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54화

감사실 대면실. 오후 2시 15분.

복도 끝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지원의 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규칙적으로 울리다 멈췄다. 대면실 문 손잡이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손바닥에 금속의 냉기가 스며들었다.

이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 공기는 환기구 특유의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오래된 커피 찌꺼기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강도영이 탁자 너머에 앉아 있었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쥔 채였다. 손목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탁자 위에는 식은 종이컵 커피가 반쯤 남아 있었고, 표면에 얇은 기름막이 둥둥 떠 있었다.

강도영은 이지원이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바싹 말라 있었다.

이지원은 서류 폴더를 탁자 위에 올렸다. 열지 않았다. 폴더가 탁자에 닿을 때 둔탁한 소리가 났다.

“통신 로그입니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강도영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강도영의 시선이 폴더로 향했다. 검은색 표지의 폴더였다. 모서리가 약간 낡아 있었다.

“매주 화·목 오후 11시 20분에서 25분. 동일한 외부 메시징 템플릿. 수신자 IP 대역은 구매처 프록시를 경유한 윤태호 비서실 내부망 노드와 일치합니다.”

숫자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박혔다. 이지원의 발음은 악센트 없이 균일했다. 마치 녹음된 음성을 재생하는 듯했다.

강도영이 입술을 말았다. 아랫입술을 안으로 깨물었다. 이가 살짝 들어간 자리가 붉게 변했다.

“2년간의 기록입니다. 배상호와 동일한 패턴이죠.”

이지원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 타일에 닿으며 짧게 끌리는 소리가 났다. 메탈 시계 밴드가 탁자 모서리에 닿아 가볍게 울렸다.

그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이지원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았다. 양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가, 오른손만 폴더 옆으로 옮겼다.

“이미 모든 증거가 확보됐습니다. 협조 여부만 선택하십시오.”

강도영이 고개를 들었다. 움직임이 느렸다. 마치 목에 무게가 실린 듯했다.

눈 아래가 붉게 부어 있었다. 속눈썹이 젖어 있었고, 눈동자에는 실핏줄이 여러 가닥 퍼져 있었다. 잠을 며칠 못 잔 얼굴이었다. 아랫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인사팀에서…”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끝이 바람 빠지듯 흐려졌다.

“압니다. 좌천 압박이 있었던 것은 확인했습니다.”

이지원의 대답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강도영의 말끝을 자르는 것도, 감싸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강도영이 이지원의 눈을 보려 했지만, 이내 시선을 내렸다.

이지원이 폴더를 열었다. 손끝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로그 목록이 빼곡히 인쇄된 종이를 한 장 넘기고, 빈 용지를 강도영 앞으로 밀었다.

종이가 탁자 표면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작게 났다. 백지였다. 첫 줄만 인쇄된 프레임이 연하게 찍혀 있었다. 항목 번호, 날짜, 내용 분류.

“신우진 감사관이 내일 아침 핵심 증인과 대면합니다. 당신이 제출할 목록의 신뢰도가 그 증언의 채택 여부를 좌우할 겁니다.”

강도영의 손이 펜을 집었다. 몸통이 매끄러운 금속 재질이었다. 손끝이 떨렸다. 펜촉이 종이 위 몇 센티미터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맺힌 땀이 펜 몸통에 번들거렸다.

이지원이 말을 이었다. 목소리 톤은 여전히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서 아주 약간 속도가 느려졌다.

“당신이 넘긴 제보 목록 전부가, 지금은 역추적 단서입니다. 윤태호 쪽으로 연결되는.”

'역추적'이라는 단어가 공기 중에 잠시 떠 있었다. 강도영의 눈꺼풀이 한 번 깜빡였다. 호흡이 짧아졌다.

강도영이 펜을 쥔 손을 종이 위에 올렸다. 손바닥 전체를 종이에 붙였다. 손목이 떨려서 종이 귀퉁이가 파르르 울렸다.

첫 줄에 날짜를 적었다. 숫자 '2022-04-07'이 또박또박 눌려 쓰였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 다음 줄부터 항목이 하나씩 채워졌다. 어떤 줄은 빠르게, 어떤 줄은 잠시 멈칫거리며.

이지원은 강도영이 쓰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선은 강도영의 펜끝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시선이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천장 환풍구에서 낮은 윙윙거림이 들렸다. 벽시계 초침이 매초마다 톡, 톡, 소리를 냈다.

10분 후. 종이 두 장이 찼다. 강도영의 글씨는 뒤로 갈수록 작아지고, 줄이 약간 기울어 있었다. 마지막 항목 끝에는 펜을 뗄 때 생긴 잉크 얼룩이 작게 번져 있었다.

