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36화

모니터 오른쪽 구석에 띄운 감시 콘솔이 47분째 같은 화면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지원은 보온병 뚜껑을 열지도 않은 채 키보드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감시 대상 #01' 폴더 안에 쌓인 로그는 이미 함정 정보 유출의 경로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그걸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다른 걸 찾고 있었다.

삭제 사건.

검수 기록 47건이 사라진 날, 이 스파이는 무엇을 했는가.

이지원이 날짜를 역산해 접속 로그를 불러왔다.

배상호의 계정. 그날 오전 2시 14분, B4 계열 검수 기록 열람. 오전 2시 31분, 대영산업 납품 이력 조회. 그리고 로그아웃.

그로부터 3시간 뒤, proc_mks 계정이 접속해 동일한 기록을 다시 열람했다. 삭제는 그 직후.

이지원은 두 사건을 나란히 띄웠다. 함정 정보 유출 로그. 배상호의 계정이 서버 접근 로그를 조회한 시각과 외부 협력자에게 메시지가 발송된 시각 사이, 7분.

8분이었다. 이번엔 7분.

삭제 사건 때도 같은 패턴이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지원이 데이터베이스 접속 로그에서 당일 새벽 시간대를 필터링했다. 감사실 서버 접속 기록 중 배상호의 사번으로 인증된 세션을 하나씩 열었다.

세 번째 세션에서 멈췄다.

외부 IP. 사내망이 아닌, LTE 모바일 대역. 접속 시간은 삭제 실행 2시간 47분 전.

이지원이 로그를 스크롤했다. 해당 세션에서 배상호는 검수 기록을 열람한 뒤, 감사실 내부 메신저 서버에 접속했다. 그다음 외부 메일 서버로 트래픽이 발생했다.

내용은 암호화돼 있어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발신 시각과 수신자 도메인은 남아 있었다.

dhparts.com.

이지원이 수첩을 펼쳤다.

‘배상호 — 삭제 당일 외부 IP 접속. 검수 기록 열람 후 dhparts.com 발신. 함정 정보 유출 패턴과 동일한 시퀀스.’

그녀가 해당 도메인을 감시 콘솔의 검색 필터에 입력했다. 최근 6개월간 동일 도메인으로 발송된 감사실 발신 트래픽을 추출했다.

스물네 건. 전부 배상호의 계정에서 발생했다. 발신 시간은 모두 야간 또는 주말.

이지원이 그중 가장 오래된 건을 열었다. 2년 3개월 전.

내부 메신저 로그에 남은 배상호의 메시지.

‘확인 필요. B4 계열 부품 예비 검사 일정 공유.’

같은 표현이었다. 2년 전에도 이미.

이지원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고 로그 창을 하나 더 열었다. 배상호가 정보원으로 등록한 첫 제보부터 현재까지, 그가 감사실에 전달한 모든 제보의 날짜와 주제.

57건.

그녀가 한 줄씩 넘겼다. 대한정밀 시험 절차 미비 보고. 구매처 결재 지연 보고. 품질관리팀 인력 부족 보고. 전부 타사, 타 부서였다.

대영산업 관련 제보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지원이 화면을 캡처했다. 제보 목록 전체를 PDF로 변환해 '감시 대상 #01' 폴더에 저장했다.

파일명: ‘제보_누락_패턴_대영산업_0건_2년57건.pdf’

그다음 감사실 서버 접근 권한 관리 페이지로 이동했다. 배상호의 계정을 선택했다. 권한 정지 사유 입력 창이 떴다.

이지원이 적었다. ‘내부 정보 유출 및 이중 스파이 행위 확인. 감사실 규정 제8조 위반. 긴급 접근 차단.’

마우스 커서가 '실행' 버튼 위에 멈췄다.

그녀가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갱신됐다. 배상호의 계정 상태가 '활성'에서 '차단'으로 바뀌었다.

이지원이 휴대폰을 들었다. 신우진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 두 번.

“신우진 씨.”

“들려요.”

“배상호입니다. 정보원 라인에 있던 배상호. 함정 정보 유출 주체, 검수 기록 삭제 당일 외부 IP에서 B4 기록 열람 후 대영산업 도메인으로 발신. 2년 동안 57건 제보 중 대영산업 관련 건은 0건. 이중 스파이 확정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숨소리만 들렸다.

