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70화

감사원 특별감사반 임시 사무실은 별관 3층 끝에 있었다.

이지원이 오전 8시 47분에 문을 열었다. 사무실은 아무도 없었다. 감사관들은 현장 감사에 나갔다. 창가 쪽 임시 책상에 노트북을 올렸다. 전원을 켰다.

문서 목록 복사본을 왼쪽에 펼쳤다. 아버지 이철호의 인사 파일에서 발견한 메모 — '계약 TH-1987-04 관련 검토' 옆에 직접 그은 별표가 형광등 아래 또렷했다.

노트북이 부팅됐다. 이지원이 외장 하드디스크를 연결했다. 암호화된 계약 데이터베이스를 열었다. 검색창에 'TH-1987-04'를 입력했다.

결과가 하나 떴다.

계약번호 TH-1987-04. 계약일자 1997년 12월 18일. 계약상대방 대한정밀. 품목 B4 계열 제동밸브. 구매처 담당자 윤태호.

이지원이 숫자를 확인했다. 1997년 12월 18일. 아버지 보고서 TH-1997-044의 상신 일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손가락이 멈췄다.

같은 날, 같은 부품. 아버지가 문제를 제기한 그 계약의 결재선에 윤태호가 있었다. 구매처 과장으로서 첫 납품 계약을 승인한 사람이었다.

이지원이 계약서 원본 이미지를 열었다. 하단 결재란 — 윤태호의 서명이 선명했다. 그 위로 부서장 결재, 검토자 서명이 이어졌다. 배상호의 이름은 부품검수과장 자리에 있었다.

20년 전 구조. 지금과 같았다.

이지원이 화면을 캡처했다. 계약서 전문과 결재란을 별도 파일로 저장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철호'를 재검색했다. 1998년 4월 15일, 배상호가 상신한 '이철호 전보 발령 건'.

사유: 부적격.

이지원이 파일을 닫았다. 노트북을 접고 캡처 파일과 문서 목록 복사본을 서류철에 끼웠다. 왼손이 서류 왼쪽 하단을 받쳤다.

확인했다. 아버지의 보고서는 묵살된 것이 아니었다. 폐기된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윤태호의 계약을 막으려 했고, 바로 그 때문에 징계를 받았다.

이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으로 권오중 감사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계약 TH-1987-04 결재라인 확인 완료. 귀임 후 보고하겠습니다.'

차량기지 노조 사무실은 정비고 동쪽 끝이었다.

한경숙이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젖혔다. 좁은 사무실 안에 접이식 의자 15개가 빼곡했다. 정비팀 노조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인 공기.

한경숙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팔짱을 끼지 않았다.

“오늘 오전 중에 다 끝낸다. 길게 말 안 해.”

노조원들의 시선이 모였다.

“윤태호 본부장이 감사 범위 축소 압박 중이다. 구본근 의원실 공문도 떴다. 감사원 예산 심의 빌미로 3년 제한.”

40대 정비공이 손을 들었다. 14년 차 김민섭.

“3년으로 자르면 우리가 잡은 9년 전 보고서는 증거에서 빠집니까.”

“빠진다. 박중호 팀장 보고서도, 이철호 전 검수관 20년 전 제보도 전부 다.”

“그럼 감사 의미 없잖아요.”

한경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증언이 필요하다. 문서만으로 부족해.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인간들의 입이 있어야 감사 범위를 유지할 수 있다.”

“증언하면 불이익 없습니까.”

뒷줄의 젊은 정비공이었다. 입사 3년 차 최영길.

한경숙이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있을 수도 있다. 징계, 전보, 불이익 인사. 솔직히 말한다.”

“그럼 누가 자원합니까.”

“불이익의 방향이 다르다.”

한경숙이 책상 위의 서류를 집었다. 노조 공식 증언 동의서 양식.

“지금 상태로 가면 불이익은 전체 정비팀에 온다. 3년 제한 감사로 부품 문제가 묻히면 결함 부품은 계속 들어온다. 결국 사고 난다. 그 사고의 1차 책임은 검수를 통과시킨 당신들한테 돌아간다.”

김민섭이 무릎을 쳤다.

“이미 그렇게 돌아간 적 있잖아요. 7년 전 탈선 사고 때.”

“기억한다. 현장 검수팀에 덮어씌웠다.”

최영길이 물었다.

“증언은 어떤 식으로 합니까.”

“감사원 조사관 앞에서 자필 진술서 쓴다. 보충 질문 받을 수도 있다. 시간은 1인당 30분 안팎.”

“증언 내용은.”

“네가 직접 확인한 부품의 불량 수치. 네가 목격한 검수 기록 조작. 네가 들은 상부의 검수 통과 압박. 너만이 말할 수 있는 것만 써라. 들은 얘기, 소문은 쓰지 마라. 윤태호 변호사가 가장 먼저 공격할 지점이다.”

