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60화

오전 8시 15분. 차량기지 정비고 사무실.

신우진이 책상 위에 펼쳐둔 시험성적서 대비표를 접었다. 왼쪽 집게손가락의 흉터가 종이 모서리에 스쳤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지원이었다.

“접수 준비는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가지 더 확인할 게 있습니다. 박중호 팀장님의 9년 전 보고서에 부품 실물 사진이 첨부됐다고 들었습니다. 원본 필름이 남아 있습니까.”

신우진이 수화기를 왼손으로 바꿔 쥐었다. 오른손 검지가 허공에 짧은 획을 그었다.

“확인하겠습니다.”

“필름만 있으면 현재 납품 부품과 로트번호 각인을 직접 대조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스캔 말고 육안으로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신우진이 작업복 상의를 걸치고 정비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박중호는 금고 앞에 서 있었다. 어젯밤 긁힌 흔적을 매직으로 표시해둔 상태였다. 금고 문은 열려 있었고, 박중호의 오른손이 맨 아래 선반을 더듬고 있었다.

“필름이 어디 있습니까.”

박중호가 고개를 들었다. 왼쪽 눈 밑 다크서클이 형광등 아래서 짙게 드리웠다.

“필름?”

“보고서 첨부 사진 원본입니다. 9년 전 부품 촬영한 거.”

박중호가 허리를 폈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털었다.

“그거 여기 없다.”

“어디에.”

“2층 자료실. 검수 기록이랑 같이 보관했어. 봉투에 넣어서.”

신우진이 시계를 봤다. 8시 23분.

“지금 꺼내겠습니다. 교정 장비 점검 기록지도 같이.”

박중호가 금고 문을 닫았다. 다이얼을 세 번 돌려 잠갔다.

“따라와라.”

두 사람이 정비고 옆 계단으로 올랐다. 박중호의 발소리가 철제 계단에 울렸다. 신우진이 뒤를 따랐다.

2층 자료실. 박중호가 열쇠로 문을 열었다.

형광등이 깜빡이다 켜졌다. 자료실은 좁았다. 한쪽 벽에 서류 캐비닛 다섯 개, 반대편에 라이트박스와 확대경이 놓인 작업대였다.

박중호가 세 번째 캐비닛 서랍을 열었다. 손가락으로 폴더 탭을 하나씩 넘겼다.

“여기다.”

갈색 봉투를 꺼냈다. 겉면에 '2009.03.14 / B4 제동 패드 마찰재 / L-0732-가-09 / 촬영: 박중호'라고 적혀 있었다.

신우진이 봉투를 받았다. 안에서 필름 슬리브 네 장과 점검 기록지 두 장이 나왔다.

“라이트박스 켜겠습니다.”

라이트박스가 켜졌다. 신우진이 첫 번째 필름을 올렸다. 흑백 네거티브였다.

박중호가 확대경을 필름 위로 당겼다. 손가락이 부품 사진의 한 부분을 짚었다.

“여기.”

확대경 너머로 제동 패드 마찰재 측면에 찍힌 로트번호가 보였다.

L-0732-가-09.

각인이 선명했다. 글자 획마다 주물의 미세한 기포 흔적이 필름에 고스란히 잡혀 있었다.

신우진이 노트북을 열었다. 어제 납품된 B4 제동 패드의 조사 사진을 불러왔다. 이지원이 촬영한 디지털 이미지였다.

두 사람이 라이트박스 위 필름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봤다.

신우진이 확대경으로 화면의 부품 각인을 확인했다.

“L-0732-가-09. 동일합니다.”

박중호가 두 번째 필름을 올렸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로트번호 주변의 금형 마모 패턴이 보였다. 주조선이 좌측으로 미세하게 밀린 흔적.

“현재 부품도 같은 금형 라인인가.”

신우진이 노트북 화면을 확대했다. 현재 부품의 각인 주변을 클로즈업했다.

동일한 좌측 편향 주조선.

“확인됐습니다. 동일 금형입니다.”

박중호가 점검 기록지를 펼쳤다. 누렇게 바랜 용지에 볼펜으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제조일자, 2009년 3월 14일. 로트번호 동일. 교정 장비는 미쓰토요 경도계, 당시 교정일자는 2009년 2월 28일.”

신우진이 노트북으로 전산 시스템에 접속했다. 자재관리 메뉴에서 로트번호 L-0732-가-09를 입력했다.

조회 결과가 화면에 떴다.

입고 이력 세 건. 1차: 2009년 3월 20일, 수량 240개. 2차: 2015년 8월 11일, 수량 180개. 3차: 2023년 9월 5일, 수량 200개.