“접근 권한은.”

“방금 차단했습니다. 배상호가 아직 모를 겁니다.”

“증거 목록.”

“보내드릴게요.”

“아니, 내가 지금 작성한다. 감사 재개 요청서 초안, 오늘 밤 안에 보낸다.”

이지원이 수첩을 보며 말했다.

“배상호의 접속 로그와 제보 누락 패턴, 함정 정보 유출 내부 메신저 문구를 증거로 첨부할 예정입니다. 요청서에 포함시킬 항목은——”

“알고 있다. 자료 먼저.”

“지금 전송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이지원이 '감시 대상 #01' 폴더에서 파일 세 개를 압축했다. 배상호의 접속 로그 전체, 제보 목록 분석, 함정 정보 유출 내부 메신저 캡처. 암호화해 신우진의 감사실 계정으로 전송했다.

전송 완료 로그를 확인한 뒤,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곧바로 내부 메신저 서버의 과거 로그로 돌아갔다.

배상호가 외부 협력자와 주고받은 메시지 중, 암호화되지 않은 상태로 서버에 잔존한 구문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지원이 발신 메시지 로그를 시간 역순으로 스크롤했다.

함정 정보 발송 당일.

‘확인 필요. 본사 감사실 TH-1187 언급. 내용은 추후 전달.’

한 달 전.

‘확인 필요. 검수 기록 열람 요청.’

여섯 달 전.

‘확인 필요. B4 계열 자료 확보.’

일곱 달 전.

‘확인 필요. 감사관 현장 방문 일정.’

1년 4개월 전.

‘확인 필요. 신규 검수 보고서 접수.’

전부 같은 구조였다. '확인 필요'로 시작해 '추후 전달' 또는 '취합 후 전달'로 끝나는 문형.

이지원이 그 문구들을 별도 텍스트 파일에 복사했다. 그리고 다른 폴더를 열었다.

조영우 사건 파일.

1년 전, 감사팀 주무관이던 조영우가 대영산업으로 유출한 문서 목록과 그가 사용한 내부 메신저 로그 일부가 저장된 폴더였다. 당시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 중, 외부로 발송된 메시지 원문 스크린샷이 있었다.

이지원이 그 이미지를 확대했다.

조영우가 1년 5개월 전 외부로 보낸 메시지.

‘확인 필요. 금주 감사 일정 변동. 상세 취합 후 전달.’

'확인 필요.'

'상세 취합 후 전달.'

이지원이 조영우의 메시지와 배상호의 메시지를 나란히 띄웠다.

동일한 시작어. 동일한 종결어. 수신자 도메인도 같았다 — dhparts.com.

그녀가 수첩에 새로운 줄을 그었다.

‘문구 패턴 일치: 배상호 ↔ 조영우. “확인 필요” / “상세 취합 후 전달.” 수신자 dhparts.com 동일.’

이지원이 조영우 사건 파일을 더 열었다. 조영우의 내부 메신저 로그에서 배상호와의 직접 대화 기록이 있는지 검색했다.

없었다. 두 사람 사이의 메시지 이력은 전무했다.

직접 연결 고리는 없다. 대신 윤태호라는 같은 수신자를 향한, 같은 문구의 발신자.

이지원이 조영우가 사용한 문구와 배상호가 사용한 문구를 텍스트 파일로 정리했다. 표현, 띄어쓰기, 마침표 위치까지 일치하는 부분을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했다.

조영우는 1년 전 전출됐다. 그 자리를 김민혁이 이었다. 김민혁은 현재 물리적 문서 유출 라인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배상호는 디지털 정보 유출 라인이었다.

인물은 바뀌었다. 문구는 바뀌지 않았다.

이지원이 화면을 응시했다.

이건 단순한 이중 스파이 사건이 아니다. 윤태호는 내부 협력자를 관리할 때 일정한 커뮤니케이션 템플릿을 사용한다. 협력자가 누구든 동일한 문구 패턴으로 지시하고 보고받는다.

그 템플릿이 지금, 증거로 남았다.

