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33화

사무실 복도 바깥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오후 6시 30분. 신우진은 책상 위 노트 왼쪽 페이지에 공장 가동 로그 사진의 시간차를 정리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최명식의 제보 요약이 적혀 있었다.

가동일-발행일 평균 20.3일. 길드원 제보: 2021년부터 시험 미실시 후 성적서 사후 발급.

노트를 덮으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대영정밀 윤태호'라고 떴다. 신우진이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우진입니다.”

“윤태호입니다. 퇴근 전에 잠시 개인적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매끄러웠다. 공장에서 보인 경계는 한 겹 눌러놓은 톤이었다.

“어디서.”

“기지 앞 라마다 호텔 1층 라운지. 여섯 시 오십분쯤.”

신우진은 노트를 덮었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신우진은 노트와 공장 로그 사진을 출력한 종이 두 장을 가방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기능복 상의를 벗어 걸고 검은색 점퍼로 갈아입었다. 유성 매직을 가슴 주머니에 꽂았다.

책상 위에는 최명식이 전달한 메모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대한정밀 내부 소문: 2022년 3월 교정 기록 소급 작성. 신우진은 그 메모지를 접어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사무실 불을 끄고 복도로 나왔다. 검수장 쪽은 이미 조용했다.

냉기가 감도는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밤공기에는 미량의 유압유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건 뒤 5분 만에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

라운지 안은 한산했다. 구석 단독석에 윤태호가 앉아 있었다. 짙은 남색 수트. 왼손 약지의 금색 인장 반지가 테이블 조명 아래 반짝였다. 앞에는 커피 두 잔.

신우진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윤태호가 커피를 밀어주며 웃었다 입술만 올라갈 뿐 눈은 그대로였다.

“이렇게 시간 낸 건, 신 주임님을 위해서입니다.”

“용건이 뭡니까.”

윤태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얇았다.

“검수과장 자리가 곧 빕니다. 지금 팀장님이 연말 정년퇴직이죠.”

신우진의 오른손 검지가 테이블 가장자리에 짧게 멈췄다.

“그리고.”

“안전교육센터로 전보를 생각해보시는 겁니다. 현장에서 부품 만지는 것보다,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위치죠.”

윤태호의 손가락이 커피 잔 손잡이를 빙글 돌렸다. 금색 인장 반지가 조명을 한 번 튕겼다.

“중간 관리자로 남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신우진이 커피 잔을 바라봤다. 검은 액체 표면에 천장 조명이 작게 박혀 있었다.

“대영산업이 인사에 관여할 위치인가요.”

“관여라니요.” 윤태호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주변에서 추천할 수는 있는 거죠. 물론 신 주임님이 검수실에서 계속 버티셔도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신우진은 팔짱을 풀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그런 제안을 할 이유가 궁금합니다.”

윤태호의 눈 깜빡임이 한 박자 늦었다. 두 박자쯤 지나 입가에 미소가 돌아왔다.

“능력 있는 분을 오래 봐왔기 때문일 겁니다. 청문회에서도 느꼈습니다. 근거를 대는 방식이라든가, 놓치는 부분이 없다는 점.”

“청문회 결과는 무혐의였습니다.”

“맞습니다. 잘 끝난 일은 자꾸 들춰내면 도움이 안 되죠.”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쪽 바 테이블에서 잔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윤태호가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였다.

“신 주임님, 계속 이렇게 만나는 것도 피곤한 일 아닙니까. 서로 부담을 줄일 방법은 많아요. 분기별 시험 일정을 조정하면 양쪽 다 부담이 줄어들죠.”

신우진의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 짧은 점 하나를 찍었다. 분기별 시험 일정 조정.

공장 가동 로그에는 분기별 시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계약 갱신 직전에만 몰려 있었다. 윤태호가 방금 꺼낸 말은, 시험 일정이 정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였다.

“분기별 시험 말씀하셨는데. 현재 어느 분기에 어떤 시험을 하시는지.”

윤태호의 손가락이 커피 잔에서 1센티미터쯤 떨어졌다. 순간 동작이 멎었지만, 곧바로 잔을 집어 올렸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죠. 신 주임님도 검수 일지 쓰시니까 아실 텐데.”

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트 속 시간차 데이터가 하나씩 떠올랐다. 가동일과 발행일 사이 20일. 분기별 시험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윤태호가 입 밖으로 꺼낸 말 자체가 허구였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오늘 당장 답을 드릴 수 없어서.”

윤태호가 잔을 내려놓았다. 표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금색 반지를 한 번 비틀었다.

