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87화

위원장이 청문봉을 두 번째로 내리쳤다.

“다음 증인. 철도공사 대전차량기지 검수원 최명식. 증언대로 나오십시오.”

최명식이 일어나 증언대까지 걸어갔다. 손바닥을 바지 옆선에 한 번 문질렀다. 신우진이 방청석 둘째 줄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증인은 선서하십시오.”

“선서합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최명식이 물컵을 한 모금 마셨다.

“증인은 7년 전 무정차 통과 사고 당시 대전차량기지에서 근무했습니까.”

“네. 신우진 선배님과 같은 조였습니다.”

“당시 부품 검수 과정에서 특이 사항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최명식이 증언대 모서리를 잡았다. 손가락 끝이 하얘졌다.

“2017년 3월이었습니다. B4 계열 제동밸브, 로트 번호 KD-2037-087. 교체 주기가 72개월로 등록돼 있었는데, 제가 확인해보니까 이미 14개월 전에 같은 로트가 교체 기록에 올라와 있었어요. 기록상으로는 신품이었지만, 부품 외함에 붙은 보존유 스티커가 2015년 11월 거였습니다. 개봉한 지 최소 1년 반 지난 물건이었죠.”

피감사인 석에서 윤태호의 변호사가 일어나려 했다. 윤태호가 왼손을 살짝 들어 제지했다.

“증인. 그 부품의 로트 번호를 지금도 기억합니까.”

“KD-2037-087. 제조사 코드 DH. 금형라인 2A.”

최명식이 허리춤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폈다. 손때 묻은 페이지에 숫자가 빼곡했다.

“이건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기록한 겁니다. 사고 나고 이틀 뒤에 다시 확인했는데, 그 로트가 시스템에서 사라졌습니다. 교체 기록도, 입고 기록도 없던 일이 됐어요.”

방청석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열두 명의 검수원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원장이 자료 뭉치를 들어 올렸다.

“방금 증인이 언급한 로트 번호 KD-2037-087은 현재 문제가 된 B4-BV-2287과 제조사 코드, 금형라인이 일치하는 것으로 감사원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이 연관성에 대해 증인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같은 금형, 같은 제조사에서 찍어낸 부품입니다. 로트 번호만 바뀌었을 뿐이에요. 7년 전 문제였던 인장강도 부족이 지금도 똑같이 16.4뉴턴으로 나오는 건, 부품 자체가 개선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변호사가 일어섰다.

“위원장님, 증인은 해당 부품의 검수 책임자가 아닙니다. 검수원 개인의 주관적 판단을 사실인 양 진술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최명식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제가 교체 주기 조작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주관이 아니라 기록이에요.”

수첩을 들어 보였다.

“날짜, 로트 번호, 스티커 상태까지 전부 여기 있습니다. 7년 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원장이 변호사 쪽을 향했다.

“증인이 제출한 수첩 기록은 감사원 대조 자료와 일치합니다. 이의는 기각합니다.”

최명식이 증언대에서 물러나며 수첩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열두 명의 검수원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위원장이 청문봉을 짧게 쳤다.

“다음 증인. 노동조합 지부장 한경숙.”

한경숙이 방청석 왼쪽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재킷 앞주머니에 접힌 서류 뭉치가 꽂혀 있었다. 증언대까지 걸어가는 동안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증인은 선서하십시오.”

“선서합니다.”

“증인은 작년에 내부 제보자로부터 부품 시험 성적서 조작에 관한 제보를 접수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설명해 주십시오.”

한경숙이 서류 뭉치를 펼쳤다.

“2023년 4월, 익명 제보가 노조 내부 채널로 들어왔습니다. 제보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B4 계열 제동밸브 시험 성적서가 체계적으로 조작되고 있고, 로트 번호 KD-2037-114와 2022년 이후 납품분이 대상이라고.”

서류 한 장을 위원회 쪽으로 밀어 넣었다.

“제보자가 첨부한 사진과 측정치입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독립 시험 의뢰 결과, 인장강도 16.4뉴턴. 설계 기준 18.5뉴턴 대비 2.1뉴턴 부족.”

감사원 석의 김정환이 노트에서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으로 특정 페이지를 짚었다.

“위원장님, 감사원 제출 자료와 교차 확인하겠습니다.”

김정환이 일어나 스크린을 가리켰다.

“한경숙 증인이 제출한 제보 자료의 로트 번호 KD-2037-114는 현재 감사원에서 확보한 2009년 박중호 보고서의 로트 번호와 일치합니다. 또한 2024년 신우진 검수 기록의 B4-BV-2287 역시 제조사 DH, 금형라인 2A로 동일합니다.”

스크린에 세 개의 문서가 동시에 떠올랐다. 1997. 2009. 2024. 제조사 코드에 붉은색 밑줄이 그어졌다.

한경숙이 말을 이었다.

“제보자가 보낸 게 부품 로트 번호만이 아닙니다. 납품 주기, 교체 예정일, 시험 성적서 발행일까지 전부 특정돼 있었습니다.”