김민섭이 일어났다.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한 장 주십시오.”

한경숙이 동의서를 건넸다. 김민섭이 볼펜을 꺼냈다. 이름을 썼다.

그가 물러서자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다가왔다. 최영길은 망설이다 줄 맨 뒤에 섰다.

“한 가지 더.”

한경숙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증언하는 사람들 명단은 오늘 중으로 감사원에 직접 제출한다. 사본은 노조 서류 금고에 보관한다. 윤태호 쪽에 새는 일은 없을 거다. 그건 내가 책임진다.”

“명단 제출 전에 검토합니까.”

“누가.”

“노조 집행부에서.”

한경숙이 잠시 멈췄다. 고개를 저었다.

“검토는 없다. 자발적 참여만 받는다. 대신 오늘 오후 2시까지 생각할 시간 준다.”

김민섭이 동의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생각할 시간 필요 없는데요.”

“기다린다.”

한경숙이 시계를 봤다. 10시 25분. 그녀가 동의서 서류철을 정리하며 말했다.

“점심 끝나고 여기 다시 모인다. 그때까지 결정해라.”

정비 기록실은 본관 1층 안쪽이었다.

철제 선반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연도별 검수 기록이 똬리처럼 쌓여 있었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신우진이 작업대 위에 9년 전 보고서 사본을 펼쳤다. 박중호의 수기 서명이 황변된 용지에 남아 있었다. 컬러 사진 네 장도 첨부돼 있었다.

박중호가 맞은편에서 현재 납품 로트 기록을 넘겼다.

“여기. DH-18-2A-1421.”

신우진이 보고서 사본의 로트번호를 짚었다. DH-09-2A-773.

“동일 제조사 코드 DH.”

“동일 금형라인 2A.”

“연도 표기만 다르다.”

박중호가 2022년 검수 기록을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이것도 봐. DH-22-2A-1042.”

신우진이 두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인장 강도 — 2009년 2.1뉴턴 부족, 2022년 2.1뉴턴 부족.

패킹 재질 — 2009년 EPDM을 HNBR로 치환, 2022년 동일 치환.

중량 오차 — 2009년 0.6그램 감소, 2022년 0.6그램 감소.

“똑같다.”

박중호가 주먹으로 작업대를 살짝 내리쳤다. 쇠판이 울렸다.

“14년 전에 내가 잡은 불량 수치. 지금도 그대로야.”

“검사 장비만 바뀌었다.”

신우진이 오른손 검지로 허공에 짧은 사선을 그었다. 보고서에서 현재 기록으로, 현재 기록에서 2015년 기록으로.

세 장을 포개듯 가지런히 배치했다.

“2009년. 2015년. 2022년. 같은 부품군에 같은 결함이다.”

“일관된 조작이다.”

“14년 동안 동일 패턴. 규격도, 조작 방식도 같다.”

박중호가 2017년 로트를 추가했다. DH-17-2A-1188. 인장 강도 2.1뉴턴 부족.

“이것도.”

신우진이 네 장의 기록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박중호가 말했다.

“이걸로 9년 전 보고서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건 입증된다. 지속된 관행이라는 거.”

“부족하다.”

“뭐가.”

“20년 전과의 연결.”

신우진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지원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계약 TH-1987-04 결재라인 확인 완료. 1997년 12월 18일. 담당 윤태호. 당일 아버지 보고서 상신.’

신우진이 박중호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1997년에도 같은 부품. 같은 결재라인.”

“20년이다.”

“그렇다. 그리고 당시 부품검수과장은 배상호였다.”

박중호가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내쉬었다.

“배상호가 20년 전 이철호 보고서 묵살하고, 9년 전 내 보고서 묻고, 지금 감사실에서 기록 삭제한 거냐.”

“한 사람이 2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윤태호는.”

“윤태호 본부장은 그 계약의 최초 승인자입니다. 지금은 본부장이고.”

박중호가 작업대를 짚고 일어섰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같은 설계도에 다른 계약번호만 붙여서 연장 계약. 그렇게 20년.”

신우진이 기록들을 정리했다. 2009년 보고서 사본을 가장 위에 놓았다. 그 아래 현재 기록들, 20년 전 계약서 캡처 파일이 담긴 휴대폰을 그 옆에 두었다.

“문서 체인이 완성됐다. 1997년 계약, 2009년 보고서, 현재 부품. 일관된 조작의 증거.”

“감사원에 제출한다.”

“그 전에 권오중 감사관님께 중간 보고를.”

신우진이 작업대를 정리했다. 기록들을 파일에 끼우며 말했다.

“오후에 감사원 임시 사무실로 간다. 이지원도 거기 있다.”

오후 2시.

신우진이 감사원 특별감사반 임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이지원이 창가 책상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20년 전 계약서 이미지가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옆에 펼쳐진 문서 목록에는 빽빽한 메모가 적혀 있었다.