강도영이 펜을 내려놓았다. 펜이 탁자 위에서 데구루루 굴러 폴더에 부딪혀 멈췄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났다.

“…다 썼습니다.”

목소리가 잠겼다.

이지원이 종이를 자신 쪽으로 당겼다. 손가락이 종이 상단을 짚었다.

강도영이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탁자 위 종이컵을 향해 있었다.

“본사 인사팀에서 작년 3월에 불렀습니다. 좌천 통보였어요. 거부하면 징계라고 했고…”

말이 끊어졌다. 기억을 더듬는 듯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커피 표면의 기름막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협조 여부를 선택한 이유는 인사 청문회에서 다루겠습니다. 지금은 이 목록의 사실 여부만 확인하겠습니다.”

이지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어떤 감정도 배제되어 있었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무채색의 어조가 강도영의 떨림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강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두 번.

이지원이 목록을 훑었다. 시선이 종이 위를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가 규칙적으로 좌에서 우로 이동했다. 첫 장부터 시선이 한 줄 한 줄을 따라 내려갔다. 속도가 균일했다. 때때로 잠시 멈추고, 다시 움직였다.

“시험성적서 재발행 이력. 공장 내 교정 일지. 구매처 비공식 협의록. 퇴직자 면담록 사본. 이상 네 건은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에서도 동일한 분류 코드로 등장합니다.”

강도영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아래턱이 떨렸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삼키는 동작이었다.

“당신이 넘긴 정보가 박중호 보고서 은폐 경로와 정확히 겹친다는 뜻입니다.”

강도영의 눈이 커졌다. 동공이 흔들렸다. 당혹감과, 그 이면에 아주 잠깐 안도 같은 것이 스쳤다. '은폐 경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떨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

이지원이 빈 종이 한 장을 꺼내 옆에 놓았다. 폴더 안쪽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였다. 목록을 읽으면서 메모를 적기 시작했다.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빨랐다. 글씨는 작고 각이 져 있었다.

- 시험성적서 재발행 이력 → 9년 보고서 부록3, 시험성적서 불일치 지적 부분과 연결 - 공장 내 교정 일지 → 9년 보고서 12쪽, 시험 장비 교정 소급 의심 - 구매처 비공식 협의록 → 9년 보고서 18쪽, 구매처의 검수 기준 변경 요구 - 퇴직자 면담록 사본 → 박중호 면담록? 확인 필요

메모가 다섯 줄을 넘겼다. 마지막 줄에는 작게 별표를 그려 넣었다.

이지원이 펜을 멈추고 강도영을 똑바로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정면에서 만났다. 이지원의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다. 그 안에 강도영의 일그러진 얼굴이 작게 비쳤다.

“당신의 목록은 내일 박중호 증언을 뒷받침하는 예비 증거로 등록됩니다. 조사실로 돌아가서 대기하십시오.”

강도영이 일어섰다. 무릎이 풀렸는지 잠시 몸이 흔들렸다. 손으로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짧게 났다. 바지 주름이 구겨져 있었고, 와이셔츠 등판에도 가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 목록이… 도움이 될까요.”

문장이 완성되지 못하고 허공에 걸렸다. 묻는 건지 혼잣말인지 모호한 어조였다.

“이미 됐습니다.”

이지원의 답변은 즉각적이었다. 망설임이 없었다.

강도영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약간 절뚝였다. 오른쪽 다리를 약간 끄는 듯했다.

문 앞에서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어깨가 올라가 있었고, 뒷모습이 실제보다 작아 보였다. 복도로 나가면서 오른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었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문틈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이지원은 목록 원본을 복사기에 올렸다. 복사기 유리판에 종이가 닿을 때 정전기로 달라붙는 소리가 났다. 스캔 광선이 지나가면서 초록색 불빛이 방 안에 번졌다 사라졌다.

기계 소음이 낮게 울렸다. 사본 두 장이 나왔다. 따뜻했다. 토너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한 장은 폴더에 넣었다. 모서리를 가지런히 정렬해서 끼웠다. 다른 한 장은 손에 들고 대면실을 나섰다. 복도로 나서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구두 굽 소리가 다시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이지원의 사무실. 오후 2시 42분.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책상 위 종이들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먼지 입자들이 빛줄기 안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사무실 구석에는 서류 캐비닛이 세 개 서 있었고, 그 위로 작은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흙이 말라 있었다.

신우진이 먼저 와 있었다. 의자에 깊숙이 앉아 있지 않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였다. 오른손에는 만년필을 쥐고 있었고, 캡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사본과 로트번호 비교표가 펼쳐져 있었다. 보고서 사본 여기저기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고, 형광펜으로 밑줄 쳐진 부분도 보였다. 로트번호 비교표는 A3 크기로 인쇄되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지원이 들어서며 사본을 건넸다. 문을 열고 닫는 동작 사이에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강도영의 정보 유출 목록입니다.”

