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 통과
48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신우진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단축번호 1번. 이지원이었다.
신호음 두 번 만에 연결됐다.
“감사실 이지원입니다.”
“기록관리부서 연락 왔다. 우리가 요청한 대한정밀 시험 성적서 파일, 지난주 금요일에 이미 폐기 이관 신청이 접수됐다.”
수화기 너머로 이지원의 숨소리가 잠시 멎었다.
“누가 신청했습니까.”
“구매처 요청으로 법무팀이 접수. 상부 결재 보류 중이지만 금요일 오후 5시까지가 마감이다.”
“공문 접수번호는 확보하셨습니까.”
“AUDIT-2024-0087.”
신우진은 수첩을 보지 않고 읊었다. 손가락 끝이 메모지 모서리를 한 번 눌렀다.
“또 하나. 부품 검수 기록 삭제 명령. 누가 실행했는지 추적해야 한다. IT보안팀에 접속 로그 열람 요청해달라.”
“곧바로 신청하겠습니다. 감사실장 명의로 공식 문서 올리면 한 시간 안에 승인됩니다. 로그는 서버실에서만 열람 가능합니다.”
“그럼 본사로 간다.”
신우진은 전화를 끊고 기능복 상의를 집어 들었다. 서랍에서 공문 접수증 출력본을 꺼내 파일에 철했다. 유성 매직을 왼쪽 가슴 주머니에 꽂았다.
차량기지 주차장으로 나갔다.
오전 11시 27분. 철도공사 본사 4층 IT보안팀 서버실.
항온항습기의 낮은 진동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랙 선반 사이로 LED가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이지원이 출입 카드를 리더기에 댔다. 문이 열리자 서늘한 공기가 쏟아졌다.
신우진이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서버실 한쪽에 설치된 별도 콘솔 앞에 IT보안팀 직원이 앉아 있었다.
“감사실 이지원입니다. 한 시간 전에 접수한 접속 로그 열람 건입니다.”
직원이 모니터를 돌렸다. 화면에 로그 뷰어가 열려 있었다.
“요청하신 시간대, 작년 11월 13일 오전 2시에서 3시 사이 검수 기록 데이터베이스 접속 로그입니다. 필터링 완료했습니다.”
이지원이 콘솔 앞으로 다가갔다. 신우진은 그 옆에 서서 화면을 내려다봤다.
로그는 시간 역순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가장 위에서 두 번째 줄. `02:14:08 — DELETE QUERY EXECUTED — Table: B4_INSPECTION`
“삭제 실행 시각이 2시 14분입니다.”
이지원이 커서를 해당 라인에 올렸다. 상세 정보 창이 열렸다.
`SOURCE_IP: 172.16.7.42` `MAC_ADDR: 00-1A-2B-3C-4D-5E` `ACCESSPATH: AUDITGW → DB_B4` `AUTH_LEVEL: 7`
신우진이 팔짱을 풀었다.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 짧은 가로선을 그었다.
“외부 접속 시도 기록도 확인해달라.”
직원이 별도 창을 열었다. 방화벽 로그가 스크롤됐다.
“해당 시간대 외부 IP 접속 시도는 세 건입니다. 전부 차단됐고, 인증 실패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 삭제 명령은 외부 침입이 아닙니다.”
이지원이 커서를 IP 대역으로 옮겼다.
“172.16.7.x 대역은 감사실 인접 구역입니다. 내부망 3번 게이트웨이를 경유했고, 접근 경로도 AUDIT_GW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내부 인물이다.”
신우진의 목소리가 서버실 냉각음보다 낮았다.
이지원이 로그 하단부로 스크롤했다. 접속 계정 정보가 표시됐다.
`USERID: COOP04` `DEPT_CODE: INF-COLLAB-07` `ACCOUNTTYPE: EXTERNALAUDIT_COLLABORATOR`
마우스를 쥔 이지원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 부서 코드는 감사실 내부 직원이 아닙니다. 정보원 협력 부서 코드입니다.”