신우진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각 입고 건마다 연결된 시험성적서 번호가 표시됐다.

“세 입고 건 모두 동일 성적서 번호로 승인됐습니다.”

박중호가 기록지의 수치를 짚었다.

“2009년 당시 경도 측정값이 표준보다 2.1 낮았다. 지금은.”

신우진이 최근 입고 데이터를 조회했다. 검수 기록의 경도 항목을 클릭했다.

“동일하게 2.1 낮습니다.”

“15년 동안 똑같은 부품을 똑같이 납품한 거다. 똑같이 불량인 채로.”

박중호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신우진이 엑셀을 열었다. 교차표 양식을 불러왔다.

세로축은 입고 회차. 가로축은 로트번호, 제조사 코드, 금형라인, 제조일자, 시험성적서 번호, 경도 측정값.

데이터를 하나씩 입력했다.

2009년 1차 입고: DH, 2A, 2009-03-14, KOSHA-2009-0314, 표준-2.1; 2015년 2차: DH, 2A, 2015-08-05, KOSHA-2009-0314, 표준-2.1.

2023년 3차: DH, 2A, 2023-09-01, KOSHA-2009-0314, 표준-2.1.

신우진이 입력을 멈췄다. 세 줄의 데이터가 일직선으로 정렬됐다.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모두 같습니다.”

박중호가 교차표를 들여다봤다.

“시험성적서 번호는 왜 똑같지.”

“같은 문서를 매번 재사용했습니다. 부품 로트가 바뀌어도 성적서는 새로 발행하지 않은 겁니다.”

“시험 한 번 하고 15년간 써먹었다는 거군.”

신우진이 교차표 마지막 열에 한 줄을 추가했다.

'9년 전 보고서 예측 결함률: 12.4% / 2023년 실제 교체율: 18.7%'

인쇄 버튼을 눌렀다. 프린터가 돌아갔다. 교차표 세 부가 출력됐다.

신우진이 첫 장에 만년필로 서명했다. 박중호에게 펜을 건넸다.

“확인 서명 부탁드립니다.”

박중호가 세 부에 각각 서명했다. 필압이 강했다. 종이 뒷면이 볼록하게 올라왔다.

한 부는 박중호에게 건넸다. 한 부는 보고서 원본과 함께 봉투에 넣었다. 나머지 한 부는 따로 접어 작업복 안주머니에 꽂았다.

신우진이 노트북에 USB를 연결했다. 교차표 파일, 보고서 사본 PDF, 필름 스캔 이미지를 순서대로 복사했다.

복사가 끝났다. USB를 뽑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증언하실 수 있습니까.”

박중호가 잠시 침묵했다. 라이트박스 위 필름을 정리하며 말했다.

“내가 봤던 그대로 말하면 된다.”

“감사원 현장 감사에서입니다. 공식 증언입니다.”

“안다.”

박중호가 보고서 봉투를 집었다. 9년 전 그가 직접 쓴 보고서였다. 봉투를 신우진에게 내밀었다.

“네가 가져가라.”

신우진이 두 손으로 받았다.

“원본은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감사원 제출 전까지.”

“서명할 거 있으면 가져와. 감사원이든 어디든.”

“명심하겠습니다.”

신우진이 서류 가방을 열었다. 보고서 원본 봉투를 안쪽 칸에 넣었다. 그 위에 교차표 사본을 포갰다. USB는 가방 앞주머니에 따로 보관했다.

“필름 원본과 기록지는 어떡합니까.”

박중호가 갈색 봉투를 집어들었다.

“이건 내가 갖고 있겠다. 감사원이 원하면 그때 내놓지.”

“알겠습니다.”

신우진이 서류 가방을 닫았다. 잠금 장치가 딸깍 소리를 냈다.

박중호가 자료실 창밖을 내다봤다. 정비고 지붕 너머로 아침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이제 이 보고서는 혼자 보는 종이가 아니군.”

신우진이 가방 손잡이를 쥐었다. 왼손 집게손가락의 오래된 흉터가 가죽에 닿았다.

“이제 이 보고서는 저 혼자가 아니라, 감사원이 보는 기록이 됩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지원의 문자였다.

'접수 준비 완료. 내일 오전 9시, 감사원 창구에서 뵙겠습니다.'

신우진이 답장을 입력했다. '교차표 완료. 증언 확보. 필름 대조 결과 동일 로트 확인.'

전송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자료실 문을 향했다.

확대경 너머로 제동 패드 마찰재 측면에 찍힌 로트번호가 보였다.

L-0732-가-09.

각인이 선명했다. 글자 획마다 주물의 미세한 기포 흔적이 필름에 고스란히 잡혀 있었다.
무정차 통과6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