전에 미리 요청해둔 것들이었다.

“나리께서는 대비전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예상이 아니라 대비책이다.”

촛농이 받침대에 한 방울 떨어졌다. 이현이 검안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쪽 하늘이 옅은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서화연은 품 속의 도자기 조각을 더듬지 않았다. 대신 심수련이 남긴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산대청 별감은 폐비의 은비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별감의 죽음은 단순한 독살이 아닐지도 모른다.

심수련이 오늘 새벽 그 말을 전한 것은, 대비전이 움직일 것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서화연이 이 정보를 이현과 공유할지, 아니면 혼자 추적할지를 시험하는 것은 아닐까.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서화연이 입을 열었다. 이현이 고개를 돌렸다.

“산대청 별감이 죽기 전, 생전에 폐비 마마와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이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 박자 침묵이 흘렀다.

“왜 묻는 거요.”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의 순찰 기록을 천천히 말아 촛불 옆에 세워두었다. 손가락이 종이 끝을 맞추며 접혔다.

“산대청 별감은 7년 전, 폐비 사건 당시 내의원 약재 창고의 출입을 관리하던 자다.”

서화연의 손이 소매 안에서 은침을 감쌌다. 은침의 미세한 균열이 손끝에 닿았다.

은비녀. 약재 창고. 독초 도감.

7년 전 폐비의 사건을 관통하는 세 개의 축이 지금 이 순간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수련은 그 축을 알고 있었다. 이현은 지금 그 축 중 하나를 막 건네주었다.

“그 정보는…”

“의금부 인사 기록에 남아 있소. 오래전 일이라 수사에서 제외했을 뿐.”

이현의 어조는 여전히 건조했다. 하지만 서화연은 알 수 있었다. 이현이 이미 이 정보를 확인했다는 것을. 그리고 의도적으로 수사선에서 배제했다는 것을.

왜인지는 묻지 않았다.

대신 서화연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현이 촛불을 입김으로 껐다.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왔다 흩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오. 내일 순찰 증언을 확보하면 다시 부르겠소.”

서화연은 검안실을 나섰다. 회랑의 공기가 차갑게 볼을 스쳤다.

산대청 별감은 폐비의 은비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비녀는 대비전 협박 서신이 음각된 도자기 조각과 같은 장소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화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심수련의 정보와 이현의 정보 사이에 놓인 빈 구간을 채우는 일이었다. 폐비의 은비녀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

그리고 왜 산대청 별감이 그걸 알고 죽어야 했는지.

동쪽 하늘이 완전히 밝아오고 있었다. 회랑 끝에서 하급 조제사 한 명이 약재 상자를 들고 내의원 방향으로 사라졌다.

서화연은 품 안에서 도자기 조각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으로 도자기 표면의 음각을 더듬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 증거를 이현에게 보여줄 순간은 내가 정한다.

그때까지는 심수련도, 이현도 아닌 내 판단으로 움직인다.

의금부 도사 집무실은 아침 햇살이 채 들어오지 않은 때였다. 이현은 품에서 대비전의 통보 문서를 꺼내 윤공의 탁자 위에 올렸다.

“용의자 신병을 대비전이 가져갔습니다.”

윤공은 문서를 보지 않았다. 붓을 내려놓으며 이현을 향해 손을 폈다.

“대비전의 명은 거스를 수 없네. 경력도 잘 알 터.”

“의금부 수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윤공은 찻잔을 집어 들었다. 입술을 적시는 동작이 예닐곱 호흡이나 계속됐다.

“산대청 별감 건은… 이쯤에서 접는 게 좋겠네.”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접혔다. 한 번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증거는 아직 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나올수록 더 위험해질 뿐일세.”

윤공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이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 속에는 설득이 아니라 지시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현은 숨을 들이켰다.

윤공이 문서를 이현 쪽으로 다시 밀었다.

“경력도 이제 종4품. 관직 앞에 목숨 걸 만한 정의 같은 건 없다는 걸 알 나이지 않은가.”

이현은 문서를 접어 품에 넣었다.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스쳤다.

“윤 도사께서는 오래전부터 대비전과 이렇게…”

끝까지 묻지 않았다. 윤공의 얼굴에 떠오른 미세한 경직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이현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물러났다.

문 밖으로 나서자 복도에 찬 기운이 감돌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대비전의 명을 전달하는 윤공의 말투는 문서를 읽는 하급 관리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래 알고 지켜온 선이 있었다. 그 선이 지금 없었다.

의금부 검안실. 촛불 두 점이 아침인데도 여전히 심지를 태우고 있었다.

서화연은 검시대 옆 탁자에 산대청 별감의 검시 기록과 경수소 순찰 기록을 나란히 펼쳐 두었다. 왼쪽에는 심수련에게서 받은 쪽지도 놓여 있었다.

순찰 기록에는 별감이 사망 전 마지막으로 순찰을 시작한 지점이 명시되어 있었다. 서화연은 손가락으로 그 경로를 한 자씩 짚어 내려갔다.

산대청 후문에서 출발해 약재고 방향으로 꺾이고, 그다음에는 서북쪽 회랑을 따라 걷다가…

서화연의 손가락이 멈췄다.

‘서북쪽 빈 전각 인근 통과.’

경복궁 서북쪽 빈 전각. 오래된 폐비의 옛 거처.

바로 그곳이었다. 심수련의 쪽지에 적힌 위치다. 순찰 경로는 폐비의 옛 처소 터를 정확히 지나치고 있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시간과 장소가 너무 정확히 맞물렸다.

서화연은 별감의 검시 기록에서 사망 시각을 재확인했다. 해시 3각.

야간 순찰 기록의 누락된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순찰 중 폐비의 옛 처소를 지나던 별감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누군가 그 순찰 기록을 찢어 없앴다.

이것은 수사 방해가 아니다. 증거 인멸이다. 폐비의 흔적을 남김없이 지우려는 의도였다.

대비전이 직접 나서서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까닭도 이제 명확했다. 장서윤이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폐비의 거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서화연은 별감의 검시 기록에서 순찰 경로 부분을 청원지에 옮겨 적었다. 붓끝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숨을 골랐다. 사본 한 장을 완성한 뒤 손수건으로 묵을 닦아 가며 두 번째 사본을 뜨기 시작했다.

검안실 문이 열렸다.

이현이었다. 평소보다 발소리가 무거웠다. 품에 접어 넣은 문서의 각이 관복 위로 비쳤다.

서화연은 붓을 내려놓았다. 완성된 순찰 경로 사본을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이현이 말했다.

“윤공이 수사를 종결하라고 한다.”

서화연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현의 왼쪽 관자놀이에 흰머리가 한 올 더 보였다. 오른손 검지는 아직 접힌 채였다.

서화연은 사본 한 장을 이현 앞으로 밀었다.

“그럼 이것은 당신 혼자 보십시오.”

이현의 시선이 사본으로 내려갔다.

“산대청 별감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순찰한 곳이 폐비의 옛 거처입니다.”

이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화연은 더 말하지 않았다. 촛불 한 점이 심지 끝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검안실 안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서화연은 별감의 검시 기록에서 순찰 경로 부분을 청원지에 옮겨 적었다. 붓끝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숨을 골랐다. 사본 한 장을 완성한 뒤 손수건으로 묵을 닦아 가며 두 번째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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