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 통과
53화
신우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감사실 복도, 오전 9시 25분. 왼손으로 커피 컵을 쥔 채 메시지를 열었다.
추가 확인. 강도영 주임. 오늘 아침 서버 로그에서 배상호와 동일한 외부 메시징 패턴 발견. 현재 감사실 3층 문서고에 있음.
발신인 이지원. 신우진은 커피를 복도 휴지통에 버렸다. 답신 없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비상 계단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5층, 4층. 손잡이를 짚을 때마다 왼손 검지의 유압유 흉터가 차가운 철제 난간에 닿았다.
강도영. 감사실 정보원 라인을 관리하는 주임. 배상호가 적발된 후 2주 동안 이지원은 서버 접속 로그를 전수 분석 중이었다. 정보원 계정들의 접속 시간대, 접속 IP 대역, 외부 메시지 템플릿을 하나씩 대조했다.
그 결과가 방금 전 문자였다. 배상호와 동일한 패턴.
신우진은 3층에서 계단 문을 밀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소등된 형광등 아래 카펫이 습기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문서고는 복도 끝 왼쪽이었다.
오전 9시 31분. 문서고 앞 복도.
이지원은 철제 문 옆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 로그 분석 출력물을 쥐고 있었다. 문서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쪽에서 노트북 화면의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문을 완전히 열었다.
강도영이 문서고 내부 열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내부 감사 문서 목록이 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마흔 즈음, 얇은 뿔테 안경 너머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사적인 열람입니다만.”
이지원이 출력물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A4 용지 세 장. 서버 로그 타임라인, 외부 메신저 IP 대역 비교표, 배상호와 강도영의 접속 패턴 중첩 그래프.
“외부 메시지 템플릿이 일치합니다.”
이지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출력물의 세 번째 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배상호가 dhparts.com으로 발송한 암호화 메일의 제목 형식 — ‘확인 필요. 감사실 신규 보고 건.’ 당신이 지난 6개월간 동일한 수신자에게 발송한 템플릿과 일치합니다. 접속 시간대도 동일합니다. 매주 화요일·목요일 오후 11시 20분에서 25분 사이.”
강도영이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봤다.
“수신자 IP 대역도 배상호의 접속 기록과 세 자리까지 동일합니다. 구매처 측 프록시 서버를 경유한, 윤태호 본부장 비서실의 내부망 노드입니다.”
이지원이 출력물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정보원 라인의 제보 목록 열람 권한이 있는 당신이, 지난 2년간 윤태호 측에 어떤 제보 내용을 넘겼는지 지금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강도영의 손이 노트북 터치패드로 갔다. 이지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상단을 더듬어 화면을 닫았다.
뚜껑이 내려가는 둔탁한 소리.
강도영이 노트북을 밀어냈다. 입을 열지 않았다. 오른손이 안경테를 한 번 만지고 내려왔다.
이지원은 출력물을 접어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으로 강도영의 노트북을 당겨 자신의 쪽으로 옮겼다.
“출입 카드도 여기에 두십시오.”
강도영이 가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플라스틱이 금속 표면에 닿아 가볍게 울렸다.
복도에서 신우진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가 문서고 문간에 섰다.
강도영의 노트북과 출입 카드가 이지원 앞에 놓여 있었다. 강도영은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상태였다.
신우진이 강도영을 한 번 보고 이지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챙기며 말했다.
“내부 조사실로 이동시킵니다. 곧바로 정보원 라인 전원에게 공지 보내겠습니다.”
“나머지 셋도?”
“기존 제보자 세 명에게 ‘내부 신뢰성 검증 기간’을 통보합니다. 모든 제보 접수를 일시 중단하고, 이 기간 중 강도영을 통했던 제보는 별도 격리해 윤태호가 이미 인지하고 있을 위험 정보를 분류할 겁니다.”
강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우진이 옆으로 비켜서며 손짓으로 복도 방향을 가리켰다. 강도영이 천천히 걸어나갔다. 복도 오른쪽, 조사실 방향.
이지원이 휴대폰으로 감사실 내부 전산망에 접속했다. 제보자 공지문을 입력하며 신우진에게 물었다.
“박중호 보고서는.”
“로트 번호 체계다. 아홉 년 전 보고서의 DH-09-2A-773이랑 지금 우리가 확보한 부품들 비교할 게 있다.”
이지원의 손가락이 멈췄다.
“DH, 2A 금형라인.”
“동일 제조사 코드. 같은 금형에서 찍어낸 부품이 구매처를 통과하는 구조가 유지됐다는 증거가 될 거다. 조사실 인계 끝나면 인쇄해서 내려보내겠다.”
이지원이 끄덕이고 다시 휴대폰 화면으로 돌아갔다. 엄지가 공지문 마지막 문장을 찍었다. 내부 신뢰성 검증 기간. 모든 제보 접수 일시 중단. 기간 종료 시 별도 안내.
전송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발송 완료: 3명’이 떴다.
