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차 통과
56화
차량기지 정비고 사무실. 오전 10시 20분.
신우진이 노트북 화면을 내렸다. 기록 보존 목록은 전날 감사실에 접수됐다. 접수 번호 AUDIT-2024-0087. TF의 열람 권한보다 접수 시각이 31분 빨랐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지원이었다.
“인사과 기록 보관소입니다. 지금 열람실에 들어왔습니다.”
“확인할 게 있습니까.”
“아버지 인사 발령 대장입니다.”
짧은 침묵. 신우진이 말했다.
“도착하면 연락하십시오.”
통화가 끊겼다. 신우진이 노트북 화면을 다시 올렸다.
철도공사 본사 인사과 기록 보관소. 오전 10시 20분.
이지원이 열람 신청서를 접수 창구에 밀어 넣었다. 기록담당자가 서류를 받아 들고 줄을 훑었다.
“이철호 전 부품검수팀장. 20년 전 인사철이네요.”
“연결된 결재 서류도 같이 열람하겠습니다.”
기록담당자가 모니터를 확인했다.
“해당 문서는 인사철과 별도 보관 중입니다. 규정상 결재문서는 기록관리팀 서고에서 불출해야 합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열람석에서 기다리시면 호출하겠습니다.”
이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람석으로 향했다.
창 없는 방. 모니터 네 대가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다른 이용자는 없었다. 맨 안쪽 자리에 앉았다.
왼손으로 서류 하단을 받쳐 들었다. 열람 신청서 접수증이었다. 시계를 봤다. 오전 10시 22분.
인사과 기록 보관소. 오전 11시 5분.
기록담당자가 문서철을 열람석으로 가져왔다. 두 권이었다. 하나는 인사 발령 대장, 다른 하나는 부품 검수 결재 서류철. 모니터 옆에 내려놓고 갔다.
이지원이 먼저 인사 발령 대장을 폈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오른쪽 광대 아래 작은 점이 형광등 빛에 드러났다.
찾았다. 20년 전 발령 기록.
이철호. 부품검수팀장. 발령 내용: 지방사무소 일반직 전보. 발령권자: 배상호, 구매자재과장.
좌천이었다. 이지원의 손가락이 이름 옆 발령 사유 란을 짚었다.
'검수 절차 위반 및 허위 보고.'
왼쪽 눈썹이 올라갔다.
두 번째 문서철을 열었다. 부품 검수 결재 서류. 연도별로 편철된 묶음에서 해당 연도를 찾아냈다. 검지로 페이지 상단을 넘기다 멈췄다.
'제동밸브 시험성적서 불일치 — 검토 보고.'
아버지의 보고서였다. 이지원이 서류를 평평하게 폈다.
보고서 본문은 짧았다. 제동밸브 B4 계열 납품 부품의 시험성적서 발행일이 실제 시험일보다 18일에서 22일 앞서 있었다. 시효일 소급 조작. 납품사는 대한부품산업.
손가락이 멈췄다. 대한부품산업.
그 아래 첨부된 반려 의견서. 결재 라인에 배상호의 서명이 있었다.
'규격 적합 확인 완료. 절차 위반 시 징계. 재검토 불필요.'
이지원이 의견서를 보고서 옆에 나란히 놓았다. 아버지가 적은 불일치 항목 일곱 개. 배상호가 반려한 항목 일곱 개. 전부 동일했다.
눈이 호박색으로 차분히 빛났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가 멈췄다.
기록 보관소 복사기 코너. 오전 11시 45분.
이지원이 보고서 원본을 유리판 위에 올렸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스캔 버튼을 눌렀다.
첫 페이지. 시험성적서 불일치 항목.
둘째 페이지. 부품 로트번호.
DH-98-2A-521.
줌 버튼을 눌렀다. DH. 98년. 금형라인 2A. 일련번호 521.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로트번호가 떠올랐다. DH-09-2A-773. 같은 제조사 코드. 같은 금형라인.
셋째 페이지. 반려 의견서. 배상호 서명.
넷째 페이지. 인사 발령 대장 사본. 이철호 좌천 기록.