이지원이 파일을 저장했다. 폴더명을 '패턴분석내부협력자_커뮤니케이션'으로 변경했다. 그 안에 배상호의 메시지 24건, 조영우의 메시지 3건, 그리고 패턴 일치 분석 시트 하나를 넣었다.

이 패턴은 앞으로 다른 협력자를 식별할 때도 쓸 수 있다. 배상호와 조영우 외에 제3의 발신자가 동일한 문구를 사용한 로그가 있는지 감사실 서버 전체를 검색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내일 아침의 일이었다.

지금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이지원이 감사실 책임자에게 보낼 긴급 보고의 초안을 열었다. 제목란에 적었다.

‘정보원 라인 이중 스파이 확인 및 접근 권한 차단 보고 — 배상호’

본문 첫 줄을 쓰려던 순간, 화면 오른쪽 아래에 메일 알림이 떴다.

발신인: 신우진.

제목: ‘감사 재개 요청서 초안 — 첨부 증거 목록 포함.’

이지원이 메일을 열었다. 첨부 파일 두 개. 하나는 공식 요청서 양식, 다른 하나는 증거 목록 시트.

요청서 초안의 첫 문단.

‘본 요청서는 2024년 1월 26일 감사실 내부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정보원 라인 소속 배상호의 이중 스파이 행위 및 B4 계열 검수 기록 삭제 관여 증거를 근거로 내부 감사 재개를 청구합니다.’

증거 목록 시트에는 일곱 개 항목이 적혀 있었다.

이지원이 한 줄씩 확인했다. 항목 4번에 '함정 정보 유출 내부 메신저 문구'가, 항목 6번에 '삭제 당일 배상호 외부 IP 접속 로그'가 포함돼 있었다. 그녀가 방금 전송한 자료가 정확히 반영돼 있었다.

이지원이 수첩을 덮었다. 보온병 뚜껑을 처음으로 열었다. 보리차가 아직 미지근했다.

그녀가 한 모금 마시고, 감사 재개 요청서 답신을 작성했다.

‘증거 목록 확인 완료. 조영우 사건 메시지와 배상호 메시지 간 문구 패턴 일치 추가 증거 확보. 내일 오전 9시 감사실 책임자 보고 시 함께 제출 예정. 해당 패턴 파일 별도 첨부합니다.’

첨부 파일로 '패턴분석내부협력자_커뮤니케이션' 폴더를 압축해 올렸다.

전송 직후, 그녀는 감사실 서버의 백업 스케줄러를 확인했다. 새벽 3시 정기 백업 전에 모든 자료가 보존되도록 '감시 대상 #01'과 '패턴_분석' 폴더를 수동 백업 경로에 추가했다.

화면 시계가 밤 10시 12분을 가리켰다.

이지원이 모니터 두 대를 모두 켜둔 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몸이 무거웠다. 피로가 허리께에 쌓여 있었지만 손끝은 아직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감사실 창밖을 보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일 아침이 오면, 이 파일들은 감사 재개의 근거가 된다. 정치적 반격은 그때 시작될 것이다.

대전 자택 서재.

윤태호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은 상태로, 암호화된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했다. 배상호의 접근 권한이 차단되었다는 알림이었다. 감사실 서버 접속 로그가 실시간으로 외부에 전달되던 사이드 채널도 함께 끊겼음을 의미했다.

그는 곧바로 정치 후원금 라인 담당자의 번호를 찾았다. 배상호의 라인이 무너진 이상, 내일 아침 감사 재개 발표 전에 먼저 움직여야 했다.

이지원의 답신을 확인한 후 신우진은 곧바로 요청서 최종 검토에 들어갔다. 이지원이 첨부한 문구 패턴 분석 파일을 다운로드해 첨부 목록에 추가하고, 두 사람이 각자 확보한 증거가 하나의 시간축에서 어긋나지 않는지 대조했다. 배상호의 2022년 로그인 기록과 이지원이 추출한 2년간의 패턴이 만나는 지점을 본문에 세 줄로 요약했다.

밤 11시. 대전차량기지 검수원 사무실.

신우진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모니터 화면에는 감사 재개 요청서 최종본이 떠 있었다. 왼쪽 검지 손가락의 오래된 흉터가 모니터 불빛에 드러났다.

