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15화

신우진이 수화기를 내려다봤다.

벨이 두 번 더 울렸다.

받았다.

“신우진입니다.”

본사 인사팀 담당자였다. 목소리는 건조했다.

“차량기지 검수팀 신우진 주임님 맞습니까.”

“맞다.”

“내일 오전 10시, 징계 청문회 소집을 통보합니다. 혐의는 허위 보고 및 품질 검수 태만.”

신우진의 왼손이 책상 위 검수 노트 가장자리를 짚었다.

“근거 자료 목록은.”

“구매처에서 제출한 검수 시간 내규 미달 건 세 가지, 부품 검수 보고서 지연 제출 두 건입니다. 추가 자료는 청문회 당일 공개됩니다.”

“서면 자료 요청한다.”

“청문회 1시간 전에 열람 가능합니다. 규정입니다.”

신우진이 수화기를 바꿔 쥐었다.

“알겠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검수 노트를 펼쳤다. TH-1187과 KD-2037을 연결한 선 옆에 ‘대영산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내일 10:00 청문회.’

왼손 집게손가락의 흉터를 엄지로 눌렀다. 유압유가 파고들었던 자리. 피부가 두껍게 올라앉아 있었다. 만질 때마다 7년 전 그날의 엔진오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볼펜 뚜껑을 닫았다.

검수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선임의 조사 노트도 함께 넣었다. 사무실 불을 끄고 나왔다.

자택. 벽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우진은 식탁에 앉았다. 가방에서 선임의 조사 노트를 꺼냈다.

표지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유압유 얼룩이 번진 페이지도 있었다. 오른쪽 상단 모서리가 반쯤 타서 오그라들었다.

노트를 펼쳤다.

7년 전 4월 12일 자 기록이었다.

선임의 글씨는 작고 빼곡했다. 볼펜 압력이 세서 뒷면이 울퉁불퉁했다.

‘4월 12일. 화물열차 6량 탈선. 3번 화차 제동계통 유압 누출.

부품 TH-1187-09. 제동압력 30% 하락 상태에서 차량기지 통과. 탈선 직전 긴급제동 작동 불능.’

신우진의 손가락이 페이지를 따라 내려갔다.

흉터 부위가 따끔거렸다.

‘사고 현장 도착 04:12. 유압유 비산. 좌측 하부에서 누출 흔적 확인.

부품 TH-1187-09 씰링 패킹 파손. 마모면 불균일. 육안으로도 제조 결함 판별 가능.’

다음 페이지.

‘04:47. 구매처 과장 현장 도착. 부품 회수 지시. 씰링 패킹 절단면 보존 요구했으나 묵살. “조사 전 임의 판단 금지”라는 구두 명령.’

신우진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04:55. 부품 TH-1187-09 현장 반출. 불출증 없음. 부품 관리대장 기록 말소. 사유: 조사 중.’

그 아래에 선임이 볼펜으로 가로선을 그었다. 선이 종이를 찢을 듯 깊게 패여 있었다.

‘4월 20일. 사고 조사 보고서 초안 작성. 원인: 제동밸브 씰링 패킹 결함.

대영산업 납품 로트 DSL-0703-11 전수 조사 권고. 구매처 반려. 사유: “검증되지 않은 단정.”’

신우진의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 짧은 획을 그었다.

‘5월 3일. 최종 보고서에서 부품 결함 문구 삭제됨. 원인: “운전 미숙 및 정비 불량.” 책임 소재: 검수팀 및 운전팀. 나는 현장에 없었다. 이 노트만 남았다.’

페이지가 끝났다.

신우진이 노트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는 부품 번호 목록만 빼곡히 적혀 있었다. TH-1187 계열 여섯 개. TH-1190 계열 세 개. 모두 대영산업 납품분이었다.

맨 아래 줄.

‘TH-1187 → KD-2037. 설계 변경 명목, 동일 씰링 구조 유지. 부품번호만 바뀜.’

