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27화

IT 보안 관제 센터는 본사 지하 1층에 있었다. 출입문 옆 카드 리더기에 사원증을 찍자 유리문이 옆으로 밀렸다.

신우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중 유리창 너머로 서버 랙의 표시등이 파랗게 깜박였다. 실내는 냉각 팬 소리만 낮게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보안 담당자가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출력물 한 묶음이 놓여 있었다.

“요청하신 B4 계열 검수 기록 DB 삭제 건 분석 결과입니다.”

담당자가 출력물을 신우진 쪽으로 밀었다.

“삭제 시점은 3월 17일 오후 11시 42분입니다. 실행 계정은 시스템 관리자 권한, 접속 IP는 내부 전산실 주소예요.”

신우진이 첫 장을 집었다. 삭제 쿼리 실행 로그. 타임스탬프. 계정명. IP 주소.

“복구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인덱스 파일까지 완전 삭제 명령이 들어갔습니다. 백업 서버에도 동기화 전 디렉터리 구조만 남아 있고 데이터는 비어 있어요.”

담당자가 두 번째 장을 가리켰다.

“백업 서버 접근 시간을 보시면 삭제 직전에 로그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의도적입니다.”

신우진이 페이지를 넘겼다. 백업 서버 접근 로그. 3월 17일 오후 11시 38분. 삭제 4분 전.

“4분 차이.”

“네. 먼저 백업 서버에 들어가서 동기화를 중단시킨 뒤 원본을 삭제한 패턴입니다. 우발적 실수가 아니에요.”

신우진이 출력물을 접었다.

“이 내용 감사실에도 송부해주십시오.”

“이미 송부했습니다. 이지원 감사관님께서 권한 로그와 교차 대조 중이십니다.”

담당자가 확인서 한 장을 더 내밀었다.

“공식 확인서입니다. 내부자 의도적 삭제로 결론 났습니다.”

신우진이 확인서를 받았다. 삭제 실행 계정명이 문서 하단에 찍혀 있었다. 시스템 관리자 계정.

기능복 상의 안쪽 주머니에 확인서를 접어 넣었다. 유성 매직이 살짝 눌렸다.

차량기지 검수원 사무실. 오전 업무 시작 전이었다.

책상 위에는 전날 밤 정리해둔 서류철이 그대로 있었다. 신우진은 자리에 앉지 않고 사물함으로 걸어갔다.

자물쇠를 풀고 철제 문을 열었다. 안쪽 선반 위에 낡은 바인더 한 권이 꽂혀 있었다. 7년 전 선임 고영호의 조사 노트.

신우진이 바인더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표지는 짙은 녹색.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옆면에는 유성 매직으로 '2007.09 ~ 2008.03'이라고 쓰여 있었다.

첫 장을 넘겼다.

고영호의 필체는 작고 빽빽했다. 날짜, 부품 코드, 점검 항목, 특이사항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신우진이 11월 쪽으로 넘어갔다.

2007년 11월 27일자 페이지. 상단에 TH-1187이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그 아래에 빨간 펜으로 쓴 메모.

'패킹 마모 기준 초과. 규격서 내열 온도 230도. 실제 재질 코드 불일치. 구매처 대리 윤태호 검토 반려. 내일 재측정 요청 - 거부됨.'

옆 페이지로 넘기자 12월 3일자 기록이 나왔다.

'12월 3일. TH-1187 재검수 요청 묵살. 구매처에서 해당 부품 이상 없음으로 종결. 기록도 삭제 예상. 사본 보관.'

손가락이 멈췄다.

'기록도 삭제 예상.'

신우진이 바인더를 몇 장 더 넘겼다. 2008년 1월. 같은 부품 코드. 같은 이상 기록. 결재 라인에 '구매처 대리 윤태호'가 다시 찍혀 있었다.

TH-1187. B4 계열 제동 밸브. KD-2037-114의 전 세대 모델.

수첩을 꺼내 현재 사건의 부품 코드를 대조했다. KD-2037-114. 패킹 내열 온도 규격 230도. 불일치. 교체 주기 연기 이력 3회.

패턴이 같았다.

2007년 11월의 TH-1187 결함 기록. 12월의 삭제 예상. 2011년 9월의 유압유 누출. 그리고 지금 KD-2037-114.

신우진이 노트에서 11월 27일 페이지와 12월 3일 페이지를 접었다. 휴대폰을 꺼내 두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었다.

이지원에게 전송.

'B4 계열 전 세대. 동일 패턴. 고영호 선임 2007년 11월 기록.'

전송 완료 표시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바인더를 다시 사물함에 넣었다. 자물쇠를 채웠다.

책상 앞에 서서 유리창 너머 정비고를 바라봤다. 유도로에서는 견인차가 객차 한 대를 정비고 안으로 밀고 있었다.

