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75화

신우진은 무전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채널 4에는 여전히 정적만 흘렀다.

“박중호.”

한 번 더 호출했다. 응답 없었다.

무전기를 허리춤에 꽂고 검수 라인 쪽으로 뛰었다.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오며 휴대폰을 꺼냈다.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3번 선로 검수 피트. 박중호 검수팀장과 연락 끊겼습니다. 현장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끊고 복도를 달렸다. 안전화 바닥이 콘크리트를 박차는 소리가 빈 복도에 울렸다.

검수 라인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경보가 울렸다. 천장의 적색 경광등이 회전하며 라인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비상벨이 연속으로 울렸다. 관제실 방송이 뒤따랐다.

“3번 선로 전원 계통 이상. 확인 요망. 반복. 3번 선로 전원 계통 이상.”

신우진은 뛰었다. 3번 선로 검수 피트 방향으로.

통로에 타는 냄새가 번져 있었다. 전선 피복이 타는 냄새였다. 바닥에는 그을음이 날려 있었다.

시험 장비 몇 대의 전원 램프가 깜빡이고 있었다. 평소보다 어두운 라인 안쪽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피트 입구 쪽이었다.

“여기다! 여기!”

누군가 소리쳤다. 선로 관리복을 입은 직원이었다. 손전등을 피트 안으로 비추고 있었다.

신우진이 피트 입구에 섰다. 철제 덮개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아래는 어두웠다. 타는 냄새가 더 짙었다.

피트 바닥에 박중호가 쓰러져 있었다. 작업복 왼쪽 소매가 그을려 있었다. 오른손 근처에 토크 렌치가 떨어져 있었다. 무전기는 2미터쯤 떨어진 곳에 뒹굴고 있었다.

고압 케이블 한 가닥이 벽면 단자함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닿아 있었다. 피복이 벗겨진 구리선이 드러나 있었다. 그 끝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 전원 차단!”

신우진이 소리쳤다. 선로 관리복 직원이 벽 쪽 배전반으로 달려갔다. 차단기를 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시험 장비들의 램프가 일제히 꺼졌다.

경보는 계속 울렸다.

신우진이 사다리를 밟고 피트 아래로 내려갔다. 박중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왼손으로 박중호의 목에 손가락을 댔다.

맥박이 있었다. 약했지만 규칙적이었다.

“박중호 검수팀장.”

대답이 없었다. 눈은 감겨 있었다. 이마 오른쪽에서 피가 났다. 낙상 때 부딪힌 듯했다.호흡은 얕고 불규칙했다.

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경보가 울린 지 3분도 안 돼 관제실 직원 둘이 도착했다. 한 명이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전원은 차단했습니다. 감전 환자입니다. 구급차 요청하세요.”

신우진이 위를 올려다보지 않고 말했다.

관제실 직원이 무전기를 들었다.

“관제실, 3번 선로 검수 피트에서 감전 사고 발생. 부상자 1명, 의식 없음. 구급차 긴급 요청.”

신우진은 박중호의 작업복 깃을 풀었다. 오른손 장갑을 벗겨 손가락 색깔을 확인했다. 창백했다. 왼손 집게손가락의 오래된 유압유 흉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우진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를 박중호의 손목 안쪽에 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맥박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구급대가 도착한 것은 신고 12분 만이었다. 구급대원이 피트 아래로 내려와 박중호의 목뼈를 고정하고 산소 마스크를 씌웠다.

신우진은 피트 위로 올라와 한쪽에 섰다. 작업복 무릎 부분에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오른손에 박중호의 맥박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펴고 다시 쥐었다.

구급대원들이 박중호를 들것에 실어 올렸다. 목뼈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고 산소 마스크 너머로 얕은 호흡이 이어졌다. 왼쪽 팔의 화상 부위에 응급 드레싱이 붙여져 있었다.

차량기지 정문 쪽으로 들것이 옮겨졌다. 구급차가 적색 경광등을 켜고 대기 중이었다. 신우진이 구급차 옆으로 따라붙었다. 구급대원 한 명이 손을 들어 막았다.

“가족이십니까.”

“동료입니다. 같은 부서입니다.”

“병원으로 바로 가실 거면 따로 오셔야 합니다. 한국철도병원 응급실로 모실 겁니다.”

