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83화

검수실은 조용했다.

형광등 두 개가 긴 작업대를 비추고 있었다. 내일 청문회를 앞둔 밤, 차량기지엔 야간 근무자들만 남아 있었다.

최명식이 검수 기록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선배님.”

신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손에는 내일 증거 목록 수정본이 들려 있었다.

“내일… 제 증언 순서가 몇 번째죠.”

“세 번째. 현장 검수원 3인 중 첫째.”

최명식이 뒷목을 만졌다. 오른손이 귀 뒤로 올라갔다.

“아, 네. 세 번째요.”

작업대 위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최명식이 컵을 잡지도 않고 바라만 봤다.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해.”

“7년 전. 무정차 통과 사고요.”

신우진의 손가락이 증거 목록 위에서 멈췄다.

“그 사고 당시에 선배님도 현장에 계셨다고…”

최명식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아까 박중호 부장님 병실에서 보고 듣다가, 그때 상황이 궁금해졌어요. 나중에 말씀해주셔도 되는데, 지금 아니면 내일 증언대에 서기 전에…”

“알아.”

신우진이 목록을 내려놓았다.

“그 사고로 내 왼손이 이렇게 됐다.”

왼손을 작업대 위에 올렸다. 집게손가락의 흉터. 유압유에 데인 자국이 형광등 아래서 반질거렸다.

최명식이 숨을 들이켰다.

“저는 그게 검수 중 부상인 줄만…”

“검수 중이긴 했다.”

신우진이 흉터를 검지로 한 번 쓸었다.

“사고 후 3시간째. 사고 차량 하부를 뜯던 중이었다.”

“사고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신우진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최명식도 마주 앉았다.

“7년 전, 나는 검수 3팀 소속이었다. 담당 구역은 B4 계열 제동장치 전수 검사.”

“그때도 B4였어요?”

“같은 계열. 다른 로트 번호.”

신우진이 오른손 검지를 허공에 댔다. 천천히 숫자를 그렸다.

“KD-2037-087. 지금 문제 된 부품과 제조사 코드 동일. DH.”

최명식의 입이 벌어졌다.

“그럼 벌써 그때부터…”

“마모 한계치가 조작되어 있었다. 인장강도 2.1뉴턴 부족. 지금과 똑같은 수치다.”

신우진이 손을 내렸다.

“내가 발견했다. 교체 주기가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걸.”

“선임에게 보고했는데.”

“막혔다.”

“누가요.”

“당시 검수팀장 고동수 과장. 지금은 퇴직했다.”

신우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감정은 없었다. 사실만 나열하는 톤이었다.

“고 과장이 말했다. 납품사에서 제출한 시험 성적서가 규격을 충족하니 문제없다고.”

“근데 선배님은…”

“믿지 않았다. 검수 기록에 이의를 달았다. 교체 권고 의견도 첨부했다.”

신우진이 손가락으로 작업대를 한 번 톡 쳤다.

“그 기록은 결재 라인에서 반려됐다. 사유는 ‘시험 성적서와 검수 결과 간 단순 편차’.”

최명식이 주먹을 쥐었다.

“시험 성적서가… 조작된 거였잖아요.”

“그땐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요.”

최명식이 앞으로 기울었다.

“사흘 뒤였다. 오후 2시 17분.”

신우진이 말을 이었다. 시계는 보지 않았다. 숫자는 정확했다.

“금정역 무정차 통과 사고. KD-2037-087 장착 차량이었다. 제동압이 풀리지 않아 역을 그대로 지나쳤다. 다행히 탈선은 없었다. 인명 피해도.”

“하지만…”

“동기가 탔다.”

신우진의 손이 멈췄다.

“동기. 강재호. 나와 같은 해 입사한 검수원.”

최명식의 표정이 굳었다.

“사고 당시 열차에 타고 있었어요?”

“아니. 사고 수습조였다.”

신우진이 왼손 집게손가락을 폈다. 흉터가 선명했다.

“수습 현장에서 부품 하부를 분해하다 유압유가 샜다. 고압 분사. 이 손가락으로 막았다.”

“그 사고 이후 강재호가 말했다. 더는 못 하겠다고.”

“은퇴했나요.”

“의원 면직. 본인이 냈다. 그 부품이 문제인 걸 알았지만… 기록이 없었다.”

신우진이 손을 내려다봤다.

“내 검수 이의 기록은 이미 반려된 상태였다. 다른 증거도 없었다.”

신우진이 일어났다. 검수실 구석 개인 사물함으로 걸어갔다.

자물쇠를 풀고 두꺼운 파일 하나를 꺼냈다.

“선임의 조사 노트다.”

작업대 위에 파일을 올렸다. 표지는 누렇게 바랬다.

“고동수 과장. 내 이의 제기를 반려한 그 선임.”

“그분이… 노트를 남겼어요?”

“은퇴 3년 뒤 암으로 사망했다. 작년에 유족이 보내왔다.”

신우진이 첫 페이지를 폈다. 연필 글씨가 빼곡했다.

최명식이 다가서서 들여다봤다.

“이건…”

“고 과장이 반려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신우진이 한 항목을 가리켰다. 오른손 검지가 선을 그었다.