“누구인지 특정 가능한가.”
“계정 자체는 개인 식별자가 아닙니다. 협력 부서 코드로 공통 부여된 공용 계정입니다.”
이지원이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보안 폴더를 열었다. 정보원 라인 관리 명단이었다.
일곱 개의 코드가 표시됐다. INF-01부터 INF-07까지.
INF-04의 상세 정보를 터치했다.
`DEPT_CODE: INF-COLLAB-07` `ACCOUNT: COOP_04` `AUTH_LEVEL: 7`
“일곱 명 중 네 명에게 동일한 계정이 공통 부여되어 있습니다.”
“네 명.”
“정보원 라인 내부자입니다.”
이지원이 명단을 닫았다. 손끝이 태블릿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이 계정으로 접속한 로그를 시간 역순으로 뽑아주십시오.”
IT보안팀 직원이 쿼리를 실행했다. 새 창에 로그가 쏟아졌다.
`2023-11-13 02:14:08 — DELETE B4_INSPECTION` `2023-11-13 02:12:31 — QUERY B4INSPECTIONRECORDS` `2023-11-13 02:09:55 — LOGIN COOP_04`
이지원이 위쪽으로 스크롤했다. 다른 날짜의 접속 기록들이 줄을 이었다. 전부 심야 시간대였다. 오전 1시에서 3시 사이. 평균 접속 시간은 4분 20초.
“작년 11월 13일이 유일한 삭제 실행입니다. 그 이전에는 전부 조회만 했습니다.”
신우진이 화면에서 로그 사본을 요청했다. 직원이 USB에 복사해 건넸다. 신우진은 주머니에 넣지 않고 손에 쥐었다.
“이 네 명 중 하나가 실행자다.”
이지원이 태블릿을 가방에 넣었다. 어깨끈을 매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배상호의 계정으로 유출된 것과는 별개의 라인입니다. 이건 내 정보원 라인 내부에 있는 또 다른 협력자입니다.”
“윤태호가 여러 개의 선을 깔아뒀다는 뜻이다.”
“정보원 라인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 중 일부는 애초부터 윤태호에게 보고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우진은 USB를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유성 매직 옆으로 꽂혔다.
“네 명 명단은 갖고 있나.”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은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함정 수사가 필요합니다. 누가 유출자인지 특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짜 정보를 흘려야 합니다.”
신우진은 잠시 이지원을 봤다.
“언제 할 건가.”
“내일 안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이지원이 콘솔에서 로그아웃했다. 화면이 잠기며 감사실 로고가 떠올랐다.
“지금 확실한 건 하나입니다.”
이지원이 신우진을 향해 돌아섰다.
“내 정보원 라인에 배신자가 있습니다. 네 명 중 한 명입니다.”
서버실 냉각음만이 잠시 공간을 채웠다. 신우진은 USB가 든 주머니를 한 번 톡 쳤다.
“증거는 내가 보관한다.”
두 사람이 서버실을 나왔다. 복도 창문으로 정오가 가까운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서버실을 나선 뒤에도 4인 명단에 대한 말은 오가지 않았다. 점심을 건너뛰고 IT보안팀을 거쳐 감사실로 돌아오는 동안, 신우진은 가슴 주머니의 USB가 옷감 너머로 딱딱하게 눌리는 감각만 느꼈다. 이지원은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4분이었다.
오후 2시 4분. 감사실 이지원 사무실.
탁자 위에 IT보안팀 로그 출력본이 펼쳐져 있었다. 네 명의 정보원 코드명 옆에 최근 6개월간 접속 IP, 로그인 시각, 비정상 접근 기록 여부가 수기로 적혀 있다. 이지원이 노트북 화면을 돌려 신우진에게 보였다.
“통신 기록 교차 검증 권한을 신청했습니다. 승인까지 1시간 예상입니다.”
