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41화

감사실 복도엔 아직 인적이 드물었다. 이지원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왼손이 메탈 시계 밴드를 한 번 톡 쳤다. 컴퓨터 전원을 켜는 동안 오른손은 이미 내선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전산실입니까. 감사실 이지원입니다.”

모니터가 켜지며 감사 시스템 로그인 화면이 떠올랐다. 이지원이 수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우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어제 오후 4시부터 금일 오전 9시까지 감사실 계정의 외부 메일 발송 로그 전체를 요청합니다. 수신자 주소, 발송 시각, 첨부파일명 포함해서.”

수화기 너머로 짧은 확인 응답이 들렸다. 이지원이 전화를 끊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 왼쪽에는 감사실 내부 문서 관리 시스템. 오른쪽에는 비공개 조사 자료 목록. 어젯밤 당직 중 확인했던 비정상 접근 기록이 북마크돼 있었다.

이지원이 북마크를 클릭했다. 접근 시각 오후 4시 32분. 계정은 auditclerk03. 열람 문서는 ‘AU-2024-003 내부 조사 초안 v2.1’.

사무원 계정이다. 정식 조사 권한이 없는 계정.

이지원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메일 서버 로그 조회 요청에 대한 회신이 왔다. 전산실에서 보낸 암호화 파일. 이지원이 다운로드해 열었다.

엑셀 시트가 펼쳐졌다. 발송 시각 기준으로 정렬된 로그. 총 47건의 외부 발송 기록. 이지원이 필터를 걸었다. 시간대: 어제 오후 4시~5시.

세 건으로 좁혀졌다.

첫 번째. 오후 4시 38분. 발송자 auditclerk03.

수신자 외부 도메인. 첨부파일명 ‘내부검토자료.pdf’. 제목 없음.

두 번째. 오후 4시 41분. 동일 발송자. 동일 수신자. 첨부파일명 ‘참고자료_추가.pdf’.

세 번째. 오후 4시 45분. 발송자는 다른 계정.

수신자는 사내 메일. 첨부파일 없음. 정상 업무 메일.

이지원이 첫 번째 로그의 수신자 도메인을 확인했다. dhparts.com.

왼손이 시계 밴드에서 떨어졌다.

배상호가 사용하던 것과 동일한 도메인. 윤태호 측 수신자. 이지원이 두 번째 로그의 첨부파일명을 클릭했다. 파일 크기 2.4MB. ‘AU-2024-003 내부 조사 초안 v2.1’의 용량과 일치했다.

“참고자료_추가.”

이지원이 작게 읊조렸다. 파일명을 위장한 것이다. 내용은 조사 초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가 auditclerk03 계정의 접근 권한을 조회했다.

해당 계정은 감사실 행정 지원용으로 발급된 공용 계정. 세 명이 사용 권한을 갖고 있었다. 사무원 두 명, 그리고 야간 당직 보조 한 명.

계정 권한으로는 비공개 조사 문건에 접근할 수 없었다.

이지원이 접근 로그로 돌아갔다. 오후 4시 32분. auditclerk03이 조사 초안을 열람한 시각이다. 그 직후 4시 38분에 같은 계정에서 외부로 PDF가 발송됐다.

시간차 6분.

누군가 auditclerk03 계정을 이용해 권한 밖의 문서에 접근한 다음, 그 계정으로 외부 발송까지 실행했다.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장 위쪽에 놓인 암호화 파일 보관함을 열었다. 내부 정보원 연락망 기록이 담긴 USB를 꺼내 컴퓨터에 꽂았다.

파일을 열었다. 암호를 두 번 입력했다. 일곱 개의 코드네임이 화면에 떴다. 각 코드네임 옆에 실제 계정 정보가 병기돼 있었다.

코드네임은 INF-01부터 INF-07까지. INF-01부터 INF-06은 정보원 여섯 명. INF-07은 배상호.

이지원이 auditclerk03 계정의 접근 권한 보유자 세 명을 한 명씩 정보원 명단과 대조했다. 첫 번째 사무원. 해당 없음. 두 번째 사무원. 해당 없음.

세 번째. 야간 당직 보조 계정.

이지원의 손가락이 멈췄다.

INF-04.

정보원 네트워크에 속한 인물이었다. 2년 전 감사실 야간 당직 보조로 배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온 라인. 이지원이 직접 리크루팅한 건 아니었다. 감사실 내부에서 정보원을 확보하라는 감사실장의 지시에 따라 전임자가 연결해준 접점.

이지원이 INF-04의 제공 기록을 열었다.

최근 6개월간 23건의 제보. 문서 분류 체계, 결재선 변경 정보, 비공개 회의 일정. 신뢰도가 높은 정보원이었다. 마지막 제보는 3일 전. 감사실 내부 감찰 일정이었다.

