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4화

이른 아침. 금정차량기지 검수고 사물함 구역.

신우진은 수첩을 펼쳤다. 야간 잔업 중 기록한 메모를 다시 읽었다.

'HJ-4412. 대영산업 등록 코드와 불일치.' '제조사 식별 코드와 납품사 등록 코드 상이.'

손전등 불빛 아래서 찍은 부품 사진도 확인했다. 하우징 측면의 제조사 식별 플레이트. 'MFR: HJ-4412'가 선명했다.

수첩을 덮고 사물함을 열었다. 기능복 상의를 꺼내 입었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 유성 매직을 꽂았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생각이 손끝으로 흘렀다. 오른손 검지로 허공에 짧은 획을 그었다. 부품 코드. 불일치. 원본 성적서.

사물함 문을 닫았다.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검수고를 나섰다.

오전 8시 15분. 철도공사 본사 구매처 사무실.

복도 벽면의 안내판이 층별 부서를 표시하고 있었다. 3층 — 구매처, 계약관리과.

신우진은 계단을 올랐다. 구매처 사무실 유리문 앞에 섰다. 문 옆 출입 인증 단말기에 사원증을 갖다 댔다.

경고음. '접근 권한 없음 — 소속 부서 외 출입 제한.'

신우진은 단말기 옆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몇 초 후 여직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떤 용무십니까.”

“정비팀 검수 주임 신우진입니다. 부품 시험 성적서 열람하려고 왔습니다.”

잠시 멈춤. 기계음과 함께 유리문이 열렸다.

집무 공간은 조용했다. 오전 업무 시작 전이라 직원 몇 명만 자리에 있었다. 신우진은 계약관리과 책상을 찾았다.

책상 앞에서 젊은 남자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명찰에는 '계약관리과 주임 민경수'라고 적혀 있었다. 민경수는 신우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떤 부품이죠?”

“KD-2037-114. 사고 열차에서 분리한 제동 밸브입니다.” “사고 조사 관련 열람입니까?”

“아닙니다. 정비팀 검수 주관 열람입니다.”

민경수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을 보며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이 부품, 현재 사고 조사 진행 중인 건입니다.” “열람하려면 팀장님 결재가 있어야 합니다.”

신우진의 시선이 민경수의 얼굴에 고정됐다. 눈가의 피로가 짙었지만 동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비팀 검수 주임 권한으로는 안 됩니까.”

“규정상 안 됩니다. 사고 조사 중인 부품은 결재 라인 통과 후에만.”

신우진은 잠시 민경수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화면에는 부품 정보와 '사고 조사 문서 연동 중 — 열람 제한'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알겠습니다.”

더 묻지 않았다. 돌아서서 구매처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팀장 결재. 고영호. 사고 보고서에서 부품 항목을 삭제하라고 압박했던 그 팀장의 결재가 필요했다.

허공에 검지가 짧은 직선을 그었다. 수직선 한 번. 가로선 한 번.

그리드를 그리듯 두 번 끊고 손을 내렸다. 신우진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전 9시 30분. 금정차량기지 검수고.

박중호가 검수고 중앙 통로로 들어섰다. 어깨가 넓고 발소리가 묵직했다. 왼쪽 소매에는 여전히 오래된 유압유 얼룩이 남아 있었다.

신우진은 검수대 위에서 정비 일지를 펼치고 있었다. 박중호가 신우진의 등 뒤로 다가왔다. 검수대 위의 부품 사진을 한 번 훑어봤다.

“아침부터 구매처 다녀왔다며.”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소문 빠르네요.”

“계약관리과 주임이 정비팀 과장한테 전화 돌렸다.” “팀장 결재 없이 열람 요청한 검수원이 있다고.”

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중호는 검수대 위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제조사 식별 코드 사진. 'MFR: HJ-4412'가 확대되어 있었다.

박중호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됐다. 사진을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코드 봤냐.”

“어젯밤에 확인했습니다.”

박중호는 침묵했다. 오른손으로 뒷목을 만졌다. 목에서 귀 뒤로 이어지는 오래된 흉터를 손가락이 스쳤다.

“9년 전에도 비슷한 게 있었다.”