“당연하죠.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제안은 그때까지 유효합니다.”

“알겠습니다.”

신우진이 일어섰다. 커피 잔은 그대로 두고 가방을 들었다. 윤태호가 뒤에서 한 마디 더 얹었다.

“좋은 결정 기다리겠습니다.”

음성은 여전히 매끄러웠지만, 끝 음절이 평소보다 반 톤 낮았다.

신우진은 라운지를 나와 로비를 가로질렀다.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서자 찬 공기가 이마에 닿았다. 호흡이 하얗게 풀렸다.

주차장으로 걸으며 점퍼 안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어두워서 글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종이의 촉감이 손가락에 남았다.

분기별 시험 일정 조정.

공장 로그에 없는 시험 일정을 윤태호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말했다. 성적서가 사후 발급된다는 길드원의 소문과, 가동 로그의 시간차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가방을 조수석에 내려놓았다. 시동은 걸지 않았다.

신우진은 핸들을 잡은 채 몇 초간 앞 유리 너머를 바라봤다. 호텔 로비 불빛이 유리창에 흐릿하게 번졌다.

윤태호는 자신이 매수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게 오늘 제안의 전제였다.

신우진은 시동을 걸었다.

호텔 주차장. 신우진이 운전석에 앉아 문을 닫았다. 천장 형광등 불빛이 앞 유리를 희끄무레하게 덮었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윤태호의 마지막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분기별 시험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겠군요. 조건을 흘리듯 말했지만 어휘는 정확했다. 신우진은 이지원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가고 연결됐다.

“이 감사관님.”

“신 주임님.” 이지원의 목소리 너머로 키보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배경이 조용한 걸 보면 사무실에 혼자인 듯했다.

“윤태호 만난 자리 방금 끝났다. 회유였어.”

“조건은요.”

“예산 증액, 인원 충원. 내년 정비팀 배정으로.”

수화기 너머로 키 입력이 멈췄다. 이지원의 호흡만 짧게 들렸다.

“받아들이셨습니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그쪽도 그걸 원했을 겁니다. 즉답을 피하는 걸 수용 가능한 신호로 읽죠.”

신우진은 시동을 걸지 않은 채 대시보드 위에 왼손을 올렸다. 손가락 마디의 흉터가 형광등 빛에 옅게 드러났다.

“윤태호가 한 발언 중에 하나. ‘분기별 시험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계약 갱신 시기를 두고 하는 말로 들렸는데, 표현이 구체적이었어.”

이지원의 키보드가 다시 움직였다. 빠르게, 세 번 정도.

“분기별 시험 일정 조정이라면, 납품사 자체 시험 일정을 말하는 거군요. 규정 개정 이후에는 구매처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인데.”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 다만 시험 일정을 거래 조건처럼 꺼냈다는 게 걸렸다.”

“타이밍이 묘합니다. 제가 추적 중인 정보원 불일치 건도 시험 성적서 재발급 날짜와 관련돼 있어요. 2022년 3월, 신청일과 등록일이 11일 차이 나는 건. 거기에 결재선도 배상호였고요.”

신우진이 대시보드 위의 손을 내렸다. 손가락이 운전대 아래로 내려갔다.

“내 공장 로그에 찍힌 것도 시험 가동일과 성적서 발행일이 평균 20일 차이다. 둘 다 시간차 문제다.”

“같은 패턴이군요. 사후 조정 정황.”

이지원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분석 모드로 전환될 때 나오는 톤이었다.

“그런데 시험 일정 조정이 가능하다는 건, 납품사 내부에서도 시험 자체를 일정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합법적 조정인지, 성적서 날짜를 소급해서 맞추는 건지는 별개고요.”

“윤태호 입장에선 둘 다 가능하다는 걸 내게 보여준 셈이다.”

“의도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스트로 던진 발언 같아요. 신 주임님이 그걸 받아서 반응하면 회유 효과를 측정할 수 있으니까.”

신우진은 코로 숨을 내쉬었다.

“감사실에서 그 부분 확인할 수 있나.”

“지금 할 겁니다. 정보원 라인 전체를 다시 뽑아볼게요. 2022년 3월 건만 불일치인지, 다른 건들에도 패턴이 있는지.”

“내일 아침 감사실로 간다. 공장 로그 원본 가져가겠다.”

“탁자 위는 치워두겠습니다. 커피는 알아서 드시고요.”

통화가 종료됐다.

신우진은 휴대폰을 조수석에 내려놓고 시동을 걸었다. 계기판 불이 들어왔다. 기어를 후진에 넣기 전, 잠시 윤태호와의 대화를 정리했다.

