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63화

대영정밀 본사는 대전 산업단지 3블록 끝자락에 있었다.

오전 9시 50분. 회색 건물 로비로 검은색 세단 두 대가 연이어 진입했다.

첫 번째 차에서 김영수가 내렸다. 짙은 회색 정장. 왼손에 서류 가방. 뒤이어 조사관 둘이 각자 노트북 가방을 메고 따라붙었다.

로비 접수대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 목적을—”

김영수가 가방에서 공문을 꺼냈다. 감사원 특별감사 개시 통보서. 직인이 붉게 찍혀 있었다.

“감사원입니다. 윤태호 대표님 계십니까.”

직원의 손이 전화기로 향했다. 김영수가 손바닥을 살짝 들었다.

“사전 통보 없이 진행합니다. 안내만 부탁합니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3층 대표실 앞. 유리문 너머로 윤태호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서류를 들여다보던 고개가 들렸다. 김영수의 뒷편으로 조사관 두 명이 보이자 동작이 1초쯤 멎었다.

김영수가 문을 열었다.

“윤태호 대표님. 감사원 특별감사 개시를 통보합니다.”

윤태호가 일어섰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사전 연락도 없이 오실 일입니까.”

“공익감사 청구가 접수된 건입니다. 즉시 감사가 가능한 사안입니다.”

김영수가 통보서를 책상 위에 밀어 넣었다.

윤태호의 시선이 서류를 훑었다. 접수번호 ACRC-2024-0891. 청구인 이지원, 공동 청구인 신우진.

손끝이 통보서 모서리를 짚었다.

“감사 대상을 정확히 알려주시겠습니까.”

“대영정밀의 철도공사 납품 부품 시험성적서 위변조 의혹. 그리고 관련 보고서 은폐 경위입니다.”

윤태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접견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차는 커피로 준비하죠.”

“필요 없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김영수의 대답이 짧았다.

접견실은 대표실 옆에 붙어 있었다. 긴 탁자. 여덟 개의 의자. 벽 한쪽에 65인치 모니터.

조사관 한 명이 노트북을 열고 녹취 장비를 세팅했다. 다른 한 명은 문서 스캐너를 탁자 끝에 설치했다.

윤태호가 상석에 앉았다. 김영수와 조사관들이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자료가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협조하겠습니다.”

윤태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매끄러웠다.

김영수가 서류 가방에서 문서 한 묶음을 꺼냈다. 특별감사 청구서 사본. 첨부 증거 목록. 이지원이 제출한 반복적 위반 비교표.

“먼저 증인 신청이 있습니다. 신우진씨, 들어오십시오.”

접견실 문이 열렸다.

신우진이 들어왔다. 왼손에 서류 가방. 기능복 상의 대신 검은색 점퍼를 입었다. 가슴 주머니에는 유성 매직. 눈가의 피로는 짙었지만 걸음은 곧았다.

윤태호의 눈썹이 1밀리미터쯤 움직였다.

신우진은 김영수 옆 의자에 앉았다.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렸다.

김영수가 말했다.

“신우진씨. 감사원 특별감사 청구의 공동 청구인이자 증인입니다. 증언을 부탁드립니다.”

신우진이 가방을 열었다. 안에서 두꺼운 서류철을 꺼냈다. 투명 비닐 커버 안에 노란 빛이 도는 종이 뭉치. 표지에는 '부품검수 특별 보고서, QC-2009-0031'이라고 수기로 적혀 있었다.

탁자 위에 서류철을 놓았다.

“9년 전 차량기지 검수팀 박중호 팀장님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윤태호가 입을 열었다.

“그 보고서는 9년 전에 검토가 완료된 사안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영수가 손을 들었다. 윤태호를 향한 손바닥.

“증언이 끝난 후에 이의 제기해 주십시오. 신우진씨, 계속하십시오.”

신우진이 첫 페이지를 넘겼다. 컬러 사진 네 장이 붙어 있었다. 금이 간 패킹. 마모된 실링 면. 비정상적으로 닳은 밸브 내부.

“2009년 3월. 당시 신규 납품되던 B4 계열 제동밸브의 패킹 마모율이 납품 후 7개월 만에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신우진의 검지가 사진을 짚었다.

“박중호 팀장님은 이 결함을 시험성적서 조작 가능성과 함께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보고서에는 공인시험기관의 인장 강도 시험 결과가 첨부되어 있었고, 납품된 부품의 실제 인장 강도가 기준보다 2.1뉴턴 낮다는 수치가 적혀 있었습니다.”

