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 통과
24화
본사 인사팀 청문회실. 오후 2시 15분.
회의실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중앙 냉방의 낮은 진동음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타원형 테이블의 무광 표면에 옅은 흰색 띠를 그렸다.
위원장이 목차를 덮었다. 표지가 테이블에 닿으며 내는 작은 소리조차 또렷하게 울렸다.
“징계 대상자, 신우진 주무관. 1차 회의에서 제출하신 검수 노트와 시험 성적서 사본, 그리고 2차 회의에서 제출된 유압유 흉터 관련 증언을 종합 검토했습니다.”
위원장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마지막 음절에 묘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가 좌측 법무팀 변호사에게 시선을 보냈다.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느리게. 단호하게.
법무팀 검토 의견서를 위원장 앞으로 밀었다. 종이가 테이블을 스치는 소리가 신우진의 자리까지 들렸다.
“본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
속기사의 자판이 멈췄다. 키보드 소리가 끊기자 정적이 한 겹 더 두꺼워졌다.
“징계 혐의인 허위 보고 및 품질 검수 태만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합니다. KD-2037-114 부품의 결함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는 혐의는 오히려 피징계자가 해당 부품의 이상을 상부에 보고한 기록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위원장이 신우진을 보았다. 눈빛에는 판결을 전하는 자 특유의 절제된 무심함이 담겨 있었다.
“무혐의 종결입니다.”
신우진의 오른손이 허공에 짧은 획을 그었다. 무언가를 끊어내는 듯한 동작이었다.
멈춤. 손가락 끝에 힘이 풀리며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이의 있습니까.”
윤태호 측 변호사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짧은 마찰음을 냈다.
“위원장님, 검수 일지와 물류창고 입고 대장의 날짜 불일치는—”
“이미 1차 회의에서 검토된 사항입니다. 물류창고의 입고 대장 기재 오류는 해당 부서에서 시정 확인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위원장의 말투는 더 이상의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 잘려 있었다.
변호사가 입을 열려다 멈췄다. 목젖이 한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할 말을 삼키는 모양이었다.
위원장이 속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판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규칙적인 타건음이 회의실을 다시 채웠다.
“징계 청문회는 이것으로 종료합니다. 속기록은 3일 이내 피징계자와 감사실에 송부됩니다.”
신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척추가 접히는 각도가 예각이었다.
짧게.
청문위원들이 먼저 퇴장했다. 어두운 정장의 등이 차례로 문을 빠져나갔다. 이어 법무팀 변호사와 속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기사가 노트북을 접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윤태호 측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챙겼다. 지퍼를 잠그는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신우진 쪽을 한 번 쳐다봤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관둔 듯,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회의실 문이 닫혔다. 공기압 장치가 부드럽게 충격을 흡수하며 문틀에 밀착되는 소리.
신우진이 자기 자리에 10초쯤 더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곧게 세우지도 않은 자세로. 몸 안의 긴장이 빠져나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왼손을 폈다. 집게손가락의 흉터. 유압유에 데인 자국이 형광등 아래서 희미하게 빛났다. 피부 조직이 살짝 오그라든 그 지점이 오늘 회의 내내 서류를 짚을 때마다 신경에 걸렸다.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닿는 감각에 정신이 조금 또렷해졌다.
일어났다.
복도.
신우진이 문을 나서자 이지원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복도 조명이 그녀의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방청 메모를 접고 있었다. 접힌 종이의 뾰족한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한 번 더 눌러 꺾었다.
“종결됐습니다.”
이지원이 메모를 가방에 넣었다. 지퍼를 끝까지 올리는 손동작이 정확했다.
“확인했습니다.”
“감사실에도 속기록이 갑니다.”
“네. 오늘 증언이 공식 기록에 남았으니 절차상 근거는 충분합니다.”
이지원의 어조는 차분했지만, 메모를 넣은 직후 가방을 닫는 속도에는 미세한 탄력이 실려 있었다.
신우진이 복도 끝을 보았다. 형광등이 일정 간격으로 박힌 천장의 원근감이 눈에 들어왔다.
“조영우 건은.”
“함정 문서 경로와 일치합니다.”
이지원이 가방에서 출력물을 꺼냈다. A4 용지에 인쇄된 서버 로그에는 특정 시간대가 붉은 사각형으로 박스 처리되어 있었다.
“조영우가 유출한 B4 시험 성적서 사본. 함정 문서에만 기재한 가짜 부품 번호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확실합니까.”
“유출 일시와 서버 접속 로그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감사실 규정 제8조에 따라 내일 아침 예비 감찰 보고서에 포함됩니다.”
신우진이 출력물을 받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종이 묶음이 손에 닿는 감촉만으로 충분했다.
“내부 감사 재개 조건은.”
“오늘 청문회 속기록과 유출 경로 입증 자료 두 가지로 충족합니다. 감사실장에게 구두 보고는 마쳤습니다. 공식 건의는 지금 올릴 겁니다.”
이지원의 손목 시계가 오후 2시 38분을 가리켰다. 초침이 6을 지나고 있었다.
“가시는 곳은.”
“차량기지입니다. 박중호 팀장님께 결과부터 알리려고요.”
“그럼 먼저 가십시오. 저는 감사실에 들렀다 갑니다.”
신우진이 몸을 돌렸다. 구두 밑창이 복도 바닥을 밀며 방향을 틀었다.
두 걸음.
이지원이 짧게 불렀다. 목소리의 높낮이가 평소보다 반음쯤 올라가 있었다.