신우진이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7년 전 유압유 냄새가 다시 밀려왔다.

뜨거운 철판 위에 흩뿌려진 오일. 빗물에 희석되면서도 코를 찌르던 역한 냄새. 선임이 부품 조각을 들고 외치던 말. “이거 봐라, 패킹이!”

손가락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당시 파편을 치우다가 유압유가 분출된 자리였다. 장갑을 뚫고 들어온 유압유가 살갗에 스며들었다. 병원은 다음 날에야 갔다. 먼저 사고 보고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묻혔다. 선임도 묻혔다. 2년 뒤 선임은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사유는 ‘건강 악화.’

부품만 살아남았다. 번호를 바꿔서.

신우진이 노트의 해당 페이지를 접었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인사팀 통보. 청문회. 내일 오전 10시까지 남은 시간은 촉박했다.

오전 7시 15분. 윤태호의 사무실.

윤태호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책상 위 모니터에는 신우진의 인사 기록이 떠 있었고, 징계 사유 구성표 옆에는 ‘법무팀 검토 완료’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 세 번.

“네, 윤 대표님.”

상대는 조영우 의원실 정책 보좌관 김중헌이었다. 목소리는 낮고 빨랐다.

“김 보좌관님. 지난주 행사 준비는 잘 돼 가십니까.”

“순조롭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전화는 좀 의외네요.”

윤태호가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차량기지 쪽에서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검수팀 주임 하나가 감사 자료를 뒤집고 있어서요.”

“감사요.”

“무정차 통과 건입니다. 조사 범위를 납품 부품 쪽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에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검수팀 주임 이름이 신우진입니까.”

윤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미 아시는군요.”

“오늘 오전 인사 기록이 법무팀 쪽으로 도는 걸 봤습니다. 구매처에서 징계 준비 중이더군요. 사유는 허위 보고.”

“그렇습니다. 다만 청문회 전까지 그쪽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싶습니다. 감사실 안에도 협조자가 있지만 한계가 있어서요.”

김중헌이 잠시 멈췄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인사팀 쪽 징계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도록 의원실 차원의 관심을 표명해 주십시오. 이번 무정차 통과 사안이 불필요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우진 주임의 인사 기록 사본을 팩스로 보내주시겠습니까. 구체적인 검토 후 경로를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보내겠습니다.”

윤태호가 컴퓨터를 조작했다. 신우진의 인사 기록 파일을 팩스 전송 프로그램으로 넘겼다. 전송음이 세 번 울렸다.

“수신 확인했습니다.”

김중헌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의원님께 보고는 제가 직접 합니다. 청문회 절차가 외부 간섭으로 비치지 않게 조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태호가 전화를 끊었다. 커피 잔을 들어 창 밖을 바라봤다.

보좌관은 신우진의 인사 기록을 모니터에 띄웠다. 항목별로 체크하며 메모를 남겼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나서, 조영우 의원실 로고가 찍힌 메모지에 세 줄을 적었다.

‘차량기지 신우진 — 무정차 통과 감사 방해자 지정. 청문회 전 인사팀 접촉 보류. 의원실 개입은 비가시적 경로로.’

메모지를 서류철에 끼웠다.

오전 9시. 차량기지 정비사무실.

신우진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박중호는 이미 출근해 있었다. 책상 앞에서 정비 일지를 넘기다가 고개를 들었다.

“야, 신우진.”

“팀장님.”

신우진이 가방에서 선임의 노트 복사본을 꺼냈다.

“뭔데.”

“7년 전 선임 검수원의 조사 노트입니다.”

박중호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 노트 아직 있었어?”

“어제 정리하다 찾았습니다.”

신우진이 복사본을 책상 위에 펼쳤다. 접어둔 페이지를 폈다.

“TH-1187 계열 부품. 7년 전 탈선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던 겁니다. 씰링 패킹 결함.”