김영수가 물었다.

“그 보고서는 어떻게 처리되었습니까.”

“결재되지 않았습니다. 구매처에서 반려했습니다. 보고서 원본은 반려 의견서와 함께 박중호 팀장님의 금고에 보관됐습니다.”

신우진이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로트번호 교차표. DH-09-2A-773과 DH-18-2A-1421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올해 납품된 동일 계열 부품입니다. 로트번호를 분석한 결과,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주조 일자까지 9년 전 부품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김영수가 교차표를 집어 들었다.

“동일한 금형에서 생산된 부품이 9년 동안 동일한 결함을 가진 채 납품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신우진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9년 전 결함이 있다고 보고된 부품이, 아무런 개선 없이 지금도 납품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다섯 번의 계약 갱신이 있었고, 모든 갱신마다 동일한 시험성적서가 사용됐습니다.”

접견실이 조용해졌다. 스캐너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윤태호의 손가락이 탁자 모서리를 한 번 두드렸다.

김영수가 보고서 원본을 손으로 짚었다. 페이지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박중호의 서명. 구매처 반려 도장. 날짜.

“이 보고서는 공식 문서 보존 규정상 폐기되었어야 할 문서입니다. 어떻게 보관되었습니까.”

신우진이 답했다.

“박중호 팀장님은 구매처의 구두 지시로 보고서를 폐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서면 확인을 요구했고, 구매처는 서면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팀장님은 절차적 결함을 문제 삼아 보고서 원본을 금고에 보관했습니다.”

“구두 지시를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시 구매처 과장 배상호였습니다. 현재 철도공사 감사실 소속입니다.”

조사관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

윤태호가 허리를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감사관님. 한 가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김영수가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9년 전 보고서가 현재 부품과 동일한 로트번호라는 주장은, 저희 기록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영정밀은 매년 정기 감사를 받고 있고, 모든 시험성적서는 공인기관의 인증을 거칩니다.”

신우진이 교차표를 한 장 더 꺼냈다. 독립 시험기관의 성적서였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의뢰한 올해 납품 부품의 시험 결과입니다. 인장 강도 기준치보다 2.1뉴턴 낮았습니다. 9년 전 박중호 팀장님의 보고서에 적힌 수치와 소수점까지 일치합니다.”

김영수가 두 문서를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하겠습니다. 9년간 동일한 결함 수치가 확인된 부품이 지속적으로 납품됨. 최초 보고는 묵살됨. 은폐 경위에 배상호 당시 구매처 과장이 관여함.”

윤태호의 턱선이 굳어졌다. 왼쪽 턱선의 얕은 흉터가 실내등 아래로 드러났다.

“감사관님. 그 보고서는 당시 구매처에서 검토했고, 적절한 사유로 반려된 문서입니다. 9년이 지난 지금 다시 꺼내는 것은 감사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겁니다.”

이지원이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든 파일에는 노란색 인덱스 탭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포니테일을 평소처럼 단정히 묶고, 흰 셔츠에 네이비 슬랙스 차림이었다. 귀에 꽂은 소형 무전기 이어셋은 빼낸 상태였다.

“윤태호 대표님 말씀은 일부 사실과 다릅니다.”

이지원이 탁자 옆에 섰다.

“배상호 당시 구매처 과장이 반려한 보고서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20년 전에도 동일한 부품, 동일한 시험성적서 조작 의혹이 제보되었고, 배상호 과장이 반려했습니다.”

이지원이 파일을 폈다. '반복적 위반 비교표'였다. 왼쪽 칼럼에는 20년 전 이철호의 제보 서류 번호. 오른쪽 칼럼에는 9년 전 박중호 보고서와 올해 특별감사 청구서.

“문서번호 PC-1998-042. 제보자 이철호, 당시 부품검수과 기술주사. 제동밸브 B4 계열 시험성적서 소급 작성 의혹을 구매처에 보고했습니다. 배상호 과장은 7건의 위반 사항을 전부 반려했고, 제보자는 8일 후 허위 보고를 사유로 좌천됐습니다.”

이지원의 손가락이 오른쪽 칼럼을 짚었다.

“9년 후 동일한 부품 계통, 동일한 결함 패턴, 동일한 배상호가 보고서를 반려했습니다. 보고자는 박중호. 그리고 올해, 또다시 같은 부품에서 동일한 결함이 발견됐습니다.”