기능복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확인서가 살짝 비어져 나왔다. 신우진은 확인서를 접어 서류철 사이에 끼웠다. 감사실 송부 사본과 동일한 문서. 이지원이 이미 받았을 것이다.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유성 매직을 가슴 주머니에 다시 꽂았다.

삭제된 기록. 7년 전 선임의 노트. 같은 부품 계열. 같은 결재자. 같은 삭제 패턴.

그리고 9년 전 보고서는 아직 박중호의 금고 안에 있었다.

노트를 건네고 돌아온 다음 날 오전, 이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커피 대신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모니터에는 관제 센터에서 보낸 파일 두 개가 나란히 떠 있었다.

이지원이 노트북 화면을 반으로 분할했다. 왼쪽은 IT 보안 관제 센터에서 송부한 접근 권한 로그 파일. 오른쪽은 감사실 인사 명부.

삭제 쿼리 실행 시각은 오후 9시 47분.

로그를 시간 역순으로 정렬했다. 해당 시각 전후 5분간 접속자 일곱 명. 시스템 관리자 계정 하나. 구매처 원격 접속 하나. 감사실 계정 다섯.

이지원이 일곱 개 행을 드래그해 별도 시트로 복사했다.

시스템 관리자 계정은 서버실 출입 기록과 시간이 일치했다. 구매처 원격 접속은 구매처 과장의 통화 시각과 17분 차이였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다.

감사실 내부 계정 다섯.

그중 넷은 정규 근무 시간 외 접속 이력이 드물었다. 한 계정만 달랐다.

이지원이 해당 계정의 3개월치 접속 로그를 불러왔다. 오후 10시 이후 접속 열두 건. 주말 접속 다섯 건. 전부 문서 열람 권한이 필요한 디렉터리 접근이었다.

마우스 포인터가 열람 문서 목록에서 멈췄다.

문서 분류 번호. 감사-내부-기술-연도-일련번호.

아버지가 20년 전 제보했을 때 사라진 문서와 동일한 체계였다.

이지원이 서랍에서 개인 수첩을 꺼냈다. 분류 번호의 접두사 네 자리를 적었다. 그 아래 아버지가 남긴 문서 목록 중 기억나는 번호 세 개를 적었다.

두 글자만 달랐다. 부서 코드였다.

뚜껑을 닫고 수첩을 서랍에 넣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신우진은 검수원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선임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표시해둔 페이지 세 장.

오른손 검지가 한 줄을 따라 내려갔다. 2007년 11월 27일자 기록. 패킹 마모 기준 초과. 구매처 대리 윤태호 검토 반려.

휴대폰이 울렸다. 이지원이었다.

“신 주임님.”

“말씀하십시오.”

“IT 보안 관제 센터에서 로그 분석 결과가 왔습니다. 삭제 실행 시간대 접속자 일곱 명을 확보했습니다. 그중 감사실 내부 계정 하나가 최근 3개월간 비정상적인 야간 접속을 반복했습니다.”

“패턴은.”

“오후 10시 이후 열두 건. 주말 다섯 건. 전부 특정 문서 분류 체계에 집중돼 있습니다.”

신우진이 노트의 페이지를 넘겼다. 2007년 12월 3일. 기록 삭제 예상과 사본 보관 결정.

“이쪽도 교차 확인할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선임 노트에 언급된 부품. TH-1187-04. 제동 밸브.”

신우진이 노트의 다른 페이지를 짚었다.

“KD-2037-114와 같은 계열입니다. 패킹 구조와 밀봉 방식이 동일. 납품사도 같고.”

“대영산업.”

“그렇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이지원이 무언가를 입력하는 소리였다.

“제가 확보한 접속 로그에서 의심 계정이 열람한 문서 목록 중 두 건이 대영산업 납품 품목과 연결됩니다. 부품 코드 기준으로.”

“몇 년도입니까.”

“하나는 2005년. 다른 하나는 2015년.”

7년 전과 9년 전 사이였다. 신우진이 노트 표지를 한 번 쓸었다.

“삭제된 검수 기록과 선임 노트가 같은 납품사의 같은 계열 부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대체 경로로 유효하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이지원의 키보드 소리가 멈췄다.

“의심 계정의 신원은 아직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소속 부서와 접속 패턴만 확보된 상태입니다.”

“추적하실 겁니까.”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신 주임님은.”

신우진이 노트를 접었다. 표지의 주인 없는 서명을 엄지로 한 번 눌렀다.

“박 팀장님께 직접 묻겠습니다. 9년 전 그 보고서 말입니다.”

신우진이 바인더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표지는 짙은 녹색.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옆면에는 유성 매직으로 '2007.09 ~ 2008.03'이라고 쓰여 있었다.

첫 장을
무정차 통과2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