신우진은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TH-1187 출력본과 앞선 사건에서 확보한 정치 후원금 회계 정리 일정표 사본을 꺼냈다. 두 문서를 나란히 놓고 로그의 타임스탬프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왼쪽 검지가 출력본 인쇄 일자를 짚었다. 작년 11월 12일 오후 10시 43분.
이어서 로그 출력본의 삭제 실행 시각을 짚었다. 11월 13일 오전 2시 14분.
“4시간도 안 됐다.”
신우진이 회계 정리 일정표의 날짜를 가리켰다. 태흥컨설팅과 미래정책연구소에서 자금이 이동한 날이 11월 12일이었다. 인출 시각은 전날 밤 11시 52분, 오전 6시 14분.
“인쇄 후 자금 이동. 그날 밤 삭제.”
이지원이 일정표를 집어 들었다. 시선이 날짜와 시각을 오가며 멈췄다.
“윤태호가 회계를 정리한 직후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시간적 연관성이 성립합니다.”
신우진은 빈 A4 용지에 가로선을 그었다. 왼쪽부터 ‘인쇄(11/12 22:43) → 자금 이동(11/12 23:52) → 삭제 실행(11/13 02:14)’ 순으로 적고, 그 아래에 ‘윤태호 회계 재정비’라고 기입했다.
“증거 연쇄표로 쓰겠습니다.”
이지원이 끄덕였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복도 조명이 깜빡였다. 이지원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권한 승인됐습니다.”
이지원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정보원 네 명의 최근 30일 접속 로그가 화면에 떠올랐다. 출퇴근 시간대, 야간 접속 횟수, 접속 시간, 비번일 접속 여부가 표로 정리되었다.
신우진은 로그를 보지 않았다. 증거 연쇄표에 TH-1187-04의 인장 강도, 중량, 패킹 재질을 차례로 적어 내려갔다. 숫자가 칸을 채울수록 손끝 움직임이 빨라졌다.
“주임님.”
이지원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INF-04 접속 기록입니다. 삭제 당일 오전 2시 17분. 내부 단말기 T-AUD-07에서 접속했습니다.”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비번일인가.”
“그날이 일요일이었습니다. INF-04의 근무 일정표에는 비번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이지원이 INF-04의 근무 일정표 PDF를 열었다. 11월 13일 칸은 공란이었다. 그 옆에 로그 기록. 단말기 접속, 감사실 문서 목록 열람, 비공개 조사 문건 AU-2024-003 조회. 접속 시간 14분.
“비번일에 사무실 단말기로 접속해 감사 문서를 열람했습니다.”
신우진은 연쇄표를 밀어 놓고 일어나 이지원의 모니터를 보았다. 화면 속 로그 줄 하나가 굵게 하이라이트되어 있었다.
“다른 용의자는.”
“나머지 세 명은 삭제 당일 접속 기록이 없습니다. INF-04만 예외입니다.”
이지원이 INF-04의 통신 기록을 추가로 열었다. 동일 시간대 dhparts.com 도메인으로 발신된 암호화 메일이 있었다. 제목은 ‘확인 필요. 감사실 신규 보고 건.’ 윤태호의 고정 문구 패턴과 일치했다.
“함정 수사 1차 표적으로 특정하겠습니다.”
신우진이 말했다.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비상 연락망도 차단하지 않습니다.”
이지원이 덧붙였다.
신우진은 자리로 돌아가 연쇄표 마지막 열에 ‘11/13(일) 02:17 — INF-04 비번일 접속 — 감사 문건 열람 — dhparts.com 발신’이라고 적었다. 볼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났다.
이지원이 새 문서를 열었다. 상단에 ‘감사실 내부 검토용 — 대영산업 납품 부품 추가 검증 결과’라는 가짜 제목을 입력했다.
“내일 아침 본사 압수수색이 있을 예정이라는 내용을 흘립니다. 이 문서가 어디로 새는지 실시간 추적하겠습니다.”
신우진은 연쇄표 마지막 칸에 수기로 ‘함정 접촉 대기’라고 적었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공문 접수증과 함께 파일에 철했다. 서랍을 닫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