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64화

오전 9시 15분. 대영정밀 본사 사무실 유리문이 열리고 감사원 특별감사관 김영수와 2인 팀이 들어섰다. 김영수는 접수대 직원에게 감사 착수 공문을 건네며 말했다.

“감사원 특별감사관 김영수입니다. 윤태호 대표님을 만나겠습니다.”

잠시 후 윤태호가 접견실로 들어왔다. 수트 차림이 단정했고,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뒤이어 변호사 한 명이 따라 들어와 구석 자리에 앉았다.

김영수가 공문 사본을 탁자 위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오늘 감사는 공익감사 청구법 제21조에 근거해 진행됩니다. 2009년 이후의 회계 장부와 시험성적서 원본 전체를 제출해 주십시오.”

윤태호가 공문을 집어 천천히 훑어보았다. 미소는 유지되고 있었다.

“준비時間が必要だと思います。弁護士を通じて—”

“법률에 근거해 즉시 열람 권한을 행사합니다.”

김영수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회계 장부와 시험성적서 파일을 지금 이 자리로 가져오십시오. 지연은 감사 방해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윤태호의 손가락이 공문 가장자리를 한 번 더 쓸었다. 인장 반지가 형광등 아래에서 짧게 빛났다. 그가 변호사 쪽을 돌아봤다. 변호사가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윤태호가 수신기 너머로 회계팀에 연락을 넣었다.

“시험성적서 파일과 장부를 접견실로 가져와.”

수화기를 내려놓은 손등에 힘줄이 잠시 드러났다 사라졌다.

5분 뒤, 직원이 회계 장부와 시험성적서 파일 더미를 들여왔다. 김영수와 조사관들이 문서를 나누어 검토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윤태호가 변호사에게 짧게 귓속말을 건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별도 사무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오전 9시 45분. 윤태호는 별도 사무실 문을 닫고 휴대폰을 들었다. 납품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부상 현금 거래 내역. 지금 당장 문서고에서 파쇄기 돌려. 감사관들이 확인하기 전에.”

목소리는 낮았고, 명령조였다. 통화를 끊자마자 회계팀장에게 내부 메신저를 보냈다.

‘현금 출납부 전권 문서고로 이동. 즉시 파쇄 준비.’

복도 반대편 회의실. 최명식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차민수에게서 메신저가 와 있었다. 몇 주 전 길드 레이드 대기 중 차민수가 흘렸던 말을 기억해내고 연락을 넣었던 것이다.

‘형, 아까 말한 거. 추가로 회계팀에 장부 정리하라고 연락 갔대. 감사관들 오기 전에 끝내야 한대.’

최명식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발신자는 대영정밀 회계팀 내부 직원이었다. 입사 초기부터 부당한 업무 지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인물이었다. 번호는 저장되지 않았다.

‘윤 대표님 지시로 회계 장부 현금 거래 내역 폐기 준비하라고 방금 연락 왔음.’

‘지금 회계팀장이 장부 꺼내고 있음.’

‘사무실 뒤편 문서고에서 파쇄기 돌릴 예정이라고 함.’

최명식이 휴대폰을 쥐고 복도를 뛰었다. 신우진은 복도 중간에서 그와 마주쳤다.

“선배님, 잠깐만요.”

최명식이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대영정밀 내부 메신저 캡처본이에요. 회계팀 직원이 보내줬어요. 현금 거래 장부 폐기 지시가 내려왔대요. 지금 문서고에서 파쇄기 예열 중이래요.”

신우진이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하며 세 개의 메시지를 읽었다. 이지원이 그의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김영수 감사관님께 바로 전달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신우진이 휴대폰을 꺼내 최명식에게 내밀었다.

“전송해.”

파일 전송 완료. 신우진이 접견실 문을 열었다.

김영수가 고개를 들었다. 신우진이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렸다. 화면에는 메신저 캡처본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김 감사관님. 지금 이 건물 뒤편 문서고에서 회계 장부 현금 거래 내역을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윤태호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김영수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캡처본을 한 장씩 넘기며 읽어 내려갔다. 속도가 빨랐다. 표정이 굳어졌다.

“출처는.”

“대영정밀 내부 직원이 방금 제보한 내용입니다. 차민수라는 직원의 메신저와 회계팀 내부 메신저 두 개입니다.”

김영수가 조사관을 돌아봤다.

“즉시 문서고로 가서 회계 장부를 옮기거나 폐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행위를 중단시키고 장부를 확보하십시오.”