신우진의 상체가 약간 앞으로 기울었다.

“어떤 부품이었습니까.”

“제동 계통이었어.” “등록 코드가 서류랑 안 맞았지.” “그것도 야간 잔업 중에 발견했고.”

박중호는 검수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조사 보고서까지 올라갔다.” “묻혔다.” “말 그대로 묻힌 거다.”

신우진이 물었다. “누가 묻었습니까.”

“모른다.” 박중호가 고개를 저었다. “당시 조사했던 사람은 4년 전에 퇴직했고.” “보고서는 어딘가에 있겠지만 지금 꺼내긴 어려울 거다.”

“왜 어렵죠.”

박중호가 신우진을 돌아봤다. 눈이 작았지만 시선은 정확했다.

“니가 오늘 구매처에서 들은 말이 뭔데.” “팀장 결재 필요한데.” “니 팀장이 결재해줄 것 같나.”

말하지 않았다. 신우진도 답하지 않았다. 둘 사이로 검수고의 압축 공기 배관에서 낮은 배기음이 새어나왔다.

박중호가 자리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기록은 어딘가에 있겠지만.” “다시 꺼내는 놈은 없었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본 전부다.”

박중호는 검수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묻지 못하게 자르는 걸음이었다.

신우진은 수첩을 꺼내 왼쪽 페이지에 짧게 적었다. '9년 전 유사 건 — 조사 보고서 존재했으나 묻힘.' '당시 조사자 4년 전 퇴직.'

그 순간. 검수고 유도로 쪽 출입문이 열렸다. 최명식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섰다.

오전 10시 20분. 금정차량기지 검수고 외부 유도로.

최명식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신우진에게 다가왔다.

“선배님.” “좀 전에 유도로에서 이상한 거 봤어요.”

신우진이 수첩을 덮었다. “뭔데.”

“사복 입은 남자 한 명이 검수 대기 중인 차량 옆에서 사진 찍고 있었어요.” “제가 다가가니까 급히 차 타고 나갔고.”

“어떤 차량이었지.”

“1123호. KTX-산천 편성이요.” “사람이 찍은 건 차량 하부 제동 장치였어요.” “각도가 검수용 사진이 아니라 납품사 검품 사진 같았고.”

최명식이 손을 내저으며 계속 말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아, 그리고 차 번호도 적었어요.” “41거 7856. 검은색 쏘나타.”

“명찰 같은 건.”

“없었어요. 근데 점퍼 왼쪽 가슴에 로고가 있었어요.” “빨간색 원 안에 영문 이니셜.”

최명식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DS. 정확히 기억나요.”

신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DS. 대영산업의 이니셜이었다.

“시간은.”

“10시 8분쯤.”

신우진은 수첩에 적었다. '1123호 검수 차량 — 대영산업 추정 인물 무단 촬영.' '41거 7856. 검은색 쏘나타. 10:08.'

최명식이 목소리를 낮췄다.

“선배님, 저거 혹시 우리 검수 기록 지우려고 미리 와 있는 거 아니에요?” “어제 팀장님이 보고서에서 부품 항목 빼라고 했다면서요.”

“네가 들었어.”

“현장 분위기가 그래요. 다들 눈치만 보고 있고.” “팀장님이 선배님 보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고.”

최명식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 말이 더 빨라졌다.

“근데 저는 그냥 지나가다 본 거니까 신고 같은 건 안 해도 되는 거죠?”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아니다.”

신우진이 짧게 답했다. “네가 본 것만으로도 정보야.” “계속 지켜봐.”

최명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뭐 더 보이면 바로 올릴게요.”

최명식이 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우진은 허공에 검지를 한 번 더 그었다. 원을 따라 도는 궤적. 그리고 정지.

오후 2시 20분. 철도공사 본사 구매처 사무실 인근.

신우진은 구매처가 있는 층 복도에 다시 섰다. 벽면 안내판 옆으로 직원 전용 개인 보관함이 줄지어 있었다.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양옆을 살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수첩에서 세 장을 조심스럽게 뜯어내었다. 보관함을 열고 안쪽 파일을 꺼냈다.

첫 장: 어젯밤 기록. 'HJ-4412. 대영산업 등록 코드와 불일치.' '제조사 식별 코드와 납품사 등록 코드 상이.'

