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23화

본사 인사팀 청문회실. 오후 2시 10분.

속기사가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청문위원 3인이 착석했다. 중앙의 위원장, 우측의 인사팀 차장, 좌측의 법무팀 선임 변호사다.

윤태호 측 변호사가 신우진 맞은편에 앉았다. 검은 정장, 은색 타이핀. 방청석에는 이지원. 포니테일을 다시 묶고 메모지를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2차 회의를 속개합니다.”

위원장이 목차를 넘겼다.

“징계 대상자, 신우진 주무관. 1차 회의에서 제출한 검수 노트와 시험 성적서 사본은 본 위원회가 확인했습니다. 오늘 회의에서는 7년 전 사고 관련 이력을 추가 심의합니다.”

윤태호 측 변호사가 즉시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먼저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변호사가 몸을 틀어 신우진을 향했다. 손에는 검수 기록지 한 묶음.

“신우진 주무관님. 7년 전인 2011년 9월 14일, 당신은 금정차량기지에서 B4 계열 차량의 정기 검수를 진행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날 검수 일지가 공식 기록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검수 담당자의 서명도, 팀장 결재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우진이 변호사를 똑바로 응시했다.

“기록은 있었습니다. 누군가 삭제한 겁니다.”

변호사가 미소 지었다.

“삭제요. 증거는 있습니까.”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검수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침묵.

방청석에서 이지원의 펜이 메모지 위에서 멈췄다.

변호사가 기록지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신우진 주무관님. 당신은 7년 전 사고에 대해 정비 기록 부재를 이유로 여러 가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서류는 없고, 증인도 없고, 오직 당신의 기억만이 근거입니다. 본 변호인은 지금 이것이 징계 청문회인지, 우연한 기억에 의존한 소설 공모전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위원들 사이에서 낮은 웃음이 새나왔다. 법무팀 변호사가 입가를 문질렀다.

신우진이 왼손을 올렸다.

“기록은 없습니다.”

손가락을 폈다 식혔다.

“서명도 없습니다.”

검지와 중지로 왼쪽 집게손가락을 짚었다. 마디 사이 흉터. 유압유에 데인 자리. 피부가 오래된 왁스처럼 번들거렸다.

“하지만 이건 있습니다.”

신우진이 천천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흉터는 2011년 9월 14일 오후 4시경, B4 계열 차량의 제동 밸브에서 누출된 유압유에 왼손이 닿으면서 입은 화학 화상입니다. 그날 저는 KD-2037 계열의 전신인 TH-1187 제동 밸브의 시험 성적서와 실물 부품 간 규격 불일치를 확인하고 검수 일지에 기록했습니다. 이 흉터는 그 부품의 유압유가 만든 겁니다.”

청문회실 안이 조용해졌다.

“위원님들께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원장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우측의 인사팀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신우진이 왼손을 펴서 책상 위에 올렸다.

차장이 검지와 중지 사이, 손등 쪽 흉터를 내려다보았다. 표면이 고르지 않은 변색. 깊이는 얕았으나 손금을 가로질렀다.

“이건 현장에서 유압유가 비산해서 생긴 화상입니다. 사무실이나 서류 작업으로는 생길 수 없는 종류의 흔적이죠.”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좌측 법무팀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위원장님, 본 위원회는 지금 징계 혐의 심의 중입니다. 7년 전 사고 기록의 부재에 대한 반증으로 이 흉터가 제시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증거 부족 공격을 넘어서는 근거라고 판단합니다만, 위원장님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위원장이 안경을 벗어 닦았다.

“흉터만으로 기록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안경을 다시 썼다.

“다만 이 흉터가 주장하는 시점과 장소에 발생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기원을 증언할 수 있다면 위원회는 그 증언을 속기록에 남길 것입니다.”

시선이 신우진에게 옮겨졌다.

“신우진 주무관. 방금 흉터가 7년 전 검수 당시 입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품이었습니까.”

“TH-1187-04. B4 계열 차량용 제동 밸브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규격서상 그 부품의 패킹은 내열 온도 230도까지 견디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부품에 부착된 시험 성적서와 실제 패킹의 재질 코드가 달랐습니다.”

위원장이 속기사 쪽을 보았다. 자판 소리가 이어졌다.

변호사가 허리를 곧추세우며 입을 열었다.

“위원장님, 이의가 있습니다. 신우진 주무관의 개인적인 기억에 기반한 진술은—”

“변호사님. 흉터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위원장이 손바닥을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이것은 청문회장에 제출된 생체 증거입니다. 피고인의 증언을 일단 들으십시오.”

변호사가 입을 다물었다. 턱 근육이 굳었다.

신우진이 왼손을 내렸다.

