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무정차 통과

89화

오전 10시 05분. 국회 의원회관 합동 청문회장.

방청석이 가득 찼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몇 번 터졌다. 중앙의 위원장이 사건 번호와 안건을 낭독하고 속기사가 자판에 손을 올렸다.

“본 합동 청문회를 개회합니다.”

위원장이 목차를 넘기려는 순간, 윤태호 측 법률 대리인이 손을 들었다. 검은 정장, 은색 타이핀. 탁자 위에는 두꺼운 법전 사본이 펼쳐져 있었다.

“위원장님, 개회 직전에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위원장이 손을 멈췄다.

“말씀하십시오.”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인쇄된 조문 묶음.

“오늘 상정된 부품 시험 성적서 세 건에 대해, 본 대리인은 증거 채택 이의를 제기합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변호사는 조문 묶음의 한 페이지를 들어 올렸다.

“철도안전법 시행령 부칙 제12조 3항. 부품 시험 성적서의 보존 책임은 공사와 납품사가 협의하여 정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신우진은 증인석에서 변호사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가운데 1997년 문서는 보존 연한이 만료된 지 오래입니다. 2009년 문서는 이관 기록이 소실됐고, 현행 문서만으로 27년간의 연속성을 입증한다는 것은 법리상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위원장이 안경 너머로 변호사를 응시했다.

“본 위원회는 이미 전 회의에서 해당 문서들의 물리적 동일성을 인정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오늘 회의가 진행됩니다.”

“물리적 동일성과 법적 연속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위원장님.”

변호사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정확히 계산된 강조였다.

“물리적으로 같은 부품이라도, 그 사이 이관·폐기·재발행 절차에서 문서의 동일성이 단절됐다면 이는 증거 능력의 문제입니다. 이 상태로 청문회를 진행하는 것은 향후 법원에서 절차적 하자로 지적받을 소지가 큽니다.”

이지원이 방청석 앞줄에서 손목의 메탈 시계를 무의식적으로 만졌다. 왼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위원회 측 좌측의 법무팀 선임이 몸을 기울여 위원장에게 짧게 귀엣말을 했다.

변호사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본 대리인은 문서 보존의 연속성이 입증될 때까지 해당 증거들의 채택을 보류할 것을 공식 요청합니다. 이것은 지연이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방청석 뒤쪽에서 기자 한 명이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위원장이 잠시 침묵했다. 탁자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다시 들었다.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위원회는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15분간 정회를 선언합니다.”

망치 소리가 짧게 울렸다.

청문회장 밖 복도. 정회 중.

신우진이 유리문을 밀치고 복도로 나왔다. 이지원이 반대편 벤치에서 일어나 걸어왔다. 손에 두꺼운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 모서리가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예상한 수순입니다.”

이지원이 복도 창가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신우진이 따라붙었다.

“보존 연한 주장은 지연 전략입니다. 문서 체인의 신뢰성을 흔드는 게 목적이지, 정말로 증거 배제를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다.”

“위원회가 오늘 중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내일 속개 때 같은 논리로 나머지 증거를 전부 공격할 겁니다.”

이지원이 서류 봉투를 신우진 쪽으로 내밀었다.

“준비해뒀습니다.”

신우진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묵직했다.

“현장 검수원 47명의 공동 증언서입니다. 동일 부품의 교체 주기 조작을 현장에서 반복 목격했다는 내용과 함께, 각자 작성한 수기 서명이 첨부돼 있습니다.”

신우진이 봉투를 열고 첫 장을 꺼냈다. 서명 목록이 빼곡했다. 연필, 볼펜, 다른 필압.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한 명씩 써 내려간 흔적이었다. 세 번째 페이지에서 최명식의 이름을 발견했다. 글씨가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이 증언서는 1997년 문서를 보완하는 별개의 증거입니다. 보존 연한 논쟁과 무관하게, 현재 시점에서 동일한 부품 결함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장 검수원들이 직접 증언하는 거죠. 문서 체인의 단절을 주장해도 피해 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신우진이 첫 장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몇 명 더 됐다.”

“네?”

“아까 정비원 한 명이 복도에서 인사했다. 이름을 못 들은 검수원도 서너 명 방청석에 있었다. 47명이 전부가 아니다.”

이지원이 신우진의 얼굴을 한순간 응시했다. 입가가 아주 짧게 움직였다.

“그 말, 위원회 앞에서 하셔야 합니다.”

신우진이 봉투를 접어 왼손에 쥐었다. 복도 저편에서 청문회 사무관이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정회 종료 3분 전이었다.

신우진이 증인석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봉투는 여전히 왼손에 쥔 채였다.

정회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복도에 울리고, 신우진은 봉투를 든 채 청문회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위원장이 목탁을 두 번 두드렸다.

“청문회를 속개합니다. 증인 신우진, 증인석에 착석해 주십시오.”

