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12화

형광등이 깜빡인 뒤 정지했다.

신우진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DELETE FROM inspectionlog WHERE partcode LIKE 'B4%'. 47건.

“어젯밤 9시 22분이야.”

이지원이 옆에서 말했다. 평소보다 반 박자 빠른 톤이었다.

신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책상으로 걸어갔다. 서랍을 열었다. USB 메모리 한 개가 검수복 안주머니에, 다른 하나는 서랍 속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있었다. 둘 다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복사본은.”

“여기 둘. 하나 더 사물함.”

이지원이 자신의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답했다. “지금 등록은 안 됩니다. 증거 목록에 검수 기록 원본 조회 경로가 포함돼 있어요. 삭제된 상태에서 제출하면 청구서 자체가 무효예요.”

“안다.”

신우진은 USB 두 개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지퍼를 올렸다. 기능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창밖을 봤다. 유도로 저편에 짙은 회색 하늘이 깔려 있었다. 새벽 6시도 되지 않은 빛.

“감사실 간다. 접속 로그 뽑을 수 있지.”

이지원이 가방 끈을 어깨에 걸었다. “지금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전산실에 기록 조회 요청할게요.”

“여기선 더 할 게 없다. 가자.”

신우진이 사무실 불을 껐다. 형광등이 소리 없이 꺼지며 검수고 전체가 푸른 새벽빛에 잠겼다.

철도공사 본사 7층. 감사실.

이지원이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전화기를 들었다. 단축번호 3번. 전산실.

“감사실 이지원입니다. 지금 즉시 감사 시스템 접속 로그 조회가 필요합니다. 대상은 검수 기록 데이터베이스. 시간 범위는 어제 오후 6시부터 오늘 오전 7시까지.”

수화기 너머로 짧은 대답이 들렸다. 이지원이 왼손으로 노트북을 열며 말을 이었다.

“계정 정보와 IP 주소, 실행 쿼리까지 포함해서 요청합니다. 권한은 감사실 정식 조회 권한으로 진행해주세요.”

잠시 후 이메일 알림이 울렸다. 이지원이 자리에 앉아 첨부 파일을 열었다. 로그 리스트가 화면에 떴다. 타임스탬프, 계정명, IP 주소, 실행 쿼리.

스크롤을 내렸다.

오후 6시 15분. 계정: auditor_park. 쿼리: SELECT. 정규 업무 시간 내 접속.

오후 7시 40분. 계정: auditor_lee. 쿼리: SELECT. 마찬가지.

오후 9시 22분. 계정: auditorminks. 쿼리: DELETE FROM inspectionlog WHERE part_code LIKE 'B4%'.

IP 주소: 내부망 192.168.45.107. 민경수 감사실장의 사무실 단말기.

이지원이 화면을 캡처했다. 프린터로 출력한 뒤 파일을 별도 폴더에 저장했다.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 신우진의 목소리가 짧게 들렸다.

“접속 기록 확보했습니다. 어젯밤 9시 22분. 맞아요. 계정은 민경수 감사실장. 쿼리도 동일합니다.”

신우진이 잠시 침묵했다. “증거는.”

“캡처 파일과 출력본. 안전한 경로로 보관합니다. 지금 바로 금정으로 이동할게요. 서버 접근 내역 출력물 가져가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이지원은 출력된 로그를 파일 폴더에 끼워 가방에 넣었다. 책상 위에 있던 내부 감사 청구서 초안 복사본을 확인했다. 그대로 서랍에 넣고 잠갔다.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감사실 문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냈다. 문자 메시지에 캡처 이미지를 첨부했다. 신우진에게 전송.

‘계정: auditor_minks. 시간: 21:22. 쿼리: DELETE B4%. 47건. 지금 출발합니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열릴 때까지 7초. 그 사이에 휴대폰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신우진에게서 답장이 왔다. 짧았다.

‘알았다.’

이지원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며 7층 복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대폰을 가방 안주머니에 넣고 손잡이를 잡았다. 지하철을 타고 금정까지 40분. 그 시간 동안 로그와 청구서 초안을 다시 한 번 대조할 생각이었다.

40분 후, 이지원이 검수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방에서 출력본 종이를 꺼내면서 가방을 한쪽 의자에 내려놓았다.

검수고 사무실의 형광등이 채 깜빡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우진은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삭제 쿼리다. B4 계열 검수 기록 47건.”

이지원이 자신의 노트북을 탁자 위에 올렸다. 로그 프린트를 옆에 펼쳤다. 두 대의 화면이 나란히 놓였다. 왼쪽은 DELETE 쿼리 로그. 오른쪽은 삭제 전 신우진이 출력해둔 검수 목록.

“시간은 어젯밤 9시 22분. 계정은 민경수 실장입니다.”

이지원의 손가락이 출력물의 한 줄을 짚었다.

“업무 시간 외 단독 접속. 실행 쿼리는 한 개. 검색 없이 바로 DELETE.”

신우진이 자기 노트북을 돌려 이지원에게 보여줬다. 대조표 파일이 열려 있었다. 삭제된 47건의 부품 코드에 형광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전부 B4-7812 포함한 제동 계통이다. 2년 전 3월 입고분.”

“민 감사실장이 혼자 움직였을까요.”

이지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목 시계를 만지는 손끝이 빨라져 있었다.

“누군가 지시했거나, 최소한 공유하고 있다.”

신우진은 책상 서랍에서 USB 하나를 꺼냈다. 문서 체인 사본이 담긴 것이다. 컴퓨터에 꽂자 폴더가 열렸다.