배상호의 계정 로그. 앞선 사건 함정 정보 유출 기록. 이지원이 확보한 2년간의 문구 패턴. 7년 전 선임 고영호의 조사 노트 사본.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존재 증언.

신우진이 요청서의 첨부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첨부1: 감사실 서버 접근 로그 분석 결과 (배상호 계정, 2022년 3월~2024년 1월) 첨부2: 함정 정보 유출 확인 보고서 (2024년 1월 26일) 첨부3: 검수 기록 삭제 당일 접속 기록 대조표 첨부4: 고영호 선임 조사 노트 사본 (TH-1187 로트 관련 페이지) 첨부5: 박중호 검수팀장의 9년 전 보고서 관련 증언 녹취록

문서를 인쇄했다. 프린터가 서너 장을 차례로 뱉어냈다. 그가 인쇄물을 들어 정렬하고 왼쪽 상단을 스테이플러로 찍었다.

휴대폰을 들었다. 이지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요청서 최종본 송부. 배상호 건 포함.'

곧바로 답신이 왔다.

'확인했습니다. 감사실장님께 내일 아침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신우진은 두 번째 복사본을 꺼내 봉투에 담았다. 한경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두 번.

“오늘 일 마감 안 했어?”

한경숙의 목소리였다. 배경에서 서류 넘기는 소리가 났다.

“감사 재개 요청서 나왔다. 내일 아침 감사실 정식 접수 전에 노조 측도 사본 받아둬야 한다.”

“지금?”

“법률 대리인 통해서 접수해. 시간이 없다.”

잠시 멈칫하더니 한경숙이 말했다.

“알았어. 지금 사람 보낼게. 팩스 안 되고 직접 전달이야?”

“원본 사본이다. 직접 받아가라.”

“10분 안에 도착한다.”

전화를 끊었다. 신우진이 봉투 겉면에 '노동조합 법률 대리인 귀중'이라고 적었다.

그가 요청서 원본을 들고 감사실 팩스 번호로 표지를 먼저 보냈다. 이어 본문 8장을 차례로 팩스기에 넣었다. 기계가 한 장씩 빨아들이며 송신음을 냈다.

송신 완료.

잠시 후 이지원의 확인 문자가 왔다.

'8장 전부 수신. 접수번호 2024-감-0037. 법적 효력 확보.'

신우진이 잠시 눈을 감았다. 서류 더미에서 고영호의 노트 사본이 삐져나와 있었다. 2007년 11월 27일자 페이지. 윤태호가 검토를 반려했다는 기록. 기록 삭제를 예상했다는 문장.

그가 노트를 요청서 사본과 함께 서랍에 넣었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노조 조끼를 입은 젊은 조합원이었다.

“신우진 선배님. 지부장님이 서류 받으라고 보내셨습니다.”

신우진이 봉투를 건넸다.

“법률 대리인 사무실은 24시간이지.”

“네. 바로 접수합니다.”

조합원이 봉투를 받아 챙기고 뛰어나갔다.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신우진이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 시계는 오후 11시 14분. 감사 재개 요청서 한 부는 감사실로, 한 부는 노조 법률 대리인에게. 어느 한쪽이 막혀도 다른 쪽이 살아 있다.

휴대폰이 울렸다. 한경숙이었다.

“방금 내부 제보가 하나 더 들어왔어요. 윤태호의 정치 후원금 라인이 내일 아침 감사 재개 발표 전에 먼저 움직일 거라는 정보예요.”

신우진의 표정이 굳었다.

“근거는.”

“제보자가 구체적인 계좌명 두 개를 알려줬어요. 확인 중이에요.”

신우진이 컴퓨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1시 16분. 내일 아침까지 아홉 시간 남짓.

“알겠다. 확인되는 대로 알려줘.”

통화를 끊었다. 신우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서랍 속 요청서 사본 위로 고영호의 노트가 놓여 있었다.

그가 모니터를 끄지 않은 채로 수첩을 펼쳤다.

이지원이 조영우의 메시지와 배상호의 메시지를 나란히 띄웠다.

동일한 시작어. 동일한 종결어. 수신자 도메인도 같았다 — dhparts.com.

그녀가 수첩에 새로운 줄을 그었다
무정차 통과3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