신우진이 받아 들었다. 만년필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종이를 잡았다. 첫 장을 넘기고 둘째 장까지 빠르게 훑었다. 눈의 움직임이 빨랐다. 이마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시험성적서 재발행 이력.”

“박중호 보고서 부록3과 연결됩니다. 같은 항목입니다.”

신우진이 보고서 사본을 집어 해당 페이지를 펼쳤다. 부록3의 표와 강도영 목록 첫 줄의 날짜를 번갈아 확인했다.

“공장 내 교정 일지.”

“보고서 12쪽. 시험 장비 교정 시점 소급 의심 부분.”

신우진이 목록을 책상 위에 펼쳤다. 보고서 사본과 나란히 놓았다. 두 문서는 나란히 놓이자 어떤 대칭을 이루었다. 9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동일한 항목들이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

“구매처 비공식 협의록.”

“보고서 18쪽입니다. 구매처가 검수 기준을 변경하도록 요구한 기록.”

신우진이 입술을 앙 다물었다. 턱 근육이 살짝 긴장됐다. 만년필 캡을 또 한 번 열었다 닫았다.

신우진이 네 번째 항목을 짚었다. 검지 손가락 끝이 종이 위에 정확히 멈췄다.

“퇴직자 면담록 사본. 이것도 같은 당사자겠군.”

“박중호 본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합니다'가 아니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말한 순간, 이지원의 눈이 한 번 더 깜빡였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확정 짓지 않는다. 그것이 습관이었다.

이지원이 자신의 메모를 세 자료 사이에 놓았다. 탁자 중앙의 빈 공간에,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정확히 배치했다. 왼손 검지로 각 항목을 하나씩 가리켰다.

“네 개 항목이 박중호가 증언하려는 핵심 은폐 경로와 완전히 겹칩니다.”

신우진이 비교표를 들어 올렸다. A3 용지가 부스럭거렸다. 로트번호, 날짜, 담당자 코드가 작은 글씨로 인쇄된 비교표를 가로등빛이 비추고 있었다.

“일치도가 예상보다 높다. 특별감사 청구서에 이 네 건을 병기하면…”

“근거가 두 배로 강화됩니다. 강도영의 목록은 윤태호가 이미 알고 대비한 증거들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니까요.”

'우선순위'라는 단어에 신우진의 눈썹이 올라갔다. 상대의 방어선을 역으로 읽어낸 해석이었다.

신우진이 목록 마지막 장을 넘겼다. 2장째의 뒷면이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만년필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종이 맨 아래 손글씨가 있었다. 강도영의 글씨체보다 컸다. 필압이 세서 종이 뒷면까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강도영이 쓴 글씨가 아니라, 원래 그 종이에 미리 적혀 있던 메모였다. 검은 펜, 눌려 쓴 흔적이 선명했다. 펜촉이 종이 섬유를 찢은 자국까지 보였다.

D-3

이지원이 노트북을 열었다. 힌지가 부드럽게 올라가고 화면이 켜지며 파란 빛이 얼굴에 반사됐다. 강도영의 통신 로그 파일을 검색창에 드래그했다.

파일들이 화면에 줄지어 나타났다. ‘D-3’을 입력했다. 키보드 소리가 짧게 울렸다. 엔터 키를 치는 소리가 한 번.

결과가 떴다.

2023년 11월 13일 오전 2시 14분. 강도영이 윤태호에게 보낸 암호화 메일 전문.

“D-3까지 물리적 사본 폐기 완료 예정. 성적서, 교정 일지, 협의록 3종. 전자 파일은 어제 처리함.”

발신 시간이 새벽 2시 14분이었다. 잠들지 못하고 보낸 메일이거나, 모두가 잠든 시간을 의도적으로 노렸거나.

신우진이 화면을 읽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눈꼬리의 주름이 깊어졌다.

“폐기 시한이다.”

“11월 13일이면.”

“사흘 후, 11월 16일.”

이지원이 캘린더를 열었다. 화면 왼쪽 하단, 작은 달력이 팝업됐다. 오늘은 11월 13일 오후.

마우스 커서가 16일 위에서 멈췄다. 금요일이었다. 캘린더에는 빨간색으로 '대한부품산업 폐기 이관 마감'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48시간. 금요일 오후 5시 전까지입니다.”

신우진이 로트번호 비교표를 집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서 종이가 약간 구겨졌다.

“그렇다면 대한부품산업이 신청한 폐기 이관 건도 이 시한 안에 들어 있다.”

“네. 지난주 금요일 접수됐고, 상부 결재가 나면 월요일 오전에 물리적으로 폐기됩니다.”