“권 감사관님은.”

“현장 감사 중이십니다. 3시에 귀임 예정입니다.”

신우진이 교차 대조 요약본을 책상 위에 올렸다. A4 용지 세 장. 1997년, 2009년, 2022-2023년 데이터가 컬럼으로 정리돼 있었다.

“이걸로 연결된다.”

이지원이 요약본을 살폈다. 행을 따라 손가락이 내려갔다.

“DH 제조사 코드, 2A 금형라인, 인장 강도 2.1뉴턴 부족, EPDM을 HNBR로 치환.”

패턴이 세 시점 모두 일치했다.

이지원이 왼쪽 눈썹을 올리며 읽었다. 오른손이 서류 왼쪽 하단을 받쳤다.

“결함 패턴과 조작 방식이 20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의도된 관행이다.”

신우진이 1997년 계약서 캡처를 가리켰다.

“윤태호가 최초 계약을 승인했다. 이철호 선생님의 보고서는 같은 날 들어왔다.”

“아버지가 적발한 그 문제를 윤태호가 인지한 시점이죠. 그리고 그 문제를 인지했는데도 계약을 승인했습니다.”

“배상호도 동일한 결재라인에 있었다.”

이지원이 잠시 멈췄다.

“20년 전 부품검수과장. 9년 전 검수 기록 결재자. 현재 감사실 기록 삭제 실행자.”

“한 사람의 경력이 부패의 이력이다.”

두 사람의 문서를 한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왼쪽 — 1997년 계약서, 이철호 보고서 사본, 이철호 전보 발령 공문.

중앙 — 2009년 박중호 보고서 사본, 구매처 반려 문서.

오른쪽 — 2022년부터 현재까지의 불량 부품 로트, 배상호의 기록 삭제 로그, 대한정밀 화재 정보공개 청구서.

시간선이 완성됐다.

이지원이 시간선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1997년 12월 — 아버지 보고서 상신, 같은 날 윤태호 계약 승인.”

“1998년 4월 — 아버지 전보, 보고서 실종.”

“2009년 8월 — 박중호 팀장 특별 보고서 제출, 구매처 반려.”

“2024년 11월 — 대한정밀 화재, 감사 기록 삭제.”

신우진이 요약본 맨 아래에 한 줄을 추가했다. 유성 매직을 왼쪽 가슴 주머니에서 꺼냈다.

'부품 규격 조작 = 20년 이상 제도화된 관행. 문서 증거로 입증됨.'

“이걸로 중간 보고한다.”

문이 열렸다. 권오중 감사관이었다. 현장 점퍼를 입고 있었다. 안전화 굽 소리가 바닥에 닿았다.

“두 분 다 여기 있었군요.”

감사관이 책상에 다가왔다. 시간선이 정리된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이게 뭡니까.”

신우진이 요약본을 건넸다.

“14년간의 부품 검수 조작 패턴과 20년 전 최초 보고서의 교차 대조 결과입니다.”

권오중이 세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장에서 멈췄다.

“DH 제조사 코드 동일, 2A 금형라인 동일, 인장 강도 부족값 동일.”

“패킹 재질 치환도 동일합니다. 20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권오중이 고개를 들었다.

“결론은.”

신우진이 요약본 마지막 장을 가리켰다.

“이 납품 비리는 20년 이상 지속된 제도화된 관행입니다. 단일 계약이나 개인 비리가 아닙니다. 윤태호 본부장과 배상호가 최초 계약 시점부터 현재까지 동일한 결함 부품의 납품을 승인하고, 검수 부적합을 은폐해왔습니다.”

권오중이 잠시 침묵했다. 요약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게 증거로 성립하려면 원본 보고서의 실물이 필요합니다.”

“박중호 팀장의 9년 전 보고서 원본은 개인 금고에 보관 중입니다.”

“20년 전 이철호 씨 보고서는.”

이지원이 대답했다.

“그건 아직 원본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확보한 건 계약서와 아버지의 반려 문서, 전보 공문입니다.”

“그것만으로 연결은 됩니다. 하지만.”

권오중이 자신의 서류 가방을 열었다.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봉투 겉면에 국회의원실 로고가 찍혀 있었다.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신우진이 봉투를 열었다.

공문 한 장이었다. 구본근 의원실 발송, 감사원 특별감사반 수신.

'특별감사 범위의 과도한 확장에 대한 우려 및 즉각적인 범위 조정 요청.'

권오중이 말했다.

“감사 중단 압박입니다. 이 공문이 접수된 이상, 다음 주까지 중간 결과를 제출하지 못하면 감사 범위는 3년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우진이 공문을 내려놓았다. 이지원을 바라봤다.

이지원이 요약본을 집었다. 권오중에게 건넸다.

“이것이 중간 결과입니다. 20년. 1997년 12월 18일부터 현재까지.”

무정차 통과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