“신우진 주무관.”
걸음을 멈췄다. 뒤돌지 않았다. 뒷목의 근육만 살짝 긴장했다.
“오늘 증언. 수고하셨습니다.”
일 초의 공백 후 들려온 그 말은 업무적 인사치레보다 조금 더 느렸다.
신우진이 오른손을 들어 한 번 흔들었다. 손바닥이 허공에 남기는 궤적이 짧았다.
그대로 걸어갔다.
윤태호의 납품사 대표실.
가죽 소파 냄새와 에어컨 바람이 혼합된 공간. 창밖으로 도심의 건물 군집이 오후의 백색광에 잠겨 있었다.
책상 위에 청문회 속기록 사본이 놓여 있었다. 팩스로 들어온 열화상 복사본. 글자들은 원본보다 조금 뭉개져 있었고, 용지 가장자리는 출력되면서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윤태호가 눈을 감았다. 3초. 눈꺼풀 안쪽으로 창밖의 흰 빛이 잔상으로 남았다.
떴다.
“박중호 금고.”
“예?”
순간적으로 구재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모르는 얘기라는 반응이었다.
“7년 전에 검토 보류된 보고서. 박중호가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네가 알던가.”
“그건 몰랐습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해.”
윤태호가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창틀에 손을 짚자 유리 너머 풍경이 발밑으로 펼쳐졌다.
“그 보고서가 지금 나오면 곤란해.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문서가 공식 기록으로 남아버리니까.”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윤태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건물들의 유리 외벽에 부서지는 햇빛이 날카롭게 산란하고 있었다.
“법무팀에 확인해볼 게 있습니다.”
짧은 침묵. 구재호가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보고서의 보존 기한. 폐기 규정. 금고 자체는 개인 소유니까 접근 방법이 다르지.”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지금은 가만히 있어. 네가 움직이면 이지원이 더 빨리 달려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구재호가 먼저 끊지 못하고 잠시 더 머문 숨소리. 그 후에 수화기 너머로 단절음이 들렸다.
윤태호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기 받침대에 닿는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에 울렸다.
책상 위 속기록 사본을 집어 들었다.
신우진의 증언 부분에 노란색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잉크가 복사본 위에서 살짝 번져 있었다.
‘7년 전 탈선 사고의 원인은 TH-1187-04 제동 밸브의 패킹 열화였으며, 규격서와 실제 패킹 재질 코드가 달랐습니다.’
윤태호의 엄지가 그 문장 위를 눌렀다. 힘줄이 손등 위로 드러났다.
종이가 살짝 눌려 접혔다. 접힌 자국이 문장의 중간을 가로질렀다.
본사 1층 로비.
이지원이 먼저 로비에 도착해 있었다.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내렸다. “네, 실장님. 지금 공식 건의 접수합니다.” 통화 종료음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는 손끝이 빨랐다.
신우진이 로비로 들어서며 자신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바지 주머니 안에서 열쇠와 부딪히며 작은 소리가 났다.
“방금 박 팀장님 통화했습니다. 지금 본사 1층 로비에 계십니다. 전화에서 그러는데, 금고에 9년 전 보고서가 있다고 합니다.”
이지원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바닥이 대리석에 닿으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박중호 팀장님이 그걸 지금까지 갖고 계셨다는 건가요.”
“7년간 안 열었다고 합니다. 오늘 제 증언 듣고 열었다고요.”
“원본은 열지 않으셨겠죠.”
“제가 말렸습니다. 외부 감사관 입회 전까지는.”
이지원이 시계를 보지 않았다. 그냥 생각했다. 시선이 공중의 한 지점을 향해 잠시 멈췄다.
“그 금고, 윤태호가 이미 알고 있을까요.”
신우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턱선의 각도가 단단해졌다.
“박 팀장님 말로는, 오늘 아침에 윤태호가 이 건물로 찾아왔답니다.”
“그때 금고 얘기가.”
“직접 꺼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산 증액 조건으로 제 증언을 막자고 했답니다. 거절당했고요.”
이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에는 추론을 정리하는 사람 특유의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윤태호가 금고 내용을 몰랐다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최소한 존재 자체는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동의합니다.”
“지금 차량기지로 가시죠.”
이지원이 가방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잡이를 쥐는 손가락의 위치가 조금 더 안쪽으로 옮겨졌다. 서두를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감사실장 건의는 방금 끝냈습니다. 이메일로 서류 보강할게요. 보고서 사진 파일이 필요합니다.”
신우진이 이지원의 눈을 보았다. 시선의 접촉이 일 초보다 길었다.
“제가 찍겠습니다.”
“아닙니다. 감사실 규정상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원본 훼손 없이.”
“원본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약속했습니다.”
“믿습니다.”
이지원의 목소리. 평소보다 1초 빨랐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이 짧게 붙었다.
“다만 윤태호가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쪽에서 공식 기록으로 남기기 전에.”
“폐기 시도 말입니까.”
“또는 법무팀을 통한 보존 기한 문제 제기. 둘 다 가능합니다.”
신우진이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깨선에 힘이 들어간 걸음걸이였다.
“가면서 말하죠.”
이지원이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로비 바닥에서 거의 동시에 울렸다.
로비 자동문이 열렸다. 유리문이 옆으로 밀리며 외부 공기가 통로를 만들었다.
이지원이 잠시 멈춰 서서 물었다.
“그 금고, 윤태호가 이미 알고 있을까요.”
신우진의 표정이 굳어지며 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즉시 차량기지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