- KD-2037-087: 인장강도 기준치 18.5N 대비 실측 16.4N (2.1N 부족) - 시험 성적서상 수치: 18.6N - 검수 이의 제기 일자: 2017년 4월 9일 - 반려 사유: “납품사 시험 성적서 우선. 추가 검증 불필요 — 구매처 지시.”

최명식이 숨을 들이켰다.

“구매처 지시라고 적혀 있어요.”

“그 구매처 담당이 당시 대리였던 윤태호다.”

신우진이 파일에서 다른 서류를 꺼냈다. 현재 검수 기록 사본이었다.

나란히 폈다.

“지금 봐라. B4-BV-2287. 인장강도 기준치 18.5N, 실측 16.4N. 2.1뉴턴 부족.”

“똑같아요.”

“로트 번호만 다르다. 제조사 코드는 DH로 동일. 금형라인 2A도 같다.”

최명식이 두 서류를 번갈아 봤다.

“7년 전이랑 지금이랑… 같은 회사, 같은 금형, 같은 결함.”

“한 가지 더.”

신우진이 선임 노트 마지막 장을 폈다. 접힌 A4 용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고 과장이 몰래 보관한 구매처 내부 메모.”

최명식이 읽었다.

‘B4 계열 납품사(대한정밀) 시험 성적서 적격 판정 유지 요청. 전량 검수 통과 협조 바람. — 구매처 윤태호 대리.’

날짜는 2017년 4월 8일. 신우진의 이의 제기 하루 전이었다.

“이걸 갖고 계셨는데… 왜 지금까지.”

최명식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신우진이 조용히 말했다.

“기록으로 남기기 전까지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형광등이 깜박였다가 다시 켜졌다.

“고 과장도 믿지 못하셨어요.”

최명식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선배님께 이 노트를 주신 이유가… 아마 그거겠죠. 본인은 못 했지만 증거는 남겼다.”

신우진이 끄덕였다.

“부품 하나. 볼트 하나. 기준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걸 7년 동안 혼자…”

최명식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말은 거기서 멈췄다.

잠시 작업대 위 서류들만 형광등을 받고 있었다.

최명식이 천천히 말했다. 어느 때보다 느렸다.

“저 내일 증언대에서… 제가 직접 목격한 것만 말하려고요.”

신우진이 그를 봤다.

“올해 3월. 제가 검수했던 부품 있어요. 로트 번호는 B4-BV-2311. 외관 검사 통과했는데, 패킹 재질이 사양서랑 달랐어요. HNBR이 들어가 있었죠.”

“기록했나.”

“네. 검수 일지에 남겼습니다.”

최명식이 똑바로 신우진을 쳐다봤다.

“그런데 사흘 뒤에 일지 다시 열어보니까 그 항목이 삭제되어 있었어요.”

“누가.”

“모릅니다. 접근 기록도 없었고.”

최명식이 주먹을 폈다 쥐었다.

“그때는 그냥 넘어갔어요. 제가 실수했나 싶어서.”

“하지만 이제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네.”

최명식이 일어섰다.

“선배님이 7년 묵혀온 증거를 내일 제출하신다면… 저도 제 기록을 증거로 내겠습니다.”

“할 수 있나. 혼자서.”

“해야죠.”

최명식의 목소리가 약간 빨라졌지만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배님한테 검토받지 않고, 제 판단으로. 그게 이 일을 한 3년 동안 제가 처음 하는 제대로 된 선택인 것 같아요.”

신우진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작업대 위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명식아.”

“네.”

“준비됐군.”

최명식이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신우진이 파일을 정리하고 사물함을 잠갔다.

최명식은 복사기로 선임 노트와 메모를 복사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구겨지지 않게 정리했다.

“이 노트 사본… 내일 제 증언 순서 때 제가 직접 제출하겠습니다.”

봉투에 복사본을 넣으며 말했다.

“7년 전 검수 이의 기록과 현재 부품 간 로트 번호 대조표, 그리고 제가 목격한 삭제된 검수 일지. 이렇게 세 가지요.”

“순서는.”

“검수 일지 삭제 건 먼저 말하고, 그 연결선에서 이 노트를 꺼낼게요. 윤태호 측 반대신문이 아마 부품 로트 번호 다르다고 칠 건데, 그때 대조표로 DH 코드랑 금형라인 2A 일치하는 거 보여주면…”

최명식이 봉투를 두드렸다.

“저는 더는 선배님한테 물어보지 않고 합니다.”

“그래.”

신우진이 검수실 불을 한 줄 껐다.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차량기지 야간 조명이 긴 그림자를 바닥에 늘어뜨렸다.

정문 밖으로 나서자 밤공기가 차가웠다. 내일 청문회장은 오전 9시 개회였다.

최명식이 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선배님.”

“말해.”

“이게 끝나면 강재호 선배님한테 연락해보시죠.”

신우진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노트 보여드리면… 아마 그분도 오해 풀 수 있을 거예요.”

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왼손을 들어 잠시 흉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량기지 정문이 두 사람 뒤로 닫혔다. 내일이면 이 모든 기록이 청문회장 증거대 위에 펼쳐질 것이었다.

무정차 통과8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