둘째 장: 박중호의 말. '9년 전 유사 건 — 조사 보고서 존재했으나 묻힘.' '당시 조사자 4년 전 퇴직.'

셋째 장: 최명식의 목격. '1123호 검수 차량 — 대영산업 추정 인물 무단 촬영.' '41거 7856. 검은색 쏘나타. 10:08.'

세 장을 파일에 끼워 넣었다. 부품 사진 여러 장을 USB에 복사했다. 확인했다. 같은 사본이 이미 두 군데 더 분산되어 있었다.

보관함을 닫으며 생각이 정리됐다. 구매처는 팀장 결재를 요구한다. 팀장은 부품 항목 삭제를 요구한다. 납품사는 검수 현장을 사전 정찰한다.

촘촘한 벽이었다. 빈틈이 없었다.

신우진은 자물쇠를 잠그며 낮게 내뱉었다.

“한 번은 막아도, 이번엔 아니다.”

유성 매직을 주머니에 다시 꽂았다. 그 벽의 한 지점을 관통할 열람 방법. 팀장 결재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5시 50분. 납품사 본사 사무실, 윤태호 집무실.

윤태호는 창가에 서 있었다. 짙은 남색 수트의 소매가 유리창 빛을 받아 반사됐다. 왼쪽 턱선의 얕은 칼자국 흉터가 창밖 빛에 실루엣으로 드러났다.

탁상 위에서는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윤태호가 돌아서서 전화를 집었다. 발신자: 구매처 과장.

통화 버튼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말투는 부드러웠다.

“과장님. 오늘 오후 늦게까지 고생하십니다.”

구매처 과장의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 윤 과장님, 오늘 아침에 정비팀 검수원 하나가 구매처에 찾아왔습니다.

“들었습니다. 신우진 주임이더군요.”

— KD-2037-114, 사고 부품의 시험 성적서 원본 열람을 요청했습니다. — 규정대로 팀장 결재 없으면 안 된다고 돌려보내긴 했는데.

윤태호의 오른손 약지에 낀 인장 반지가 창밖 노을을 받아 짧게 반짝였다.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신 주임이 뭘 더 가져가진 않았습니까.”

— 아닙니다. 열람 요청했다 거부당하고 바로 나갔습니다.

“그러면 우리 쪽에서 먼저 할 일이 있겠네요.”

윤태호는 책상 위의 또 다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보안 파일 전용 단말기.

“구매처 보관 중인 시험 성적서 원본과 정비 일지 사본.” “내일 오전 중으로 일괄 검토해서 문서 상태 점검하시죠.” “미리 정리할 건 정리하시고요.”

—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공식적인 요청으로 기록이 남으면...

“기록은 남지 않습니다.”

윤태호가 부드럽게 끊었다. “관행적인 문서 점검이니까요.” “과장님이 구매처 내부 규정대로 하시면 됩니다.”

—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윤태호가 보안 단말기를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 검수원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확인하십시오.” “누구랑 이야기했는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특히 야간 잔업 기록이 있는지.”

—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신우진이라는 사람, 고집이 좀 세다던데.

“고집은 세도 조직은 혼자 못 움직입니다.” “더구나 상부 결재 라인이 확실하면 말이죠.”

잠시 침묵. 구매처 과장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 윤 과장님, 혹시 이번 건, 본부장님까지 올라갈 수도 있습니까.

윤태호의 입가가 1mm 올라갔다. 미소. 눈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건 제가 조치하겠습니다.” “정치권 쪽 후원자분께도 상황을 미리 공유할 생각입니다.”

— ...정치권이요?

“본부장 결재 이전에.” “먼저 알아야 할 분들이 계시니까요.”

윤태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이건 단순한 부품 불일치가 아닙니다.” “7년간 유지해온 납품 계약의 문제니까요.” “우린 그걸 지켜야 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윤태호는 보안 단말기를 서랍에 넣었다. 손가락이 인장 반지를 한 번 돌렸다.

창밖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납품사 로고가 새겨진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붉은 원 안에 'DS'.

윤태호는 천천히 블라인드를 내렸다.

무정차 통과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