조사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복도로 나갔다.

윤태호가 손을 들었다.

“확인도 없이 그런—”

“확인은 현장에서 합니다.”

김영수가 그의 말을 자르고 휴대폰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신우진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제보 원본 파일을 감사원 서버로 즉시 전송해 주십시오. 증거 인멸 시도에 대한 별도 기록을 작성합니다.”

“알겠습니다.”

신우진이 파일을 전송했다.

김영수가 윤태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윤태호 대표님. 감사 진행 중 증거 인멸 시도가 확인될 경우 별도의 형사 고발 사유입니다. 인지하고 계십니까.”

윤태호의 오른손이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인장 반지가 다시 한 번 빛났다. 이마에 옅은 땀이 배어 있었다.

“제가 지시한 적 없는 일입니다.”

김영수는 답하지 않고 노트북을 열어 조사 경과 보고서에 입력을 시작했다.

9분 뒤. 조사관이 접견실로 돌아왔다. 두꺼운 회계 장부 세 권을 들고 있었다. 표지에는 ‘2023 현금 출납부’라고 적혀 있었다.

“문서고에서 회계팀 직원 한 명이 이 장부들을 파쇄기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파쇄기 전원이 켜져 있었고, 예열 상태였습니다.”

김영수가 장부를 받아 탁자 위에 올렸다.

“직원은.”

“인근 회의실에 대기시켰습니다.”

윤태호가 천천히 일어나 수트 단추를 채웠다.

“변호사와 상의할 시간을—”

“거부합니다.”

김영수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단호했다.

“공익감사 청구법 제21조에 따라, 감사관은 증거 인멸이 의심되는 정황에서 즉시 해당 자료를 확보할 권한이 있습니다. 변호사 입회는 이후에 보장됩니다.”

윤태호의 시선이 창밖 공장 굴뚝으로 향했다. 마지막 음절이 미세하게 떨렸다.

“알겠습니다.”

김영수가 조사관에게 지시했다.

“확보한 장부는 감사원 차량으로 즉시 이관. 회계팀 직원 조사는 별도 조서로 작성하고 파쇄기 주변 사진을 증거로 첨부하십시오.”

조사관이 장부를 들고 나갔다.

김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윤태호에게 말했다.

“오늘 오후 2시까지 2009년 이후 모든 시험성적서 원본과 납품 계약서를 제출해 주십시오. 지연되거나 불완전할 경우 감사 방해 혐의가 추가됩니다.”

윤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짧고 건조한 대답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김영수가 신우진을 돌아봤다.

“신우진씨, 오후에 박중호씨 증언 조서 촬영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감사원 대기실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신우진은 탁자 위의 박중호 보고서 원본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된 종이. 아홉 해 동안 금고 속에 갇혀 있던 기록이 이제 감사원의 공식 증거로 편입되었다. 그는 돌아서서 접견실 문을 향해 걸었다.

김영수가 메신저 캡처본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차민수 과장이 보낸 ‘오늘 밤 파쇄’ 지시. 시간, 수신자, 지시 내용이 구체적입니다. 증거인멸 교사죄 성립 요건이 충분합니다.”

윤태호의 오른쪽 약지에 낀 금색 인장 반지가 형광등 아래에서 번들거렸다.

“차 과장이 독단적으로—”

“대표님께서 차 과장에게 직접 통화하신 기록이 통신사 조회 결과 확인됐습니다. 어젯밤 10시 21분, 통화 시간 4분 32초.”

김영수의 말은 건조했다. 옆자리 조사관이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발신자 윤태호, 수신자 차민수. 통화 기록 옆에 문자 메시지 전문이 첨부돼 있었다. ‘시험성적서 파일, 오늘 중으로 정리해.’

윤태호의 이마에 배었던 얇은 땀이 번들거렸다.

“증거인멸 시도는 별건으로 입건됩니다. 경고 조치를 공식 기록에 남기고, 추후 감사 결과와 병합해 사법 처리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김영수가 캡처본 옆에 공식 경고장을 밀어 넣었다. 감사원 직인이 찍힌 서류였다.

그때 접견실 문이 열렸다. 이지원이 들어왔다. 왼손에 서류철 두 권, 오른손에 노트북 가방. 포니테일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안전화 굽에 붉은 흙이 묻어 있었다. 본사 구매처 현장에서 바로 넘어온 모양새였다.

“본사 구매처 감사 현장에서 제출한 서류입니다. 사본을 여기에도 제출합니다.”