신우진의 시선이 창밖으로 잠깐 향했다가 돌아왔다. 유리창 너머로 저 멀리 공장 굴뚝에서 흰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5시까지 결재가 나면.”

“월요일 오전 9시, 폐기 업체 트럭이 출발합니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닫았다. 화면이 꺼지면서 얼굴에서 파란 빛이 사라졌고, 대신 오후의 노란 햇빛이 돌아왔다. 시선이 메모 위에서 멈췄다. 몇 초간 깊은 침묵이 사무실을 채웠다. 벽시계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렸다.

“박중호 증언 전에 이 세 건을 확보하지 않으면 증언 자체의 실효성이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폐기 이관 결재 완료가 증언 청취보다 빠르면, 증거가 사라진 후의 증언이 됩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분했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약간의 속도감이 붙었다. '증거가 사라진 후의 증언'이라는 표현이 사무실 공기 중에 남았다. 신우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우진이 휴대폰을 집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여 화면을 켰다.

“어디에.”

이지원의 물음은 짧았다. 이미 직감하고 있다는 듯이.

“차량기지. 한경숙 노조 사무실.”

“무슨 근거로.”

“노조가 가진 과거 검수 기록 원본에, 구매처 비공식 협의록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중호의 보고서에서도 노조 측 기록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신우진의 말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지난 며칠간 보고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쌓은 확신이었다.

이지원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목을 한 번 비틀었다. 메탈 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시계가 떨어지며 작게 철컥 소리를 냈다. 시곗바늘이 2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는 대한부품산업 시험성적서 폐기 이관 결재 라인을 추적하겠습니다. 결재를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신우진이 목록 사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코트 안주머니였다. 단추를 잠그는 소리가 작게 났다. 휴대폰을 들고 한경숙의 번호를 찾았다. 연락처 리스트가 스크롤됐다.

이지원이 덧붙였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면서, 마치 떠오른 사실을 정리하듯.

“D-3은 윤태호가 직접 쓴 메모입니다. 강도영에게 보낸 메일에 첨부돼 있었어요.”

신우진이 휴대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눈은 전화번호에, 입은 이지원에게.

“적의 일정표를 손에 넣었다. 48시간이다.”

'적'이라는 단어를 특별히 강조하지도 않았고, 가볍게 흘리지도 않았다. 사실을 지칭하는 어조였다.

이지원이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오후 2시 58분. 초침이 12를 막 지나고 있었다.

“11월 15일 오후 11시 58분까지입니다. 그 안에 세 건을 확보해야 합니다.”

신우진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통화 연결음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세 번, 네 번. 그리고 상대방이 받았다.

“한경숙입니다.”

약간 놀란 목소리였다.

“신우진입니다. 30분 후에 뵙겠습니다. 긴급한 일입니다.”

신우진이 통화를 끊고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코트를 집어 들었다.

이지원이 외부 전화를 들었다. 유선 전화의 수화기는 묵직했다. 단축번호 3번을 눌렀다. 버튼이 찰칵찰칵 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기록관리과입니까. 감사실 이지원입니다. 대한부품산업의 폐기 이관 신청 건에 대해 감사실 차원의 열람 보류 요청을 접수하겠습니다. 공문은 30분 안에 전자결재로 올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목소리가 잠깐 들렸다. 이지원은 대답을 듣지 않고 수화기를 내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키보드가 울렸다. 타자 속도가 빨랐다. 한글이 영문보다 더 빠르게 입력되었다. 스페이스바를 칠 때마다 규칙적인 박자가 만들어졌다.

신우진이 문을 열고 나서며 말했다. 문 손잡이를 잡은 손이 잠깐 멈췄다.

“15일 밤까지.”

“늦으면 증거가 사라집니다.”

이지원의 대답은 키보드 소리와 겹쳐졌다.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벌써 공문 제목이 완성되어 있었다.

문이 닫혔다. 복도로 나선 신우진의 발걸음 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구두 소리가 아니라 운동화 바닥이 바닥을 밀어내는 소리였다. 서둘러 걷는 소리였다.

이지원의 왼손이 시계를 집어 다시 찼다. 손목에 밴드가 감기는 동안에도 오른손은 계속 타이핑을 이어갔다. 오른손이 키보드로 돌아갔다.

공문 제목란에 커서가 깜빡였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특별감사 증거 보전 요청서(긴급)'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커서 아래로 공문 본문이 한 줄 한 줄 채워지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3시를 향해 움직였다.

강도영이 펜을 쥔 손을 종이 위에 올렸다. 손바닥 전체를 종이에 붙였다. 손목이 떨려서 종이 귀퉁이가 파르르 울렸다.

첫 줄에 날짜를 적었다. 숫자 '2022-04-07'이 또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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