“제보자의 신원을 아직도 모릅니까.”

“모릅니다. 공식적으로 보호하기로 했고, 증언이 필요한 시점에 실명을 공개하겠다는 확약을 받았습니다.”

윤태호의 변호사가 일어섰다.

“위원장님. 익명 제보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를 청문회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합니다.”

김정환이 즉시 응답했다.

“제보 자료는 독립 시험 기관의 공인 측정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가 아니라 측정치의 일치 여부가 증거능력의 핵심입니다.”

위원장이 양쪽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의 기각. 감사원의 교차 확인이 완료된 자료는 증거로 채택합니다.”

한경숙이 증언대에서 물러나며 접힌 서류를 품에 안았다.

위원장이 시계를 확인하고 청문봉을 내리쳤다.

“감사원 특별감사관. 추가 발표가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정환이 노트를 손에 쥔 채 발언대로 걸어갔다. 보조 직원이 문서 바인더 두 권을 발언대 위에 올려놓았다.

“감사원 특별감사반은 대한정밀 물류창고 B동 지하 2층 전산실 서버에서 암호화된 회계 장부를 확보했습니다. 프로젝트T라고 명명된 이 장부에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의 지출 내역이 기록돼 있습니다.”

김정환이 바인더를 열고 페이지를 한 장씩 스크린에 띄웠다.

“2019년 3월 12일, 시험 성적서 발급. 이틀 뒤인 3월 14일, 한상진 의원실로 3천만 원 후원. 2019년 9월 5일, 성적서 발급. 9월 8일 후원금 3천만 원. 2020년 3월 10일, 성적서 발급. 3월 14일, 후원금. 이 패턴이 6년간 열두 번 반복됐습니다.”

스크린에 표가 떠올랐다. 왼쪽 열은 시험 성적서 발급일, 오른쪽 열은 후원금 입금일. 평균 간격 4.3일.

“2021년 9월 건은 시험 성적서 발급 당일 오전, 후원금 입금 당일 오후. 간격 0일입니다. 2024년 4월에는 B4 계열 전 제품군의 시험일과 발급일 간격이 하루로 단축되는 비정상 패턴까지 확인됐습니다.”

피감사인 석의 윤태호가 왼손을 탁자 아래로 내렸다. 오른손 검지가 방어 전략 문서의 마지막 탭을 한 번 쓸었지만 아무 페이지도 펴지 않았다.

김정환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한상진 의원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으로 철도안전법 개정안 심의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험 성적서가 발급될 때마다 후원금이 입금됐고, 후원금이 입금될 때마다 부실한 부품이 납품 자격을 유지했습니다. 총액 3억 4천만 원.”

김정환이 한 장을 더 올렸다.

“프로젝트T 장부 말미에는 월별 배당 내역이 있습니다. 대한정밀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지출된 자금이 컨설팅 명목으로 일부 되돌아왔습니다. 그 되돌아온 날짜는 전부 시험 성적서 발급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입니다.”

회의장 안의 웅성거림이 일제히 멎었다.

방청석 오른쪽 구석에서 한상진 의원 측 보좌관이 몸을 숙이더니 완전히 일어나 복도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이동했다. 심문위원 한 명이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윤태호가 변호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변호사의 펜이 멈춰 있었다. 귀를 기울였지만 받아 적지 않았다.

김정환이 마지막 바인더를 덮었다.

“위원회에 제출한 증거 번호 AU-2024-0087-03입니다. 첨부 자료와 회계 분석 보고서가 포함돼 있습니다. 별도 수사 의뢰가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윤태호가 탁자 위의 물컵을 들었다. 입술에 대지 않고 다시 내려놓았다. 손가락 세 개가 여전히 컵을 감싸고 있었다. 얼굴에서 혈색이 가셨다.

위원장이 청문봉을 세 번째로 내리쳤다.

“오후 심문은 예정대로 오후 2시에 속개합니다. 위원회는 방금 제출된 회계 장부에 대한 비공개 질의를 검토하겠습니다.”

탁자 위의 컵에서 물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윤태호의 손바닥에 힘이 들어간 게 방청석 둘째 줄에서도 보였다.

위원장이 손을 들었다.

“다음 안건입니다. 감사원에 요청한 추가 자료 중, 피감사인 윤태호 대표의 과거 폭력 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윤태호의 등이 곧게 펴졌다.

“감사원 측, 준비된 자료가 있습니까.”

김정환이 문서 하나를 들어 올렸다.

“봉인 증거 제17호. 원본은 이지원 감사관이 보관 중입니다.”

“증인 이지원, 자료를 제출해 주십시오.”

이지원이 증인 대기석에서 일어나 자료 검토석으로 걸어갔다. 손에 두께 약 1센티미터의 투명 파일이 들려 있었다. 겉표지에 ‘증거 제17호: 1997년 11월 협박 및 폭행 사건 진료 기록’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위원장이 턱을 약간 들었다.

“자료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이지원이 파일을 자료 제출대에 올려놓았다.

“1997년 11월 14일, 대한정밀 사무실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료 기록입니다.”