구급차 문이 닫혔다. 사이렌 소리가 차량기지 내부에 울려 퍼졌다. 신우진은 구급차가 정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휴대폰을 꺼내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중호 검수팀장 감전 사고입니다. 3번 선로 검수 피트. 지금 한국철도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이지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상태는요.”

“의식 없음. 맥박 약함. 현장에서 고압 케이블 절연 파괴 확인했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갑니다. 인사팀 서버 쪽은 원격으로 둘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주차장으로 뛰었다. 자신의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계기판 시계는 오후 3시 37분이었다.

한국철도병원 응급실.

신우진이 도착했을 때 박중호의 응급 처치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접수 창구에서 간호사가 말했다.

“박중호 님은 지금 응급실 안에 계십니다. 가족분이 아니면 밖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신우진은 응급실 입구 옆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작업복에 묻은 그을음을 손등으로 털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이지원이 도착했다. 흰 셔츠 소매가 팔꿈치까지 접혀 있었고 호흡이 약간 가빴다.

“언제 들어가십니까.”

“아직입니다.”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수술복 차림에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40대 남성이었다. 의사가 주위를 둘러보고 신우진과 이지원을 향해 걸어왔다.

“박중호 님 보호자분이십니까.”

신우진이 일어섰다.

“동료입니다. 상태를 알고 싶습니다.”

의사가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했다.

“중증 감전으로 인한 심장 리듬 이상과, 낙상으로 인한 두부 손상이 있습니다. 지금은 심박이 안정됐고, CT 촬영 결과 뇌출혈은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가 태블릿을 내렸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후는 앞으로 24시간에서 48시간 정도 지켜봐야 합니다.”

이지원이 물었다.

“중환자실입니까.”

“네. 다른 장기 손상이 있는지도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감전 부위인 왼쪽 팔 화상은 2도로, 당장 기능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의식 회복 시점이 관건입니다.”

의사가 태블릿을 챙기며 한 걸음 물러섰다.

“추가로 알려드릴 게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보호자 연락처는 접수 창구에 남겨주십시오.”

의사가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신우진과 이지원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이지원이 입을 열었다.

“고압 케이블이요.”

“네. 피복이 벗겨져 있었습니다. 노후화 추정.”

이지원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신우진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 뭉치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렸다. 박중호가 검수 피트로 떠나기 전 맡긴 금고 열쇠였다. 신우진은 열쇠를 쥔 채 병원 복도 저편을 바라봤다.

한국철도병원 중환자실 앞 복도.

한경숙이 복도 끝에서 걸어왔다. 손에는 수첩과 팩스지를 접어 쥐고 있었다. 뒤로 노조원 세 명이 따라왔다.

신우진이 벽에서 등을 떼며 일어섰다.

“어떻습니까.”

“지금은 지켜봐야 한대. 감전이 심했고, 떨어질 때 머리를 부딪혀서.”

한경숙이 팩스지를 신우진에게 건넸다.

“윤태호 쪽에서 벌써 내용증명 보냈어. 노조 집단 행동 때문에 검수가 지연돼서 사고 났다는 논리야.”

노조원 한 명이 끼어들었다.

“그걸 지금 증거랍시고 들이미는 겁니까? 사람이 저렇게 됐는데.”

“흥분하지 마.”

한경숙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사실 관계 먼저 확인해야 해. 적어도 우리는 기록으로 대응해야 한다.”

신우진이 팩스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사고 원인은 추측이 아니라 조사 보고서로 확정된다. 기다려야 한다.”

“윤태호가 인사 발령으로 정비팀을 죄다 빼낸 것도 사실 아닙니까. 그게 사고 원인 아니냐고요.”

신우진이 그 노조원을 똑바로 봤다.

“그것도 기록에 남는다. 인사 발령 공문과 검수 지연 사이의 인과는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

복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신우진이 병실 쪽을 한 번 돌아봤다.

“박 검수팀장이 남긴 기록부터 확보하겠다.”

한경숙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개인 금고 말이야.”

“열쇠는 응급실에서 인계받았다.”

한경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는 여기 남아서 노조원들 정리할게. 병원에 모인 인원들 명단 만들고, 사고 경위 진술서 양식도 배포하려고.”

“부탁한다.”