“저는 그날 오후에 팀장 고영호에게 이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서면으로도, 구두로도. 팀장은 다음 날 구매처에 이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구매처에서 회신이 내려왔습니다. ‘현장 검수원의 오기입.’ 그걸로 종결됐습니다.”

청문위원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인사팀 차장이 메모를 적기 시작했다.

“문제의 부품은 3개월 후인 그해 12월 7일, 같은 B4 계열 차량에 장착되어 운행 중 제동 밸브 패킹이 열화 폐기됐습니다. 제동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차량이 탈선했습니다. 제가 그 부품에서 확인했던 패킹 불량 그대로였습니다.”

위원장이 앞으로 몸을 숙였다.

“당시 그 탈선 사고는 정비 과실로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고 조사 보고서 초안은 구매처에서 ‘검토 보류’ 결정이 났습니다.”

신우진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현장이 뒤집어쓰게 되어 있었습니다.”

“보고서 초안을 보셨습니까.”

“7년이 지나서 봤습니다. 제 선임이 남긴 조사 노트에 사본이 있었습니다.”

위원장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시간이 몇 초 흘렀다.

속기사만이 키를 두드렸다.

“그 보고서 초안의 결재 라인에 구매처 담당자 이름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당시 구매처 대리, 현 대영산업 대표 윤태호였습니다.”

방청석에서 이지원이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오후 2시 42분. 이지원이 손을 들었다.

“방청석에서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감사실 소속 이지원 감사관입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감사관님. 방청인은 발언권이 없습니다만, 감사실 소속이면 예외를 인정합니다. 무슨 내용입니까.”

이지원이 일어섰다. 손에 쥔 것은 감사실 신분증이었다.

“감사실은 현재 B4 계열 부품에 대한 시험 성적서 위조 의혹을 정식 감찰 중입니다.”

속기사가 손을 잠시 멈추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신우진 주무관이 증언한 7년 전 TH-1187 계열 부품의 패킹 불량 및 시험 성적서 불일치는, 현재 감사실이 조사 중인 KD-2037 계열 부품의 결함 양상과 설계 계통이 동일합니다. 두 부품은 동일 납품사에서 공급됐고, 동일 구매처 담당자가 계약 갱신을 승인했습니다.”

이지원이 위원장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감사실은 이 증언의 내용이 본 위원회 속기록에 공식 기록될 것을 정식 요청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내부 감사와 징계 절차 사이의 사실적 연관성을 문서상으로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변호사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위원장님! 감사실이 징계 청문회장에서 감사 자료를 거론하는 것은 절차적 월권입니다!”

이지원이 변호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월권이 아닙니다. 감사실 규정 제8조, 공식 회의 속기록에 감사 연관 사항 기록 요청은 감사관의 직무 권한입니다.”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리고 변호사님.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언급한 것은 단순한 감사 자료가 아닙니다. 방금 증언대에 선 분이 증거로 제시한 육체적 흉터가, 현재 감사실이 조사 중인 부품 결함과 동일한 설계 계통의 부품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입니다.”

위원장이 손을 들었다. 변호사가 입을 닫았다.

“이지원 감사관. 당신의 요청은 인지했습니다.”

위원장이 속기사 쪽을 돌아보았다.

“속기록에 ‘감사실 소속 이지원 감사관이 현재 진행 중인 B4 부품 시험 성적서 위조 의혹 감찰과 금일 증언의 연관성을 공식 기록으로 남길 것을 요청함’이라고 기재하십시오.”

속기사가 입력했다.

“그리고… 이 증언에 따라 ‘구매처 과장 및 납품사 대표 윤태호의 개입 의혹’이 본 위원회 회의에서 처음 공식 거론되었음을 함께 기록하십시오.”

이지원이 고개를 숙였다.

“확인했습니다.”

그녀가 방청석에 다시 앉았다.

신우진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 왼손을 책상 아래로 내린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의 흉터가 옅게 저려왔다. 촉각의 기억. 유압유의 온도.

위원장이 두드렸다.

“본 위원회는 오늘 회의에서 제출된 증거와 증언의 범위가 징계 혐의를 넘어서는 사안임을 인지했습니다. 감사실의 공식 입장이 속기록에 기재되었으므로, 3차 회의 일정은 추후 통보합니다. 이상으로 2차 회의를 휴정합니다.”

소리 없이 의자들이 밀려났다. 속기사가 마지막 줄을 입력했다.

오후 2시 50분.

납품사 대표실.

윤태호가 창가에 서 있었다. 커피 잔은 손에 닿지 않은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 표시: 김 변호사. 윤태호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댔다.

“말씀하십시오.”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신우진이 왼손 흉터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유압유 화상이라고. 문제의 부품 결함을 직접 보고했다는 게 흉터로 입증됐습니다.]

윤태호의 오른손이 창틀을 눌렀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계속.”