스캔이 끝났다. PDF 파일을 보안 USB에 저장했다. 저장 경로를 확인하고 USB를 뽑았다.
원본을 문서철에 끼워 반납 창구로 가져갔다.
기록담당자가 접수증을 받았다.
“사본 반출 기록 남기겠습니다.”
“규정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지원이 USB를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단추를 잠갔다. 열람실 문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냈다.
신우진의 번호를 눌렀다.
차량기지 검수원 사무실. 오후 2시 30분.
신우진이 책상 위에 박중호 보고서 사본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감사실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찾았습니까.”
“찾았습니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열었다. USB를 꽂았다. PDF 파일이 화면에 떴다.
“이철호, 부품검수팀장. 20년 전 제동밸브 B4 계열 시험성적서 불일치를 보고했습니다.”
화면을 신우진 쪽으로 돌렸다.
“납품사는 대한부품산업. 지금의 대한부품산업과 동일합니다.”
손가락으로 반려 의견서를 가리켰다.
“반려자는 배상호. 당시 구매자재과장, 현 본사 구매처장.”
신우진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 짧은 가로선을 그었다.
“배상호가 직접 좌천시켰군.”
“네. 허위 보고와 절차 위반을 사유로 지방사무소 일반직으로 전보시켰습니다.”
이지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차분함을 유지했지만 속도가 약간 빨랐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같은 부품이 2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조작됐고, 같은 사람이 덮었습니다.”
“구조적 문제다.”
“맞습니다.”
신우진이 박중호 보고서 사본을 집어 들었다. 로트번호가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박중호 보고서. 9년 전.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이지원이 노트북 화면을 스크롤했다. 아버지 보고서 로트번호 부분을 확대했다.
“이철호 보고서. 20년 전.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나란히 놓였다. 동일한 코드. 동일한 라인. 동일한 납품사.
신우진이 말했다.
“20년, 9년, 현재. 같은 부품 계열입니다.”
“배상호는 20년 전에 이걸 알고 덮었고, 현재 윤태호와 같은 결재 라인에 있습니다.”
신우진이 서랍에서 빈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서 유성 매직을 뽑았다.
가로로 세 줄을 그었다.
첫째 줄. 20년 전. 이철호 보고. DH-98-2A-521. 배상호 반려.
둘째 줄. 9년 전. 박중호 보고. DH-09-2A-773. 윤태호 결재 라인.
셋째 줄. 현재. B4 계열 전 품목. DH-18-2A-1421. 윤태호·배상호 연계.
“표를 만들겠습니다.”
이지원이 아버지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를 가리켰다.
“여기 보십시오. 20년 전 시험성적서 발행일과 실제 시험일 간격이 18일에서 22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추적 중인 20일 패턴과 일치합니다.”
신우진이 표 하단에 적었다. 조작 수법: 시효일 소급. 동일 패턴.
이지원이 말을 이었다.
“배상호는 이걸 알면서도 덮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자리에서 윤태호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우진이 매직을 내려놓았다. 종이를 들어 이지원에게 보였다.
“시간표로 만들겠습니다. 20년 동안 누가, 언제, 어떤 부품을, 어떤 방식으로 덮었는지 한눈에 보이게.”
이지원이 노트북에서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을 입력했다.
'감사원 제출용 — 부품 시험성적서 위변조 계보도 (20년-9년-현재).'
“감사 전략을 수정합니다. 개인 원한 프레임이 아니라 반복적 구조적 위반으로 제출합니다.”
신우진이 박중호 보고서 사본을 집어 들었다.
“부품 로트번호 교차표를 만들겠습니다. 20년간 동일 제조사, 동일 금형라인의 모든 부품을 추적합니다.”
“배상호가 20년 전에 덮은 부품부터 현재 윤태호가 조작 중인 부품까지 한 줄로 연결합니다.”
방 안이 조용했다. 모니터 화면만 푸르게 빛났다. 신우진이 종이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내일까지 초안을 뽑겠습니다.”
이지원이 USB를 뽑아 다시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배상호는 아직 우리가 이 문서를 확보한 걸 모릅니다. 감사원 접수 직전까지 보안을 유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