신우진이 복도를 가로질러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차량기지 정비팀 사무실. 오후 6시 3분.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점검 일지가 펼쳐져 있었고, 구석 찬장 위에는 사용한 공구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우진이 박중호의 사물함 앞에 섰다. 철제 사물함은 잠겨 있었다. 왼쪽 가슴 주머니에서 금고 열쇠를 꺼냈다. 열쇠 뭉치에서 가장 작은 열쇠 하나를 뽑아 자물쇠에 꽂았다.

딸깍.

사물함 문을 열었다. 위쪽 선반에는 작업 점퍼와 예비 안전화가 정리되어 있었다. 아래쪽 금고는 사물함 바닥에 고정된 소형 내화 금고였다.

신우진이 무릎을 꿇고 금고 다이얼을 돌렸다. 박중호가 입원 전 가르쳐준 번호였다. 다이얼이 멈추며 안쪽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금고 문을 열었다.

안에는 세로로 꽂힌 서류 봉투 하나와 비닐 봉투가 들어 있었다. 신우진이 먼저 비닐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밀봉된 봉투 안에는 A4 크기의 문서 뭉치가 보였다.

봉투 겉면에 박중호의 필체가 있었다.

“QC-2009-0031 원본. 폐기 금지.”

신우진이 비닐을 뜯었다. 9년 전 보고서 원본이 나왔다. 컬러 사진 4장, 부품 단면 확대 사진, 인장 강도 측정치 표. 하단에 박중호의 수기 서명이 있었다. 결재란은 비어 있었다.

보고서를 내려놓고 금고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금고 바닥판 모서리가 약간 들려 있었다. 신우진이 손가락을 넣어 바닥판을 들어 올리자 아래쪽 공간에서 작은 봉투가 나왔다.

접착제로 밀봉된 편지 봉투. 겉면에 연필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이철호 선배님 유품에서 발견. 1998년 2월.”

신우진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접힌 메모지 한 장.

손바닥만 한 메모지를 펼쳤다.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가장자리가 닳았다. 연필로 쓴 글씨.

“TH-1997-044. 문서보관실 3서가 7번 박스. 이철호.”

신우진이 메모지를 들어 형광등 불빛에 비춰봤다. 연필 획은 깊고 정확했다. 서두르지 않고 확실하게 눌러 쓴 글씨였다.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한 줄 더 있었다.

“계약 TH-1987-04, 시험성적서 불일치, 인장강도 -2.1N. 이의 있음.”

신우진이 천천히 일어섰다. 왼손에는 9년 전 보고서 원본. 오른손에는 20년 전 메모지.

두 문서가 같은 패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장 강도 2.1뉴턴 감소. 같은 제조사, 같은 금형 라인.

20년. 숫자가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휴대폰을 꺼내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길지 않았다.

“신우진입니다.”

이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방금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박 검수팀장 금고에서 9년 전 보고서 원본을 찾았다.”

“원본이요?”

“거기에 메모지 한 장이 더 있었다.”

신우진이 메모지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이지원의 숨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문서 번호가 TH-1997-044라면….”

“당신 아버지의 보고서 번호다.”

정적이 흘렀다. 이지원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위치는 어디라고 적혀 있습니까.”

“문서보관실 3서가 7번 박스다. 이철호라는 이름도 있고.”

“아버지가 직접 적은 메모네요.”

이지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면 보고서는 폐기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누군가 물리적으로 보관했다는 겁니다.”

“박 검수팀장이 보관했다. 1998년 2월에 이철호 선배님 유품에서 발견했다고 적혀 있다.”

“지금 저는 감사실 쪽입니다. 즉시 문서보관실 이관 기록을 재검색하겠습니다.”

신우진이 금고 문을 닫았다.

“내일 오전에 문서보관실 접근 권한을 신청해.”

“이미 신청서 초안을 노트북에 열어뒀습니다. 오늘 밤에 공식 접수시킬게요.”

신우진이 보고서 원본을 비닐 봉투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메모에 ‘계약 TH-1987-04, 인장강도 -2.1N’이라고 적혀 있다. 20년 전 보고서의 결함 수치다.”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증거 체인의 결함 수치와 일치하는군요.”

“그렇다. 20년 동안 같은 부품이 같은 결함으로 납품됐다.”