[흉터 증언은 속기록에 기록됐습니다. 거기까지는 예상 범위였는데, 문제는 감사실입니다. 방청석에 있던 이지원 감사관이 공식 발언권을 요청해서, 속기록에 대표님 이름을 올렸습니다.]

윤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떤 문구로?”

[‘구매처 과장 및 납품사 대표 윤태호의 개입 의혹이 처음 공식 거론됨.’ 위원장이 직접 속기록에 기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침묵.

윤태호의 입술이 얇게 당겨졌다.

“이지원이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군요.”

커피 잔을 집었다. 그대로 싱크대에 부었다. 물 온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변호사님. 두 가지를 바로 하십시오.”

[말씀하십시오.]

“첫째, 구매처 현 과장에게 연락해서, 7년 전 사고 조사 보고서의 결재 라인 관련 공문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전하십시오. 둘째, 김민혁 주무관에게 신우진 쪽이 추가 증거로 제출한 자료 목록을 확보하라고 하십시오.”

[김민혁은 지금 이지원이 감시 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태호가 싱크대 가장자리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조용히, 그러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요. 그걸 피하는 게 일입니다.”

잔 바닥이 유리와 부딪혔다.

“속기록에 이름이 올랐다고 게임이 끝난 건 아닙니다. 이제 날이 저물기 전에 우리 쪽 기록을 완성하면 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윤태호는 창밖을 보았다. 해는 아직 오후의 높이에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조금 길어져 있었다.

본사 3층 복도.

오후 3시 20분.

신우진이 청문회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손에는 7년 전 사고 기록 복사본과 진술서 사본이 들려 있었다. 왼손 흉터는 아직 저렸다. 속기록에 기록된 직후의 그 잔진동. 유압유가 끓던 온도를 뼈가 기억하는 듯했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가죽 구두 굽.

“신우진 주무관님.”

이지원. 오른손에 두꺼운 출력물, 왼손엔 방청 메모를 들고 있었다.

둘은 엘리베이터 반대편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앙 로비와 먼 구석. 유리 난간 너머로 2층이 내려다보였다.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속기록에 들어갔습니다.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녀가 출력물에서 한 장을 빼서 펼쳤다.

“조영우 주무관의 비공식 계정 유출 내역입니다.”

신우진이 고개를 숙여 목록을 훑었다.

“거기 보시면 ‘B4 부품 시험 성적서 사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오늘 청문회에서 제출한 바로 그 문서입니다.”

“같은 파일입니까.”

“해시값이 동일합니다. 이건 당신이 준비한 증거가 청문회 전에 이미 윤태호 쪽으로 흘러갔다는 뜻입니다.”

신우진이 목록을 들었다. 몇 줄을 눈으로 더 따라갔다.

“김민혁이 조영우한테 받은 건 다릅니까.”

“김민혁은 별도 라인입니다. 아까 청문회에서 봉투 전달한 인물. 구매처 계약관리팀 출신. 현재도 구매처 계정에 접속한 이력이 있고요.”

“두 개의 유출 라인.”

“네. 하나는 디지털 파일 유출, 하나는 실물 문서 전달. 감사실 내에 최소 두 명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지원이 출력물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감사실은 내일 아침 이 두 라인을 포함한 예비 감찰 보고서를 완성합니다. B4 부품 시험 성적서 위조 의혹을 정식 조사 항목으로 추가하겠습니다. 오늘 당신의 증언이 공식 기록에 남았으니 절차상 근거는 충분합니다.”

신우진이 창밖을 보았다.

“저는 차량기지로 가서 박중호 팀장님께 오늘 결과를 전하겠습니다. 금고 보고서 제출 절차를 바로 시작하려고요.”

“원본은 열지 말고 외부 감사관 입회를 기다리세요. 절차가 무결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신우진이 진술서 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 이지원의 시계가 오후 3시 32분을 가리켰다. 신우진이 그 시계를 보지 않고 이지원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썹이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질문을 삼킨 표정.

“가시겠습니까.”

“네.”

“그럼 내일 감사실로 연락 주십시오.”

신우진이 몸을 돌렸다.

이지원이 손목 시계를 한 번 만지고 감사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량기지 정비팀 사무실.

해질녘이 들어차기 시작한 창. 바닥에 길게 뻗은 탁자 그림자.

신우진이 문을 열었다.

책상 위에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누렇게 빛바랜 B4 용지. 우측 상단 스탬프: ‘검토 보류 결정 통보.’ 표지의 부품 번호. TH-1187.

박중호가 그 앞에 앉아 있었다. 팔짱. 표정은 돌처럼 굳었다.

“자네 증언 듣고 금고 열었네.”

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중호가 의자를 뒤로 밀며 말했다.

“비밀번호는 내가 잊은 적 없어.”

목소리는 낮았다.

“열지 않은 거였지.”

무정차 통과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