변호사가 손을 들려는 순간 윤태호가 손목을 잡아 내렸다. 이지원이 파일을 폈다.

“당시 피해자는 전 검수관 이철호. 가해자는 대한정밀 당시 전무였던 고 박동수. 진료 기록에는 좌측 턱 관통상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위원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턱 부상을 입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로 체포된 사람은 고 박동수입니다. 그러나 같은 날 밤, 또 다른 응급실 기록이 작성되었습니다. 을지병원 응급실. 1997년 11월 14일 밤 10시 47분 접수. 환자명 윤태호. 외상 원인: 산업 현장 사고. 상처 부위: 왼쪽 턱이 찢긴 상처, 길이 4.2센티미터.”

이지원이 세 번째 서류를 꺼냈다.

“고 박동수의 공소장입니다. 피고인은 이철호 검수관에게 ‘B4 계열 부품 불량 보고를 취소하라’고 요구하며 각목을 휘둘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말리던 윤태호 씨가 좌측 턱에 상해를 입었습니다.”

윤태호의 왼손이 탁자 아래로 내려갔다. 주먹을 쥐지 않고 손가락 끝이 탁자 모서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공소장의 피고인 진술을 인용합니다. ‘윤태호 대리가 먼저 이철호의 멱살을 잡았다. 나는 부품 불량 건을 말로 처리하라고 시켰을 뿐이다.’”

정적이 흘렀다. 속기사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사건 발생 나흘 뒤, 윤태호 대리는 구매처 과장으로 승진 발령되었습니다. 같은 날 이철호 검수관은 지방 발령이 났습니다.”

윤태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게 무슨—”

“앉으십시오, 윤태호 대표.”

위원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굳어졌다.

“증인 이지원, 계속하십시오.”

윤태호가 앉았다. 얼굴에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 약지의 금색 인장 반지를 왼손 엄지로 천천히 돌렸다.

이지원이 마지막 문서를 폈다.

“철도공사 내부 징계 기록입니다. 이철호 검수관의 징계 사유는 ‘허위 보고’. 징계 근거 자료에 동봉된 사진에서 이철호 검수관의 안면 열상이 보입니다. 피해자가 징계를 받고, 가해자와 개입자는 승진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27년 동안 B4 계열 부품 불량은 단 한 번도 공식 기록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올해 신우진 검수관이 적발하기 전까지.”

위원장이 방청석 쪽을 바라봤다. 신우진은 서류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앉아 있었다. 이지원이 증거 제출 확인증을 챙겨 들고 증인석으로 돌아가지 않고 신우진 옆에 섰다.

청문회장이 고요해졌다. 벽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12시 21분이었다.

위원장이 청문봉을 들어 탁자를 한 번 쳤다.

“청문위원회는 이 사건 기록을 조사 대상으로 채택하고, 조사 범위에 1997년을 포함시킬 것을 감사원에 권고합니다. 다음 안건입니다. 피감사인 윤태호가 대표로 있는 대정밀에 대한 계약 해지 권고 및 영구 입찰 자격 박탈 권고안을 상정합니다.”

윤태호가 손가락을 멈췄다. 법무팀장이 귓속말을 하려 했지만 윤태호가 손을 들어 막았다.

“표결하겠습니다. 찬성하시는 위원께서는 손을 들어 주십시오.”

다섯 명의 위원 전원이 손을 들었다. 반대도, 기권도 없었다.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고요가 흘렀다. 3초, 5초.

뒷줄 방청석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열두 명의 현장 검수원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최명식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박수를 쳤다. 증언 원고 사본이 무릎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으나 줍지 않았다.

한경숙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집단 증언 참여자 서명부를 가슴에 안은 채 방청석 맨 앞줄에서 천천히 허리를 폈다.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감사원 석의 보좌관이 일어나 위원장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청문회 결과에 따른 공식 조치로, 본사 구매처 유착 라인 전원에 대한 징계 절차가 오늘 중으로 개시됩니다. 감사원이 실시간 모니터링합니다.”

위원장이 청문봉을 들어 두 번째로 탁자를 쳤다.

“이것으로 오늘 청문회의 모든 안건을 종료합니다. 속기록 열람 일정은 사무국을 통해 통보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신우진이 서류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이지원이 옆에서 함께 걸었다. 바닥에 최명식의 증언 원고가 흩어져 있었고, 한 검수원이 조용히 내려와 주워 건넸다.

피감사인석에서 윤태호가 천천히 일어섰다. 법무팀장이 따라 일어섰다. 윤태호는 방청석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입술 끝에 선 하나가 사라지지 않은 채, 변호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항고 절차를 검토하십시오.”

법무팀장이 대답하기 전에 윤태호는 이미 몸을 돌려 뒷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김정환이 바인더를 열고 페이지를 한 장씩 스크린에 띄웠다.

“2019년 3월 12일, 시험 성적서 발급. 이틀 뒤인 3월 14일, 한상진 의원실로 3천만 원 후원. 2019년 9
무정차 통과8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