이지원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아버지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날짜는 1997년 12월 18일입니다.”

“오늘은.”

“12월 18일에서 20년이 지난 해입니다.”

신우진이 시계를 봤다. 6시 25분.

“병원으로 가자. 박 팀장님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그렇군요. 문서보관실 이관 기록 재검색 결과는 한 시간 안에 나옵니다. 결과 나오는 대로 병원에서 합류하겠습니다.”

“기다린다.”

전화를 끊었다. 신우진이 금고 열쇠를 왼쪽 가슴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보고서 원본과 메모지를 겉주머니에 분리해서 넣었다.

사무실 불을 끄고 복도로 나섰다. 차량기지 유리창 너머로 해가 거의 다 졌다.

한국철도병원 중환자실 앞 대기실. 오후 9시 40분.

대기실 긴 의자에 신우진과 이지원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중간 테이블에는 문서보관실 이관 기록 출력물 3장과 접근 신청서 사본이 놓여 있었다.

이지원이 출력물 한 장을 들어 가리켰다.

“이관 기록에는 분명히 TH-1997-044가 폐기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박 팀장님 금고에는 그 보고서의 위치를 가리키는 메모가 있었고.”

“서류상 폐기 기록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습니다. 이관 기록의 작성자는 김재원 전 감사실장. 그분은 이미 2001년에 퇴직했습니다. 진위를 확인하려면 당시 담당자를 찾아야 하는데….”

“당장은 문서보관실 3서가 7번 박스를 여는 게 먼저다.”

“내일 오전 9시로 접근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감사원 특별감사 증거 확보 명목으로요.”

이지원이 시계를 봤다. 시계 바늘은 9시 41분을 가리켰다.

“윤태호 쪽 변호사가 노조 간부 3명을 안전 업무 방해로 고소한 건 알고 계십니까.”

“한경숙에게서 들었다.”

“사고 원인을 노조 탓으로 돌리면서 동시에 증거 폐기를 시도한다면….”

“이 메모 위치도 위험해진다.”

신우진이 겉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빨라졌다. 뛰어오는 발소리.

대기실 문이 밀리며 열렸다. 최명식이었다. 안전조끼를 벗지도 않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형!!”

최명식이 대기실 안으로 두 걸음 들어왔다. 땀에 젖은 앞머리 아래로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길드원이 방금 급하게 연락해왔어요.”

신우진이 일어섰다.

“뭔데.”

“윤태호 쪽 변호사가 오늘 밤 문서보관실 3서가에 있는 1997년 자료 폐기 신청을 준비 중이래요.”

이지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력물을 움켜잡았다.

“내일이면 늦을 수도 있어요. 지금 당장….”

이지원이 최명식의 말을 잘랐다.

“문서보관실 관리실 야간 당직자에게 연락하겠습니다. 긴급 증거 보전 사유로 접근 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요청할게요.”

신우진이 메모지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같이 간다.”

이지원이 휴대폰을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감사실 소속인 제가 가는 게 절차상 빠릅니다.”

복도 쪽에서 한경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문서보관실 20년 전 자료가 위험합니다. 지금 폐기 신청이 들어가려는 참이에요.”

한경숙이 대기실 안을 한 번 훑었다.

“내가 차량기지 쪽 노조원 한 명을 급히 보낼까. 보관실 앞에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지원이 이미 통화 버튼을 누른 상태로 말했다.

“먼저 관리실과 통화하겠습니다. 그 뒤에 움직이겠습니다.”

신우진이 최명식에게 물었다.

“길드원 말대로면 오늘 밤 언제까지야.”

“자정 전에 처리하려는 것 같다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문서보관실 쪽에 폐기 요청 공문을 팩스로 보낸 모양이에요.”

이지원이 전화기를 귀에 댔다.

“문서보관실 야간 당직자 연결 부탁합니다.”

신우진은 대기실 창문 너머 중환자실 방향을 바라봤다. 유리 너머로 불빛 하나만 깜빡이고 있었다.

안에는 세로로 꽂힌 서류 봉투 하나와 비닐 봉투가 들어 있었다. 신우진이 먼저 비닐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밀봉된 봉투 안에는 A4 크기의 문서 뭉치가 보였다.

봉투 겉면에 박중호
무정차 통과7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