분기별 시험 일정 조정. 예산 증액보다 그 한마디에 더 신경이 쓰였다. 시험 일정을 거래 재료로 내놓았다는 건, 그 일정 자체가 조작 가능한 변수라는 뜻이었다. 신우진은 기어를 옮겼다.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밤 10시 10분. 철도공사 본사 감사실.

이지원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형광등 두 개 중 한 개는 꺼져 있었다. 사무실 전체가 어둡고, 데스크 램프 불빛만 키보드와 서류 더미를 비추었다. 그녀는 내부 감사 전용 시스템에 접속해 정보원 라인의 과거 제보 로그를 시간순으로 불러왔다.

먼저 2022년 3월 건을 다시 열었다. 신청일 3월 4일, 등록일 3월 15일. 11일 차이. 이건 확인된 불일치였다. 그다음, 같은 정보원이 제공한 다른 월의 재발급 목록을 차례로 열었다.

2021년 9월. 3건. 신청일과 등록일 사이 2~4일 차이. 통상적인 행정 지연 범위였다.

2022년 1월. 1건. 차이 없음.

2022년 3월. 앞서 본 11일 차이 포함 2건. 나머지 1건은 3일 차이.

2022년 6월. 제보 없음.

2022년 9월. 1건. 1일 차이.

2023년 1월. 2건. 6일, 7일 차이.

이지원이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1년 6개월간의 제보를 훑었을 때, 차이가 큰 건들은 모두 특정 납품사의 부품과 연결돼 있었다. 대한정밀의 시험 성적서 재발급 건만 차이가 컸다. 그 외 납품사 관련 제보는 거의 없거나, 있어도 차이가 미미했다.

그녀가 별도 창을 열어 정보원의 전체 제보 주제 분포를 조회했다. 지난 2년간 총 57건의 제보. 그중 41건이 공통 부품이나 절차 관련. 납품사별로 분류하자, 대영산업 관련 제보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영산업은 이 정보원의 제보 목록에서 완전히 빠져 있었다.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파일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 지난주에 출력해둔 정보원 접근 권한 로그 파일을 꺼냈다. 검수 기록 삭제 당일, 감사실 내부 시스템에 접속한 계정 목록.

그중 audit_kdh 계정. 조영우 후임 김민혁의 계정. 그리고 또 하나, 정보원 라인에 연결된 식별자 하나가 당일 오전 2시 14분에 로그인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이지원은 로그 파일을 들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접속 시간과 해당 계정의 열람 이력을 줄줄이 대조했다.

오전 2시 14분 로그인. 2시 17분, B4 계열 검수 기록 인덱스 조회. 2시 21분, 대영산업 납품 이력 조회.

2시 28분, 로그아웃. 삭제 실행은 같은 날 오전 5시 41분이었다. 시간 차 세 시간 남짓. 이 계정은 삭제 전에 데이터를 열람하고 로그아웃했다.

이지원이 이 계정의 과거 접속 기록을 빠르게 스크롤했다. 주말 접속, 심야 접속이 반복됐다. 열람한 문서 목록에 대영산업 관련 파일은 없었다. 대한정밀, 중앙부품, 삼일기공 — 다른 납품사들의 시험 성적서와 교정 기록만 있었다.

그녀가 프린터로 로그 파일을 출력했다. 출력물이 한 장씩 쌓이는 동안, 손으로 빈 종이에 리스트를 적었다.

1. 2022년 3월 불일치 건 — 결재선 배상호. 2. 2년간 제보 57건 중 대영산업 제보 0건. 3. 정보원 라인 계정, 삭제 당일 새벽 B4 검수 기록 열람 후 로그아웃. 4. 동 계정, 6개월간 대영산업 관련 문서 열람 기록 전무 — 타 납품사는 반복 열람.

그녀가 펜을 내려놓았다. 접근 권한 로그 출력물을 별도 파일로 묶어 표지에 ‘정보원 라인 접근 기록 — 내부 감사 대비’라고 적었다.

데스크 램프 아래에 출력물을 정렬하던 중, 감사실 내부 전화가 울렸다.

짧고 낮은 벨 소리. 업무 시간 외에는 거의 울리지 않는 회선이었다.

이지원이 수화기를 쳐다봤다. 발신자 표시 액정에 번호가 떠 있었다. 비공개 번호. 정보원 라인에서 사용하는 식별자 앞 네 자리와 동일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파일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 지난주에 출력해둔 정보원 접근 권한 로그 파일을 꺼냈다. 검수 기록 삭제 당일, 감사실 내부 시스템에 접속
무정차 통과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