그녀가 강도영의 출입 카드를 집어 왼쪽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노트북은 감사실 실에 바로 제출할 수 있도록 케이스에 담았다.
신우진이 복도 저편을 바라봤다. 강도영이 조사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신우진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열쇠는 내가.”
이지원이 따라 걸으며 조사실 번호판을 확인했다. 3-12.
신우진이 문을 열었다. 강도영이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잠금쇠가 내려앉는 금속음이 복도에 짧게 울렸다.
소회의실 테이블 위에 보고서 사본과 로트번호 목록이 나란히 펼쳐졌다.
이지원이 목록의 첫 행을 짚었다. 손끝이 'DH-18-2A-1421' 위에 멈췄다.
“현재 납품 부품입니다.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일련번호 1421.”
신우진이 보고서 사본의 해당 줄을 가리켰다.
“DH-09-2A-773. 9년 전 같은 제조사, 같은 금형라인.”
“확실합니까.”
“직접 대조했다.”
이지원이 두 문서를 번갈아 봤다. 보고서의 로트번호 구조는 명확했다. 제조사 코드 두 글자, 연도 두 자리, 금형라인 영문과 숫자 한 자리, 일련번호 세 자리에서 네 자리까지.
현재 납품 목록의 체계와 정확히 일치했다.
“금형라인 2A.” 이지원이 말했다. “동일 설비에서 생산됐다는 의미입니다.”
“맞다. 설계 변경 없이 9년.”
신우진이 보고서 하단의 결재란을 짚었다. 박동수의 직인 날짜가 기안일보다 하루 앞서 있었다.
“박중호는 이걸 보고했다. 묵살당했고.”
이지원이 키보드를 당겼다. 감사 증거 등록 화면을 열고 새 항목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증거번호 AU-2024-0104. 로트번호 비교 분석서. 근거 문서 두 건.”
입력이 끝나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9년 전에 알고도 덮었다는 증거 사슬이 시작됐습니다.”
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보고서 사본을 정리해 투명 폴더에 넣었다. 로트번호 목록 위로 유성 매직으로 표시한 비교선이 세 줄 남아 있었다.
오전 11시 15분. 소회의실 문이 열렸다.
감사실장이 들어왔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손에는 태블릿 하나를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강도영의 인사 기록이 떠 있었다.
“정보원 라인 동결됐습니까.”
이지원이 일어섰다.
“오전 10시 05분부로 전원 동결. 강도영은 내부 조사실 대기 중입니다. 노트북과 출입카드는 압수했습니다.”
“누출 규모는.”
이지원이 출력한 목록을 건넸다. A4 두 장. 23건의 제보 항목에 날짜와 문서 분류 체계가 병기되어 있었다.
감사실장이 목록을 훑었다. 눈이 두 번째 페이지 하단에 멈췄다.
“문서 분류 체계까지 넘어갔군. 이건 단순 정보 유출이 아닙니다.”
“내부 통제 체계 붕괴 사례입니다.” 이지원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감사원 특별감사 청구의 근거로 포함시켜야 합니다.”
“청구서 초안은.”
“아직입니다.”
“지금 시작하십시오.”
감사실장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신우진이 투명 폴더에서 보고서 사본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이겁니다.”
감사실장이 보고서를 내려다봤다.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사본입니다. 원본은 박중호 금고에 있습니다. 결재란을 보십시오.”
신우진이 박동수의 직인을 짚었다. 날짜와 기안일의 불일치가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구매본부장 직인이 기안일보다 하루 앞섭니다. 보고서가 올라가기도 전에 반려가 결정돼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실장이 고개를 들었다.
“의도적 묵살.”
“그리고 지금 납품되는 부품과 9년 전 부품이 같은 금형라인에서 생산됐습니다. 로트번호 체계로 확인했습니다.”
이지원이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비교 분석서가 떠 있었다. 'DH-09-2A-773'과 'DH-18-2A-1421'이 나란히 강조되어 있었다.
감사실장이 화면을 응시했다. 3초 정도.
“이 보고서를 특별감사 청구의 핵심 근거로 등록하겠습니다. 증거번호는.”
“AU-2024-0104로 방금 등록했습니다.”
“좋습니다.”
감사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블릿을 집어 들며 이지원에게 말했다.
“청구서 초안, 오늘 중으로 올리십시오. 강도영 건은 내부 통제 붕괴 사례로, 박중호 건은 은폐 구조의 증거로. 두 축입니다.”
“알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정면으로 당겼다. 새 문서를 열고 첫 줄에 커서를 놓았다.
본 청구는 철도공사 감사실이 2년간 운영해온 내부 정보원 체계가 피감사자 측에 의해 침투당한 사실과, 9년간 은폐된 부품 결함 보고서의 의도적 묵살 정황을 근거로…
타이핑 소리가 이어졌다.
신우진이 휴대폰을 꺼냈다. 박중호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박 기사님. 내일 아침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9년 전 그 보고서에 대해 공식 증언이 필요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박중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시지.”
“9시.”
“알았다.”
통화가 끊겼다.
신우진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이지원의 키보드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