박중호가 노트를 내려다봤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납품사가 어디라고 적혀 있나.”

“대영산업입니다. KD-2037 계열과 동일 납품사. 씰링 구조도 같다는 기록이 있어요.”

박중호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내가 9년 전에 썼던 품질 의혹 보고서. 그때도 씰링 패킹 이슈였어.”

“팀장님 금고 안에 있는 보고서 말입니까.”

“그래.”

박중호가 노트 복사본을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앞뒤로 넘겼다.

“7년 전 사고 때 나는 현장에 없었다. 들은 적도 없어.”

“은폐됐습니다. 선임이 노트에 ‘최종 보고서에서 부품 결함 문구 삭제됨’이라고 적었습니다.”

박중호의 손이 멈췄다.

“사유가 ‘운전 미숙’으로 바뀌었다고.”

“그렇습니다.”

박중호가 노트를 내려놓았다. 손등에 핏줄이 섰다.

“똑같은 놈들이구만.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신우진이 노트 복사본의 다른 페이지를 가리켰다.

“선임이 적어둔 부품 로트 번호입니다. DSL-0703-11. 이 번호와 B4 계열 부품의 로트 번호를 대조해 볼 수 있습니까.”

박중호가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부품 관리 시스템에 접속했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B4 계열 로트 번호는 관리대장에 남아 있다. 교체 기록을 삭제해도 입고 이력은 못 지웠어.”

박중호가 품번을 입력했다. 검색 결과가 화면에 떴다.

“B4 차량군 입고 부품 리스트다.”

신우진이 모니터를 바라봤다. 눈이 가늘어졌다.

“로트 번호가 DSL-09로 시작합니다.”

“DSL은 대영산업 전용 코드다. 07과 09는 생산 연도. 7년 전 건은 07년 산, 이번 건은 09년 산이야.”

“동일한 씰링 설계. 같은 납품사.”

박중호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패킹 재질 검사 한 번 안 했단 소리다.”

신우진이 노트 복사본을 밀었다.

“이걸 복사해 두겠습니다. 팀장님도 한 부 가지십시오.”

“인사팀에서 연락 왔냐.”

“내일 오전 10시 청문회입니다.”

박중호의 시선이 신우진의 왼손으로 향했다. 집게손가락 흉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네 손가락.”

신우진이 손을 내려다봤다.

“7년 전 사고 현장에서 다쳤습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연관성을 오늘 아침에야 확인했습니다.”

박중호가 신우진의 손목을 잡았다. 흉터를 들여다봤다.

“유압유?”

“네.”

“깊게 들어갔네.”

박중호가 손목을 놓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임. 이름이 뭐였지.”

“고영호입니다.”

박중호의 입술이 떨렸다가 굳어졌다.

“영호. 그 인간은 결국.”

말을 삼켰다. 손으로 책상을 한 번 쓸었다.

“청문회 자료. 검수 노트 복사본은 내가 보관한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덮을 생각 말아라.”

“네.”

신우진이 복사본을 박중호 쪽으로 한 부 더 밀었다. 박중호가 받아서 작업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신우진은 가방에서 선임의 노트 원본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페이지가 남아 있었다. 노트 표지 안쪽 주머니에 손가락을 넣었다.

뭔가 만져졌다.

접힌 종이였다.

꺼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이였다. 세로로 반 접혀서 두께가 얇아진 상태였다.

펼쳤다.

맨 윗줄. ‘사고 조사 보고서 초안 — 발행 보류본.’

결재 라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작성자 란: 고영호. 팀장 란: 공란. 본부장 란: 공란.

그리고 과장 란에 희미하게 찍힌 도장.

신우진이 종이를 빛에 비췄다.

도장의 글자가 드러났다.

‘구매처 과장 윤태호.’

신우진이 노트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에는 부품 번호 목록만 빼곡히 적혀 있었다. TH-1187 계열 여섯 개. TH-1190 계열 세 개. 모두 대영산업 납품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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