그 INF-04가 조사 초안을 외부로 유출했다.

이지원이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의 로그와 정보원 명단을 번갈아 응시했다. 왼손이 다시 시계 밴드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INF-04 계정으로 접근한 시각과 auditclerk03 계정으로 문서를 열람한 시각이 정확히 4분 차이였다. INF-04가 자신의 계정으로 비공개 조사 문건 목록을 확인한 뒤, auditclerk03으로 전환해 문서 본문을 열람하고 외부 발송까지 실행했다.

계정 전환이 의도적이었다.

이지원이 auditclerk03의 지난 1주일간 접근 로그를 불러왔다.

어제 오후 4시 32분 외에는 모두 정상 업무 시간대 접근이었다. 문서 복사, 팩스 발송 기록 조회, 회의실 예약 확인. 행정 업무뿐.

어제 오후 4시 32분만 이탈이었다.

이지원이 INF-04의 지난 1주일간 로그를 추가로 조회했다. 감사실 내부 서버 접근 기록이 줄지어 떴다. 대부분 오후 6시 이후. 야간 당직 시간대.

어제 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4시 28분. INF-04 계정으로 비공개 조사 문건 목록 접근.

오후 4시 32분. 동일 IP 주소에서 auditclerk03 계정으로 AU-2024-003 초안 열람.

오후 4시 38분. auditclerk03 계정에서 dhparts.com으로 파일 발송.

이지원이 IP 주소를 확인했다. 192.168.7.204. 감사실 사무실 내부 네트워크 주소. INF-04가 실제로 이 사무실 안에서 작업했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INF-04의 접근 패턴을 3개월 치로 확장했다.

비슷한 패턴이 세 건 더 발견됐다.

첫 번째. 3개월 전. 감사 예비 조사 목록을 열람. 8분 후 auditclerk03으로 전환. 외부 발송 이력 있었음.

두 번째. 6주 전. 내부 감찰 대상자 명단 조회. 역시 auditclerk03으로 전환. 이때는 발송 대신 출력 기록이 남아 있었다.

세 번째. 2주 전. 감사실장과 이지원의 비공개 회의록 열람. 동일 패턴. 외부 발송.

이지원이 손을 내려놓았다.

INF-04는 최소 3개월 전부터 조직적으로 내부 문서를 유출해왔다. 정보원 활동은 표면. 실제로는 정보를 빼내는 쪽이었다.

배상호와 같은 방식. 같은 인프라. 같은 수신자 도메인.

배상호 라인이 끊기자 다른 라인이 작동한 것인지.

아니면.

이지원이 시계를 바라봤다. 오전 9시 27분. 그녀가 USB를 제거하고 암호화 파일 보관함을 닫았다.

INF-04가 속한 정보원 라인. 나머지 정보원들도 확인이 필요했다. INF-04가 사용한 계정 전환 수법. 다른 정보원에게 전수됐을 가능성. 혹은 처음부터 협력 관계였을 가능성.

이지원이 auditclerk03의 접근 권한 보유자 세 명을 다시 확인했다. 사무원 두 명은 정보원이 아니었다. 그러나 INF-04가 이들에게서 계정 정보를 확보한 경로가 문제였다.

사무원 한 명이 의도적으로 계정을 제공했거나.

보안 관리 허점을 INF-04가 이용했거나.

전자라면 용의선은 셋. INF-04. 그리고 auditclerk03 권한을 가진 사무원 두 명.

이지원이 세 명의 계정명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실명은 기재하지 않았다. 코드네임과 계정 ID만.

INF-04. clerk01. clerk02.

그녀가 메모장을 저장하고 창을 닫았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auditclerk03의 어제 로그가 떠 있었다. 4시 38분 발송 기록.

정보원 네트워크 안에 침투한 이중 스파이.

한 명이 아닐 가능성.

이지원이 전화기를 들었다. 단축번호 2번. 신우진.

신호음이 두 번 울렸다.

신우진이 차량 시트에 몸을 기댔다. 시동은 꺼져 있었다. 병원 옥상 주차장 가장자리. 계기판 시계가 오전 10시 2분을 가리켰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지원.

핸즈프리 버튼을 눌렀다. “말해.”

“감사실 비공개 조사 문건 초안이 외부로 유출됐습니다.”

이지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어젯밤 말한 접근 로그 건과 같은 라인이에요. 정보원 라인 내부 계정 하나가 오늘 아침 7시 14분에 문건을 열람했고, 8분 뒤 dhparts.com 도메인으로 발송 기록이 남았습니다.”

신우진의 오른손 검지가 스티어링 휠 테두리에 멈췄다.

“같은 도메인이다. 배상호 때와.”

“맞습니다.”

이지원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스피커에 닿았다.