“감사 청구서 초안도 여기 있다. 하지만 등록은 못 한다.”

“핵심 검수 기록이 증발했으니까요. 문서 체인이 불완전하면 감사 개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이지원이 감사실 접속 로그를 다시 들여다봤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지난주에도 야간 접속이 있었습니다. 화요일과 목요일. 둘 다 민 감사실장 계정.”

“패턴이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우리가 감사 청구서를 완성하기 전에, 아니 어쩌면 우리가 증거를 모으기 시작한 시점부터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

신우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도로 저편에서 객차가 견인되고 있었다. 금속 바퀴가 레일을 긁는 소리가 유리창을 통해 낮게 들어왔다.

“윤태호가 먼저 움직였다. 지난주면 우리가 회의실에서 대조표 들이밀던 때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닫았다.

“감사 청구는 일단 보류합니다. 불완전한 상태로 제출하면 각하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증거 목록을 상대에게 공개하는 셈이니까.”

“남은 카드는.”

신우진이 책상으로 돌아왔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7년 전 선임의 조사 노트 사본을 꺼냈다. 표지가 낡고 구겨져 있었다.

“이거랑 박중호 검수팀장 금고.”

“금고요?”

“B4 원본 보고서가 있다. 9년 전 거. 선임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에서 찾았다.”

신우진은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연필로 희미하게 적힌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중호 금고 B4 원본 있음.’

이지원이 그 페이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물리적 원본이라면 삭제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박 검수팀장이 열어줄까요.”

“조건이 있을 거다. 어제 쪽지로 입고 첫날부터 결함이었다고 알려준 사람이다. 증거를 숨길 의도는 아니야.”

이지원은 로그 프린트를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저는 감사실 내부를 좁혀보겠습니다. 제보 라인 두 곳에 추가 질의를 넣었어요. 어젯밤 서버실 출입자, 민 감사실장의 최근 통화 상대. 응답이 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연락은 보안 메신저로. 전화는 당분간 피해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지원이 메신저백을 어깨에 걸었다. 검수고 문을 열기 전에 잠시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어젯밤 누군가 감사실 서버실에 혼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제보 하나가 그걸 언급했어요.”

“민경수?”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대가 일치합니다.”

문이 닫혔다.

신우진은 책상 앞에 서서 노트 사본을 다시 집었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7년 전 선임이 남긴 B4 계열 부품의 로트 번호. 시험 성적서 발급 기관명. 그리고 점선으로 테두리 친 한 줄. ‘이 부품은 입고 시점부터 문제였다.’

신우진은 수첩을 꺼내 박중호의 연락처 옆에 ‘금고 번호 확인’이라고 적었다. 유성 매직을 가슴 주머니에 꽂았다. USB를 서랍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잠갔다.

태성정밀 본사 대표실.

윤태호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책상 위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구매처 과장.

“처리 완료했습니다. 검수 기록 47건 삭제 확인.”

윤태호는 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도자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로그는.”

“민 감사실장 계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외부망이 아닌 내부 단말.”

“좋습니다. 감사실장께는 제가 따로 연락드리죠.”

전화를 끊고 잠시 서 있던 윤태호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주소록에서 ‘강 의원실’을 찾았다. 통화 버튼.

“강윤석 의원실입니다.”

“태성정밀 윤태호입니다. 의원님 일정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다음 주 후원 행사, 저희 쪽에서 준비할 게 있어서요.”

수화기 너머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 7시, 호텔 그랜드볼룸입니다. 참석 인원은 120명 예상.”

“알겠습니다. 의원님께 전달 부탁드립니다. 태성정밀은 계속해서 변함없이 지원하겠습니다.”

“네, 의원님께서도 항상 말씀하십니다. 믿고 있다고.”

통화를 종료했다. 윤태호는 메모지에 ‘수요일 7시, 120명, 변함없는 이지원 확인’이라고 적었다. 커피를 다시 집어 들었다. 두 모금 마셨다. 잔을 내려놓은 손이 책상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노트북을 열었다. 법무팀에 메일을 하나 보냈다. 제목은 ‘성적서 폐기 최종 일정 확인’. 본문에는 한 줄만 적었다.

‘오늘 중으로 완료 바랍니다.’

전송음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창밖으로 도심 빌딩 숲이 펼쳐져 있었다. 윤태호는 소매 단추를 한 번 만졌다. 커프링크스가 실내 조명을 받아 반사됐다.

금정차량기지 검수고 사무실.

신우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보안 메신저 알림. 이지원이었다. 메시지 창을 열자 짧은 문장이 떠 있었다.

‘제보 라인 응답 왔습니다. 어젯밤 9시 20분경, 감사실 서버실 문이 혼자 출입하는 사람에 의해 열렸다고 합니다. 출입 카드 기록은 추후 확인.’

신우진이 손가락으로 답장을 쳤다.

‘알았다. 나는 박중호 검수팀장 금고 연다. 오늘 중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방금 적은 수첩을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금고 번호 확인’ 옆에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선임의 노트 사본을 서류 가방에 넣고 잠금 장치를 돌렸다.

형광등이 다시 한 번 깜빡였다. 신우진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깜빡임의 간격이 지난밤과 같았다. 사무실 회로 노후 탓이다. 안전모를 집어 들고 문을 향해 걸었다.

윤태호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책상 위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구매처 과장.

“처리 완료했습니다. 검수 기록 47건 삭제 확인.”

윤태호는 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았
무정차 통과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