김영수가 비교표를 받아 들었다.

“20년 동안 세 차례. 동일 제조사, 동일 금형라인, 동일 수치 조작.”

“네. 조작 방식도 완전히 동일합니다. 인장 강도 2.1뉴턴 감소, 중량 0.6그램 감소, 패킹 재질 EPDM을 HNBR로 치환.”

이지원이 다른 서류를 꺼냈다. 배상호의 결재 서명이 찍힌 20년 전 반려 의견서 사본이었다.

“이것이 20년 전 배상호가 작성한 반려 의견서입니다. 아버지 이철호가 보고한 7건의 위반 사항 전부에 '근거 불충분'이라고 기재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동일한 부품 결함이 9년 전에도, 현재도 확인됐습니다. '근거 불충분'이 아니라 '의도적 묵살'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윤태호의 입술이 얇게 다물어졌다. 손가락이 탁자 아래에서 한 번 움직였다.

“이지원 감사관님. 그 문서들은 개인적인 가족사와 공적 감사를 혼동하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만.”

“이철호는 저의 아버지입니다. 그 사실을 숨길 의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출한 문서는 혈연이 아니라 문서번호와 결재 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지원의 말투는 평소보다 더 정확했다. 쉼표 하나 없이 떨어졌다.

“배상호는 20년 전 부품검수과장, 9년 전 구매처 과장, 현재 감사실 소속입니다. 세 시점 모두 동일 부품 계통의 결함 보고를 차단했습니다. 혈연이 아닌, 공문으로 증명된 연결입니다.”

김영수가 비교표와 반려 의견서를 조사관에게 건넸다.

“스캔해서 본 보고서와 교차 대조하세요. 배상호의 서명이 세 문서에서 모두 확인되는지.”

“예.”

조사관이 문서를 스캐너에 올렸다.

김영수가 윤태호를 향했다.

“윤태호 대표님. 제출된 증거들을 종합하면, 대영정밀이 납품한 B4 계열 제동밸브는 최소 9년, 최대 20년간 허위 시험성적서로 승인되어 납품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감사원은 특별감사 권한에 따라, 다음 자료의 제출을 요구합니다.”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밀어 넣었다.

“첫째, 2009년부터 현재까지 대영정밀과 철도공사 구매처 간 체결된 모든 B4 계열 부품 납품 계약서. 둘째, 동일 기간의 모든 시험성적서 원본. 셋째, 구매처 결재 라인과의 통신 기록 일체.”

윤태호가 문서를 들여다봤다. 문서 확보 명령서. 감사원장 직인. 즉시 집행 문구.

“대표님의 변호사 입회는 보장됩니다. 그러나 문서 제출은 지금부터 진행합니다.”

김영수의 말은 설명이 아니라 통보였다.

윤태호가 휴대폰을 꺼냈다.

“변호사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잠시만—”

“그동안 조사관들이 문서 보관 구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저항하거나 문서를 훼손할 경우, 증거인멸 혐의가 추가됩니다.”

김영수가 일어섰다. 조사관 한 명이 따라 일어났다.

윤태호의 휴대폰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 이마에 얇은 땀이 배었다.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문서 보관실을 개방하라고 지시하죠.”

수화기를 들고 짧게 말했다. 비서에게 장부와 서류철을 꺼내라는 내용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공손했지만, 숨이 한 번 끊겼다.

조사관이 접견실을 나갔다. 복도로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김영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신우진을 바라봤다.

“신우진씨. 본사 구매처 감사가 종료되는 대로 박중호씨의 공식 증언 조서를 받겠습니다. 그전까지 귀하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감사원 대기실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류철을 가방에 넣었다. 박중호의 보고서 원본은 탁자 위에 그대로 남았다. 이제 감사원 기록이었다.

이지원이 신우진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입니다, 신우진씨.”

신우진이 가방을 닫았다. 왼손의 흉터가 형광등 아래에서 옅게 빛났다.

“그렇군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접견실 창밖으로 대전 산업단지의 굴뚝들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회색 건물들은 가만히 서 있었다.

이지원이 파일을 폈다. '반복적 위반 비교표'였다. 왼쪽 칼럼에는 20년 전 이철호의 제보 서류 번호. 오른쪽 칼럼에는 9년 전 박중호 보고서와 올해 특별감사 청구서.

“문서번호
무정차 통과6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