“문건 초안은 감사실 내부에서도 접근 권한이 여섯 명에게만 부여된 상태였습니다. 정보원 라인 계정은 그 권한 밖이에요. 누군가 내부에서 출력하거나 화면을 캡처해 전달했다는 뜻입니다.”

신우진이 차창 밖을 보았다. 야간 약국 간판은 이미 꺼져 있었다. 주차장 바닥의 흰 선이 오전 햇빛에 바래 보였다.

“병원 쪽도 조직적이었다.”

“들었습니다. 메모지 확보하셨다고요.”

“면회 시간, 경비 교대 시간까지 기록돼 있었다. 한 사람이 즉흥적으로 쓴 수준이 아니야.”

“두 사건의 실행 방식이 유사합니다.”

이지원의 키보드 소리가 배경에서 짧게 들렸다.

“병원 감시 메모와 감사실 문건 유출 모두 사전에 접근 권한·시간대·이동 경로를 파악한 상태에서 이뤄졌어요. 정보원 라인 계정의 발송 시각은 오전 7시 22분. 병원 메모지에 적힌 경비 교대 시각은 22시였죠.”

신우진이 허공에 짧은 세로획을 그었다.

“같은 배후. 윤태호.”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지금 이 유출은 배상호 이후에도 정보원 라인 안에 또 다른 협력자가 있다는 의미예요.”

“몇 명으로 압축됐나.”

“정보원 라인 일곱 명 중 배상호를 제외한 여섯 명. 그중 감사실 문건 초안을 획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은 세 명입니다.”

이지원의 말투가 더 정확해졌다. 한 글자씩 재단하듯.

“실명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정보원 보호 원칙 때문에.”

“알겠다.”

“세 명 모두에게 식별 코드를 심은 가짜 문서를 발송할 생각입니다. 문서 내용은 ‘신규 결함 발견 — B4 계열 후속 부품 패킹 균열 의심’. 존재하지 않는 제보예요. 각 문서에 보이지 않는 식별 코드를 삽입하고, 외부 유출 시 코드로 누구에게서 나갔는지 추적합니다.”

신우진이 계기판을 바라보았다. 연료 게이지가 절반 아래였다.

“시간은.”

“오후 2시에 발송합니다. 내부 메신저로 각자에게 개별 전송. 그전에 문서 작성과 코드 삽입을 끝내야 합니다.”

“알았다.”

신우진이 시동을 걸었다. 계기판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지금 병원에서 사택으로 이동한다. 메모지는 보관 중. 오후에 복사본 하나 만들어 둔다.”

“확인했습니다.”

이지원의 목소리에 잠시 간극이 있었다.

“신우진 주임님.”

“말해.”

“이쪽 유출자 식별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다린다.”

통화가 종료됐다. 신우진이 기어를 후진에 넣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오후 2시. 감사실 이지원 사무실.

모니터 세 대가 켜져 있었다. 왼쪽 화면에는 내부 메신저 클라이언트. 중앙에는 가짜 문서 편집 창. 오른쪽에는 서버 로그 모니터링 화면이 떠 있었다.

이지원이 문서의 마지막 문장을 확인했다.

「B4 계열 KD-2037 후속 로트에서 패킹 표면 균열 2건이 육안 검수 과정에서 발견됨. 해당 로트 번호는 #KD-2037-114-B. 금주 금요일 현장 확인 예정.」

존재하지 않는 로트 번호였다. 존재하지 않는 균열이었다. 문서 속성에서 글꼴 메타데이터를 열었다.

각 수신자별로 보이지 않는 식별 코드를 삽입했다. 첫 번째 문서에는 문서 작성자 필드에 더미 이니셜 한 글자. 두 번째 문서에는 마지막 문단 띄어쓰기 패턴에 미세한 차이. 세 번째 문서에는 숨겨진 텍스트 박스에 여섯 자리 식별자.

이지원이 내부 메신저를 열었다.

수신자 세 명의 계정을 하나씩 선택했다. 각각 다른 시차를 두고 문서 파일을 첨부했다. 첫 번째 발송. 전송 완료. 3분 간격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발송을 이어갔다.

오른쪽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서버 로그 모니터링 화면에 세 개의 발송 기록이 차례로 떠올랐다. 각 기록 옆에 이지원이 입력한 식별 코드가 조용히 표시되었다.

발송 후 7분. 아직 외부 전달 로그는 없었다.

이지원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모니터 오른쪽 구석의 서버 시간이 초 단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른손이 마우스로 이동했다.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중앙 화면이 어두워졌다. 왼쪽 화면도 순차적으로 꺼졌다.

이지원이 어두워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검은 유리 표면에 자신의 얼굴 윤곽만 희미하게 남았다.

“이제 누가 먼저 걸려드는지 지켜보자.”

목소리는 사무실 안에서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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