탁자 위에 서류를 펼쳤다. 20년 전 이철호의 특별 보고서 사본—문서번호 QC-2009-0031, 반복적 위반 비교표, 박중호의 9년 전 보고서 원본 사본.

“아버지 보고서는 B4 계열 제동밸브 시험성적서 소급 조작을 20년 전에 지적했습니다. 당시 부품검수과장 배상호가 허위 보고 사유로 반려했고, 아버지는 8일 후 좌천됐습니다.”

이지원의 손가락이 비교표의 왼쪽 열을 짚었다.

“2004년 보고서, 2015년 박중호 보고서, 2024년 현재 납품 부품.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인장 강도 2.1뉴턴 감소. 세 시점 모두 동일합니다.”

김영수가 비교표를 들여다봤다.

“20년간 동일한 조작 패턴이 반복됐다. 배상호는 세 사건 모두에 관여했고.”

“네. 20년 전 보고서 반려, 9년 전 박중호 보고서 결재 라인 서명, 현재 감사실 소속으로 B4 계열 검수 기록 삭제까지.”

김영수가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이철호의 반려 의견서—박동수의 구매본부장 직인이 기안일보다 하루 앞서 찍힌 부분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박중호 보고서의 컬러 사진 4장. 익명 제보 USB 데이터 요약본. 강도영의 유출 목록 중 B4 부품 관련 4건.

“증거 충분합니다.”

김영수가 서류철을 덮고 조사관을 향해 돌아앉았다.

“대영정밀에 대한 감사 범위를 전면 회계 감사와 부품 전수 검사로 확대합니다. 공식 감사 확대 명령을 지금 발행하세요.”

조사관이 노트북을 열고 문서 작성을 시작했다. 신우진이 이지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교표, 철도공사 쪽에서도 채택됐습니까.”

“네. 본사 감사관이 9년 전 보고서 원본과 교차 확인했습니다. 구매처 결재 라인 전체로 조사가 확대됐어요.”

이지원이 감사원 접수증 사본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접수번호 ACRC-2024-0891.

“온라인 접수 시점이 법적 접수 시점입니다. 윤태호 대표님께서 증거를 파쇄하기 전에 이미 접수됐어요.”

윤태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왼쪽 턱선의 칼자국 흉터가 실내등에 드러났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관님. 변호사가 도착하는 대로 문서 제출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목소리는 공손했으나 마지막 음절에서 숨이 살짝 갈라졌다.

김영수가 고개를 저었다.

“변호사 입회는 보장됩니다. 하지만 문서 제출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가까워졌고, 조사관 한 명이 B4 계열 납품 계약서 원본 서류 박스 두 개를 들고 접견실로 들어왔다.

오전 11시 30분. 조사관들이 문서 보관 구역으로 이동한 뒤 접견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이지원이 노트북을 열고 전자 결재 시스템에 접속했다. 신우진은 탁자 건너편에서 로트번호 교차표 사본을 접어 가방에 넣고 있었다.

“정보원 라인, 오늘부로 공식 폐지합니다.”

이지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강도영 건으로 디지털 유출 경로가 증명됐고, 조영우 건으로 물리적 유출 경로도 확인됐어요. 정보원 라인 자체가 이중 스파이의 통로였습니다.”

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뭘 만듭니까.”

“기록 보존 태스크포스. 공식 조직으로 편성해서 검수 기록을 정리하고 보존하는 게 목적입니다. 근거는 단체협약 제34조 2항.”

이지원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제목란에 ‘정보원 라인 폐지 및 기록 보존 TF 신설 제안’. 수신자는 감사실장.

“인원은.”

“현장 검수원 출신 2명, 감사실 소속 1명. 검수팀장은 신우진씨.”

신우진이 잠시 이지원을 바라봤다. 왼손 집게손가락의 유압유 흉터를 엄지로 문질렀다.

“받습니다.”

이지원이 전자 결재 상신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상신 완료’ 알림이 떴다.

신우진은 가방에서 사고 조사 보고서 재조사 요청서 양식을 꺼냈다. 사고 일시, 차량 번호, 부품 로트번호, 검수 기록 번호를 차례로 기입했다. 마지막 칸에 ‘B4 계열 제동밸브 결함 재검증 요청’이라고 썼다.

“접수는 어디서 합니까.”

“감사원 현장 접수 창구. 지금 바로 가져가면 접수증 발급까지 10분이에요.”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박중호가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른손에 증언 동의서 양식을 들고 있었다. 기능복 상의에 안전화 차림이었다.