신우진은 방청석 앞줄에서 일어났다. 왼손에 A4 크기의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정회 직전 이지원이 건넨 봉투였다. 겉면에 ‘현장 검수원 공동 증언서’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증인석까지 여섯 걸음. 신우진은 봉투를 오른손으로 옮겨 쥐고 위원장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증언 전에 제출할 자료가 있습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들었다.

“어떤 자료입니까.”

“차량기지 현장 검수원 47명의 공동 증언서입니다.”

신우진이 봉투에서 서류 묶음을 꺼냈다. 첫 장에 빼곡한 서명. 검수원들의 소속과 사번, 날짜가 인쇄된 줄 위로 각기 다른 필체의 서명이 줄지어 있었다.

“부품 번호 B4-BV-2287의 교체 주기 조작이 단일 검수원의 지적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 목격된 구조적 문제임을 증명합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윤태호의 법률 대리인이 즉시 손을 들었다.

“위원장님, 증인 사전 증거 제출 원칙 위반입니다.”

이지원이 방청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에 청문회 규정집을 들고 있었다.

“청문회 규칙 제14조 2항, 증인은 증언 중 보충 증거를 제출할 수 있습니다. 사전 제출 의무는 본증거에만 해당합니다.”

위원장이 손을 들어 변호사를 제지했다.

“증거로 채택합니다. 사무국은 사본을 위원 전원에게 배포하십시오.”

윤태호의 변호사가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자리에 앉았다. 위원장이 신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계속하십시오.”

그때 방청석 왼쪽에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한경숙이 일어섰다.

“위원장님.”

노조 위원장이었다. 검은색 정장 차림에 오른손에 플라스틱 파일을 들고 있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도 과거 정비 일지를 보강 증거로 제출할 의사가 있습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B4 계열 부품의 교체 주기와 현장 검수원들의 이의 제기 기록입니다.”

한경숙이 파일을 들어 보였다.

“노조 내부 기록이지만, 청문회 규칙 제14조의 증인 보충 증거 범위에 포함됩니다.”

위원장이 잠시 생각했다.

“노조 측 기록도 참고 자료로 채택합니다. 사무국에 제출해 주십시오.”

한경숙이 목례하고 복도 쪽 사무국 직원에게 파일을 건넸다.

윤태호가 변호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짧은 귀엣말이 오갔다. 변호사가 다시 한 번 손을 들려다 멈췄다.

위원장이 신우진에게 말했다.

“증언을 시작하십시오.”

신우진은 공동 증언서 한 부를 손에 든 채 증인석에 앉았다. 속기사가 자판에 손을 올렸다.

오후 다섯 시.

청문회 첫날 일정이 종료됐다. 속기록 마지막 장이 인쇄되고, 위원들이 먼저 퇴장했다. 방청석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신우진은 증인석을 벗어나 복도 쪽으로 걸었다. 왼손에 접힌 공동 증언서 사본을 쥐고 있었다.

복도 중간쯤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윤태호였다. 짙은 남색 수트, 옆에 경호원 한 명. 얼굴에 평소의 미소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잘 준비했군.”

신우진이 멈춰 섰다. 윤태호의 왼쪽 턱 흉터가 복도 형광등 아래에서 옅게 드러났다.

윤태호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경호원에게 고갯짓했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지하 주차장 방향이었다.

신우진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오른손에 쥔 증언서 사본이 약간 구겨질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지원이었다. 손에 서류 확인증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사무국 기록 접수처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증거 목록이 확정됐습니다.”

이지원이 복도 벽면의 게시판을 가리켰다. 전자 게시판에 금일 제출 증거 목록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신우진이 게시판 앞으로 걸어갔다.

세 번째 줄: AU-2024-0087-03 — 1997년 시험 성적서 원본 및 이철호 검수관 메모.

네 번째 줄: QC-2009-0031 — 박중호 검수관 9년 전 보고서 원본.

다섯 번째 줄: 현장 검수원 47인 공동 증언서.

여섯 번째 줄: 전국철도노동조합 정비 일지 (2015-2024).

이지원이 네 번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버지 성적서와 박 검수관 보고서가 나란히 등재됐네요.”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손끝이 게시판 유리 표면에서 잠시 멈췄다.

신우진은 게시판을 한 줄씩 다시 읽었다. 각 증거 번호 옆에 ‘채택’이라는 녹색 표시가 붙어 있었다.

사무국 직원 한 명이 옆에서 서류 묶음을 정리하다 말했다.

“내일 증언에서는 이 보고서들의 연결고리를 입증해야 합니다. 단순 병렬이 아니라 인과관계를요.”

신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목례하고 사무국 사무실로 들어갔다.

복도가 점점 비워졌다. 형광등 불빛만 남았다.

신우진은 왼손의 증언서 사본과 게시판의 목록을 번갈아 바라봤다. 1997년 이철호. 2009년 박중호. 2024년 현장 검수원 47명.

이지원이 게시판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내일은 이걸 하나로 묶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신우진이 증언서를 반으로 접어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게시판의 목록이 한 번 더 스크롤되며 첫 줄로 돌아갔다.

무정차 통과89화