“여기 서명하면 되는 거 맞나.”

박중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네. 증언 내용은 9년 전 보고서 작성 경위와 구매처 반려 과정입니다.”

박중호가 탁자에 동의서를 펴고 볼펜을 집었다. 이름 석 자를 눌러썼다. 필압이 세서 뒷장까지 자국이 남았다.

“9년 전에도 이렇게만 됐어도.”

거기서 말을 멈추고 볼펜을 내려놓은 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김영수가 동의서를 받아 확인하고 감사원 접수 번호를 기입한 뒤 보조 조사관에게 건넸다.

“박중호씨의 공식 증언 조서는 본사 구매처 감사 종료 후 받겠습니다.”

오후 2시. 차량기지 검수원 사무실.

신우진이 책상 위에 재조사 요청서 접수증을 올려놓았다. 박중호는 의자에 앉아 작업복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한경숙이 커피 두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문서 정리부터 시작한다.”

신우진이 벽면의 서류 캐비닛을 가리켰다.

“B4 계열 검수 기록 전부. 2015년부터 올해까지. 납품일, 로트번호, 교체 주기, 실제 교체일. 빠진 기록은 따로 목록을 만든다.”

한경숙이 캐비닛을 열며 말했다.

“작년에 보류했던 익명 제보 USB, 데이터 출력본이 있어. 로트번호 세 개가 박중호 보고서랑 겹치더라고.”

“그것도 포함합니다. 세 개 다 교차표에 넣으세요.”

박중호가 수첩을 펼쳤다. 가장자리가 닳은 종이에 숫자들이 빼곡했다.

“9년 전에 내가 측정한 인장 강도 수치다. 지금 부품이랑 같은 금형라인 2A. 똑같이 2.1뉴턴 모자랐어.”

수첩을 신우진 쪽으로 밀었다. 신우진이 수첩을 들여다봤다. 수기로 적힌 측정값들을 오른손 검지가 하나씩 짚었다.

“이 수치, 재조사 요청서에 첨부합니다. 9년 전 원본 데이터라는 걸 입증할 수 있어야 하니까.”

“내가 증언할 거야. 수첩도 감사원에 제출한다.”

박중호의 말에 한경숙이 고개를 돌렸다.

“수첩 원본을?”

“사본 만들어 두면 돼.”

박중호가 일어나 복사기 쪽으로 걸어갔다.

그 시각, 감사실 사무실.

이지원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TF 운영 지침 초안 파일을 저장한 뒤 빈 문서를 하나 더 열었다. 개인 노트였다.

‘기록 보존 TF — 검수 기록 정리 및 보존. 청문회 준비 — 20년간 동일 패턴의 은폐 구조 입증 자료 정리.’

입력하고 잠시 멈췄다. 화면 왼쪽에 접수증 사본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의 보고서 번호 QC-2009-0031. 그 옆에 자신의 특별감사 청구서 접수번호 ACRC-2024-0891.

이지원이 문서를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메탈 시계의 초침이 2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량기지 사무실. 복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고 박중호가 수첩 사본을 건넸다.

신우진이 사본을 받아 재조사 요청서와 함께 서류철에 끼웠다. 한경숙이 USB 데이터 출력본을 정리해 같은 서류철에 추가했다. 서류철 표지에 유성 매직으로 ‘B4 계열 제동밸브 — 9년간의 검수 기록. 감사원 제출용’이라고 썼다.

신우진이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접수증, 증언 동의서 사본, 박중호의 수첩 사본, 익명 제보 데이터. 9년 동안 흩어져 있던 기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제 공식 조사 대상입니다.”

박중호가 창밖을 바라봤다. 유도로 저편에서 견인차가 객차를 천천히 밀고 있었다.

접견실에서 김영수가 신우진을 향해 말했다.

“본사 구매처 감사가 종료되는 대로 박중호씨의 공식 증언 조서를 받겠습니다. 그전까지 귀하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감사원 대기실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신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가방에 넣었다. 박중호의 보고서 원본은 탁자 위에 그대로 남았다. 이제 감사원 기록이었다.

이지원이 신우진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입니다, 신우진씨.”

신우진이 가방을 닫았다. 왼손의 흉터가 형광등 아래에서 옅게 빛났다.

“그렇군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접견실 창밖으로 대전 산업단지의 굴뚝들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회색 건물들은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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